예수는 왜 일한 시간 달라도 같은 품삯을 주라고 했나

  • 통합검색
  • 뉴스
  • 오피니언
  • 인물
  • 문화
  • 이단
  • 기고/강연
  • 포토뉴스
  • 동영상뉴스

뉴스 검색결과

  • 이단 IYF 월드캠프에 교계는 침묵만 이단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IYF(국제청소년연합) 월드문화캠프가 지난 7월3일 해운대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총 14일 동안 개최했지만 지역교계의 대응은 전무했다. 금년 대회는 50여 개국 청소년 4천여 명이 참석했고, 27개국 장차관 30여 명과 23개국 대학 총장 및 부총장 60여 명이 이번 행사를 찾았다. 개막식에는 시민 5만여 명과 지상파와 지역 방송국 등 전파를 탔다. 마치 부산의 여름철 대표 행사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박옥수 실체를 알리는 노력은 전무한 실정이다.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박성호 목사)는 월드캠프 개막식 후 지휘서신을 통해 월드캠프 실체를 알리는 등 뒷북 행정을 펼쳤고, 나머지 연합기관등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번행사에는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해동 의장, 박현욱 수영구청장과 지역 국회의원등이 행사에 얼굴을 비추거나 축전을 보냈고, 토마스 야이보니 전 베냉공화국 대통령도 행사에 참석했다. 지역 교계의 대응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단 IYF 월드문화캠프는 더 이상 손을 쓰기 힘든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자칫 박옥수의 입지만 강화시켜 부산이 구원파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7-21
  • 통합 101회기 부총회장 후보 등록 예장통합 제101회 총회 목사부총회장 후보로 정헌교 목사(청주 강서교회)와 최기학 목사(서울 상현교회)가 등록을 마쳤다. 장로부총회장에는 손학중 장로(서울 영서교회)가 단독 출마했다. 지난 18일 예장통합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용관 목사)에 후보신청서를 접수하고, 정헌교 목사가 기호 1번, 최기학 목사가 기호 2번을 각각 배정받았다. 이날 부총회장 후보들은 총회 임원선거조례 및 시행세칙에 의거해 공명정대한 선거운동을 펼칠 것을 서약했다. 부총회장 후보들은 ‘다시 거룩한 교회로’라는 주제로 오는 9월 26일 안산제일교회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전자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한편, 후보 등록을 마친 부총회장 후보들은 8월 29일 경남지역(소정교회)을 시작으로 경북지역(8월 30일, 남산교회)과 전남지역(9월 1일, 성안교회), 전북지역(9월 2일, 동신교회),중부지역(9월 5일, 대전성남교회), 서울수도권지역(9월 6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 제주지역(9월 8일, 성안교회)에서 소견발표회를 갖는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7-21
  • 합동, 제101회 총회 기관장 상비부장 후보 마감 예장합동총회(총회장 박무용 목사) 기관장 상비부장 공천위원장 후보 등록을 마감했다.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백남선 목사)는 지난 7월 1일부터 11일까지 제101회기 기관장 상비부장 공천위원장 후보 신청을 받았고, 21개 상비부에 총 30명이 부장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상비부장, 공천위원장, 기관장 후보는 다음과 같다. △정치부 : 김종희 목사(남부산남), 신규식 목사(동평양), 정영교 목사(남경기), 송종완 목사(수원) △헌의부 : 정덕봉 장로(광주) △재정부 : 이춘만 장로(부산) △규칙부 : 주진만 목사(관서) △고시부 : 강태구 목사(함남), 김경철 목사(소래) △노회록검사부 : 김대수 장로(서대전) △감사부 : 곽병오 장로(진주) △은급부 : 최무룡 장로(경일) △교육부 : 김기성 목사(서울남), 이은철 목사(서강), 박상준 목사(충북) △면려부 : 김용대 목사(서광주) △학생지도부 : 노경수 목사(전남) △신학부 : 전희문 목사(목포서) △출판부 : 이광복 장로(함동) △사회부 : 박정수 장로(중서울) △전도부 : 육수복 목사(경기북) △농어촌부 : 구행서 장로(인천) △군목부 : 홍석환 장로(대경) △경목부 : 신현수 목사(경기중부) △구제부 : 전은풍 장로(강원)△공천위원장 : 허은 목사(동부산) △총회신학원 운영이사장 : 강진상 목사(남울산)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 김찬곤 목사(중경기), 박재신 목사(북전주) △기독신문 이사장 : 김영남 목사(서인천) △기독신문 사장 : 남상훈 장로(북전주), 서병호 장로(동전주)
    • 뉴스
    • 뉴스종합
    2016-07-21
  • ‘회개하고 화합을 다짐’ 제8회 장로교의 날 ▲ 사진출처 : 뉴스미션 한국 23개 장로교단이 한 자리에 모여 장로교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한국교회의 연합과 복음통일을 다짐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백남선 목사, 이하 한 장총)이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연합하여 국민출애굽, 복음통일 이루자’는 주제로 ‘제8회 장로교의 날’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예장합동(총회장 박무용 목사)과 통합(총회장 채영남 목사), 대신(총회장 장중현 목사), 고신(총회장 신상현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최부옥 목사) 등 장로교단 총회장들과 교단 임원, 성도 등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설교를 맡은 예장합동 박무용 총회장은 “무엇이 기준인지 혼란스러운 시대에 세상 모든 일이 정욕과 탐욕이 기준이 되고 있다”면서 “이슬람과 이단, 동성애 등으로 위협 받는 이때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삶의 표준”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준비위원장인 예장통합 채영남 총회장이 집례한 성찬식에서는 합동, 통합, 고신, 기장 총회장들이 나와 장로교의 분열을 회개하고 화해의 포옹을 나누며 연합과 일치를 다짐했다. 한편,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준비위원회를 발대하고 위원장에 채영남 목사, 본부장에 소강석 목사를 각각 위촉하고 엠블럼을 전달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7-21
  • 사하구기독교협의회, ‘GOD‘S IMAGE’ 초청 공연 사하구기독교협의회(회장 박상철 목사, 모리아교회)가 지난 15일(금) 오후 7시 하단교회(김영완 목사)에서 워싱턴DC 갓스이미지 (God's Image) 초청 공연을 개최했다. 이번 공연은 워싱턴DC 갓스이미지팀과 굿네이버스와 함께 ‘빈곤국가 아동 학교보내기’ 프로젝트 한국투어로 기획됐다. 워싱턴 DC 갓스이미지는 미국 한인 2세 청소년, 청년 25명으로 구성된 문화선교단체로 CCM남성듀오 '좋은씨앗' 멤버로 잘 알려진 이유정 목사와 아내인 조재옥 사모가 디렉터를 맡고 있다. 이날 갓스이미지는 찬양과 댄스, 간증 등 통해 지역 청소년들 소통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하나님이 찾으시는 세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이유정 목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다음세대에게 예배를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LA에 본부를 둔 갓스이미지(God’s Image)는 D.C. 갓스이미지(God's Image)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애리조나, 브라질, 캐나다의 밴쿠버 지부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한편, 이번 공연을 주최한 사하구기독교협의회는 다음세대를 위해 오는 7월 30일(토) 모리아교회에서 개강부흥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7-21
  • 기윤실 ‘여성혐오에 대한 기독교의 반성’ 포럼 강남역 살인사건 등 최근 ‘여성혐오’가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운리실천운동(이사장 홍정길 목사)이 지난 14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기독교의 반성-쉘 위 오버컴(Shall we overcom)?' 포럼을 개최했다. ‘혐오를 넘어서는 여성주의적 응시의 윤리’라는 주제로 발제한 백소영 이화여대 기독교사회윤리학 교수는 여성혐오의 배경에 가부장 문화가 가진 남성우월주의와 진취적 여성에 대한 젊은 남성들의 사회적 박탈감이 있다고 진단하고 “근본적 해결은 성별, 인종, 자본 유무에 상관없이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전인격적 태도에 달렸다”고 말했다. 김은혜 장로회신학대 기독교와문화 교수는 ‘한국교회, 여성혐오를 넘어서다’는 발제에서 “지금도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성서와 기독교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또 다른 여성혐오를 재생산한다”면서 남성에 대한 복종, 순종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점 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교회가 여성혐오를 넘어서기 위해서 ‘여자와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드셨다’는 말씀을 기초로 차별을 극복하고 인간 존엄성 회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신앙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강남역 희생자 추모에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장신대 신대원생 최자혜 씨는 추모공간에서 우리 사회 내 여성혐오가 자연스럽게 확산돼 있음을 실감했다며 “여성혐오문제를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7-21
  • 고신, 제21회 전국원로장로회 부부수양회 예장고신 제21회 전국원로장로회 부부수양회가 지난 11일(월)부터 13일(수)까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주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를 주제로 개최됐다. 개회예배는 전국원로장로회연합회 회장 천영환 장로의 인도로 총회장 신상현 목사가 ‘승리하는 신앙인’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진 개회식에서는 학교법인고려학원 이사장 강영안 장로가 격려사를, 고신대 총장 전광식 목사와 고신언론사장 배종규 장로, 전국장로회연합회장 조대형 장로가 축사를 전했다. 차철규 장로(제4영도교회)는 대회사를 통해 “같은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장로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친교하고 전무후무한 은혜를 받으며 평생 잊을 수 없는 뜻 깊고 은혜로운 수양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이번 수양회 기간 동안 최홍준 목사를 주강사로 이광희 선교사, 강동진 목사, 정규제 선교사, 유봉구 고신의대 교수, 오병욱 목사, 김종찬 목사, 이순흠 목사 등이 각각 특강과 말씀을 전했다.경남지사발
    • 뉴스
    • 뉴스종합
    2016-07-21
  • 교회창립준비예배 지난 18일 (가칭)새구덕교회(윤현수 목사) 창립준비예배를 가졌다. 예배는 부산 학장동 소재 해동빌딩 6층에서 교인 36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성도들은 피아노, 봉고, 강대상 등 자원해서 헌물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7-21
  • “지난 33년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복음병원 5대, 6대 병원장을 역임했던 조성래 전 원장(흉부외과)이 다음달 31일로 정년 퇴임한다. 84년 고신대학의학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근 33년 동안 복음병원을 위해 헌신해 왔다. 조 원장은 “복음병원에서 근무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복음병원에서 근무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조 전 원장은 “군의관으로 제대 한 후 원래 백병원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고, 이후 자연스럽게 복음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된다. 아마 그때 복음병원으로 오지 않았다면 평생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장 시절 업적 복음병원 80-90년대는 대부분 경북의대 출신이 병원 내 중요 보직을 맡아왔다. 부산의대 출신인 조 전 원장은 초창기 시절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6년 의학부 의예과장을 시작으로 의학부와 병원 내 웬만한 보직을 맡아 수고해 왔다. 97년 학생부처장과 98년 의학부 교무부처장(3년), 2003년 복음병원 부원장, 원장직무대행, 2004년 제2대 의과대학 학장, 2007년 제5대 병원장(2년), 2009년 제6대 병원장(3년)을 맡아 수고했다. 특히 병원 부도 이후 병원이 가장 힘든 시절 병원장을 맡아 부도를 해소했고, 평균 월 90억 원 수준의 수입을 100억 원 이상으로 올린 것도 조 원장 시절이었다. 원장 재임 중 많게는 월 150-160억 수준으로 수입을 올린 바 있다. 지금의 연결동(6동) 공사도 조 원장이 추진했다. 조 전 원장은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잘 따라주었다. 내가 잘했기 보다, 직원들이 고통을 분담하고 묵묵히 따라와 준 결과였다”고 말했다. 또 5대까지 복음병원장을 이어오면서 유일하게 임기를 마친 병원장도 조 원장이 최초였다. 이전 원장들은 병원 파업과 부도, 임시이사 파송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를 벗어난 것도 조 전 원장이 취임한 이후였다. 조 전 원장은 “굳이 잘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내가 취임했을 당시 직원들은 좌절감과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자신감과 성취감을 갖도록 노력했고,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게 노력했다. 내부고객(교직원)이 만족해야 외부고객(환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신념으로 원장직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故 이충한 전 원장과의 애증의 관계 조성래 전 원장과 지금은 고인이 된 이충한 전 원장은 친구사이다. 두 사람 모두 부산의대 출신으로 서로 친구처럼 잘 지내왔다. 하지만 2003년 이후 둘 사이 관계가 틀어져 이후부터 라이벌 관계가 되기도 했다. 왜 사이가 틀어졌나 물어봤다. 조 전 원장은 “관선 시절 병원장 직선제가 있었다. 이때 친구 이충한 교수가 자신이 출마하겠다고 해서, 내가 양보했다. 하지만 선거결과 이재우 교수님이 병원장에 당선됐고, 나를 부원장에 앉혔다.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부터 사이가 틀어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관계가 불편했고, 병원장 선거와 정책 등에서 불편한 관계를 이어져 왔다. 조 전 원장은 “지금 은퇴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친구랑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에는.... 조 전 원장은 은퇴 이후 삶에 대해서는 “먼저 쉬고 싶다. 타 병원에서 제의가 있지만, 쉬고 나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복음병원에서 쉬지않고 근무했고, 건강으로 쓰러진 적도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은퇴 소감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건강히 퇴임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늘 성원해 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는 살아가면서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뉴스
    • 뉴스초점
    2016-07-21
  • 그린닥터스 제13주년 총회 그린닥터스(이사장 정근)가 지난 15일(금) 오후 6시 부산진구청 지하 대강당에서 제13주년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근 이사장, 오무영 부이사장, 부산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임영문 목사, 부산여성협의회 김위련 회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1부 행사는 오무영 부이사장의 사회로 학생들의 식전공연과 내빈소개, 정근이사장의 개회사, 축사 순으로 진행됐으며, 2부 행사에는 김기열 사무부총장의 사회로 그린닥터스 사업보고, 몽골·중국 의료봉사단 발대식, 그린닥터스 밥퍼천사들 발대식, 시상 등이 있었다. 이날은 봉사왕, 봉사 전설의 상, 국회의원/구청장상 등 다양한 시상명으로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또한 그린닥터스를 상징하는 배지가 새롭게 제작돼 이날 배지수여식이 거행됐다. 배지는 기부문화의 활성화와 기부의 상징에 의미를 두고 배지 1개당 1만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배지수여식은 사무국 대표 이대경 사무총장, 청소년 대표 정재환 학생, 밥퍼천사들 대표 이경은 단장, 국제긴료센터 이준행 상임이사가 참석했다. 그린닥터스는 ‘봉사를 통해 인류애 구현과 이웃사랑을 실천한다’라는 슬로건으로 2004년 정근이사장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북한 개성병원,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 네팔, 몽골 등의 재난지역 구호활동을 펼쳐왔으며, 올해부터 밥퍼천사들(무료급식센터)와 사랑의장기기증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6-07-18

오피니언 검색결과

  • [함께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은 나이가 많아져도 (2)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생각지 말고 “내 나이가 어때서” 이렇게 생각해야 이런 통계가 있다. 역사상 놀라운 업적의 35%는 60대 노인들이 이룩했고, 23%는 70대 노인들이 이룩했고, 6%는 80대 노인들이 이룩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상 놀라운 업적의 64%를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이룩했다. 이러한데도 어떤 이들은 나이 70만 되어도 노인 티를 내기 시작한다. 새로운 도전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세월만 보내고 있다. 생각이 왜 그런지 보기에 딱하다. 요즘의 70은 청년이다. 노인이 아니다. 70세를 고희(古稀)라고 한 것은 60세까지도 살기 어려운 때에 생긴 말이다. 해방되던 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50세 였다. 그 때문에 60세까지 살면 장수했다고 잔치를 했다. 그것이 환갑잔치이다. 지금은 60세가 되어도 환갑잔치를 하는 이가 없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UN이 정한 연령 구분을 보면 17세까지는 미성년, 18세부터 65세까지는 청년, 66세부터 79세까지는 중년, 80세부터 99세까지는 노인, 100세 이상은 장수노인이라고 했다. 나이 70을 가지고, 80을 가지고 “난 이제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더욱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생각하면 그는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편 110편을 보라. 거기 그리스도인의 별칭이 있다. 그리스도인을 ‘청년’이라고 했다. 거기 청년은 10대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 전체를 청년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여간 나이가 맣아도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도리어 “내 나이가 어때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70, 80 아니라 90대 노인이라도 그리스도인의 별칭답게 청년다운 면이 있어야 한다. 정신도, 생각도, 패기도, 의욕도 젊어야 한다. 노년을 마치 청년처럼 살아가는 몇몇 분을 보라. 자교감리교회 강순용 장로는 81세에 그림공부를 시작하여 91세에 전시회를 가졌다. 그는 지금도 나이를 잊고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 서면교회 원로인 원종록 목사는 82세에 그림공부를 시작하여 지금 85세인데 전시회를 가졌다. 권춘식씨는 87세에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 지금 그의 꿈은 대학원을 졸업하는 것이라고 한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올해 97세인데 현역처럼 이곳 저곳 강의하러 다닌다. 일본 나가오가 미에코라는 할머니는 80세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여 지금 100세가 넘었는데 그간 세계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60개를 따고 세계신기록을 11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여간 많아도 위축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 뭐든 못하는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고 못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 오피니언
    • 칼럼
    2016-01-14
  • [시사칼럼] ‘ㅎ’이 득세하는 ‘ㅎ’ㅐ 지난 을미년(乙未年)은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이라는 영화(1991년) 제목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난 테러(terror)는 문자 그대로 공포(恐怖)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불어권이 몸살을 앓았습니다. 프랑스 본토에서는 정월 샤를르 엡도 잡지사 테러 사건과 11월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시리아는 일 년 내내 이어진 난민 사태로 인해 지구촌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동시에 자극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메르스가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는 간통제가 폐지되었고 미국에서는 동성애가 합법화되었습니다. 모랄 해저드(moral hazard)에다 섹슈얼 해저드(sexual hazard)까지 가미될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단정 지을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이 문제들 때문에 앞으로 무척 시끄럽겠다는 전망 정도일 듯합니다. 지금부터 꼭 한 갑자(甲子) 전인 1955년 을미년(乙未年),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984) 목사는 스위스의 알프스 산록에 라브리(L’Abri)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라브리(L’Abri)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은신처,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유럽에 여행 차 들렀던 쉐퍼 박사는 유럽의 영적 실상을 보고 충격을 받고 아예 거처를 스위스로 옮겨 일종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과 문명과 사회에 대한 공공의 신뢰가 무너지고 영적으로 지독한 방황에 빠졌던 신앙인들뿐 아니라 학자, 예술가, 엔지니어 등 수많은 지성인들이 쉐퍼 목사와 함께 모여 쉼과 회복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통해 치유와 자유의 은총을 나누었고, 그 결과 유럽 사회가 영적으로 회개하고 회복하고 화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이보다 앞선 1940년에는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 남부 손 에 로와르(Saone-et-Loire)에 위치한 떼제(Taize)에 스위스 출신의 개신교 수도자인 로제 수사(Brother Roger, 1915-2005)가 테제 공동체(The Taize Community)를 세웠습니다. 이곳은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초교파 단체로, 1950년대부터 매주 이곳 떼제(Taize)에는 특히 전세계에서 젊은이들이 몰려와 자발적인 예배와 기도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대전(world war)과 냉전(cold war)으로 인해 피멍이 들고 정신적인 여유와 신앙적인 공간을 잃어가던 청춘들이 이곳에서 진정한 휴식과 회개와 화해와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소 철학적이면서 학구풍이 강한 라브리 공동체와 달리 자유분방한 떼제(Taize)는 어느덧 한국의 젊은이들도 알음알음으로 많이 찾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10년 전 창설자인 로제 수사가 한 여인에 의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테제는 더욱 회복과 화해를 외치며 오늘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있어서 새로운 아노미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수선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마저 그 부패와 타락상이 세상의 가십거리로 전락한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신앙의 공동체들 또한 기나긴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2~14). 새해는 회개와 화해와 회복이 득세하는 ‘ㅎㅎㅎ’의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15-12-31
  • [소강석 칼럼] 네트워크 교회론으로 다시 시작하자 한국교회는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교회가 부흥하였던 것처럼 앞으로도 부흥 할 것이라는 막연한 장밋빛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급속한 성장주의와 속도주의에 편승하여 물량화, 자본주의화, 세속화되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의 거룩성과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상실해 버렸다. 또한 교회의 내부 기득권 싸움과 몇몇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부도덕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비춰지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불신이 최고조로 달하면서 비난과 공격을 받고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정체 내지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이유는 한국교회가 21세기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세기와 21세기는 똑같은 세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너무도 달랐다. 시대와 사람, 목회 환경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무엇보다 교회 스타일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 세계교회, 특히 미국교회의 변화적 흐름을 보면 1970년대까지는 교단 중심의 전통적 교회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80년대부터는 커뮤니티 교회가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도자 중심과 문화적인 예배와 공동체 중심의 교회를 이루며 부흥 코드로 성장을 해 왔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교단이나 다른 교회와는 별 상관없는 개교회 중심의 교회가 되었고 대형교회 목회자들 간의 영향력 전쟁이나 스타플레이를 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새천년을 맞은 어느 때부턴가 커뮤니티 교회에서 네트워크 교회로 바뀌기 시작했다. 구도자 중심보다는 처치 플랜터(church planter) 중심의 교회가 되고 문화 중심보다는 복음적 중심, 혹은 래디컬(radical)한 신앙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커뮤니티 구조보다는 네트워크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부흥 코드보다는 플랜팅(Planting) 코드로 바뀌었다. 미국교회를 보면 하나의 대형교회가 아니라 코드가 맞는 교회끼리 서로 네트워크를 하며 세움형 교회로 확장해 가는 것을 본다. 그런데 미국교회가 아무리 네트워크형으로 간다 하더라도 내 눈으로 볼 땐 여전히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자기 코드나 성향에 맞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할 뿐이지, 미국 전역에 교회 생태계를 살리고 미국교회를 전방위적으로 지키기 위한 네트워크는 아직도 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이 대형교회도 많고 큰 교단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성결혼법이 통과되어 버렸지 않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내부적으로는 부흥이 침체되고 외부적으로는 사회적 공격을 받으며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기존의 조직과 매뉴얼만 유지하며 안주하고 있다. 새롭게 변화하지 못하면 화석화되고 생명력을 잃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교회를 다시 세우는 마음으로 개교회 내부에서부터 먼저 처치 플랜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끼리 주 안에서 유기적으로 거룩한 네트워킹이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힘으로 이웃교회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가 네트워킹을 하며 서로를 세워주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네트워크이고 세움이며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신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네트워크 교회로 새판짜기를 해야 한다. 그 견고한 네트워크 교회 위에 부흥의 불씨를 살리고 사회적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특별히 반기독교적 정서와 세력을 막고 다시 목회 생태계를 복원하여 비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한국교회여, 다시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네트워크 교회론의 토대 위에 제2의 부흥 시대를 일으켜보자.
    • 오피니언
    • 칼럼
    • 소강석 칼럼
    2015-12-31
  • [김영곤 교수] 창조 질서와 때 세포는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성인의 몸속에는 약 100조 개의 세포가 있으며 각 세포에는 칸막이 방처럼 존재하는 수많은 세포소기관들이 있다. 각 세포에는 단백질 분자가 약 10억 개 정도 들어 있으며 화학적으로 암호화된 DNA의 명령을 따라서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을 꾸준히 만들어낸다. 세포에서 생성된 단백질은 적절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소코드가 달려있다. 단백질은 이 코드를 따라서 세포 내의 다른 소기관으로 이동하거나 세포 밖으로 분비되어 혈관을 타고 필요한 장소로 이동하여 제 기능을 수행한다. 세포들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설계도를 따라서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조직을 재형성하고 조직들은 모여 장기를 구성하고 장기들은 연결되어 인체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인체조직은 주변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도 재형성 과정이 조절된다. 인체의 경우 1초에 약 50만개의 세포가 새로 만들어지며 동시에 비슷한 수의 세포가 소멸된다. 살아있는 세포는 지속적으로 분열하고 성장하지만 무한정 반복하여 분화되지는 않는다. 인체 세포는 복제되는 과정에서 염색체 말단에 부착된 텔로미어가 점차 소실되기 때문에 약 60회 정도만 정상적인 세포로 분화가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나이가 들 수 록 새롭게 생성되는 세포수보다 소멸되는 세포수가 많아져서 노화가 진행되며 생체조직은 약해진다. 궁극적으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어 생명활동의 마지막 때가 이른다. 이와 같이 오묘한 창조 질서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들과 범사에는 정해진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도 다 때가 있을 수밖에 없음이 명백하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생활을 하였던 솔로몬 왕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떠나서 사람 중심의 삶을 살다가 돌이킨 후에 모든 것들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전도서를 기록하였다. 전도서 3장을 보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로 시작하여 14가지 좋은 때와 14가지 안 좋은 때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과를 미루어 유추하면 좋은 때는 사람이 하나님께 접붙여져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며 축복을 누리는 시간들이고 안 좋은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사는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도자 솔로몬은 이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기록하였다. 사람의 육체는 세포와 조직의 재형성 과정에 의하여 때가 차면 아름답게 변화되지만 한 사람 아담의 죄로부터 전수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는 이를 수가 없고 죽을 수밖에 없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셔서 내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재림 주로 오실 것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마지막 때를 보시면서 택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경고도 하면서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면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늘 간섭하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허락하신 창조질서 회복의 때를 누리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2016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 천하만사에 때가 있음을 깨달아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믿음의 유산을 잘 계승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오피니언
    • 정론
    2015-12-31
  • [성경인물탐구]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서 베드로와 같이 갈릴리 해변 벳새다의 어부였습니다. 그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믿고 자기 형 베드로를 전도한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와 함께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가 예수께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명하시면서 그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와 같이 예수의 부름을 받자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안드레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습은 단순하게 기록되었지만 그 내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부가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께 자신의 삶을 의탁함을 뜻합니다. 실제로 안드레의 삶은 예수께 부름 받은 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 안드레는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물속에 있는 고기를 잡는 자가 아니라 죄악의 물결 속에 떠내려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건져내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의 오심을 보고 안드레와 또 한사람의 제자에게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였고 안드레는 예수를 쫓았습니다. 안드레는 예수가 계신 곳에 방문하여 예수와 함께 거하면서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를 만난 후 제일 먼저 그 형인 베드로를 찾아가서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구약 예언의 말씀을 믿고 고대하였기에, 메시아를 만났다는 것이 최대의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복음을 베드로에게 전함으로써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자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복음을 증거 하실 때 무리가 기진하여 곤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광야인지라 음식을 살 수도 없었으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고 물으셨을 때 빌립은 계산을 통해 그것이 불가능함을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예수께 한 아이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다고 말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사람들이 굶주려 고통 받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할 수 있는 방도를 다 찾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안드레의 모습에서 그의 인정이 풍부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을 때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그 자리를 피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그 사람을 구한 사마리아인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만일 안드레가 사람들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았더라면 별로 효용성도 없어 보이는 일을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드레의 인정 많음은 주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시는 데 있어서 한 도구로 사용 받았습니다. 성도는 이웃의 고통을 안타까이 여기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의 사랑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십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15-12-31
  • [교회회계] 교회와 세금 지난 12월 2일, 종교인 과세를 명문화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목회자 사례비를 기타 근로소득으로 간주하여, 2018년부터 6∼38%의 세금을 부과하는 세법이 확정된 것이다. 교회는 지금까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음으로, 교단의 유지재단에 소속되어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면 고유번호증(606-82-XXXXX)를 부여 받고 일정한 부분의 조세 혜택을 받아왔다. 그러나 종교인 과세를 포함, 최근 언론을 보면 학사관과 교육사업, 쉼터 공간 등 선한 취지로 시작한 교회사역이 수익목적으로 분류되어 과세대상이 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복음전도에 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본 교회회계 칼럼 제11호에서는 교회와 세금문제에 대해 다룬다. 조세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경비충당에 필요한 재정수입을 조달할 목적으로 과세요건을 충족한 모든 자에게 직접적 반대급부 없이 부과하는 것으로, 교회의 경우 주로 다음 사항이 관련되어 있다. 첫째 소득세(법인세)는 개인의 소득과 법인의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교회 고유의 예배와 목적을 위해 발생하는 헌금수입은 과세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를 들어 교회건물에 카페를 운영하며 금액을 받거나, 학사관을 운영하며 시설유지를 위해 최소 임대료를 받는 경우 수익사업으로 간주되어 과세대상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이 경우 과거년도 분까지 소급되어 과세될 수 경우 교회재정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둘째 취득세와 등록세는 교회 부동산 및 비품 등의 취득시에 부과하는 것으로, 교회의 종교용 재산, 예배당, 교육관, 담임목사 선교용 사택(1주택) 및 교회와 인접한 주차장(연건평 약1/4의 면적이하)은 비과세된다. 그러나 부목사 및 사찰집사 가족의 주택, 차량, 공원묘지의 취득 등록은 과세대상이다. 기도원은 종교목적으로 온전히 사용될 때 비과세된다. 또한 교회재정을 통한 부동산 취득은 모두 교회명의로 소유권 등기가 되어져야 하며, 위반시 부동산 실명제법에 의해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셋째 재산세와 양도세는 교회재산의 보유 또는 처분시에 발생하는 세금으로, 취득 및 등록세와 동일하게 고유 목적에 관련된 예배당, 담임목사 사택, 주차장 등의 보유는 비과세되나, 그 이외는 과세 대상이 된다. 또한 담임목사 명의로 등기가 된 경우 재산세와 종합토지세가 과세될 수 있다. 또한 교회 고유목적을 위해 재산을 취득하였더라도 3년 이상 동 목적에 사용되지 않을 경우 재산세와 양도세가 부가될 수 있다. 넷째 부가가치세는 재화와 용역의 소비행위에 대해 부과되는 소비세로 보통 매출세액의 10%가 부과된다. 그러나 교회는 면세사업자로 고유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실비 또는 무상으로 공급시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며, 부동산 임대 등 수익사업을 위해 계속적으로 공급하는 경우 과세대상이 된다. 또한 교회가 건축, 건물수리, 비품구입 등을 할 때 납품업자에게 지급하는 부가가치세액 환급은 매출세액이 없는 면세사업자이므로 없다. 다섯째 종교인 과세는 기존 교회직원의 근로소득 원천징수에 추가해, 목회자 사례비를 기타소득 중 종교인 소득으로 규정해 세금을 부과한다. 일반적으로 원천징수 대상은 ①이자소득과 배당소득, ②봉급, 상여금 등의 근로소득, ③퇴직소득, ④상금 및 강연료 등 ⑤인적용역소득, ⑥공급가액의 20%를 초과하는 봉사료 등이다. 또한 징수세액은 연말정산 시 소득자에 따라 보험료, 의료비, 연금, 신용카드 등을 추가로 공제하여 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천징수를 하지 않을 경우는 다음연도 5월까지 종합소득세를 납부한다. 그리고 과세당국에 의한 종교단체 장부 확인은 종교인 소득 관련 부분에 한정하도록 되어 있다. 즉 교회는 영리는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도의 예배 공동체로서, 고유목적 사업에 대해서는 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등 대부분이 과세가 면제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를 포함해 교회사역의 지경이 넓혀지고, 또 수익사업에 대한 경계선과 판단해석이 모호해짐에 따라 과세범위를 확대하려는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나 과세당국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일련의 종교인 과세문제가 이 시대 한국교회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교회가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국가는 교회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스스로 세상을 향해 더 거룩해 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가는 희망찬 한국교회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문의 >
    • 오피니언
    • 칼럼
    • 교회회계&성경적 회계윤리
    2015-12-31
  • [교회법률상식] 은퇴장로는 원로장로 될 수 없다 [질의] 대구중노회 산하 S교회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당회가 은퇴한지 5년이 지난 P장로님을 원로장로로 세우기 위하여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원로장로로 피택을 하였습니다. 노회에서 이 사실을 알고 “법적으로 안 된다.”고 하다가 결국 총회에 질의를 하였는데 총회에서는 노회가 알아서 하라는 답변이 왔다고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법에 적합한지 답변을 바랍니다. (합동 대구 평신도) [답] 상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어 질의 내용의 문장에 따라 합동측 헌법으로 답한다. 1. 원로장로의 추대 절차에 대하여 정치 제5장 제5조(원로장로)에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던 장로가 연로하여 시무를 사임할 때 그 교회가 그의 명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공동의회의 결의로 원로장로로 추대할 수 있다. 단, 당회의 언권회원이 된다.”라고 규정하였다. 여기 원로장로에 대한 규정 안에 질의자가 요구하는 해답이 다 들어 있다고 본다. (1) 원로장로의 추대 구비 조건 ① 시무장로로서 시무 사임이 전제되어야 하고 ② 원로장로로 추대 시기는 시무 사임을 제출할 때이어야 하고 ③ 시무 기간은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자이어야 하고 ④ 교회가 그의 명예를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2) 원로장로 추대 절차 ① 장로로 시무 기간이 20년 이상이 된 자로서 사임서를 제출할 때 교회가 그의 명예를 유지하고자 하면 ② 당회의 결의로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③ 투표수 과반수의 찬성으로 원로장로로 추대한다. 2. S교회 당회와 P장로에 대하여 S교회 당회가 은퇴한지 5년이 지난 P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기 위하여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원로장로로 피택하였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과연 S교회 당회는 은퇴한지 5년이나 지난 은퇴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산하의 목사와 장로들이라면 이와 같은 법리 정도는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이는 P장로의 과욕에 의하여 S교회의 당회가 고의적인 불법을 행함으로 교회와 노회를 어지럽게 함에 다름 아니다. 3. 대구중노회와 총회에 대하여 대구중노회가 S교회의 불법행위로 은퇴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기 위한 공동의회까지 한 것을 인지하고 “법적으로 안 된다.”라고 S교회 당회에 지도했으면 일관성 있게 하회를 지도해야지 총회에 질의를 했다고 하니 법리를 몰라서인 것은 아닐 터인데 총회에 떠넘기려는 것 같아 보이고, 총회 역시도(혹 임원회?) 불법인 사실을 알면서도 법리적인 답변을 하지 아니하고 “노회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노회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 등은 노회 행정이나, 총회 행정의 흠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4. 결론 원로장로의 추대는 노회의 허락이나 총회의 지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요 당회의 직무에 속한 것이므로 당회 자체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다만 원로장로의 추대 사항이 당회의 직무에 규정되지 아니한 것은 1993년도 헌법 개정에 의하여 원로장로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당회 직무에 원로장로 추대 업무를 추가하여 규정하지 아니한 연유이다. 본건 S교회 당회는 은퇴장로가 된지 5년이나 경과한 P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기 위하여 당회의 결의로 공동의회를 회집하여 원로장로로 피택한 것을 무효로 하고, 대구중노회는 하회인 S교회 당회에 법리적으로 한결같은 지도를 해야 한다. 만일 이를 방치하여 S교회 당회가 은퇴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하는 전예를 남긴다면 전국 교회에 확산되는 것은 물론이요 전국 교회에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혹 S교회 당회가 교회 헌법을 어기고 무리하게 P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한다면 상회인 대구중노회는 S교회 당회와 당회장에 대하여 그 책임을 추궁하여 교회의 법적인 질서를 철저히 바로 잡아야 한다.
    • 오피니언
    • 칼럼
    • 교회법률상식
    2015-12-31
  • [성공칼럼] 좁은 문, 넓은 문 성경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며, 넓은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찾는 사람이 많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한번 이렇게 상상해보자. 육체가 때가 되어 죽게 되었다. 죽은 후에 천계에는 심판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 두 개의 문을 보여주신다. 좁은 문과 넓은 문이다. 하나님의 심판 방법은 두 길을 보여주시면서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좁은 문을 택할 것인가? 넓은 문을 택할 것인가의 자유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람에게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한 부류는 옳은 것과 진리를 알고 진리대로 사랑과 선을 행하는 좁은 길을 가는 사람과 또 다른 부류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지만 그 옳은 길을 따라 행동하지 않는 넓은 길을 가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와 학식에 관계없이 어떤 것이 옳은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결혼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음란한 행동을 하거나 또 거짓말이나 폭력을 행하면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옳은 대로 행동하며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거짓과 옳지 않는 것을 하고나서 후회하고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또 몸이 비만이어서 혈압이나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음식을 절제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자. 그러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서 무엇이 옳은지를 알면서도 인이 배긴 습관 때문에 옳은 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의사의 말대로 행동으로 옮겨서 건강을 회복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육체로 있을 때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죽음 후에 심판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즉 내 마음속에 진리를 알고 진리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습성이 있으면 좁은 길, 생명의 길로 갈 것이다. 그러나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거짓을 선택하고 악한 길로 가는 습성이 있으면 넓은 길,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좁은 길은 무엇이며, 넓은 길은 무엇인가? 아이들이 핸드폰을 밝은 곳에서 보면 괜찮은데 불 끄고 보다가 동영상이 켜진 채로 잠을 자는 경우를 본다. 이렇게 되면 그 눈이 어떻게 될 지 걱정이다. 아이들은 이런 일이 반복되면 눈이 망가질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똑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이 아이는 눈을 망가뜨리는 길로 가는 것이다. 또 새해에 자신이 어떤 결심을 한다. 이루어지지 않는 길, 안 되는 길로 가는 사람은 목표를 세우고는 놀기만 하고 즐기기만 한다. 반면에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은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하며 집중하여 아이디어를 찾고 기획하고 움직여서 목표를 이루어낸다. 무엇이 옳은 길이며, 진리의 길인가? 난 어릴 때는 부모님께 칭찬 듣기 위해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학교에 다닐 때는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옳은 줄 알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진리를 깨달은 다음부터는 진리를 아는 것이 옳다고 여겨 수많은 책을 읽고 연구하면서 살았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옳은 줄 알고 모든 심혈을 다 기울였다. 5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 옳은 대로 행동하는 것, 말씀대로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대로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믿음이란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사랑과 선은 진리대도 행동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노라하고 사랑과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내년 한해는 좁은 길 즉 옳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 또 내 생각과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걱정하고 서운해 하지 않고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삶 그리고 혹시 누군가 나에게 손해를 입혔을지라도 여유 있게 받아들이면서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15-12-31
  • 성산 장기려 박사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故 성산 장기려 장로는 20년 전, 1995년 성탄절 아침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된 장기려 박사. 그의 묘비에 새겨진 비문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님을 섬기다 가신분이 여기 잠들다’ 아마 언제가 될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예수님의 재림 때 함께 오실 것이다. 평소 장 박사를 뵙고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를 부를 때 호칭을 박사, 원장, 장로보다는 선생이라고 부르면 참 좋겠다”고 했다. 그와 동향인인 故 함석헌 선생도 늘 ‘함 선생님’으로 불렸다. 장 선생은 우리나라 유명 외과의사 중에서 유일하게 ‘전문의’가 아니다. 일본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외과 전문의 자격을 사양하고 평생 일반의로 봉직했다. 그래서인지 박사보다 선생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필자가 “장 장로님”이라고 불렀더니 “에이, 장로보다 선생으로 불러다오”라고 하지 않는가. 가만 생각하니 그가 섬겼던 부산 산정현교회에서 교회를 떠나 가정교회를 염원했던 터라 일반 한국교회는 문제가 많아 뜻 맞는 의사들을 중심으로 가정에서 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렸던 것일까? 어쨌든 그는 ‘선생’이라는 호칭을 가장 좋아했다. 병원에서 ‘원장선생님’으로 불렸는데 원장 역시 그냥 ‘선생’으로 불러달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20년이 지난 지금 장 박사를 추모하는 물결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장기려 박사 소천 2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장 박사를 추모하는 토크콘서트를 열고 관련된 인사들을 초청, 장 박사에 대한 회고를 엮어 출판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CTS에서는 2015년 성탄절을 기해 장기려 박사 서거 20주년을 맞아 그를 회고하는 영상을 상영하며 평소 근면하고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장 박사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장 박사의 신앙적 행보 일찍이 이북에 있을 때 평양 산정현교회에 출석했다. 젊은 의학도로서 유기형 장로(치과의사), 유기선 장로(의사, 부산영락교회 원로), 유기천 장로(전 서울대 총장), 유기진 장로(의사)와 신앙생활을 같이했다. 주기철 목사, 조만식 장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훗날에는 우치무라 간조의 신앙적 삶에 심취했다. 그래서 그의 제자 김교신 선생과 함석헌 선생과 교류하면서 한국교회 장로교가 여러 갈래로 분열이 되자 한국교회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무교회주의보다 무교파주의적 시각에서 부산 산정현교회를 떠나게 됐다. 그를 뒤따라간 손동길 안수집사도 가정교회를 세워 주일 예배를 드렸다. 이 일로 부산 산정현교회(당시 담임 박광선 목사, 현 산정현교회 원로)는 재정자립면에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장기려 박사의 장례는 교회장으로 치러졌다. △병원경영악화로 어려움 겪고, 진료거부사태 유일하게 전문의가 아닌 그냥 외과의사로 남아 의사생활을 했다. 그가 세운 복음병원은 규모가 차츰 커지게 되자 인원이 많아지고 경영과 수입에 애를 먹게 되었다. 병원비가 밀린 환자들은 뒷문으로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병원의 인건비가 한두 달씩 밀리는 일도 많았다. 하루는 김병삼 내과과장이 급료가 두어 달 밀리자 원장실을 찾아가 “원장님, 왜 월급을 안 줍니까?”라고 물었다. 장 박사는 “김 과장, 자네는 그래도 생활에 여우가 있는 과장이 아닌가. 좀 참게나...”라고 대답하니 김 과장은 “아니, 원장님은 지금 당장 처자식이 없으니 생활비 걱정은 없을 것 아닙니까? 나는 처자식이 있어 월급이 없으면 못 살아갑니다”라고 항의한 일이 있었다. 결국 병원이 부도 위기를 맞자 침례병원 외과 과장이던 박영훈 선생이 오게 됐고, 6개월 만에 경영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 일로 제자(박영훈 원장)가 스승을 몰아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때 병원은 경북의대와 부산의대 출신 의사들의 파워게임을 방불케 했다. 1차 의사파동이 일어난 것도 이 시기다. 부산의대 출신 의사들이 진료거부를 하고 박 원장을 매도하기 시작해서, 주동한 채종묵 의사 등 부산의대 출신의사 3~5명이 당시 부산지검 초임 박철언 검사에 의해 구속 수감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故 이동기 씨 부부를 맺어줬던 장기려 부산 서구 아미동 87번 버스종점 부근은 과거 화장터였다. 지금의 까치고개는 대부분 공동묘지였고, 달동네 판자촌에서 장기려 박사는 5평 남짓한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마련했다. 이곳에서 25년 동안 척추결핵병을 앓고 있던 이동기 씨 가족이 살고 있었다. 장 박사는 어느날 병원 입구에 쓰러져 있는 이동기 씨를 발견하고 그를 업어서 병원으로 데려갔다. 수술을 하는 중 척추신경을 건드려 전신마비가 돼 일어서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장 박사는 이동기 씨를 위해 처소를 마련해주었고, 그를 위해 매달 쌀과 부식을 날라다 주었다. 또 그를 보필한 어느 가난한 여인을 반려자로 맺어주었다. 장기려 박사가 쌀을 사서 어느 산 중턱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뒤를 따라가면서 이 같은 사연을 듣게 됐고, 이동기 씨의 가정에 기적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됐다. 이들 사이에 자녀가 태어났다. 현대의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이동기 씨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훗날 이동기 씨의 큰 아들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공군 파일럿이 되었다. 이동기 씨는 ‘5월의 환상’이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늘 강하고 담대 하라는 장기려 박사의 권면으로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5-12-31
  • [은혜의 말씀] 전쟁과 주적 (엡6:10~13)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전쟁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는 것이 전쟁입니다. 총성 없는 전쟁, 소리 없는 전쟁, 이상한 전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오늘 성경 말씀은 공중권세 잡은 자가 있다 합니다. 인생사는 것이 전쟁이고, 성경말씀은 전쟁이야기입니다. 창세기부터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싸움이 있고, 시편 중간에 나오는 용어들이 군사용어가 많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우리가 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속으로 성령 충만, 겉으로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많은 문제가 내부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전쟁에 있어서 어이가 없는 것은 전쟁을 해보기도 전에, 사탄마귀의 샅바를 잡아보기도 전에 적전분열, 내부갈등, 내적인 소모전으로 인생 끝내버리는 게 가장 어리석은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적을 잘 분간해라 합니다.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야 될 가족하고, 같은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하고는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적을 만드는 그 자체가 비극이 되기 때문에 사람을 대적하지 말고 마귀를 대적해야합니다. 다 죽이면 누구와 사는 겁니까! 전쟁의 비극은 싸우는 사이에 적군도 죽고 아군도 죽고 쌍방이 다 다치기 때문에 그것이 전쟁의 비극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내 내면의 세계가 어지럽고, 혼란하고, 불안할 때는 건드리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건드리면 과민반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속으로 성령 충만, 겉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됩니다. 여러분, 가장 어려운 전쟁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와의 싸움, 자기를 이겨서 감정 선을 극복하고, 마귀를 대적하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야곱이 씨름할 때 보면, 야곱이 마지막 전쟁 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선물공세를, 작전을 세워서 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의 샅바를 잡고 주의 사자와 얍복강에서 씨름을 하는데 하나님이 거기서 야곱에게 져 주시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울고불고 밤을 새워 다리가 부서져도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져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주적을 분간 못하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내가 주인이 된 사람은 이기적인, 독선적인, 자기합리화에 빠져서 최악에 빠지는 것이고, 돈이 주인인 사람도 맘몬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인색하게 되고 그걸 가지고 효율을 따지다 보면 사람이 야비해지는 것입니다. 돈 한 푼 아끼려고 사람이 악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고 경천애인이 동양사상의 핵심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따라가니까 그 사람이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이고,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생로병사, 생사화복,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루시는데,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내면의 세계가 충만해지고, 내면의 세계가 성령 충만을 받아 속사람이 부유하고 단단해지십시오. 그리고 겉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서 마귀의 체계를 능히 물리치고, 마귀의 속임수에 나가떨어지지 말고 괜히 대리전에 빠지지 말고, 마귀의 속임수에 나가떨어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삶의 전선에서 승리하고 자기를 이기고 마귀를 대적해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15-12-31

인물 검색결과

  • [부활절특집좌담]위기의 다음세대, 길을 묻다 지난해 예장통합 총회에서 발표한 통계는 한국교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50% 이상의 교회들이 주일학교가 없다.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48%, 중등부가 없는 교회가 47%, 아동부 고학년이 없는 교회가 43%, 저학년이 없는 교회가 47%, 유치부가 없는 교회가 51%, 유아부가 없는 교회가 77.4%, 영아부가 없는 교회가 78.5%로 나타났다.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감소 중인 다음세대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 연합기관에서는 다음세대를 위한 다양한 해결책을 고민하며 각종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본지는 부활절 특집호를 맞아 청소년 및 어린이 사역 전문가를 초청해 다음세대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일 시: 2015년 3월 25일(수) 오후 2시장 소: 프라미스랜드참석자: 박상철 목사(모리아성결교회 담임, 청소년선교단체 Yes Come 대표), 박종희 부장(한국어린이전도협회 부산지회, 넘치는교회), 김보성 목사(김해중앙교회 중등부, 청소년사역단체 청바지 스탭) 사회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박상철 목사: 반갑습니다. 모리아성결교회 담임 박상철 목사입니다. 저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사역하며, 라스베가스 성시화운동을 하다 하나님의 도전으로 다음세대 사역을 위해 4년반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온 이유는 다음세대 사역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처음엔 청년사역자로 사역 했으나, 와서 보니 청소년 사역자가 부족하다고 느껴 청소년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도 청소년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목사님께서 저를 청바라고 부르시더군요. 청소년 바보, 청소년이 하는 일이면 다 좋아한다는 뜻에서 청바라고 부르셨는데 전 이 별명이 너무 좋습니다. 청바 박상철입니다. 박종희 부장: 한국어린이전도협회 부산지회 박종희 부장입니다. 사단법인 한국어린이전도협회는 1957년 시작되었고, 부산에서는 1970년 지회가 조직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게 되면서, 강습회에 뛰어다니다 어린이전도협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로, 결혼 전에는 간사로 사역하다 자녀양육 후 지금 다시 사역하고 있습니다. 27년간 어린이전도협회에서 사역하며, 교회 밖에서 복음을 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전도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전도하고 왔습니다.김보성 목사: 김해중앙교회 중등부 김보성 목사입니다. 청소년 전문사역자는 아니고 그저 청소년을 좋아하는 목사입니다. 제가 청소년 시기에 예수를 믿고 경험했기에, 청소년 시기를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사역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20년 동안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 모리아성결교회 담임, 청소년선교단체 Yes Come 대표 사회자: 한국교회 주일학교, 즉 다음세대를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사역하시는 입장에서 현재를 진단하며, 그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박종희 부장: 교회 현장에서 제대로 사역하는 담당 사역자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성이 부족합니다. 마치 교회 주일학교를 실습하는 기관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이런 모습이 안타깝습니다.박상철 목사: 그렇습니다. 인턴과정처럼 교회학교를 스쳐가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그래서 전 가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교육전도사 하지 말고 어린이사역자 해라고. 학교를 찾아가서 전도하는 전문 사역자가 되어라고 말입니다. 김보성 목사: 통계 조사를 보면 중고등부 복음화율이 4~5%라고 합니다. 지난해에 새롭게 조사한 결과에는 3%라고 합니다. 선교지에서는 4~5% 미만일 경우 미전도종족이라고 분류합니다. 어린이는 더 작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는 미전도종족과 다름없는 선교가 필요한 세대입니다. 박상철 목사: 네. 붕붕프로젝트를 위해 조사하니 부산지역 중고등부 복음화율이 3%가 되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해운대구입니다. 3번째가 영도구인데, 영도구 전체에 교회 다니는 청소년이 천명이 안됩니다. 제가 지난해 여름 서울에 있는 모교회에 청소년 집회 강사로 간 적 있습니다. 장년 3천8백명이 모이는 교회에 청소년이 80명 모입니다. 또 다른 교회는 장년 3천명 모이는 교회에 청소년 100여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문학의 밤 한다고 교회에 아이들이 부쩍거렸지만, 지금은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미래학자인 최윤식 박사는 지난해 한국교회의 골든타임은 7년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6년 남았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다음세대가 위기이다, 큰일 났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라고 가르쳐 주지만, 움직이지 않더군요. 청소년 사역은 무엇인가 해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천지는 일도 아닙니다. 앞으로 이슬람이 들어오면 더욱 위험합니다. 박종희 부장: 어린이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어린이전도협회에서는 매년 여름 캠프를 개최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등록하는 것을 보면 교회 주일학교 현황이 대충 파악이 됩니다.주일학교 학생이 10명 이하인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교회 자체 수련회 진행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교회 성도들을 보면 연령층이 높습니다. 아기를 둔 30대 젊은 성도들이 거의 없습니다. 교회 내 초등학생, 유치부 자녀를 둔 부모가 부족합니다. 저출산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아직 교회 밖을 둘러보면 아이가 있습니다. 문제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회 풍토를 보면 아무래도 교회 출석 인원이 눈에 띄기 때문에 출석 인원으로 압박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부, 어린이 부서는 인원에 대한 압박을 받지만 상대적으로 유치부는 그런 압박을 적게 받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교회에서 미취학아동인 유치부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치부는 교회 학교의 모판입니다. 유치부에서 자란 아이들이 유년부로, 청소년부로 진학하게 됩니다. 미취학아동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에 대한 전도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박상철 목사: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통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해야 합니다. 선교원을 해야 합니다. 재정이 들고 힘이 들더라도 해야 할 일입니다. 저희 교회 근처 절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합장하며 인사합니다. 교육이란 그 영향력이 큽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는 자연스럽게 기도, 찬양을 배울 수 있습니다. 김보성 목사: 자녀출산을 장려해야 합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김해중앙교회에서는 셋째 아이를 출산하면 출산장려금을 지급합니다. 교회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가 조금만 신경써 문을 열면 어린이집, 방과후교실 등 국가 지원을 받으면서 운영할 수 있습니다. : 교회 현장에서 제대로 사역하는 담당 사역자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성이 부족합니다. 마치 교회 주일학교를 실습하는 기관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이런 모습이 안타깝습니다.박상철 목사: 그렇습니다. 인턴과정처럼 교회학교를 스쳐가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그래서 전 가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교육전도사 하지 말고 어린이사역자 해라고. 학교를 찾아가서 전도하는 전문 사역자가 되어라고 말합니다. 김보성 목사: 통계 조사를 보면 중고등부 복음화율이 4~5%라고 합니다. 지난해에 새롭게 조사한 결과에는 3%라고 합니다. 선교지에서는 4~5% 미만일 경우 미전도종족이라고 분류합니다. 어린이는 더 작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는 미전도종족과 다름없는 선교가 필요한 세대입니다. 박상철 목사: 그렇습니다. 붕붕프로젝트를 위해 조사하니 부산지역 중고등부 복음화율이 3%가 되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해운대구입니다. 3번째가 영도구인데, 영도구 전체에 교회 다니는 청소년이 천명이 안됩니다. 제가 지난해 여름 서울에 있는 모교회에 청소년 집회 강사로 간 적 있습니다. 장년 3천8백명이 모이는 교회에 청소년이 80명 모입니다. 또 다른 교회는 장년 3천명 모이는 교회에 청소년 100여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문학의 밤 한다고 교회에 아이들이 부쩍거렸지만, 지금은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미래학자인 최윤식 박사는 지난해 한국교회의 골든타임은 7년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6년 남았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다음세대가 위기이다, 큰일 났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라고 가르쳐 주지만, 움직이지 않더군요. 청소년 사역은 무엇인가 해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천지는 일도 아닙니다. 앞으로 이슬람이 들어오면 더욱 위험합니다. 박종희 부장: 어린이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어린이전도협회에서는 매년 여름 캠프를 개최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등록하는 것을 보면 교회 주일학교 현황이 대충 파악이 됩니다.주일학교 학생이 10명 이하인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교회 자체 수련회 진행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교회 성도들을 보면 연령층이 높습니다. 아기를 둔 30대 젊은 성도들이 거의 없습니다. 교회 내 초등학생, 유치부 자녀를 둔 부모가 부족합니다. 저출산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아직 교회 밖을 둘러보면 아이가 있습니다. 문제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회 풍토를 보면 아무래도 교회 출석 인원이 눈에 띄기 때문에 출석 인원으로 압박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부, 어린이 부서는 인원에 대한 압박을 받지만 상대적으로 유치부는 그런 압박을 적게 받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교회에서 미취학아동인 유치부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치부는 교회 학교의 모판입니다. 유치부에서 자란 아이들이 유년부로, 청소년부로 진학하게 됩니다. 미취학아동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에 대한 전도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박상철 목사: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통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해야 합니다. 선교원을 해야 합니다. 재정이 들고 힘이 들더라도 해야 할 일입니다. 저희 교회 근처 절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합장하며 인사합니다. 교육이란 그 영향력이 큽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는 자연스럽게 기도, 찬양을 배울 수 있습니다. 김보성 목사: 자녀출산을 장려해야 합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김해중앙교회에서는 셋째 아이를 출산하면 출산장려금을 지급합니다. 교회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가 조금만 신경써 문을 열면 어린이집, 방과후교실 등 국가 지원을 받으면서 운영할 수 있습니다. ▲ 박종희 부장(한국어린이전도협회 부산지회, 넘치는교회) 사회자: 문제점들을 짚다보니 자연스럽게 해결책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음세대를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김보성 목사: 중등부 사역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만해도 아이들이 저절로 교회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다리면 오지 않는 시대입니다. 하고 싶은 거 많고, 놀고 싶은 것도 많고, 주일이면 쉬고 싶은 아이들이 스스로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야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학생들이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학교로, 학원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 시간에, 목사님 시간에 맞춰서 오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학교로 찾아가서 만나야 합니다. 학교로 찾아가면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새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신 것처럼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박상철 목사: 제가 극단적으로 말해서, 교회학교 교사나 교역자들 중에서 학교로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만둬야 합니다. 그만큼 반드시 찾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수련회가 주요사역인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됩니다. 청소년 사역의 본질은 학교 복음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인근학교영적입양사역’입니다. 교회가 인근 학교를 영적으로 입양하는 것입니다. 학교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교육청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교회 인근 지역에 있는 학교를 교회가 정하고, 입양하듯 마음에 품고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는 600개 학교를, 1800개 교회가 입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영적 흐름을 바꿉시다. 저희 교회는 인근 지역 8개 학교를 입양했습니다. 모임마다 이 학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부활절에는 계란을 삶아 주고, 스승의 날에는 떡에 카네이션을 그려서 선생님들께 드립니다. 학교에 소정의 장학금을 주거나, 학교 벽을 새롭게 페인트칠 해주고 그 벽에 아이들을 축복하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걸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학교와 관계를 하다보니 특별프로그램, 인성교육 등 학교에 지속적인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역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교 내 기독교 동아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모여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박종희 부장: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전도를 하다보면 전혀 접근이 안 되는 학교가 있습니다. 아동폭력, 납치 등의 사회적 문제가 제기된 이후 아이들에게 접근을 통제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러는 반면 허락하는 학교도 있는데, 그런 학교는 교회와 교류가 있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김보성 목사: 결국 ‘관계’입니다. 학교와의 관계, 학생들과의 관계입니다. 저는 학교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만납니다. 매주 주보에 한 주간의 심방 스케줄을 미리 알려줍니다. 그리고 심방 하루 전 해당 학교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더 연락을 합니다. 대부분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는데, 학교 문턱이 높아 출입이 불가능한 학교가 많습니다. 특히 문이 닫혀진 곳이 많은데 그렇게 닫힌 상태로 인사하고 손을 부딪히며 파이팅을 외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저를 짠하게 여기고, 저녁이 되면 오히려 제게 먼저 문자를 보내줍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목사님이 또 오시는 걸 보니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이렇게 느끼더군요. 관계는 경비 아저씨와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찾아갈 때마다 학교 경비 아저씨와 관계를 좋게 하면 아이들과의 만남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오고 싶은 교역자, 교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박종희 부장: 하면 됩니다. 한국어린이전도협회에서는 새소식반전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새소식반 전도는 이웃 어린이들을 일주일에 한 번 일정한 기간에 가정이나 학원 시설 등에 초청하여 1시간 프로그램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영적 성장을 돕고 교회로 인도 되어지는 탁월한 전도 방법입니다. 현재 가정,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학원, 놀이터, 심지어 어린이병동에서도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치부와 같은 미취학아동은 엄마와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또래 엄마들을 초대해 아이들 수준에 맞는 복음, 찬양, 게임 등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박상철 목사: 제가 담임목사로 교회 전체상황을 보니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정책들을 가지고 만들어내야 합니다. 교회 학교가 주관하는 방과후교실, 놀이교실, 어린이집 등이 필요하며, 규모있는 교회는 영어유치원, 대안학교 운영 등을 해야 합니다. 해외 선교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선교지 중의 선교지가 한국 교회 다음세대입니다. 박종희 부장: 교회교육도 문제입니다. 대부분 교회에서 예배를 가지는 시간은 한시간입니다. 특히 교회 규모가 작은 교회는 일꾼이 없다보니 교사가 성가대도 해야하고, 다른 섬김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한시간 이상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으로는 교육이 안됩니다. 저희 협회에서 개최하는 캠프를 보면 아이들의 영적 수준이 나타납니다. 기도를 못하는 아이, 성경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 예배 한시간 동안 구경만 하다 오기 때문입니다. 박상철 목사: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한 설문조사에서 예수를 믿지만 교회를 가지 않는, 일명 가나안교인 청소년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1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재미없어서? 아닙니다. 1위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충격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마냥 어린 것 같지만 똑똑합니다. 기성교회가 하나님을 만나게 못해준다는 것입니다. 복음 제시가 아닌 종교행위만 한 것입니다. 제가 아직 한국에 온지 4년반 밖에 되지 않아 관찰자일 수 있지만, 한국교회가 너무 유교적입니다. 유교는 다른 종교입니다. 탈유교문화를 하지 않으면 기독교화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40년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40년동안 탈애굽문화를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탈유교문화를 해야 합니다. 체면문화, 계급문화를 벗어야 합니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 등 이런 계급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거기에다가 교회의 정치적인 모습에 실망하는 것입니다. 김보성 목사: 교회가 너무 비본질적인 것만 제시하다보니 학생들이 무기력해 집니다. 문화상품권, 치킨, 게임 등이 아닌 본질적인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교회만 줄 수 있는 복음, 예배, 교육훈련들을 줘야 합니다. 그 중에 제자들이 생기고, 이들이 학교를 변화시켜 나갑니다. 교회가 아무리 발 벗고 따라가도 세상 재미를 못 따라갑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다른 곳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만 들을 수 있는 복음 제시가 필요합니다. 박상철 목사: 부산기독교총연합회에서 주최하는 부활절연합예배 이후 오후 5시 30분부터 붕붕프로젝트를 가집니다. 다음세대 사역을 위해 20여개 선교단체가 모였습니다. 이것이 붕붕프로젝트입니다. 이날 7천명의 청소년들을 모을 겁니다. 4개의 학교가 출연하며, 행사 끝에는 300명의 목사님들이 공동 축도를 할 계획입니다. 장관을 이루겠지만, 더불어 큰 영적 능력과 권세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한달에 한번씩 붕붕프로젝트를 지속할 계획입니다. 이런 사역을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합니다. 1차 모금 목표는 3백 교회, 3천 성도입니다. 3백 교회가 매월 3만원씩, 3천명의 성도들이 매월 1만원씩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댐을 만들어 선교단체에 나눠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역을 타도시에 전하는 이식사역이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7년 안에 한국교회 다음세대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봅니다. 골든타임 안에 건져낼 수 있습니다. 각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음세대의 결론은 ‘된다’입니다. 된다는 것, 희망이 우리의 결론입니다. ▲ 김보성 목사(김해중앙교회 중등부, 청바지 스탭) 글: 오혜진 기자사진: 최혜진 기자
    • 인물
    • 좌담/대담
    2015-04-02
  • [대담] 김종인 이사장 항간의 소문에 답하다 최근 고려학원 이사회와 김종인 이사장을 둘러싼 여러 가지 루머가 교단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4월 16일 퇴임하는 김종인 이사장도 이런 루머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지난 20일 고려학원 재단사무국에서 김종인 이사장을 만나 이런 루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편집자 주> ▲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 김종인 장로 4월 16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교단 내에서 임기연장을 꿈꾸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런 소문이 근거가 있습니까? 분명히 밝혀 두지만 4월 16일 오전까지 근무하고 나갑니다. 임기연장이요?(웃음)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교단에서 저에게 더 봉사하라고 부탁해도 지금은 더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제 사업체가 많이 힘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런 근거없는 소문 때문에 속이 상합니다. 사업체가 어느 정도 힘들어 졌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전체적으로 지난 2년 동안 매출이 28억 원 정도 줄었습니다. 주거래 은행에서 매출이 왜 줄어들었냐며 연락까지 올 정도입니다. 고려학원 이사장으로 섬기면서 휴가 기간을 빼고 매주 부산에 와서 2~3일간 일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업체를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사회의 이사장과 이사로 봉사할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첫째 시간으로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차기 이사장의 조건으로 일주일에 2~3일은 오직 고려학원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이사회에서도 강조했습니다. 희생없이 얻는 것은 없습니다. 저의 희생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려학원 내 교직원들 사이에서는 이사장님에 대한 좋은 평가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냉정히 평가했을때 임기 중 가장 잘 한 것과 또 가장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몇 십 년 숙원이었던 장례식장을 완전히 오픈, 입찰을 해서 진행한 것입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했기 때문에 잡음이 없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잘 진행돼 5월경 새롭게 오픈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병원 집행부와 이사회가 노력해서 국책사업을 따온 것입니다. 아토피 천식센터는 64년 병원 역사에서 처음 맡은 국책사업입니다. 우리병원에서는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과거에도 추진되어진 병원 주차장 문제입니다. 환자가 많은 월요일이 되면 주차난이 심각하고, 이런 상황은 병원 밖 교통흐름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위험도 크고, 실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병원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제 임기 중 계획이라도 세워놓고자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병원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주차장 문제를 해소해야 합니다. 과거 추진되었던, 지하주차장(지하 3층)을 만들고, 1층에는 잔디를 깔아 이 공간을 환우들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물론 일류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와 의료기계가 중요하지만, 이제는 병원환경도 돌아보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게 하기 위해서는 환자(외래환자)와 그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고, 환경도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떠나기 전 차기 이사장님에게도 이 문제를 부탁드릴 생각입니다. 실제 고려학원 이사장이 되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흔히들 복음병원을 두고 ‘주인 없는 병원’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다른 학교법인은 설립자나 운영자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래서 그 기관의 중심을 잡아 줍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영향력이 다른 학교법인에 비해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인 없는 병원이라 알려져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근무하기는 좋은 곳이라는 말도 듣습니다.(웃음) 고려학원의 주인은 고신교단입니다. 그런데 교단이 주인되기 위해서는 이사회가 바로서는 길이 주인 됨을 되찾는 것입니다. 과거 고려학원 이사회가 분열하면서 스스로 주인 됨을 잃어 버렸습니다. 제가 전문성을 논하는 것도 고려학원 이사회가 바로 설 수 있는 방법입니다. 주인이 없고, 주인이 (기관을)잘 모르니까 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경직되어 있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병원이나 학교가 주인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주인은 고신 교단이며, 이사회는 교단이 잘 맡아서 일해달라고 권한과 책임을 준 곳입니다. 주인이 욕먹지 않기 위해서는 이사회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따라오고, 경영을 합리화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병원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경영을 합리화하지 않으면 경쟁이 될 수 없습니다. 시설을 투자하고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이런 것은 국책사업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 점들이 많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병원장의 임기가 남았는데, 이사회가 새 병원장을 선출하고 나간다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장도 차기 이사회가 아닌, 현 이사회가 선출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한편으로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이사회가 새 이사장을 뽑는 것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저와 전임 신상현 목사님도 남아 있는 이사진이 선출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사장 공백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장 공백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이사회 공백도 길어집니다. 이사회 공백이 길어지면, 대학과 병원의 급한 현안문제 처리도 쉽지 않습니다. 병원장 선임 문제는 이제 들어오는 이사들이 병원의 사정을 잘 모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 기존 이사들이 4년 동안 지켜봤으니까 병원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2년 더 남은 이사님들이 이사회에서 건의해 나온 말이 새 병원장 조기 선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회가 간과한 부분도 있습니다. 병원이 4월 7일부터 10일까지 인증평가를 받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증평가는 병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입니다. 직원들 사기문제와 병원 내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병원장 선출은 다음 이사회가 선출 할 수 있도록 유보했습니다. 총회에서 파송한 이사 4명 중 선별 투표에서 1명이 안됐습니다. 교단내에서는 총회가 선출한 이사들을 학교법인 이사회가 거부할 수 있느냐고 말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한 이사회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첫 단추는 총회선거관리위원회가 잘못 끼웠습니다. 규정에 맞게 학교법인 후보자 공고 당시 (전문성 부분을)총회 규칙을 넣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법인 이사회가 재공고 조치를 해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재공고를 못한다’ 였습니다. 법인은 경영입니다. 우리와 경쟁하는 다른 학교법인이사회도 상당한 전문가들을 모셔와서 경영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기관이 이 정도로 선방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4-5년이 중요합니다. 이 기간 내 사립대학이 상당한 구조조정과 퇴출을 정부로부터 강요받게 됩니다. 생각만해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모 인터넷 매체에서 ‘장로이사장이 목사이사를 못 들어오게 한다’, ‘이사장이 임기 연장을 꾀하려 한다’는 보도를 본 적 있습니다. 한 개인이 가정과 자신의 사업을 돌아보지 않고, 수억원의 적자를 보면서 교단에 봉사한 결과가 그런 말들이라면 차라리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사회의 입장에서 우리의 고민들을 한번쯤 생각해 보셨다면 그런 루머들을 쉽게 생산할 수 없을 겁니다. 금년 초 강봉식 장로와 통화를 한 적 있습니다. 그분은 참여정부 시절 고려학원이 임시이사 체제에서 정이사 체제로 돌아오는데 상당한 공헌을 하신 분입니다. 그 분의 말씀이 (임시이사 시절)청와대가 교육부에 제시한 것이 있는데, 목사보다 장로들이 학원을 운영하라는 권고 사항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법인 이사회 구성이 3(목사):8(장로)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사직은 특정 계파가 나눠먹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목사님들 중심으로 다시 계파정치가 부활할 경우 더 이상 고려학원은 소명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 4분에 대해서 이사회 안에서 많은 대화들이 있었습니다. 총회에서 내려온 것이니 다 받아서 교육부에 올리자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총회가 선출한 이사가 아닌 세분의 개방형 이사님들도 계십니다. 이들은 총회에서 파송된 이사가 아니고 사립학교법에 의해 이사회에서 뽑은 이사님들입니다. 그분들은 고려학원을 위해 소신껏 일하고, 오직 학교법인을 위한 올바른 발언과 결정을 하십니다. 그런 점도 총회가 이해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년부터 신대원 문제가 교단 내에서 화두였습니다. 이사장님 개인적으로 봤을 때 천안에 있는 것이 적절한지 아니면 부산 이전이 적절한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최근 신대원 원장 선임 과정에서 신대원 교수들과 갈등이 있었는데요. 퇴임하는 입장에서 솔직한 제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대원이 천안에 온지 16년째입니다. 지난 16년을 결산해 본다면 신대원의 천안 시대는 마감해야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경제적 원리뿐 아니라 입지적, 시설 규모면으로 볼 때 도저히 운영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국 장기적으로 총회와 산하 교회들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산으로 완전히 이전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제 개인적 의견은 이원화 체제인데, 고려신학대학원 본부를 서울에 두고, 부산에도 신학교를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지금 당장 팔고 수도권으로 갈 수 없습니다. 수도권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도권에 있는 다른 신학교와 인수, 합병, 통합을 하는 것입니다. 100% 완전하지 않지만 이 결정이 아마 교단내 다수의 의견을 충족하는 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부산에 신학교가 필요합니다. 부산에는 김해에 소재한 부산장신대가 유일한 목사양성기관입니다. 현재 신대원 학생들도 다수가 영남권 학생입니다. 우리 교단의 목사 지망생 수요는 영남권 지역이 다수입니다.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신대원 원장문제는 법을 떠나서 좋지 않는 선례, 관례를 하면 안 된다는게 주 요지입니다. 교수들이 투표를 하지 않고 의사를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굳이 투표라는 방법을 사용해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수님들께 의견 표출은 하되, 투표라는 방법은 사용하지 말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강행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선택한 사람을 총장이 제청하고 이사회에서 승인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사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해 왔기 때문에 계속 해 달라는 주장도 말이 안됩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좋지 않는 관례이고, 특정 총장 재임시절 임시적으로 시행해 왔던 관례입니다. 하지만 신대원 교수님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3자(신대원교수, 총장, 이사회)가 논의해 시행세칙을 만들어 신대원 교수님들의 뜻이 전달되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대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사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현재 신대원 원장 문제 외 재정, 학사, 행정 등은 독립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신대원 원장 선거만 보고 신대원 독립을 운운하는데, 인사권을 제외한 모든 행정은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번 이사회는 과거 이사회와 달리 이사회 내부적으로는 의견 분열이 없고, 단합이 잘되었던 이사회 같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두 번째는 이사님들이 합리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었기 때문입니다. 2년 동안 이사회를 잘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이사님들이 잘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또 배후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준 가족, 친지들이 있었습니다. 기도의 은혜로 잘 마치게 된 것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자리를 빌어 학교법인 이사님들께도 고마움과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퇴임 후에도 학교법인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그동안 도와주신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일시 : 3월 20일 오전 10시 장소 : 학교법인 고려학원 재단사무실 대담 : 김종인 고려학원 이사장, 신상준 부장 기록·사진 : 최혜진 기자
    • 인물
    • 좌담/대담
    2015-04-02
  • 부산장신대학교 신임이사장 민영란 목사 Q. 이사장으로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부탁드립니다.A. 부산장신대학교 이사회가 부족한 사람을 믿고 신뢰해 주신 가운데 1차에 당선되게 해주신 것은 학교를 위해서 큰일 많이 하라고 강하게 밀어주신 일이라 생각됩니다.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새 힘을 가지고 도전해 나갈 것입니다. Q. 부산장신대의 시급한 안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A. 부산장신대학교의 가장시급한 일은 학교의 존립에 대한 문제입니다. 학교밖에 있을 때에는 학교재정문제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학교는 항상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막상 이사회에 들어와 재무구조를 깊이 들여다보니 심각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교육부시책인 정원감축문제, 이에 따른 통폐합문제, 유일하게 우리학교만 실시한 반값등록금 문제에 따른 재원확보, 준칙대학으로 지켜야할 까다로운 규정들, 미니학교로서 열악한 재정적 한계, 일부이지만 학교를 음해하고 비방하며 아무 근거도 없이 학교 일을 방해하는 악성비방꾼들 등, 학교 경영자의 위치에 서고 보니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반값등록금 문제는 재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Q. 부산장신대 이사장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A. 학교를 들여다보니 학교 통폐합문제 등 불투명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앞에 몸을 움츠리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처럼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봅니다. 우리학교가 대학인가를 받고 18년을 달려왔지만 처음 세워졌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학교 신축을 하려고 보니 1억 원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학교재원운용을 왜 이렇게 했는지 장학기금과 연구기금은 몇 억씩 모았는데 정작 골격을 세우는 일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못한 것이 현실의 문제입니다. 모두가 도서관을 세워야 한다고 하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없습니다. 그래서 2가지 사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제1차 사업으로 종합비전센터(열린도서관, WCC기념관, 게스트하우스, 카페만남공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설계에 착수했습니다. 제2차 사업은 인문대학의 증설입니다. 특수학교, 특수어린이집 또는 간호학과 신설 등의 사업입니다. 우리 대학이 여기까지 지나온 것은 기적이요, 하나님이 이루신 손길입니다. 이제 제2의 창건하는 자세로 이 일들을 준비해 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분명히 돕는 자들의 손길을 통해서 기적을 연출하실 것은 확신합니다. 이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인 조직과 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입니다. 동문들과 노회와 학교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기도하며 동참해 주시기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Q. 부산남노회 노회장, 영남지역노회협의회, 이제는 부산장신대 이사장직까지 겸임하시면서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 활동으로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A. 사람들이 저에게 말하기를 ‘관운이 터졌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물음에 “메뚜기도 한 철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세 가지 일을 맡으면서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제가 목양터전으로 섬기는 금곡성문교회일 것입니다. Q. 마지막을 교계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우리학교 출신으로 모교를 사랑합니다. 학교발전을 위해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이 세워주셨으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직분을 소중히 감당해 나가고 싶습니다. 열심히 학교를 높이 세우는 일들을 위해서 사심 없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일은 이사장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지역교계 지도자 여러분! 선후배 목회자 동지 여러분! 부산의 선지동산이 전국에서 이름난 학교를 만들도록 여러분들이 기도해주시고 성원해 주십시오. 기대에 결코 어긋나지 아니하는 일꾼으로 성실히 불도저 같이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고견을 듣고 소통하고 화합하며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물
    • 인터뷰
    2015-04-02
  • 고려신학대학원 신임 변종길 원장 ▲ 고려신학대학원 신임 변종길 원장 Q. 먼저 원장 취임 소감을 밝혀 주십시요.참 무겁고 담담한 심정으로 임하였습니다. 지금은 조금 낫습니다. 제가 하고 싶다고 나선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줄로 알고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선 교수회의 화합을 도모하고 교회가 원하는 신학대학원이 되도록 힘쓰고자 합니다. A. 신대원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변 원장님이 원장직을 포기해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구성원들과의 관계와 보직교수 선임은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원장직을 수락하고 안 하고 하는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을 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사회가 투표를 통해 선임한 것을 사양하거나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원장 선임 문제로 두 달 이상 총장과 이사회가 엄청 고생을 한 것으로 아는데, 이것을 제가 무효화시키고 이사회와 온 교단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이제 많이 좋아져서 같이 대화도 하고 식사도 하고 의논도 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이 협력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 잘 협력하고 있습니다. 보직 구성도 조만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작년 64회 총회에서 고신대와 신대원의 캠퍼스 통합 문제가 제기되었고, 총회는 '고신대학교 미래를 위한 15인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교단 내 폭넓은 의견 수렴을 통해 금번 65회 총회에서 어떤 결론이 도출될 것으로 믿습니다. 신대원 원장으로서 변 원장님 개인적인 의견이 궁금합니다. 캠퍼스 통합에 대한 개인적 의견은 어떠하십니까? A. 현재의 천안캠퍼스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 중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으로 이전하거나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단설대학원 설립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고신대학교와 상생 협력하면서 고신대학교는 기독교대학으로 발전하고 신학대학원은 교역자 양성기관으로 발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부산과 천안에 두 기관을 나눈 것은 나름대로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고신 교단의 취약점인 수도권과 중부권을 위해 천안 캠퍼스는 나름대로 장점이 많다고 봅니다. 천안 캠퍼스는 우리 교단의 영적 센터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취임사에서 임기중 부산, 경남지역 교회와 소통에 힘쓰고, 고신대학교와 상생 발전에 힘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앞으로 의논해야 하겠습니다만, 16년 전에 신대원을 천안으로 이전한 후에 부산 경남 지역 교회와 소원해진 감이 있는데 이것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 경남 지역 교회와 소통하는 것이 시급한데, 구체적으로 하나의 방법은 부산 지역에 정기적인 신학강좌를 개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의논해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현재 신학대학원은 행정상, 법적으로 고신대학교 안의 한 대학원으로 위치해 있습니다. 이것이 원리적으로는 옳지 않은 일이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1) 단설대학원을 설립하거나, 2) 무인가 신학교로 나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둘 다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차선의 방법은 현행 체제하에서 최대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다행히 저와 총장은 신대원 동기로서 협력이 잘 될 것으로 생각하며, 또 고신대 교수들과도 협력이 잘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재로서는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서로 협력하면서 상생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것이 고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위해서도 좋고 교단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최악이라는 평가 입니다. 이러한 원인이 무엇이고,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원장님의 의견을 구합니다. A. 한국교회의 위기는 결국 강단의 위기이고 말씀의 위기라고 봅니다. 강단에서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바로 전파되면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면 행함이 따르고 봉사와 헌금이 따릅니다. 따라서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것이 중요한데, 목사님 자신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하겠고 교육이 보충되어야 하겠으며 또 신학생들을 바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목사님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신학석사 과정의 성경강해 과정을 많이 홍보하고 보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힘써 구제와 복지를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인물
    • 인터뷰
    2015-03-19
  •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 준비위원장 이성구 목사 ▲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 준비위원장 이성구 목사 Q 기존 ‘부활절연합예배’라는 이름에서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A 기독교 최대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근래 부활절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영향력도 더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부활의 문화가 이 땅을 뒤덮는 날이 와야 합니다. 부활을 통해 세상이 놀라고, 변화가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부활절을 축제로 보내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문화가 잘 정착해 나갈 수 있도록 이번 부활축제가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Q ‘축제’라는 이름답게 다양한 행사가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A 부활절은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크게 기도회와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일, 그리고 다음세대를 위한 행사로 진행됩니다. 먼저 3월 1일부터 부활절 당일까지 부산복음화를 위한 1분 기도회가 진행됩니다. 부산의 모든 교계지도자 및 성도님들이 정오시간 부산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기독교매체인 CBS, CTS, 극동방송이 정오시간 1분 기도시간을 방송합니다. 또 두차례 연합기도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3월 4일과 3월 25일 연합기도회를 개최하고, 3월 30일 오후 7시 30분에는 부산역에서 통일광장기도회를 개최합니다. 3월 23일에는 부산진역에서 부활절 노숙인 자장나눔 축제로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당일에는 ‘붕붕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음세대를 위한 축제의 시간을 갖습니다. CCM가수와 기독연예인, 그리고 지역 미션스쿨 학생들이 나와 축제를 벌입니다.Q 이번에 해방과 분단 70주년을 맞이해서 뜻깊은 시간도 갖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A 금년 주제가 ‘부활의 능력, 화해와 통일로’입니다. 해방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새터민과 일본 목사님을 초청해 화해와 통일을 위한 뜨거운 기도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목사님이 대표로 오셔서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일본과 냉전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정치로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 내 양심적 세력과 함께 연대해서 화해의 시대를 맞이 할 수 있도록 교계가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또 새터민 대표가 와서 통일메시지를 선포하고 해방과 분단 70주년의 상징적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Q 금년 부활절연합예배 일정과 강사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A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는 4월5일 오후 2시 30분 사직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 같이 ‘부활의 능력, 화해와 통일로’라는 주제로 새터민과 일본 목사님을 모시고 화해와 통일을 위한 메시지 선포와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강사는 현 고신총회장 김철봉 목사(사직동교회)님이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특히 예배 후 다음세대를 위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산지역 성도님들과 다음세대가 함께 드리는 뜻깊은 부활절연합예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Q 벌써 3년째인데요. 부기총이 부활절연합예배 이후 다음세대를 위한 축제를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년 행사를 소개해 주십시오.A 금년 축제는 ‘붕붕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약 7천 여명의 청소년, 청년들을 초청할 예정입니다. 공민영, 강성훈, 라스트, 박지헌, 이민용, 크로스 KC, 어웨이크닝 등 다양한 CCM가수들과 기독연예인이 깜짝 출연을 하게 됩니다. 또 부산지역 미션스쿨 학생들이 나와 다양한 무대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Q 매년 부활절연합예배 헌금은 의미있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금년에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됩니까?A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작년 경우 소외된 이웃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사용되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금년 부활절 헌금은 주제에 맞게 새터민과 일본복음화에 사용되어 졌으면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결정은 회의를 통해 집행되어 질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돈이 예년과 마찬가지로 의미있게 사용되어 질 것입니다. Q 끝으로 금번 축제를 위해 지역 성도님들께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A 금년 부활절은 단순한 연합예배가 아니라 부산지역 교회들의 연합축제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것 처럼 다양한 행사가 준비중이고 일본대표와 새터민들이 함께하는 부활절 축제로 마련됩니다. 기독교 최대 명절을 의미있게 보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지역 1,800여 교회가 함께 동참하는 부활절 행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인물
    • 인터뷰
    2015-03-07
  • [대담] 영남신학대학교 이사장 김수읍 목사 영남신학대학교 학내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난 2012년 A교수 재임용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수와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 갈등이 법적 다툼까지 번지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이에 영남신학교 이사장 김수읍 목사를 만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그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Q. 신이건 : 학내사태와 관련해 이사장의 입장과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A. 김수읍 : 총장은 학교경영을 잘하고, 교수는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고, 직원은 교수의 강의와 연구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에 불편이 없도록 학사행정에 최선을 다하고, 동문은 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이사회는 영신공동체가 데모 없이 하나 되어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신 : A와 C교수에 대한 행정조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김 : 교직원징계에 관한 규칙 제3조 ③항에 의거, A교수는 정직 1개월, C교수는 정직 3개월을 받았습니다.신 : 서명교수, 학생들은 어떤 징계를 받았습니까?김 : 서명교수회 중 주도적인 역할을 한 7명의 교수들 중 면직 3명, 재임용거부 2명, 징계 2명입니다. 학생들은 개전의 정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선처할 수 있도록 무기정학 7명을 징계한 상태입니다. 신 : 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비밀문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비밀문서가 유출이 될 수가 있었습니까?김 : 조사보고서는 학교에서 유출한 적이 없습니다. 서명교수 중 황○○교수가 손○○학우에게 유출한 것으로 검찰조사에 나타나 있습니다.신 : 징계위원회가 조사위원회의 조사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한 A교수, 서명교수와 총학 등은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이사회의 입장은 무엇입니까?김 : 지난해(2014년) 12월 1일에 있었던 제272회 이사회에서 14인의 서명교수회는 사조직이고 해교집단이므로 불법단체로 결의했습니다. 2015년 2월 5일 학생처에서 최근 본 대학교에서 활동하는 소위, ‘비상대책위원회’는 본 대학교의 공인을 받지 않은 임의단체로 합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 단체로 공지하였습니다. 이후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되 개전의 정이 있는 경우에는 최대한 선처할 것입니다. 신 : 학내사태가 대구지법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김 : 현재 대구지방법원에는 면직효력정지등가처분신청 3건과 면직효력정지등가처분신청 2건, 면직결정무효확인의소 3건과, 재임용거부무효확인의소 2건 총 10건이 소송 중에 있습니다. 면직 및 재임용거부효력정지등가처분신청은 학교의 입장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입니다.신 : 권용근 총장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아직 사표수리는 되지 않았습니다. 이사회는 어떻게 처리할 계획입니까?김 : 권 총장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학교의 여러 현안들이 산적한 가운데 기관의 장인 총장이 사표를 냈다고 해서 즉각 수리할 사안은 아니므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차기 총장 선임을 위한 총장인선위원회가 통상적인 구성시기보다 2개월 정도 빨리 구성되었습니다.신 : 이사회 측은 서명교수들과 학생들이 이사회 측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했는데, 대화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입니까?김 : 2015년 2월 23일 이전까지는 학교정상화를 위해 대화를 시도했으나 서명교수들이 이사회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이사회는 지난 2월 23일 제277회 이사회에서 결원된 교원을 모두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은 대화가 어렵겠지만 재임용거부 및 징계당한 교수와는 언제든지 대화의 장을 열고 풀어갈 생각이며, 학생들도 개전의 정이 보이면 학교에서 선처하는 것으로 풀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 : 서명교수, 학생 측이 진정서를 교단 총회장(정영택 목사)에게 보냈다고 하는데.김 : 진정서는 여러 번 보냈고 일방적인 주장으로 알고 있습니다.신 :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가 이뤄집니까?(총장 교육위와 총회감사는?)김 :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재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성실히 임할 것입니다.신 : 학기가 시작됐는데, 학교가 다시 정상화되기 위해 이사회의 방안은 무엇입니까? 김 : 학사행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에 집중할 것이고 이를 위해 학교 질서를 잡아갈 것입니다. 교수와 학생 징계가 있었지만 징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학내사태가 없는 신학대학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봐 주시길 바랍니다.신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 학교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 신이건 사장(본지)(본지는 영남신대 사태와 관련해 학생 측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추후 서명교수 또는 학생 측이 원할 경우 보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인물
    • 좌담/대담
    2015-03-07
  • 부울경기독교수연합회(BCPN) 회장 이선복 교수 ▲ 부울경기독교수연합회 회장 이선복 교수(동서대) Q 회장으로 선출된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A 제8회 부울경기독교수선교대회 총회를 통해 BCPN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저의 단점을 누구보다도 제 자신이 잘 알기에 잘해 나갈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실 때마다 힘을 공급하시고, 또 그의 선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돕는 사람을 보내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Q BCPN 창립 멤버로서 8년간 지속적으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A BCPN 제1-2대 총무로서 창립과 제23회 전국교수선교대회 준비를 도왔습니다. 또 마침 설립된 21세기포럼 비전100인위원회 멤버로, 직장 내 일본어채플 섬김이로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사역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BCPN에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2007년 2월 동서대학교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2008년에 제23회 전국대학교수선교대회를 치루고, 2010년에 부산기독교수연합회를 부울경기독연합회로 변경, 복음의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또 2015년 제8회 대회를 갖기까지 20여개에 이르는 각 대학의 교수신우회(약300명)를 튼튼히 세워주시고, 출발은 늦었지만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도 모범된 연합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Q 올해 계획 중인 사업들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A 먼저 정기모임은 조찬기도회로 매월 1회 금요일 오전 7시에 가집니다. 20여개 대학의 개강예배, 종강예배, 순회예배 등을 통한 캠퍼스 탐방을 계획 중입니다. 또 저희 BCPN 내에는 3개의 분과가 나눠 운영 중입니다. 영성분과, 학원복음화분과, 선교/유학생분과로 나눠져 있습니다. 각 분과에 맞게 현안 문제를 의논하며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에 열릴 제9회 부울경교수선교대회는 창신대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부산지역에 위치한 대학에서만 가졌으나, 이름에 걸맞게 울산과 경남지역도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영역을 넓힐 계획입니다. 그 시작으로 경남지역인 창신대에서 대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경남지역 캠퍼스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섬기시는 기독교수님들과 함께 동역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외에도 소식지, SNS를 이용한 각 대학 신우회 캠퍼스 사역을 섬길 예정이며, BCPN 10주년을 기념해 10년사 편찬을 계획 중입니다.Q 4개의 분과가 운영 중인데, 각각 어떤 사역을 하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A 영성분과는 교수님들의 영성과 교육 개혁을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나친 취업 경쟁 등 본래의 교육 모습에서 벗어난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학원복음화분과는 캠퍼스 전도, 교수와 학생들의 바이블스터디, IYF와 신천지 등의 이단퇴치를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캠퍼스가 복음화 될 수 있도록 돕는 분과입니다. 선교/유학생분과는 PAUA(범아시아 아프리카 대학협의회) 등 교수 해외선교사역 소식을 전하며, 국내 대학에 유학 온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부산대, 창원대, 동서대 등 외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채플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올해 신설된 경남분과는 경남지역 활성화 및 내년 제9회 대회 준비를 위해 새롭게 세워진 분과입니다.Q 내년 여름에 열릴 전국대학교수선교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해달라는 요청을 받으셨다고?A 네. 2016년 7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릴 제31회 전국대학교수선교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BCPN에서 고민하며, 지역 대학과 검토 중에 있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이 도출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Q BCPN의 기도제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A 교수님들의 영성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부르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부울경 지역 20여개 대학 교수신우회와 각 캠퍼스마다 놀라운 사역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또한 이를 위해 BCPN이 잘 도울 수 있게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한 BCPN 회장 이하 모든 임원진이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 사역을 잘 감당하며, 특히 올해부터 새롭게 경남지회 분과를 세웠습니다. 마산/창원에 이어 진주, 울산 지역도 활성화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인물
    • 인터뷰
    2015-02-16
  •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대표회장 문윤수 장로(동산교회)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대표회장 문윤수 장로(동산교회) Q 먼저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이하 부기장총) 대표회장에 취임하신 것을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소감 부탁드립니다.A 먼저 부족한 저에게 귀한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직분을 잘 감당하라고 격려해 주시고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격려와 기도 부탁드립니다.Q 지난 1년간 차기회장으로 준비하셨습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A 회원들이 각 교회에서 충성되게 섬기는 것과 더불어 부산의 교회들이 초교파적으로 단합할 수 있도록 모임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우선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위기를 맞았다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단과 교파를 떠나 연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들이 먼저 연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Q 2015년 부기장총은 어떤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또 개인적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싶으신지?A 본회의 사업으로서는 상반기에는 3.1절 기념행사, 6.25 구국기도회, 부활절과 광복절 감사예배를 가집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고자 합니다. 애국애족정신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반기에는 초교파적 연합을 목적에 두고 지난해와 같이 부산 기독교 목사·장로 체육대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또한 저의 소견을 덧붙이자면 부산에 ‘기독교 역사박물관’이 없는 것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기독교총연합회에서 기독교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가 이에 협력해서 기독교 역사관 건립의 초석을 마련, 부산에 기독교 문화를 보급하는데 기여하는 기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획과 사업들이 부산 성시화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Q 대표회장으로서 부기장총이 부산교계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 기관이 되길 기대하십니까?A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기독교문화를 알려 지역 복음화에 앞장서는 기관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사회를 섬기는데 앞장서는 기관이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기장총은 초교파적 모임으로, 장로 간 친목과 상호 교류를 통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교단과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애쓰고 빛과 소금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충성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성시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Q 예장 브니엘 부총회장, 연제 CBMC 회장 등을 역임하셨고, 또 CBS 부산 방송국 운영이사 등 교단과 부산교계를 위해 활동해오고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 좋았던 일 등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A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맡겨주시고 즐겁게 감당할 수 있었음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사역들을 할 때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음을 매번 체감하였습니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심함을 깨달았습니다.Q 마지막으로 교계의 장로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A 올 한 해 동안 더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리며, 부산에 있는 1,800교회와 약 6,000명의 장로들이 힘을 합해 깨어 일어나 부산의 성시화를 위해 다 함께 충성할 수 있길 바랍니다.
    • 인물
    • 인터뷰
    2015-01-31
  • 부산성시화운동본부장 안용운 목사 ▲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본부장 안용운 목사 부산성시화운동본부가 지난 1월 8일(목) 이취임식 및 출범식을 개최했다. 이날 안용운 목사(온천교회)는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본부장에 취임하면서 변화된 성시화운동본부를 예고 했다. 지난 9일 오후 안 목사는 교계 기자들을 상대로 취임인터뷰를 가졌다.Q 취임소감을 밝혀 주십시오.A 본부장을 맡게 되어 먼저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전임 훌륭한 본부장님들이 성시화운동본부를 잘 이끌어 오셔서 (스스로 잘 할 수 있을지)걱정이 앞섭니다. 다행히 다른 능력있는 임원진들이 있어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를 사랑하는 지역교회와 성도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Q 부산성시화운동본부가 출범한지 15년이 넘었습니다. 오랫동안 두 대형교회 목사님이 성시화본부를 이끌어 오셨고, 이제 안 목사님이 성시화운동본부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성시화본부도 좀 변화가 예고되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부산성시화운동본부가 나아갈 방향을 소개해주십시오.A 먼저 조직을 튼튼하게 세울 계획입니다. 젊은 목회자와 작은 교회가 성시화운동본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폭넓은 틀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본부장 개인 한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성시화본부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작년 ‘525회개의 날’이후 후속 프로그램을 잘 이어가겠습니다.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먼저 목사님들이 회개하고, 다음세대 복음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2015년이 될 것입니다. 또 작은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성시화운동본부가 도움을 줄 것이며, 일터 사역을 지원하고, 이단 사이비 대책운동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Q 금년에는 '2015년 인구 총조사'가 있습니다. 만약 복음률이 지난 2005년보다 더 떨어졌다면 지금껏 해 왔던 부산성시화본부의 운동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만약 더 떨어졌다면 성시화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정하실 계획이신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기도와 후원을 받아왔던 지역교계에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A (복음률이 2005년보다)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청소년 등 다음세대의 복음률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지역교회의 기도와 후원을 받는 성시화본부가 근본적인 역할을 못했다는 의미에서 책임질 일이고, 제 스스로도 책임감을 느낍니다. 다음세대의 복음화가 상당히 심각합니다. 그래서 금년은 다음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져 있습니다. 광복동 트리축제 처럼 기독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안 등을 강구할 생각입니다.Q 많은 이들이 성시화운동이 그동안 지향해 왔던 방향에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불신자) 사람들을 대상으로 운동해 나가야 하는데, 대형집회 등 기존 교회를 잘 다니고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을 지향해 왔다는 지적입니다. 사회정화, 공익적 가치를 위한 캠페인이나 기독교 사랑 실천을 위한 구제와 봉사 사업이 아닌, 우리들(신자들)의 신앙을 위한 대형집회가 성시화운동본부 안에서 과연 바람직 한 것인지 본부장님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A 성시화운동본부의 근본적 취지에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형집회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너지 전달에 있어 대형집회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형집회를 지향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Q 지난 ‘525 집회’ 이후 백서를 발간했습니다. 당시 행사를 참석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백서를 만들었는데 객관적 평가가 부족하다는 지적들도 많습니다. 부족했던 점과 반성해야 될 점도 상대적으로 평가하고 논의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대형집회 이후 백서까지 만들었는데, 지난 15년간 부산성시화운동본부가 걸어온 백서는 만들 계획이 없으신지 알고 싶습니다.A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좀 더 객관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감동받은 것이 커서 그런 후한 평가를 하신 모양입니다. 525 집회 이후 백서를 만든 것은 과거 대형 사업을 했지만 기록이 남아있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성시화운동본부가 걸어온 15년의 평가에 대한 백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원들이 논의 한 후 이 부분에 대한 검토를 하겠습니다.
    • 인물
    • 인터뷰
    2015-01-17
  • [특별대담]고신대학교 전광식 총장 ▲ 고신대학교 전광식 총장 •일 시 : 2015년 1월 13일(화) 오후 2시•장 소 : 고신대 총장실•대담자 : 전광식 총장•사 회 : 신이건 사장•기록, 사진 : 신상준 부장먼저 한국교회 성도님들께 새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먼저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 새 뜻과 새 꿈을 주셔서 성도들이나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지면을 빌려 지난 한 해 동안 교단과 지역의 경계를 뛰어넘어 주님의 사랑 안에서 고신대학교를 통한 ‘하나님나라운동’에 기쁨으로 동참해주시고 따뜻하게 지원해 주신 모든 교회들과 성도님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작년 2월 6일 취임식 후 근 1년 동안 학교 운영을 해 오셨습니다. 현 시대 상황에서 사립대학을 이끌어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해 학교운영에 대해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하나님나라운동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경우에도 수량화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본인이 자기 점수를 매길 수 없고, 그렇다고 다른 분들이 점수를 매긴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정확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에 대해서 그러하지만 특히 자기 자녀들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하나님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긍휼과 은혜의 점수를 주시기 때문에 저와 우리 집행부도 그런 긍휼의 점수차원에서라면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밖에서 바라본 고신대학교는 지난 한해 위기와 오해도 있었고, 소망과 기쁨도 있었다고 봅니다. 총장님 스스로 생각하시는 가장 보람된 일과 가장 아쉬웠던 일을 평가해 주십시오.저는 학생들에게 학기를 끝날 때 마다 자신이 겪은 세 가지 슬픔과 세 가지 기쁨을 나눠 보자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과거를 돌아보는 태도는 한편으로는 감사요, 한편으로는 회한일 것입니다. 회한은 하나님 앞에서 좀 더 열심히 살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의 내적 반성이므로 저와 우리 모두에게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회한보다 감사가 넘치는 것은 그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바울의 고백 같은 것 때문입니다. 작년에 제게 삼락(三樂)이 있었다면 첫째는 교무위원들뿐 아니라 학생들까지 따라 올라간 무척산 기도운동의 정착화요, 둘째는 부족한 저와 집행부에 그래도 신뢰를 주시면서 협력해 준 모든 교수, 직원, 학생들의 협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사장님을 위시한 이사회와 교단목사장로님들의 이해와 배려이요, 셋째는 교단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외국인 학생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후원의 밤 행사에 기꺼이 동참해주신 여러 교회들과 목사님들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미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2014년은 교단적으로 고신대와 신대원의 캠퍼스 통합문제가 이슈된 한 해였습니다. 결국 총회가 ‘고신대학교 미래를 위한 15인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캠퍼스 통합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고신대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 주십시오.저희 입장은 여러차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 안에서 내부 분열이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가 에너지를 낭비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캠퍼스 통합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교단을 분열하고 서로 갈등을 야기한다면 결국 통합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우리 스스로가 하나되고 통합은 그 이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신대원 원장이 공석입니다. 일부에서는 법대로 총장님이 후임 원장을 제청해야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총장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고려학원 정관에는 총장이 신대원 원장을 제청하고 이사회가 선정하여 이사장이 임명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신대원 원장은 신대원 교수회의가 정한 인물을 총장이 제청하는 형식으로 해 왔습니다. 저 또한 신대원은 어느 정도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 말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신대원 독립성은 필요하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장님 임기가 3년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3년이 사립대학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남은 3년 동안 ‘이것 하나만은 꼭 이뤄놓고 가겠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제가 생각하기에는 앞으로의 몇 년간이 대단히 중요해도 그것이 꼭 고신대의 운명을 좌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운동은 늘 위기 속에 있어왔고 위기 속에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어떤 경우에 과거를 헤쳐오지 못했고 또 미래를 개척해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인간적인 바램은 저의 임기동안 앞으로 수십년을 내다보고 학교를 제반 문제에서 기독교 명품대학으로 견고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특히 무엇보다 대학과 신대원, 그리고 병원을 포함한 대학공동체 전체에서 영적 회복과 신앙적 정초를 견고히 구축하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바로서면 하나님의 은혜의 햇살을 비취게 되어 있습니다.얼마 전 ‘고신대학교 수도권 후원의 밤’이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고신대학교가 고신교단과 지역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인 기독교 대학으로 나아가겠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신대만의 특성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고신대가 나아갈 특성화의 방향 혹은 구조조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지금 구조조정 및 특성화위원회가 가동되어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3월경이나 되면 기본윤곽이 드러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학교의 두 가지 배경인 교회와 병원에 따라 한편으로는 신학, 교육, 복지, 봉사분야 같은 신학계열과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 간호, 보건 분야 같은 의료계열을 기본골격으로 하고, 아담하면서도 전문인선교사 같은 하나님나라인재를 키워내는 아름다운 기독교 명품대학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 고신대학교가 750여명을 수용하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새로운 기숙사와 함께 하나님나라의 인재양성소로서 정말 아름다운 기독교대학으로 더욱 발전할 것을 확신합니다 발전기금이 많이 모금된다고 들었습니다. 총장님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하나 되어 고신대를 홍보하고 대학 발전기금을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나라운동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돈의 가치가 앞장서거나 우위시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이 교회나 기독기관의 세속화의 시작입니다. 여러 선교기관이나 NGO단체들에서도 이런 일로 본래의 사명이 퇴색되고 이권을 두고 갈등과 싸움이 벌어지곤 해 왔습니다. 하나님나라운동에서도 물질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money value보다는 man value가 중요하고, man value보다는 spirit value가 더 중요합니다. 영적 가치가 먼저이고 인간 가치가 그 다음이며, 돈은 그것을 위한 수단적 가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이나 기관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물질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무 많다고 교만하고 자랑할 필요가 없고, 너무 적다고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많이 들어오면 많이 쓰면서 많이 벌리고, 적게 들어오면 절약해서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매주간 후원금이 쉬지않고 들어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특히 교회들의 참여가 갈수록 확대되어 감사합니다. 액수에 상관없이 작은 정성이라도 과부의 두 렙돈과 어린아이의 오병이어처럼 귀하게 사용될 헌금들입니다. 금년 한해에도 우리 생각 이상으로 주께서 생각지도 않은 숨은 동역자들을 통하여 많은 것으로 준비하셔서 채우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2015년 한국교회 성도들과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고자 합니다. 고신대학교의 기도제목을 총장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향해 무엇이라 하는지에 예민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성적인 의미에서는 좋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무엇이라고 부르시는지 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2천년 전에도 어설픈 제자들을 두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칭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의미에서 문제가 많지만 여전히 ‘세상의 빛들’입니다. 다만 조금 밝기를 잃어서가 문제이므로 우리 모두가 조금씩 빛의 근원인 하나님에게 더 접속하여 거룩한 삶을 살므로 빛의 밝기를 조금씩만 더 강화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를 통해 영적으로 좀더 밝아지고 희망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 고신대학교도 온 열방에 복음의 빛된 일꾼들을 배출하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의 동참과 사랑의 협력을 구합니다.
    • 인물
    • 좌담/대담
    2015-01-17

문화 검색결과

  • [기독교인문학] “새 백성, 새 공동체, 새 세상을 연 위대한 사도” 톰 라이트의 <바울 평전> 성서의 인물 중에 바울처럼 논쟁의 한 가운데 선 인물도 드물다. 현존하는 최고의 바울해석자가 쓴 최고의 바울평wjs이란 평을 받고 있는 이 책은 역사가이자 신약학자인 저자가 1세기 초기기독교의 역사적 탐구를 통하여 얻은 해박한 지식과 안목으로 바울의 생애와 사상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 학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춰 출간 초기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바 있는 저자는 지금의 시각이 아닌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 전으로 돌아가 한 인간이자 유대인이며 기독교인인 인간 바울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때 비로써 예수에 대한 그의 새로운 틀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와 함께 선교 여정을 걷다 보면 온갖 고난을 이겨내며 꿈꿨던 새 폴리스, 새로운 인류의 인간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이방인의 사도, 바울을 만날 수 있다. ◇ 저자소개 ∥ 톰 라이트 저명한 신약학자이자 초기 기독교 역사에 정통한 역사학자. 1948년 생으로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수학하고 캠임브리지, 맥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으며, 웨스트민스터 참사회원, 영국 성공회 사제로 더럼 주교를 역임했다.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를 다룬 6부작 시리즈로 학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역사적 예수 연구’와 ‘바울신학’ 분야의 독보적인 학자로 인정 받았다. ◇ 저서∥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광장에 선 하나님》, 《이것이 복음이다》, 《혁명이 시작된 날》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PAUL-그의 생애, 서신, 신학》 브루스W.롬네커, 토드 D. 스틸 / 성서유니온 / 2019 《바울이라는 세계》 벤 위더링턴 3세, 제이슨 마이어스 / 이레서원 / 2022 《바울이야기》 제롬 머피 오코너 / 두란노 / 2006 “새 백성, 새 공동체, 새 세상을 연 위대한 사도” - 최고의 바울해석자가 쓴 《바울평전》 - 새 백성, 새 공동체, 새 세상 “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과 한 주가 계시니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바울을 바울로 만든 본문이다. 이것이 다메섹 도상에서 느닷없이 그를 덮친 실체다. 그는 논란도 많고 고통도 컸으며 무거운 요구를 동반했고 오해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데도 결국 허사가 되지 않고 도리어 성장하여 ‘한 종교’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새로운 인류의 인간-새 백성, 새 공동체, 새 세상-을 만들어 냈다.” 논쟁적 인물 ‘바울’ 김길구 오늘의 책은 저명한 톰 라이트의 《바울평전》 입니다. 원제는 《PAUL: A Biography》 인데, 번역본에는 A Critical Biography-논평을 겸한 전기를 뜻하는 평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 바울처럼 그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논쟁적인 인물도 드문데, 읽어보신 소감이 어때요? 류지원 우선 700여 쪽의 분량에 압도되죠. 그러나 신약성서 최초, 최다 저자인 바울을 비껴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잘 읽혀 노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서 속의 바울서신과 1세기 초기기독교 역사의 행간을 이해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김현호 저는 바울이 소위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로 범접할 수 없는 깐깐한(?) 교리적 인물이란 선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떨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길구 제가 성서 아닌 책에서 바울을 접한 것은 오래전 두란노에서 펴낸 제롬 머피 오코너의 《바울이야기》였습니다. 정일형박사와 이태영 변호사의 아들로, 선친을 이어 종로 중구에서만 내리 5선을 지낸 정치인 정대철이 감옥에서 번역한 책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수형생활의 동병상련일까요? 흥미롭게 봤었는데, 이 책도 전기 또는 평론의 장점인 현장의 ‘생생함’을 재현한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잘 쓴 책이었습니다. 김현호 텍스트인 성서에 콘텍스트인 환경이나 상황이 가미되면 그 말씀이 더욱 생동감이 넘치죠. 거기에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거친 숨소리까지 더해지면 말씀은 더욱 살아납니다. 이것이 전기의 장점이지요. 류지원 대개 역사에 충실하면 신학이 깊이가 없고, 신학에 치중하면 역사가 부실하기 쉬운데, 역사학자요, 신약학자로 초기기독교 연구에 정통한 톰 라이트의 700여쪽에 달하는 이 평전은 이 둘을 다 아우르는 책 같아 좋았습니다. 바울에 대한 평가 김길구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의 역사·지리적 상황과 그를 둘러싼 환경, 이방선교사로서의 그의 불굴의 신념! 나아가 바울의 고뇌와 땀, 그리고 그의 희망과 좌절, 고난과 고독…그리고 무엇보다 깨어진 인간관계에서 오는 애증의 거친 화를 내는 옆집 아저씨 같은 친숙한 ’인간 바울‘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류지원 저자 톰 라이트의 바울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데요 ‘바울은 많은 사람이 주장하듯이 그저 이스라엘과 그리스와 로마 세계를 종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제시한 제시한 그림은 이스라엘 고대사에 뿌리를 둔 것으로 유대다운 모습을 확고히 간직한 그림이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그 중심에 있었으며 세계 열방과 그들이 가장 훌륭한 사상인 메사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통일을 이뤘다. 그는 단순히 어떤 종교나 어떤 신학을 가르치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김길구 이 책은 바울의 삶을 자세히 알려주기보다는 탐구와 추리와 논증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가는데 성서 외에 바울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서입니다. 책 내용이 많아 다 다룰 수는 없겠고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하다, 바울을 둘러싼 쟁점들을 중심으로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율법이냐 복음이냐 류지원 우선 톰 라이트는 소위 ‘새관점 학파’로 알려졌어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는 인간이 구원을 받는데 행위가 필요 없이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죠. 저자는 이런 이신칭의 교리를 비판하고 현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 대한 법정무죄가 아니라 미래의 종말에서 최종완성되기에 지속적인 행위와 종말론적 완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차이를 비교하면서 이 책을 보는 것도 좋은 독서방법이겠죠. 김현호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율법과 복음은 상충 되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이니까요. 예루살렘교회와 바울 김길구 바울은 사실 예수의 제자가 아니죠. 바울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으니까요. 바울의 최초서신은 예수의 죽음이후 10년이 지나서야 기록되었습니다. 더더구나 예수쟁이들을 핍박했던 바울의 입장에서는 제자들에게 프락치가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을거예요. .. 김현호 이런 오해를 풀고 바울과 바나바가 참석한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을 위한 선교대상 구분을 시작으로 음식과 할례 등의 갈등을 봉합하고 세계선교의 진용을 구축하게 됩니다. 류지원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각오로 임한 사도 바울의 5차에 걸친 선교여행으로 기독교는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말바꾸기에 대하여 김길구 이방인의 사도를 자청한 바울의 논란 중에 하나는 그의 일관 되지않은 유대인에 대한 입장의 변화일거예요. 오락가락 했지요? 특정 교회에 맞춘 상황성과 바울신학의 일관성의 불일치를 어떻게 보세요? 류지원 예를 들자면 데살로니가전서에 나타난 혹독한 비난이 고린도 후서에서는 조건부로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가 로마서에 와서는 우호적인 입장으로 변하지요. 그래서 그의 잦은 입장 변화를 두고 입방아에 오르내려요. 김현호 바울은 책만 파던 학자가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부단히 교인들과 부딪치면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처지라 실천목회적 차원에서 지역교회들이 처한 입장과 상황에 따라 처리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예요. 권세와 복종 김길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드문 역동적인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계속된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 민주화 시위, 촛불혁명, 태극기부대에 이은 최근 집권 초기의 심상치 않은 시위 등에 교계는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여 그 영향력을 키워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환되는 바울의 성구가 있습니다. 로마서 13장에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는 세속권력과의 관계입니다. 류지원 바울은 모든 성도가 통치권력에 복종하도록 요구하지만, 맹목적인 강요는 아니예요. 13장1절~7절을 보면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면서 접속사를 7번 사용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써요. 요약하면 통치권력이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다는 것과 악을 징벌하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거예요. 김현호 여기서 바울은 권선징악의 기능을 수행하는 통치권력에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면 당연히 그 권력에 순응해야겠지요. 그러나 악한 권력자 경우라면 그렇치 않겠죠? 여성의 침묵에 대하여 김길구 그렇게 혁신적인 바울도 여성문제에서 양면성을 보이고 있어요. 지금도 여성성직자의 진입을 막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잠할지니’라거나 그에 반해 여성을 사도라고 부르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니까요. 김현호 바울은 일부 여성을 그의 동료이자 동역자로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메시아 가족 안에는 결국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음을 알고 있었으며, 뵈뵈에게 로마서를 전달할 책임과 더불어 이 서신을 설명할 책임까지 주었을 정도로 개방적인 측면도 있었지요.. 류지원 당시 바울이 전한 복음은 여성을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 소수민족, 노예, 어린이 등 당시 고대 이교도들의 풍습에 반하여 좋은 소식, 복음임에 틀림 없었습니다. 비록 남성과 여성을 완전히 동등하게 보지는 않았서도 자신의 교회에서 여성들의 핵심적 역할뿐 아니라 지도자 역할까지 맡긴 사실에서 알 수 있지요. 김길구 쉽지 않은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호에는 소책자를 준비했습니다. 본문이 150여쪽이니 부담스럽지 않죠? 저자는 스펄전 이후 가장 위대한 설교자인 독일 루터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인 헬무트 틸리케의 대표작 《신과 악마사이》입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22-10-14
  • [영화] 속편의 시대가 남긴 숙제 속편이 지배하는 한국영화 코로나 엔데믹 시기를 맞으며 한국의 극장가는 코로나 이전의 부흥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전인 2019년 극장을 찾은 관객의 수는 2억 2천6백6십8만여 명에 달함으로써 1인당 연평균 관람 횟수가 4.37회에 달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나라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실시되고 음식물 섭취가 제한된 데다 외출을 극도로 회피하기 시작하자 영화관은 관객의 발걸음이 끊긴 적막한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영화관을 직접 찾아간 관객의 수는 6천5십3만여 명에 불과했다. 1인당 연평균 관람 횟수도 1.17회로 뚝 떨어졌다. 그야말로 국내 영화관들이 아사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영화계에 희망을 전해준 영화는 2017년 추석에 개봉한 이상용 감독의 <범죄도시>의 속편인 <범죄도시2>였다. 괴력의 형사 마석도(마동석)를 앞세워 무려 1천2백6십9만여 명의 관객을 모아 천만 관객 돌파라는 한국 영화계가 그토록 열망하던 부흥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편에서 중국교포들이 모여 사는 가리봉동 일대를 순식간에 장악했던 하얼빈 출신의 신흥 조폭 장첸(윤계상)의 악랄한 행위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마석도 형사의 불주먹에 당시 열광했던 관객의 수는 6백8십8만여 명이었다.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나올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이미 예고되기 시작했었다. 왜냐하면 극장 개봉이 끝난 후에도 <범죄도시>는 공중파 TV를 통해 해마다 명절용 영화로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전용 케이블 TV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재방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인기를 받아왔던 까닭에 제작자나 관객 모두 속편에 기대감이 높은 상태였다. <범죄도시2>의 천만 관객 돌파는 <마녀 Part2. The Other One>과 <탑건: 매버릭>, 그리고 여름방학 특수용으로 제작된 <한산: 용의 출현>과 추석용 가족영화 <공조2: 인터내셔널> 등의 속편 영화들의 연이은 개봉으로 이어졌다. 이 영화들은 이미 전편을 통해 대중성을 검증받은 영화들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개봉을 늦춰왔던 대형영화들이 한꺼번에 영화관에 걸리는 바람에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어서 좋아 보였지만 적지 않은 수의 영화들이 속편의 성격을 띠고 개봉한 점은 매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속편의 흥행 이유 속편 영화가 나오는 이유는 전편의 흥행에 대한 기대심리가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각색을 거친 후 리메이크하는 경우는 있어도 주인공과 이야기를 연장하면서 속편을 만드는 일은 흔하지 않다. 속편 영화는 기존의 캐릭터와 이야기의 구조를 따라간다는 점에서 독창성의 면모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흥행의 안정성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사가 제작하기도 쉽고 투자받기도 훨씬 수월하다. 전편을 본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이미 어떤 성격의 영화인지를 알 수 있어서 새로운 영화를 보고 난 후 실망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속편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기대감을 상승시킬 수 있으니 선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상승한 영화관람비에 대한 부담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선택에 더욱 신중한 자세를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속편은 매우 안정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금년 4월 주요 영화관들은 모두 영화관람료를 1천 원씩 인상하는 바람에 주말 티켓값은 1만 5천 원이 되었다. 주말에 4인 가족이 극장에서 팝콘세트를 먹으면서 영화를 본다면 10만 원 정도의 지출은 예상해야 한다. 평일 조조할인조차 1만 원에 이르는 등 할인을 받지 못한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화선택에 있어서 안전성과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재미가 없다면 지출에 따른 실망감이 큰 만큼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고 관객들은 믿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나 왓차, 웨이브 같은 OTT 서비스의 범람은 MZ세대들로 하여금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최신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점은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하는 이유를 꼼꼼이 따지도록 만들어 속편의 선호도를 높이는 이유로 볼 수 있다. 대형영화가 속편으로 만들어 질 때 관객들은 앞서 본 영화의 스케일에 대한 만족감을 다시 얻기 위해서라도 극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빌런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속편의 한계 금년에 주목받은 한국영화의 속편들은 범죄와 액션 그리고 코미디 장르라는 대중성이 강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이미 관객들은 영화의 구조나 성격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이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범죄도시2>나 <공조2: 인터내셔널>과 같은 한국의 속편 영화들은 두 가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첫째는 외형의 확장세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범죄도시2>는 배경을 베트남으로 옮겨 동남아시아로 확대하는 새로운 범죄의 모습을 소재로 삼았다. <공조2: 인터내셔널> 또한 남북공조에서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의 CIA를 결합시켜서 외연이 확장되었다. 비록 셋트와 그래픽을 이용했지만 뉴욕시에서의 액션 촬영 장면 등 해외풍경을 배경 삼아 다채로운 볼거리도 제공했다. 둘째는 악역의 교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범죄도시2> 악역은 장첸(윤계상)에서 강해상(손석구)로 바뀌었고, <공조2: 인터내셔널>의 경우 북한에서 위조지폐 동판을 가져와 거래를 하려던 1편의 차기성(김주혁)에서 글로벌 범죄조직의 장명준(진선규)으로 교체했다. 범죄의 유형과 범죄인의 캐릭터에 변화를 줌으로써 기존의 주인공들을 다시 보는 익숙함에서 오는 재미와 더불어 새로운 느낌을 갖게 만드는 바람에 전형적인 장르의 장점을 살리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액션이나 범죄영화에 있어서 주인공의 변화가 아닌 악역의 변화를 통해 속편을 전개시키는 점은 자칫 과도한 폭력성과 선정성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범죄도시2>가 속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마동석 배우가 마블 영화 <이터널스>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형사를 상대하는 악당의 잔혹한 연기가 주목을 끌었던 까닭에도 있다. 흔히 빌런(villain)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주인공 못지않은 개성을 보여주며 흥행의 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최근 범죄영화나 액션 영화와 같은 대중성 높은 장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매우 중요한 흐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악당은 단순히 정의로운 주인공에 의해서 제압당하기 위한 존재로 출연하는 보조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충분한 개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과거와는 다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빌런의 개성이 폭력의 잔혹성이나 기발한 범죄유형을 통해 전개되는 점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범죄도시2>가 받은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 또한 천만 관객 돌파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관람 연령이 낮을수록 관람대상의 폭은 넓어질 수 있어서 제작자의 1차적 관심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될 수 있으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지 않는 데 있다. <범죄도시> 1편의 등급은 청소년 관람 불가였다. 18세 미만이거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사람은 관람할 수 없다. 그러나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은 보호자가 동반하는 경우 그보다 어린 나이의 청소년들도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다. 즉 가족이 함께한다면 어린 학생들도 결코 적지 않은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한국영화에서 마약이나 폭력의 수위는 결코 낮아지고 있지 않지만, 등급은 하양 추세로 가고 있음을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탑건: 매버릭>, 영화의 품위를 말하다 36년을 기다려 온 영화 <탑건: 매버릭>은 전편 <탑건>(1986)의 인기를 바탕으로 만든 속편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 자체로서 완벽한 영화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전편의 힘을 빌려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영화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전편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출발점으로 작용하며 관객이 듣고 싶고 보고 싶어하는 새로운 이야기와 장면에 대한 기대에 부응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명예와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준 다는 점에서 영화의 품위를 보여준다. 주인공 매버릭(톰 크루즈)은 교관 신분으로 과거 자신과 함께 비행하다 사고로 숨진 동료 조종사 구스(안소니 에드워즈)의 아들 루스터(마일스 텔러)를 가르치게 되고 함께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영화는 신구세대 간의 충돌과 연합을 뛰어넘어 디지털과 아날로그 문화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 세대가 아들 세대를 지켜주고 키워주려는 책임감과 사명이 부각되고, 불가능해 보이는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자긍심과 명예는 악당을 중심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다른 속편들과는 매우 다른 차원에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핵시설을 건설하여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다만 ‘적’으로 묘사될 뿐이다. 악당을 통해 관심을 고조시키기 보다는 주인공의 가치에 초점을 둔 영화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탑건>(1986)을 처음 봤을 때는 겉멋만 잔뜩 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탑건: 매버릭>은 주인공이나 영화 속 이야기 모두 성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속편을 만들 때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하며 덕을 세울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빌:8) <탑건: 매버릭>을 기억할 일이다.
    • 문화
    • 영화
    2022-09-23
  • [기독교인문학] “ 악보로 쓴 또 다른 복음서,「메시아」” <메시아>와 함께 듣는 '헨델이 전한복음' 교회 예배에서는 항상 음악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매김을 하여오고 있다. 성경에서도 찬양의 가치와 그 역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음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함께 개신교 교회음악의 형태를 자리 잡게 한 불멸의 작곡가다. 신학자이면서 현직 목사로 신학대학 겸임교수인 한기체 목사가 세계에서 <메시아> 연주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메시아의 참 복음적 가치를 살피는데 소홀한 면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메시아> 작품의 복음적 의미를 강조하여 펴낸 책이다. 메시아에 나오는 가사와 음악적 의도를 통하여 복음적 해설이 꼭 필요한 시대에 적절하고 흥미있는 내용이라는 면에서 매우 돋보인다. ◇ 저자소개 ∥한기채 목사 서울신학대학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거쳐 미국 밴드빌트대학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육군 군목과 미국 갈보리교회 담임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한국기독교윤리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 저서∥《기독교 이야기 윤리》 예영커뮤니케이션, 《성서 이야기 윤리》 한국기독교서회, 《삶을 변화시키는 책읽기》 두란노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음악에 미쳐서》 율리히 큘레 / 비룡소 / 2010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르만 헤세 / 북하우스 / 2022 《MIT 음악수업》 스가노에리코 / 현익출판 / 2022 《클래식 여행》 금난새 / 생각의 나무 / 2006 “ 악보로 쓴 또 다른 복음서,「메시아」” - 문화선교사 음악의 어머니 헨델 - 가장 위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마치 성서의 기자가 복음서를 기록하듯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악보로 그려 놓은 또 다른 복음서라고 할 수 있겠다. 메시아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아직도 복음서를 다 보지 못한 것이다. 헨델은 음악 자체로만 가지고도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 김길구 오늘은 가을의 문턱에서 가벼운 주제로 시작해 볼까요? 별칭 달기를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이 붙인 ‘음악의 아버지’, ‘음악의 어머니’ 바흐와 헨델의 이야기 중 헨델의 「메시아」을 중심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음악을 전공하신 류지원 단장의 전문성에 기대를 해보면서 글 정리도 부탁드립니다. 류지원 책을 추천하라고 해서 찾아보니 이 주제에 맞는 책들이 별로 없어요. 오늘의 타이틀인 헨델은 1685년 2월 23일, 독일 할레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고 궁정 외과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음악에 관심과 두각을 나타냈지요. 헨델은 아버지가 헨델에게 '법관이 되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할레 대학의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자신의 적성에 따라 할레 대성당의 오르간 주자로 들어가면서부터 음악가로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결별했던 조지 1세를 영국 방문 때 만나는 바람에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만든 그의 기악 음악 대표작이 된 수상 음악음악을 연주하게 되지요. 그가 영국에서 인정을 받은 이후에 오페라에 전념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 삶의 내리막 길에서 새롭게 떠오른 음악 장르인 오라토리오에 전념하여 1742년에는 헨델의 대표작이자 당시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메시아>가 작곡되어 오늘날에도 우리가 자주 연주를 하는 중요한 오라토리오가 된 것이지요. 김현호 알다시피 메시아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곡 중에 으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 교회에서 어느 정도 연주가 가능한 찬양대라고 하면 연중 1회씩은 찬양하기도 하고 전문 연주단체에서는 크리스마스 전후로 해서 빠지지 않은 레퍼토리가 되어 연주하고 있지요. 메시아를 제일 많이 연주하고 있는 나라로는 역시 영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라는 사실에 흥분이 됩니다. 할렐루야 합창은 영국에서는 ‘제2의 국가’가 될 정도라고 합니다. 김길구 헨델의 어린 시절의 삶은 어떻나요? 김현호 어린 시절 헨델의 이야기는 보통 기록이 잘 나와 있지 않지만, 교회에 가족들이 들렀다가 예배가 끝나고 헨델이 보이지 않아 찾을 때 갑자기 오르간 소리가 나서 모두 쳐다보니 어린 헨델이 오르간을 마치 천사가 연주하듯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에 같이 참석한 공작이 ‘저 아이가 누구냐’라고 불어보니 바로 헨델이라고 알려주었고 아이의 재능을 계속 살려야 한다고 당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류지원 헨델이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음악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극구 반대하여 음악적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았지요. 아버지가 반대할수록 더욱 음악적인 관심을 갖게 된 헨델에게 어머니와 안나 이모가 아버지 몰래 클라비코드(피아노 전신)를 선물을 사주었지요. 다락방 창고에 숨겨두고 아버지가 없을 때 헨델은 연습하곤 했는데 아버지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연습에 몰두하다가 헨델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었지요. 어머니의 설득으로 교회 오르가니스트 ‘차하우’ 스승을 만나는 계기가 마련되어 음악을 더욱 열심히 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유아·초등기의 음악적 환경 조성 김길구 위대한 음악가들이 음악적 동기는 어릴 때부터 여실하게 잘 나타나는데 유아기나 아동기의 음악적 환경조성이 왜 중요한 것인가요? 류지원 많은 심리학자나 교육학자들은 어린 시절의 인지발달 정서 발달 등 인간의 성장이 어린 시절 특히 유아 시기가 매우 중요하며 인간의 발달에 있어서 결정적 시기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음악적인 유산과 관련된 유아들의 발달에서도 음악적인 발달을 살펴보자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음악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기능 즉, 소리를 잘 듣는 귀와 노래를 곧잘 할 수 있는 성대와 여러 가지 움직임과 음향을 만들어 내는 기관 등을 잘 갖추어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음악을 상상하거나 기호화하거나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인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의 유아들은 음악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위와 같이 음악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김현호 하지만 음악을 듣고 깨닫고 인지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타고나 음악적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부족하겠지요. 음악을 듣고 움직임으로 표현하거나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기 등을 직접 연습하는 과정을 통하여 타고난 훌륭한 악기와 같은 인간은 음악적 경험을 쌓아가야만 좋은 악기로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이든이 어릴 때 마구간 건초더미를 뒤집어쓰고 소 울음소리를 내어 농부를 놀라게 하여 농부가 신부님의 도움을 청한 일화도 있습니다. 그는 동물의 소리를 실감나게 흉내 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등의 음악적인 재능을 가지고 나중에 자신의 작품에 동물 소리를 ‘천지창조’ 등에 삽입하여 작곡하기도 하였습니다. 류지원 유아와 아동기에는 특히 음악적 환경에 노출시켜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음악콩쿠르에 당당히 러시아에 이어 2번째로 상위 입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로 성장하였습니다. 한때는 음악 공부를 위하여 모두가 외국 유학을 하여 음악적인 재능을 키워 왔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안에서 직접 지도를 받은 많은 영재들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올해도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배움을 시작하여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18세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로 우승을 한 후 여러 나라에서 유학 제의를 하였으나 거절하고 한국서 연습을 계속할 거라는 당차고도 씩씩한 소감 발표에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김길구 한편,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기에도 전인적인 성장을 통하여 하나님 형상을 닮아가거나 예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삶을 통하여 구체적인 목적dmfh 유아 시절에 교육의 목표를 삼기도 한다고 고신대학교 권미량 교수는 말합니다. 아이들의 음악적 발달은 청각과 소근육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타고난 음악 미적 감각을 소유한 아이라며 음악적 환경에 의하여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 발현되게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적 감각이나 재능을 타고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찬반의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볼 때 논란의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김현호 이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부모님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부모들의 역할이 왜 중요한 요소인지를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좋은 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짐머만(M. Zimmerman)은 “유아들 특히 2~6세들의 음악적인 발전을 위하여 노래 부르기, 리듬에 맞춰 신체표현하기, 간단한 악기 다루기, 주의 깊게 소리듣기 등으로, 이런 경험들이 부족하면 음악적 성장에 치명적 손상을 줄 수도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기도 합니다. 류지원 교회음악을 담당하는 본인의 입장에서 가끔 아쉬움과 음악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어릴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위대한 작곡가들이 탄생시킨 수 많은 곡들이 개혁교회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많은 곡들이 개혁교회의 형식이나 신앙적인 면에서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교의 음악으로 교회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구교의 신학적인 내용과 음악의 연결로 이어지는 예배음악을 당연히 개신교에서는 개혁하고 나름의 예배음악으로 발전시켜야 함은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사와 신학적 배경이 전혀 문제없는 음악적 유산인 좋은 악곡들을 잘 발굴하여 개신교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연구들이 있다면 교회도 보다 휼륭한 음악적 자산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과 음악이 하나가 되다 김길구 당시 분위기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세속적인 풍류로 간주하여 교회공연이 거부되는 시대로 이 위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성서적인 주제에 무대용 음악을 붙인다는 이유로 교회의 지원도 못 받고 영국의 수도 런던이 아닌 억압받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초연되는 홀대를 감수하며 일반극장에서 민중들에게 초연되었습니다. 문화선교 차원에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현호 오늘 <메시아>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제1부 구속의 약속, 2부가 구속의 대가, 3부 구속의 능력이라고 제목을 붙여 소개하고 있듯이 예수의 탄생과 부활 그리고 예배의 근본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복음적 의미로 재해석한 것이 이 책의 핵심 부분으로 볼 때 음악적 예배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류지원 1943년 3월 23일 영국 런던 코벤트 가던 왕실 극장 연주에서 ‘할렐루야’ 합창을 듣던 영국왕 조지 2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스리도다”를 연주하던 트럼펫 소리에 벌떡 일어섰고 이때 청중들도 모두 함께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을 몸으로 보여준 일화가 있습니다. 김길구 네. 저자가 밝혔듯이 말씀을 듣는 중에 음악을 이해하고, 음악을 듣는 중에 말씀을 다시 음미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메시아’ 전곡이 어렵다면 ‘할렐루야’ 한 곡이라도 들어보는 게 어때요? 【 정리 : 류지원 】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22-09-08
  • 탁지일 교수의 『기독교이단 아카이브』 발간 <기독교이단 아카이브> 탁지일 지음 / 현대종교출판사 / 2022. 09. 05. / 496쪽 / 25,000원 탁명환의 현장 중심 연구가 1970년 시작된 후, 반세기에 걸쳐 수집된 국내외 기독교계 신흥종교단체 관련 일차자료들이 「현대종교」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후속연구 및 보존과 활용을 위해 자료의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사회 환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관심 있는 누구든지 제한 없이 관련 일차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자료들을 지속적인 보존이 가능한 곳에 기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지난 16년 동안 저자 탁지일 교수는 「현대종교」에 소장된 자료 정리해왔다. 첫 번째 작업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했다. 탁명환의 『한국의 신흥종교』 1~4권에 게재된 총 45개 단체들에 대한 일차자료들을 정리한 후, 그의 15주기였던 2009년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 탁명환의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 연구』를 발간했다. 이후 두 번째 디지털화 작업을 거쳐 25주기였던 2019년 탁명환의 저서 23권, 논문 90편, 설교 영상 2편 등을 eBook으로 발간했다. 세 번째인 이번 『기독교이단 아카이브』의 발간은 프로젝트의 마무리 작업이다.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으로 인해 가능했다. 2019~2022년 3년 동안 “한국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 오디오비주얼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 탁명환의 연구 자료를 중심으로”라는 연구 과제를 진행하면서, 「현대종교」 자료실에 보관된 오디오비주얼 자료들을 단체별로 분류한 후, 영상 및 음성 자료들을 정리·분류하여 디지털화했고, 사진 및 문서 자료 중에서 보존 및 활용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선별하여 스캔작업을 진행했다. 『기독교이단 아카이브』는 이 연구의 부분적인 결과물이다. 한국의 기독교계 신흥종교단체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왔다. 서로를 벤치마킹하고 업그레이드해 온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이단 단체들의 교리적 성격과 활동을 ‘이긴자론’ ‘성적타락론’ ‘시한부종말론’ ‘사회적 논란’으로 분류한 후, 이러한 특징을 충족하는 12개 단체를 선정하여 『기독교이단 아카이브』 사례연구를 진행했고, 관련 일차자료들을 소개했다. 「현대종교」 소장 자료들은 공개 및 비공개용으로 분류된다. 저작권 및 공개 시 위법성 논란 소지가 있는 자료들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제한적으로 접근해 사용할 수 있도록 분류했으며, 후속연구 및 공공의 유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자료들은 제한 없이 공개하고 있다. 향후 관련 자료를 무료로 공개하고 제공할 예정이다. 『기독교이단 아카이브』는 이를 위한 사례연구인 동시에 안내서이다. (문의: 현대종교 업무국 031-830-4455~7)
    • 문화
    • 도서
    2022-09-01
  • 지혁철 목사, 『설교자는 누구인가』 출간 설교자는 누구인가(팀 켈러와 앤디 스탠리 중심 92가지 설교 꿀팁) 지혁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2. 03. 16. / 264쪽 / 16,000원 이 책의 색다른 구성만큼 위트 있게 핵심을 찌르는 글쓰기는 저자의 오랜 성찰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팀 켈러와 앤디 스탠리 중심 여러 설교자의 인사이트를 소개하며, 설교자의 영예와 소명이 무엇인지, 넘어지고 깨지기를 거듭하면서 얻은 지혜와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30호 설교자의 설교 어게인이 아닐까. 열망과 열정, 공감과 위로가 담겨 있다. 설교의 길을 잃은 설교자, 설교 준비 중에 막막해진 설교자, 신학의 무게가 버거운 설교자, 무엇보다 초보 설교자에게 안도하게 한다. 청중의 자리에 있는 예배자에게는 충만함을 누리게 할 것이다. 미국 유학 중에 복음 전도사 로커의 꿈을 버리고 설교자로 선회한 저자의 고백이 이 책의 시작이다.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하는 첫 그림, 설교 여정마다 설교자로서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아팠는지 짐작하게 한다. 고군분투하면서 끝내 설교자로서 바로 서기까지 청중을 향한 시선은 설교 영성일 것이다. 말씀으로 교회가 새로워지는 꿈, 흩어진 백성에게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꿈,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꿈, 이러한 영광과 특권을 끌어안은 설교자와 함께 나누고자 집필했다는 에필로그에서 저자의 다음 행보를 기대된다. 저자 지혁철 목사는 고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고려신학대학원 신학 석사(M.div), CFNI School of Worship Techinical Art에서 예배의 실제를, Dallas Baptist University Worship Leadership M.A 과정에서 예배 역사와 이론에 바탕한 서번트 리더십을 공부했다. 2021년 Fuller Seminary KDmin에서 〈현대 청중을 깨우는 이벤트 설교 :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한〉(THE EVENT PREACHING WHICH AWAKENS THE MODERN AUDIENCE : “REFORMING THE KOREAN CHURCH PULPIT”)으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린 시절 생사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돌아온 저자에게 아버지는 “보너스처럼 다시 살게 된 인생, 하나님을 위해 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목회자의 길에 올랐지만 수백 수천 번 솟구쳐오르는 ‘나는 아니라는 생각’과 날마다 씨름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전하는 설교자가 되고 싶은 거룩한 욕심이 꽃송이처럼 피어올랐고, 시간이 갈수록 그 열망은 더 깊어지고 확고해졌다. 설교자로서 겪었던 많은 실패와 실수, 날 선 비판과 모진 굴욕이 디딤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실패와 실수를 딛고 일어나 쓰임 받은 다윗, 베드로, 바울에게 매료된 저자는 자신의 열망과 실패와 실수를 바탕으로 이 책 『설교자는 누구인가』를 집필했다.
    • 문화
    • 도서
    2022-09-01
  • [영화]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 영화를 통해 배우는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그린 3부작 중 두 번째 영화인 <한산: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뜨거운 여름의 극장가를 점령했다. 이미 <명량>(2014)을 통해 1,761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한국영화 역사상 최다 관객 수 1위에 오른 일이 있어서 <한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대단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외부 환경도 좋은 편이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인해 거리 두기가 없어졌고 극장에서 콜라와 팝콘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한여름 피서지로서 영화관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명량>의 흥행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일본 정치인들의 군국주의 망언에 따른 반일 정서 또한 계속되는 중이다. 최근에는 일본 자민당 거물 정치인인 에토 세이시로 중의원 의원이 일본을 한국의 “형님 뻘”이라고 주장하여 크게 반발을 샀고, 일본의 적지 않은 정치인들은 여전히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화의 수치스러운 자국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영화 <한산>은 역사물로서 현실의 대일관계에서 오는 화 나고 답답한 현실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 역할을 한다. 1592년 5월 23일 시작된 일본의 조선 침략은 채 두 달도 못 돼서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켰다. 선조는 평양성을 떠나 의주로 피난을 떠났고 왜군은 육지의 기세를 몰아 조선의 마지막 남은 수군을 격파하고 명나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전쟁영화는 모름지기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영웅도 탄생하고 비책이 빛을 발하듯이 <한산>은 전세의 전환점이 될 8월 14일의 한산도 앞바다를 비춰주고 있다. 결과는 물론 누구나 알고 있듯이 대승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본 적이 없는 한산대첩을 영화화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 기록물을 넘나들며 역사적 사실과 재해석 사이를 오가야 할 뿐만 아니라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김한민 감독의 오랜 연구와 기획 그리고 <명량>에서 쌓은 노하우는 무난한 결과를 가져왔다. 관객들은 이미 <명량>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CG로 입혀진 50분간의 해전 장면에 만족했고, IMAX로 다시 한번 보는 재차 관람을 권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역사적 고증도 비교적 잘 되어 역사가들의 판단 또한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왜군을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으로 투입된 배의 숫자가 영화에서는 3척에 불과했지만 사실은 5~6척에 이르며, 한산대첩에서 연을 통신 수단으로 사용한 적이 없고, 왜군의 움직임에 대한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여 승리를 이끈 핵심인물로 조선의 민초였던 당포 목동 김천손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는 부분 등 팩트 체크를 하자면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산>은 한마디로 이순신의 전략이 빛나는 역사현장을 목격하는 재미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전략가 이순신을 만나다 <명량>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위대한 영웅의 이미지로서 이순신을 그려냈다면 <한산>은 지략가 혹은 전술가로서의 이순신(박해일)의 면모가 빛나고 있다. 특히 <명량>과 다르게 이순신과 일본의 장수 와카자키 야스하루(脇坂安治, 변요한)와의 전술 대결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점은 <한산>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순신은 용인술(用人術)에서 빛났다. 학익진(鶴翼陣)은 각각의 함선을 이끌 장수들의 이름을 전술도(戰術圖)에 적어 넣음으로써 시작되었다. 누구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세밀한 계획은 마치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들의 포지션을 정하는 감독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거북선을 만든 나대용(羅大用, 박지환)을 옆에 둔 일과 거북선에만 의지하지 않고 전 병력을 고르게 활용한 전략도 이순신 장군의 높은 지략을 엿보게 한다. 사천해전에서 12척의 일본 함선을 격침 시켰던 주역이 바로 거북선이었고, 거북선의 무서운 맛을 본 왜군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떻게든 거북선의 약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집중공격하고자 하는 것이 와카자키 전술의 핵심이었다. 그만큼 거북선은 당시로서는 가장 뛰어난 전함이었던 셈이다. 이순신은 거북선을 중심으로 한산도 앞바다에서 벌이려고 하는 전투계획을 세울 만도 하지만, 막상 일본의 첩자가 거북선의 설계도를 훔쳐 도주해버리자 거북선을 출전시키지 않기로 한다. 이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적에게 이미 약점이 노출된 것을 알았을 때 빨리 전술을 바꾸는 것이 바로 지장(智將)의 면모다. 과거의 승리에 도취해서 변화하기를 주저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다행히도 <한산>에는 세 척의 거북선이 출전한다. 모두 약점이 보완된 거북선들로서 이는 나대용이란 뛰어난 제작자를 옆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거북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했고 이 소식을 들은 나대용은 사촌 동생인 나치용과 함께 여수로 건너가 이순신 장군에게 거북선 건조를 건의하였다. 거북선 설계도를 검토한 이순신은 나대용을 전라좌수영의 전선(戰船)을 건조하고 군병의 출납을 감독하는 ‘감조전선 출납 군병 군관(監造戰船出納軍兵軍官)’에 임명하였다. 난중일기를 보면 거북선은 임진왜란 직전인 1592년 4월 초에 실전 배치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순신은 다 계획이 있었다. 이순신보다 13살이나 많았던 노장(老將) 어영담(魚泳潭, 안성기)이 위험을 무릅쓰고 왜군의 유인책에 앞장선 것도 이순신이 용인술을 돋보이게 하는 장면이었다. 광양 현감으로 이순신과 함께 출전한 어영담은 경상도 앞바다를 한눈에 꿰고 있을 만큼 수로를 읽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순신의 승리 때마다 그의 공적이 뛰어났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적이 이미 아군의 전략을 간파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획대로 기다리는 자와 참지 못하고 조급히 서두르는 자의 결말이 어떻게 다른지는 어영담의 노련함을 통해 드러난다. 이순신의 전쟁관에서 배우다 <한산>을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이순신에게 총상을 입혔던 왜군 준사(김성규)가 포로로 잡혀와 이순신에게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이 전쟁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전쟁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다.” 임진왜란을 ‘의와 불의의 싸움’으로 정의 내린 이순신의 확고한 생각은 군사들에게는 왜 백성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고, 백성들에게는 왜 나라를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게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의병(義兵)은 이순신의 전쟁관을 실행하는 가장 독보적인 존재들이다. 조선의 의병은 서양처럼 민간에서 전쟁에 차출된 단순한 민병대가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나타난 의병은 불의에 저항하는 도덕적 심판자이며 보편적 가치의 준행자였다. 일제강점기에 국권 상실을 목격하며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쓴 박은식(朴殷植)은 ‘의병은 우리 민족의 뛰어난 우수성(國粹)이며 우리나라의 본연의 성향(國性)’으로 보았다.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병자호란과 구한말의 의병, 그리고 항일투쟁의 독립운동가들이 보여주는 역사는 한민족이 침략자들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토록 가혹한 시련 속에서도 굴복하거나 동화되는 일이 없었던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드러낸다. 전쟁을 의와 불의로 판단하는 이순신의 사상에 영향을 준 것은 논어(論語)였을 것이다. 논어 이인(里仁)편의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는 말이나, 양화(陽貨)편의 ‘군자는 의로움을 첫째로 여긴다. 군자에게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다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맹하고 의로움이 없다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 爲亂 小人有勇而無義 爲盜)’는 말은 이순신의 전쟁관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 군자 같은 이미지로 나온 연유로 파악될 수 있다. 군자는 유교 사회의 이상적인 인간상이었다. 군자의 으뜸가는 특징은 의에 있으며, 불의를 보고 물러서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순신의 의(義)로 기준을 삼는 전쟁관은 성경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를 악을 미워하고 의로움을 좋아하시는 분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11:5-7) 그리스도인이 전쟁터에 나가서 적에게 총을 쏘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의와 불의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왜선의 십자가가 남긴 숙제 영화 <한산>이 클라이막스로 치달을 때 왜선의 커다란 돛에 그려진 십자가가 나오는 장면에서 혹시 당황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약간의 역사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선봉장으로 20만 대군을 이끌고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시킨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가톨릭 교인이었다. 나가사키를 포함한 일본 남부 규슈지방의 영주들 가운데는 가톨릭 교인들이 제법 있었고 그들의 부하들 또한 가톨릭 교인으로 개종했는데 이들을 포르투갈어인 크리스탕(Cristão)의 일본식 표현인 ‘기리시탄(キリシタン)’으로 불렀다. 기리시탄 영주들은 일본에 와있던 가톨릭 신부를 종군신부로 참가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스페인 출신의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 신부로 1593년 12월부터 약 1년 반을 조선에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임진왜란에 참가한 기리시탄 왜병들을 위해 기도하며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기리시탄 병사들이라고 해서 다른 왜병과 다른 점은 아무 데도 없었다. 양민을 학살하고 귀와 코를 베어 전리품으로 챙겨갔다. 임진왜란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십자가 깃발을 들고 가는 왜병들의 모습이 비춰진다면 그것은 연출자의 실수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송한 가톨릭 선교사들이 임진왜란에 어떻게 관여했는지는 앞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진해 웅천동에 있는 우리 땅을 최초로 밟은 서양인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세스페데스 공원’이 과연 역사적으로 의(義)로운 일에 해당하는지 시급히 판단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 문화
    • 영화
    2022-08-11
  • [기독교인문학] “영혼을 비추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하나님 - 성서화의 거장 - 복음과 문화는 깊은 관계가 있다.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 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 책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 ‘빛의 마술사’라 불리우는 렘브란트에 관한 책이다. 네델란드 현지에서 목회한 안재경 목사가 12편의 성서화를 주제로 작품의 배경과 해석, 그리고 성경적 의미 등을 담은 290쪽 분량의 책에는 70여 장의 작품사진이 수록되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가 활동한 17세기는 개혁교회 중심인 네델란드의 절정기로 당시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었는지를 가늠해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가난을 자초한 천재화가가 시장성도 없는 성서화를 고집하며 비추고자 했던 영혼의 빛줄기는 기독예술의 위대한 유산으로 우리 곁에 남아 빤짝이며 길을 밝혀준다. ◇ 저자소개 ∥안재경 목사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군종목사로 근무하며 젊은이들을 위한 복음전도에 헌신한 뒤 한국 해비타트 총무를 역임했다. 화가 렘브란트와 고흐의 고국인 네델란드에서 한인교회를 7년간 목회하면서 그들의 작품에 빠져들어 고흐의 하나님(2010년)과 렘브란트의 하나님(2014년)을 출간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온생명교회를 개척에 동참하여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토착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 저서∥《고흐의 하나님》 홍성사 / 2014 / 15,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렘브란트의 거룩한 상상력》 서상록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07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2 서양미술사》 최진기 / 스마트북스 / 2013 《미술관에서 만난 하나님》 서상록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03 기독교인문학 〈35〉 “영혼을 비추는 빛의 화가” -고난 속에서 핀 찬란한 기독예술의 유산- 인간의 무늬가 새겨진 복음 “서양에서 일어난 계몽주의가 인간의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것도 교회와 신학을 반대하기 위한 모토였다. 기독교가 사람의 가치를 억눌러 왔다는 지적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 기독교가 인문에 역행하면서 주류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바로크의 두 거인 김길구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책 읽기 힘드시죠? 그래서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서 그림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안재경 목사가 2014년에 출간한 <렘브란트의 하나님>입니다. 렘브란트(1606~1669)는 네델란드에서 활약한 바로크미술의 대가이지요. 우선 바로크미술에 대해서 알아보지요? 류지원 사실 바로크 용어는 포르투칼어로 허세를 부르고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어요. 17세기 로마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로마교황청은 반종교개혁 이후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하여 사치스러운 성당이나 건축물, 예술 작품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위와 교황의 힘을 과시하여 성도들의 신앙심을 북돋기 위하여 예술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후원하며 활용했습니다. 이 사조는 프랑스로 넘어가 루이 14세가 식민지로부터 온 막대한 자금으로 지은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미술품과 정원에 사용되었지요. 김현호 가톨릭 국가들은 종교미술의 전성기를 맞았지만 영국이니 네델란드 같은 북부 유럽의 신교국들은 종교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미술의 소재가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등 일상생활로 확대 되었습니다. 교회와 왕족, 귀족 등의 수요가 줄어든 대신 신흥부자들의 수요가 늘어났어요. 류지원 그는 전성기 네델란드의 문화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레이든에서 태어났어요. 그 지방의 라틴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만두고는 화가가 되기 위해서 도제생활을 하는데 더 배울 것이 없었던지 6개월 만에 개인화실을 열어 독립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1631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김현호 첫 작품이 <스데반의 순교>로 그의 나이 열아홉 살 때입니다. 그의 전성기는 30대라고 할 수 있지요. 이때 이미 가장 촉망받는 화가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갖게 됩니다.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문제작 <야경꾼>도 그 시기의 작품입니다. 김길구 렘브란트의 작품 중 어느 작품이 마음에 들었나요? 김현호 저는 그의 걸작 중에 하나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 성경을 그린 최초의 걸작인데 당대의 대가 루벤스의 그림에 감동을 받은 통령 프레데릭 헨드릭이 주문한 〈그리스도의 수난〉 5부작 중에 하나입니다. 30살 위인 루벤스는 이태리 유학파 출신으로 유럽에도 알려진 다재다능한 화가로 가톨릭 교인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렘브란트는 국내파로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한 신교도지요. 바로크미술의 두 거장의 같은 제목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화가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예수를 묘사하면서 루벤스는 근육질의 영웅적인 모습이나 렘브란트는 초라하고 볼품없게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구경하는 군중의 묘사에도 루벤스는 돈 있고 권세 있는 기득권층을 주로 그렸다면, 렘브란트는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을 그렸다. 한 폭의 그림 속에서 서로 다른 차이로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문제작 <야경>의 성공과 실패 류지원 제가 좋아하는 그림은 이 책에 나오지 않지만 〈야경〉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천재성이 엿보이는 이 작품은 당대에는 고객의 요구를 묵살했다는 이유로 환불소송까지 가 자기 세계에 빠진 고집불통 화가라는 이미지를 남기면서 잘나가던 그에게 인생에 먹구름을 안긴 작품이지요. 고객들을 잃게 되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고 말년에는 빈민촌에서 쓸쓸한 노후를 맞이하는 요인 중에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김길구 렘브란트는 기아로스쿠라는 명암법을 구사했습니다. 이제는 렘브란트의 상징이 된 ‘렘브란트 조명’이라고 위에서 45˚ 각도로 내려 빛을 비추면 비춘 대상이 스포트라이트와 어둠을 대조시켜 돋보이게 하는 기법으로 얼굴의 한쪽을 환하게 비추면 다른 한쪽은 얼굴에 그늘이 지나 눈 부위로 밝은 면이 역삼각형의 형태로 나타나는 명암법을 말합니다. 김현호 초기 바로크미술의 거두 카라바조가 처음으로 어두움과 밝음을 대비시켜는 명암법으로 대상을 돋보이게 하여 극적 효과를 연출했는데 렘브란트에 와서는 이 기법을 한 단계 더 높여 빛과 어둠 자체가 말을 하게 함으로써 그 완성도를 높였다는 거예요. 류지원 문제작 <야경>의 경우 16명의 의뢰인인 자경단들이 단체 사진 찍듯이 단체 초상화로 그리려면 등장인물들이 1/n로 균등하게 그려야 하잖아요? 그는 자경단의 바닝 코크 대장과 그의 부관들은 크기와 명암에 차이를 두어 부각시키고,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작고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나머지 대원들을 들러리로 만든 셈이 된 것입니다. 그림 그리는 날 잘보이려고 좋은 옷도 입고 경비도 100길드씩 균등하게 공동으로 부담했는데 얼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화가 날만도 했겠죠. 김길구 이러한 고집이 고객들의 요구에 의한 주문용 작품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림으로서 당시의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입니다. 김현호 또 하나의 특징은 그림 속에 자기 자신을 등장시킵니다. 자신의 얼굴을 등장시키고 때론 변장을 하여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자기투영을 하는 것도 특징 중에 하나지요. 성서화의 대가 김길구 렘브란트는 신·구약성서 전체를 그린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성서 사랑은 첫 데뷔작이 1625년 작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마지막 작품이 1669년 〈탕자의 귀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미술평론가 서상록은 거룩한 상상력에서 “렘브란트에게는 성경이 「예술적 영감」이요 「진리의 저장고」였고, 여기서 그는 「생명의 양식」을 얻었고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평했습니다. 류지원 그의 진정성이 더욱 빛나는 것은 종교개혁자 칼빈의 권면에 따라 17세기 당시의 네델란드 교회는 교회 내의 하나님의 형상은 물론 어떤 장식도 하지 말라는 권면에 따라 교회의 그림 수요가급격히 줄어든데다 사회분위기가 기독교적 주제는 인기가 없어 그리자마자 보관 창고로 들어가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이룬 성과라는 것입니다. 김현호 평생 그가 그린 성서화가 유화 160점, 에칭 80점, 드로잉 600점 등 850여 편에 달합니다. 그중에는 미술사에 빛나는 걸작들도 많아 오늘날에도 기독예술의 찬란한 유산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면서 기독예술에 헌신하시는 예술가들에게 그는 큰 위로가 되겠죠. 자화상으로 쓴 자서전 김길구 렘브란트는 고흐처럼 많은 글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90편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류지원 삶의 마지막 문턱에 선 1669년 빚어낸 ‘자화상’은 렘브란트 자화상의 최고작품이라 꼽히고 있지요.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 중인 이 작품 속 렘브란트는 험한 세상을 지나며 늙고 지친 모습이 역력한 63세 노인으로 평생 부대껴온 삶의 곡절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김현호 그의 마지막 작품 <탕자의 귀향>은 헨리 나우웬을을 통해 더 많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노년에 그가 파산당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마지막 남은 아들 부부도 흑사병으로 보내야 했던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마음이 담긴 탕자의 귀향과 1669년 10월4일, 이젤 위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다는 <아기예수를 안은 시므온>에서 눈먼 두 노인의 간절한 기대가 성취되는 그 간절함을 읽을 수 있어서 애틋합니다. 김길구 당대에는 ‘우리시대의 기적’, 18세기에는 ‘변칙적 화풍의 창시자’, 19세기에는 ‘반항적인 천재’, 사회예술적 일탈을 꾀한 개성이 뚜렷한 화가. 20세기에는 ‘대담한 실험정신을 추구한 화가’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평가는 어떤가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의 화풍은 고야, 밀레, 고흐, 샤갈 같은 거장들에게 영향을 주어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 정리 : 김길구 】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22-07-15
  • 탁지일 교수, [가스라이팅 이단] 탁지일 지음 / 산출판사 / 2022.07.05. / 176면 / 13,000원 스마트한 교주들은 결코 자신이 신격화된 존재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신도들이 얼마나 끔찍한 죄인인지를 감언이설로 가스라이팅 한다. 힘겨운 코로나 세상에서 이단의 거센 도전에 맞섰던 교회의 신앙고백이다. 이 책은 코로나의 세계적 확산 속에서 기록되었다. 훗날 다사다난했던 코로나 역병과 이단의 시대를 뒤돌아보며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셨고,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부르시고 견인하셨던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될 것이다.
    • 문화
    • 도서
    2022-06-24
  • 김문훈 목사, [살리는 목회, 살아나는 교회] 김문훈 지음 / 두란노출판사 / 2022.05.11. / 232면 / 13,000원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그간 우리가 누려왔던 삶의 모든 기반이 제 기능을 상실한지 만 2년을 지나고 있다. 온전함이 사라진 시대, 각자도생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그 누구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실의 시간을 보내며 저자는 다시 한 번 광야에 길을 내고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제 ‘살림목회연구원’을 설립하고, 한국 교회와 한인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한 세계 교회를 섬기고자 한다.
    • 문화
    • 도서
    2022-06-24
  • 강성효, [경북지역 선교역사] 강성효 지음 / 쿰란출판사 / 2022.06.15. / 144면 / 10,000원 대구와 경상북도에 개신교가 처음 소개되고 전파되던 19세기 말 이래로, 복음이 전파된 형태와 특징을 연구한 책이다. 박덕일의 《경북교회사》와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를 저본으로 하여 1896년부터 1923년까지 경북 전역에 설립된 교회 수, 설립연도, 지역별 분포를 살펴 경북 지역의 복음화 과정, 경북 내 지역 간 차이점과 원인을 규명하고, 특히 경북의 남부에서 북부 지역까지 이르는 선교 경로와 특징을 분석하였다. 경북 지역 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는 책이다.
    • 문화
    • 도서
    2022-06-24

이단 검색결과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루터, 개혁 아이콘인가, 사업 아이템인가? 지난여름 작은 차를 빌려 5천 킬로미터 유럽 종교개혁 유적지를 샅샅이 찾아다녔다. 독일, 스위스, 체코 여행을 마무리할 즈음, 생각지도 못했던 고민이 생겼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아이콘’인지, 아니면 탁월한 ‘사업 아이템’인지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루터 종교개혁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위 루터 가도(街道)를 잇는 도시들에는, 루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온갖 종류의 기념품과 행사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았다. 물론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긍정적인 부분에 감동도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적절히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상술 또한 느껴져 씁쓸했다. 내일을 위한 ‘개혁의 아이콘’이어야 할 루터가, 오늘을 위한 ‘사업의 아이템’으로 변질돼가는 종교개혁의 현장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다양하게 기념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적어도 개혁의 후예들인 우리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일회적인 이벤트성 사업 아이템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역사의 정도를 걸어갔던 종교개혁자들과 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던 반면에, 그들의 뒤를 집요하게 쫓으며 끊임없이 비판에 집중했던 ‘평론가’들이 있었다. 교회사에 나타난 믿음의 선진들은 적어도 평론가들이 아니라 선각자들이었다. 선각자들의 삶에는 실패란 없었다. 만약 실패를 하더라도, 누군가 실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하나 제거해 주었기 때문에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성공을 한다면 많은 이들이 그 길을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또한 성공적이다. 그렇기에 선각자들의 삶은 성공적일 수밖에 없다. 개혁을 멈춘 교회는 더 이상 개혁교회일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한다”고 믿었다. 종교개혁자들은 1000년의 중세교회를 개혁했지만, 그들 스스로는 채 100년이 지나지 않아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바로 경건주의자들이 등장한 것이었다. 경건주의자들은, 종교개혁교회의 문제가 ‘지적인 결여’가 아니라 ‘행함의 부족’에 있는 것을 보았고, 우리 신앙인의 거룩한 의무는 복음을 믿고 복음대로 사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말씀’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믿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한 후,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복음 전파를 위한 선교의 길로 나서게 된 것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흔적들을 따라 걸으며, 윤동주를 생각했다. 프라하 도심 광장에는, 한때 개혁교회였지만 천주교회로 바뀐 교회당을 바라보는 후스의 동상이 서있다. 그 교회당 첨탑 아래는, 후스파의 상징인 성배를 녹여 만든 마리아상이 걸려있고, 그 맞은편에는 27명의 후스파 개신교인들이 처형당한 장소가 있다. 후스는 적국 독일로 끌려가 그곳에서 화형 당했다. 교회당 첨탑 십자가를 바라보며 “괴로웠던 사나이” 윤동주는 적국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죽임을 당한다. 두 사람 모두 적국에서 외롭게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흘렸다. 종교개혁 500주년. 이단과 씨름하는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질문을 지울 수가 없다. 즉 ‘이단이 문제인가, 아니면 이단 규정의 주체인 교회가 문제인가’하는 질문이다. 건강하게 개혁된 교회만이, 이단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짊어진 개혁의 과제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10월의 마지막 날, 종교개혁 기념일이 다가온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9-25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흑룡강성과 부산 중국의 동북단 끝에 위치한 흑룡강성은 가장 많은 이단들이 발흥한 곳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시기로부터 다수의 이단들이 등장한 부산을 연상하게 만드는 지역이다. 지난 여름 흑룡강성 정부의 초청으로 최근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이단들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이단들’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하는 모임에 다녀왔다. 한국의 이단대처가 교단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에 중국의 이단대처는 정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흑룡강성의 경우 종교국과 이단대책위원회가 공안과의 밀접한 협조를 통해 이단대처를 진행하고 있었다. 즉 한국은 이단 경계와 피해회복에 초점이 맞춰져있지만, 중국은 이단 통제와 재발방지가 관심이다. 한국의 공권력은 이단의 위법행위가 발생해야 개입을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예방적 차원에서 성(省)정부와 삼자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이러한 강력하고 조직적인 중국정부의 이단대처는 예상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중국이단들이 한국으로의 거점 이동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종교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용적이기 때문에, 중국이단들에게는 최적의 장소가 되고 있다. 최근 정부의 통제를 피해 조직적으로 한국입국과 거점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흑룡강성에서 시작된 전능신교(동방번개)의 경우에는,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를 거쳐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일단 입국하면 난민 신청을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종교탄압을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한 중국인은 모두 736명이며, 이는 전체 중국인 난민 신청자들의 60%가 넘는 숫자로, 상당수가 전능신교 신도들로 추정되고 있다. 전능신교는, 현재 서울 구로구 두 곳에 거점을 확보하고 포교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매입한 리조트시설에서 700여 명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어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현재 미국에 망명 중인 전능신교의 지도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와 본부를 마련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미 들어와 있다는 추측도 있다. 중국이단들의 한국행이 이어지는 한편, 한국이단들도 한류를 타고 성공적으로 세계화하고 있다. 중국에도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의 활동이 활발하다. 신천지는 길림성을 통해 중국내 주요도시들로 확장하고 있으며, 상해의 중국의 신도수는 3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는 하나님의교회의 공격적인 포교활동으로 인해, 한국 선교사들의 활동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정부의 선교사 추방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흑룡강성과 부산 모두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흑룡강성은 상해 등 초기 기독교 정착지와 수도인 북경으로부터 동북단 끝에 위치하고 있고, 부산은 초기 기독교 중심인 서북지역과 정치문화중심인 서울로부터 동남단 끝에 위치하고 있다. 즉 교회와 사회의 효과적인 통제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이단들이 활발하게 발흥한 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유사성을 보여준다. 흑룡강성을 포함한 동북3성(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에는 많은 조선족들이 살고 있어, 한국이단들의 주요 포교 거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추후 북한선교에도 많은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단문제는 예방이 최선이다. 중국정부나 동북3성정부와 이단대처를 위한 정보교류와 협력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9-11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오대양사건 30년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오대양 공장 구내식당 천정에서 32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남성 4명과 여성 28명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당시 오대양의 사장이었던 박순자 씨는 채권자 이모씨 부부로부터 빚 독촉을 받고 있었다. 그러자 오대양 직원 10여명이 이모씨 부부를 감금하고 집단폭행하며 사채포기를 강요한 일이 발생했다. 그후 이씨의 고발로 오대양 직원들은 구속되고, 박씨 모자는 경찰의 조사를 받게된 일이 오대양사건 발생 2주전에 일어났다. 경찰발표는 오히려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즉 사망자들 중 이모씨가 다른 31명을 목졸라 숨지게 한 후, 스스로 자살했다는 발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반항의 흔적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36도 이상의 천정에서 4일 간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들은 저항할 수 없는 탈진과 가사 상태였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하지만 의아한 점은, 사망자들의 시신이 이틀만에 서둘러 화장되었고, 옷가지와 유류품은 분실된 것이었다. 게다가 과학수사연구소 부검팀은 여성들 중 절반에서 성폭행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문투성이었다. 과연 36도 이상의 고온이 계속되는 천정 위 작은 공간에서 4일간 32명이 집단으로 생활할 수 있었을까? 그들 중 오직 한 사람이 도대체 무슨 힘으로 31명을 목졸라 숨지게 할 수 있었을까? 왜 반항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을까? 여성 사망자들 중 절반이 성폭행을 당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박순자 씨가 만든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박순자는 과연 주범인가, 아니면 하수인이가? 사건현장을 가장 먼저 찾았던 고 탁명환 소장은 타살을 확신했다. 현장을 목격한 탁 소장은, 이후 강연을 통해 지속적으로 타살의혹을 제기했다. 스스로 매년 8월 말이 되면 사건현장을 찾았고, 결코 32명이 고열이 지속되는 천장 위 작은 공간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탁명환 소장은 오대양사건 1주년을 맞아 「현대종교」 1988년 9월호에 게재한 글에서, “오대양 참사사건이 속시원한 결말을 내지 못한 채 1주년을 넘겼다.... [수사책임자는] 선거가 임박한 시기인지라 확대시키지 않을 방침이므로 협조해 달라고 했다. 그때 직감적으로 이 사건은 정치권력의 배후가 있음을 감지했다....[오대양사건은] 집단자살이나 경찰의 최종 발표대로 한 사람에 의한 집단 교살극이 아니고 제3의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사라진 돈의 행방이었다. 탁명환 소장은 박순자 씨가 모은 거액의 돈은 제3의 배후세력으로 전달되었고, 이 돈의 행방을 감추기 위해 박씨를 비롯한 32명이 타살당했다는 것이 탁 소장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유병언 구원파가 배후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탁 소장은 직간접적으로 심각한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성한 탁 소장의 양심선언서에는, “나는 밤을 지새우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면서 마지막 유서나 다름없는 양심선언서를 씁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신변의 위험 속에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살을 택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라는 절박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사건 발생 후 30년이 흘렀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도 오대양사건을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오대양사건 30주년을 맞으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억울한 32명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교회와 사회가 다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진실을 밝히는데는 공소시효가 없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8-28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I Don't Know” 첫 번째 딜레마 미국의 PRI(Public Radio International) 매튜 벨(Matthew Bell) 기자는 한국을 방문해 신천지 이만희 교주를 직접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지난 7월 11일 보도했는데, 그 중 우리의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기자는 이 씨에게 후계자에 대해 질문을 했다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한다. 벨 기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후계자에 대한 질문을 하자, 순간 통역을 하던 사람이 긴장하고 당황하는 듯 했고, 내 질문을 통역하기를 주저했다”고 순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묘사했다. 마침내 통역을 통해 질문이 전달되었고, 그러자 이만희 교주는 갑자기 짧은 영어로 “I don't know”라고 외치면서, “그런 질문은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스스로의 영생불사를 주장하는 이만희 교주가 가지고 있는 자가당착의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정말 신천지의 딜레마다. 미국 기자에게 자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측근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신천지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후계자를 준비했다고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후계자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통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었던 통역사의 좌불안석의 심정이 바로 이 씨와 측근들의 딜레마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딜레마. 지난 7월 28일 「노컷뉴스」는 “신천지 교주 이만희, 입원 중 병원 벗어나 잠적”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 씨가 지난 7월 18일 광주의 한 병원에서 척추관협착증으로 중증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27일 잠적했다고 보도했다. 동 기사에 따르면, 이만희 교주는 특실에 머물렀으며, 신천지 신도들이 병실을 경호하며 지켰다고 한다. 이 씨가 ‘영생불사’가 아니라 ‘생로병사’의 길을 걷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만희 교주가 생로병사를 초월해 영생불사 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신천지 신도들이 그의 수술과 입원치료를 어떻게 바라볼까? 7년 전 월간 「현대종교」가 촬영한, 진료를 기다리는 이 씨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휠체어에 앉은 채 병원에서 자신의 진료순서를 기다리는 평범한 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분명히 생로병사를 초월한 영생불사의 보혜사 모습은 아니었다. 세 번째 딜레마.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보도들이 나간 후에도, 신천지 신도들에게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객관적 사실마저도 받아드릴 수 없도록 세뇌한 신천지 미혹의 결과일 것이고, 또한 세뇌당한 후 자신들의 눈과 귀를 스스로 막고, 상식과 팩트마저도 받아드리지 않는 신도들의 맹신이 원인일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거부의 몸짓’에는 자신의 선택한 신천지가 결코 잘못되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이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절박함이 숨어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신도들은 이율배반의 딜레마를 이미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천지는 딜레마천지다. 신천지 신도들은 이만희 교주가 ‘영생불사 한다’고 믿는 것을 넘어 ‘영생불사 해야만 한다’고 믿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그래야 가정과 학업과 직장을 떠난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고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다른 이단들처럼 신천지도 결국은 소멸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신천지의 앞날을 묻는 질문에 “I don’t know”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만희 교주의 대답은 진심인지도 모른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8-07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144,000의 불편한 진실 결코 착각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신천지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신천지로 인한 교회와 가정의 불신과 분열이 두렵다는 사실이다. 신천지는 ‘모략’이라는 포교방식으로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와해시키고, 또한 종교적으로 합리화된 거짓말을 통해 상식적 소통과 합리적 관계를 파괴한다. 이단문제로 인한 불신과 분열의 역사는 성경과 교회사에서 그다지 낯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기 기독교공동체 안에도 동일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갈2:4)라고 증언한다. 오늘날 교회로 잠입하는 신천지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렇기에 우리 주변에서 미혹하는 이단들에 대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3:10) 그리고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1:10)고 성경은 경고한다. 초대교회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초대교부들은 교회 안에서 이단들이 야기하는 불신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감독을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 되기를 한 목소리로 권면했고, 교회일치의 상징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를 만들어 신앙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다. 이단들의 도전에 대한 투쟁을 통해 교회의 일치된 신앙과 신학이 확립된 것이다. 이러한 불신과 불열의 원인제공자는 신천지이다. 144000명의 신도를 채우기 위해 거짓말마저 동원하는 비정상적인 포교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며, 또한 일단 신천지 교리교육을 시키기만 하면 신도로 만들 수 있다는 불건전한 포교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과연 성경은 거짓말을 합리화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신천지 교리의 주요 근거인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144000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14:5)고 하여, 거짓말 하는 자는 144000에 속할 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천지가 거짓말의 근거로 사용하는 ‘모략’이라는 단어의 성경적 의미는 “거짓말”이 아니라 “충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부족으로, 사회 곳곳에서 합리화된 거짓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죄를 짓는 신천지 신도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합리화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시대를 살던지, 어떤 형편에 처하던지 간에 자신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이다. (롬1:16) 하지만 신천지 신도들은 자신들이 신천지 신도인 것도 감추고, 자신들의 교리도 감추고, 거짓말로 접근한다. 세상에 이런 종교는 없다. 종교의 모습으로 위장한 유사종교 혹은 사이비종교일 뿐이다. 1984년에 시작된 신천지 안에도 2세대 자녀들이 자라고 있다. 과연 신천지 부모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들의 ‘모략’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자못 궁금하다. 144000은 넘어선 지금, 144000에 속하기 위한 신천지 내부 신도들 간의 무한경쟁이 시작됐다고 한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블랙코미디의 절정이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7-24
  • [탁지일교수의 이단바로알기] 유럽의 한국이단들 국제컬트연구학회(ICSA, International Cultic Studies Association) 2017년도 연례학술대회가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지난주 열렸다. 학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돌며 연례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각 지역별로 수시로 전문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컬트관련 학회이다. 이 대회에는 컬트관련 연구자, 피해자, 가족, 목회자, 상담자 및 의사들이 함께 모여, 각 국가별 컬트문제의 현황을 파악하고, 실제적인 대처 전략과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이단’ 혹은 ‘사이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컬트(cult)’라는 용어는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미국, 일본, 유럽 등 거의 모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컬트’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이단’이라는 개념이 종교적, 교리적 접근인 까닭에, ‘컬트’라는 사회적, 윤리적 개념의 사용을 선호한다. 이로 인해 외국에서 컬트로 분류되었을 경우에는,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내재되고, 또한 ‘사회적인 역기능’도 동반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제컬트연구학회는 필자의 이단연구에 큰 영향을 준 인물들, 즉 영국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아일리 바커(Eileen Barker) 교수와 미국의 컬트 전문가 스티븐 하산(Steven Hassan)도 관계하며 참여하고 있는 단체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금번 모임을 통해서 각국의 컬트 현황과 대처 노력을 배울 수 있었다. 필자도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독교계 이단들인 하나님의교회와 신천지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유럽의 경우, 신천지는 7개국(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이태리,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 영국에서는 현지 교회의 성경공부에도 파고들어 문제를 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교회는 더 광범위하게 활동하는데, 현재 28개국(알바니아, 아르메니아, 벨라루즈,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헝가리, 아일랜드, 이태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러시아, 슬로바키아, 스페인, 세르비아, 스웨덴, 터키, 영국)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 기독교계 이단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광범위한 한국이단들의 미혹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교회보다 더 월등한 조직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현지 정치권과 언론과 문화 영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된 단체들이지만, 해외에서는 사회봉사활동 등으로 위장한 양의 옷을 입고 합법적인 대규모 미혹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 두각을 나타내며 현지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하나님의교회, 또한 한국교민들이 주요 미혹대상이지만 현지인들에 대한 포교도 활발한 신천지, 그리고 현지 청소년과 청년대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 구원파)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해외에서의 상담문의도 꾸준한 상황이다. 미국의 뉴욕과 LA, 호주의 시드니와 브리즈번, 유럽의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등을 거점으로 한국이단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이단대처를 위한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글로벌이단대처네트워크’의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국제컬트학회에서 필자가 발표를 마친 후, 한국이단들로 인한 피해를 상담하는 전문가들의 질문과 고민을 들으며, 미안한 마음과 함께 이단대처를 위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차원에서의 사명도 다시 깨닫게 되었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7-10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6월 21일 부산 번영로교회에서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대책위원회가 주관하는 제2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수백 명의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 이단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의 실체에 주목하고, 그 대처 방안을 강구하는 진지한 시간을 가졌다. 특히 교파와 지역을 초월해 함께 이단문제를 고민하는 연대의 시간은, 초대교회의 연합적 이단대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더운 여름, 각자의 불편함을 뒤로 한 채, 서로를 배려하며 강의에 열중하는 모습은 감동과 감사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신천지의 실체에 대해 강의한 이단상담실 권남궤 실장과 필자의 강의에 마음을 열고 공감해주시고, 적극적인 눈빛으로 오히려 강사들을 격려해주는 모습은 큰 힘이었다. 이단예방 강의를 할 때, 청중의 이해와 동의를 얻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은 이단대처 사역에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목회자들이 함께 한 이단대책세미나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2017년 신천지 총회 자료에 따르면, 신천지의 주요 타깃이 장로와 권사 등 중직자라고 한다.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이단들의 미혹도 함께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신자보다는 중제직들이 신천지에 더 많이 미혹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신천지의 전략이 허황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을 갖게 된다. 이단문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는 쉽게 접근하기 불편한 문제일 수 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외면할 수도 있는 문제일 수 있다. 이 점에서 더운 여름 기꺼이 이단대책세미나에 모인 목회자들의 모습에 그저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특히 부산지역 이단대처에 앞장서며, 이번 세미나를 준비한 부산성시화운동본부의 모습도 고마웠다. 이분들의 준비와 기도가 짜임새 있는 세미나 진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준비와 뒷정리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착실하게 세미나를 준비하고 마무리한 이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이단대책세미나의 풍성한 열매도 없었을 것이다. 헌신이 있는 곳에 열매가 열릴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여러 제자들을 만나는 기쁨도 컸다. 이제는 자랑스러운 목회자의 모습으로 부족한 선생 앞에 나타난 제자들을 만나는 것도 참 감사했다. 비록 졸업과 함께 이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이단대처의 현장에서 만나는 기쁨은 무척 큰 위로가 된다. 오랜 만에 만난 한 제자 목사님의 “언제 다시 뵐까요?”라는 질문에, “사역의 현장에 있다 보면, 우리는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하며, 진한 감동과 감사함을 느꼈다. 내년 제3회 이단대책세미나는 더욱 감사할 일이 많았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된다. 바라기는, 첫째로, ‘지속성’을 갖는 이단대책세미나가 되었으면 한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중단 없는 연합적 이단대처의 구심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둘째로, ‘전문성’을 보여주는 세미나가 되었으면 한다. 지인을 만나고 식사를 마치면 서둘러 떠나는 사교성 모임이 아니라, 절실한 필요에 의해 끝까지 남을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세미나이기를 소망한다. 셋째로, ‘유용성’이 있기를 바란다. 광활한 숲을 막연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지역과 개교회 차원에서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자료와 정보의 제공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전통적인 불교의 땅, 한국전쟁의 피난의 땅, 그리고 한국 주요 이단들 발흥의 땅인 부산에서 열리는 이단대책세미나는, 적극적인 복음전파와 진리수호의 현장이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6-26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흑색경보지역 신천지 외교부 여행경보제도는 4단계로 구분된다. 남색경보(여행유의), 황색경보(여행자제), 적색경보(철수권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색경보(여행금지)이다. 흑색경보 지역으로 분류되면 체류 중인 사람들은 즉시 대피하거나 철수해야 한다. 얼마 전 계엄령이 선포된 필리핀의 민다나오지역은 2015년 12월부터 2017년 7월까지 흑색경보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정황으로는 흑색경보가 지속될 전망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갈등과 충돌의 땅 민다나오에 평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신천지의 언행이다. 지난 5월 25일 소위 평화걷기대회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동영상을 통해 반복적으로 주장되었다. 신천지에 따르면, 2014년 1월 24일 이만희 주도하에 민다나오에 평화협약이 체결되었고, “40년 유혈분쟁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5년 5월 25일에는 민다나오 분쟁지역에서 평화기념비 건립행사를 진행하고, “피로 얼룩진 민다나오에 평화가 왔다.”고 이만희는 주장했다. 하지만 신천지가 주장하는 평화는 요원하고, 오히려 2015년 12월부터 민다나오지역은 흑색경보지역으로 분류되었고, 현재는 유혈충돌이 벌어지는 최악의 계엄령 상황에 처해있다. 결과적으로 신천지가 주장하는 평화협약이나 평화기념비 건립은 모두, 현실과는 동떨어진 보여주기식 평화 코스프레였음을 알 수 있다. 신천지 이만희가 평화 깃발을 들고 민다나오를 비롯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대선과정에서 나타난 신천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보려는 시도이다. 대선 주자들은 어떤 누구도 신천지와의 관련성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 무관함을 밝히려고 애썼다. 신천지와의 관계를 노출하려는 대한민국 공인들은 한사람도 없다. 신천지로서는 자신들이, 이단사이비종교가 아니라, 평화에 관심 있는 평범한 종교단체라고 보여주고 싶은 의도가 숨겨있다. 또한 신천지 신도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 신천지 신도들은 소위 모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자신이 믿는 교리를 떳떳하게 밝힐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자존감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에게 마저도 거짓말로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하는 처지였다. 신천지의 국제화 시도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제화를 노리는 신천지의 평화행보는 아직은 서투르고 어설프기만 하다. 신천지 지도부의 전략은, ‘아니면 말고’식으로 보인다. 신천지가 이뤘다던 민다나오의 평화는 안 보이고, 오히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천지는 어떤 거짓말을 동원해 이를 합리화할지 자못 궁금하다. 혹은 144000 교리의 실패처럼, ‘아니면 말고’식의 두둑한 배짱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한편 신천지 신도들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괜찮아’로 보인다. 144000 교리의 실패가 드러나도, 헌신이라는 미명하에 노동력 착취를 당해도, 심지어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거짓말과 아픔과 고통을 주더라도, 스스로 ‘그래도 괜찮아’라고 되뇐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에게, 자신의 선택이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 때문일까? 필리핀의 민다나오처럼, 신천지는 영적 흑색경보 지역으로 분류된다. 결코 방문해서도 체류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 안에 있다면, 속히 안전지역으로 철수해야 한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6-12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싸움이 끝나고 난 뒤 일본 후쿠오카 근교에서 수년 전 열렸던 한일(韓日) 이단사이비대책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회의가 열린 곳은 다소 의외의 장소였다. 고급스러운 전통 일본식 온천호텔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매년 한 차례씩 개최되는 세미나였는데, 일본 측이 주관하는 회의 장소는 대체로 소박하고 검소한 편이었기 때문에, 세미나 장소의 고급스러움에 대해 다소 의아했다. 첫날 저녁식사 시간이 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식사를 대접한 분은 호텔 주인이었는데, 식사에 앞선 인사말을 통해, 그 친절과 배려의 이유를 밝혔다. 오래전 주인의 딸이 통일교에 빠졌고, 세미나에 참석한 한 일본 목사님의 도움으로 통일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은혜를 잊지 않고, 통일교 피해자를 돕는 일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고, 한일이단사이비대책세미나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호텔을 제공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자녀를 찾기 위한 통일교와의 길고 긴 ‘싸움이 끝나고 난 뒤’에도 피해자모임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 보기 좋았고 부러웠고,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부러움은 나의 과거 경험을 통해 생긴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어려서부터 선친인 탁명환 소장을 찾아왔던 많은 피해자들을 보았다. 선친은 힘닿는 대로 언론을 통해, 법적으로, 혹은 생활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줄 때가 많았고, 그로인해 감수해야만 했던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단사이비와의 ‘싸움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시 만날 수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선친이 대가를 바라고 도우셨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인간적인 아쉬움과 서운함은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렇기에 이단사이비들과의 ‘싸움이 끝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이단대처 활동에 참여하는 우리 주변의 피해자 가족들을 보면 한없이 존경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심지어 전문 상담가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을 보는 것은 큰 위로이고 격려이다. 지난 날 자신이 겪은 아픔과 고통의 기억과 당당히 마주하고, 다른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일본 온천호텔 주인의 모습이 겹쳐져 떠오르곤 한다. 피해자의 눈을 통해서 바라볼 때, 이단문제의 위험성과 본질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피해자의 존재는, 교회와 사회가 이단문제에 관심을 갖는 주된 이유이다. 이단대처의 가장 중요한 목적도 ‘피해 예방’과 ‘재발 방지’이다. 때로는 피해자들의 행동이 다소 무리해보이고 지나쳐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배우자와 자녀가 피해를 겪고 있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단사이비문제 해결의 열쇠는 피해자 가족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올해도 한일이단사이비대책세미나가 5월 25~26일 한국에서 개최된다. 세미나에 참석한지도 벌써 올해로 꼭 10년이 되었다. 매년 한일교회 대표들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어김없이 만난다. 지난 10년 간 한결같은 진지함과 성실함으로 참여하는 일본 대표들은, 열악한 복음화의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변함없이 감당해오고 있다. 한국기독교 이단연구 현장도 지속성과 전문성이 담보되는 이단 연구 및 예방과 대처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내 가정과 내 교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이단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싸움이 끝나고 난 뒤’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다면, 그 어떤 도움의 손길보다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5-29
  • [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고립무원(孤立無援) 신천지 대한민국에서 신천지 신도로 산다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선거철을 맞아, 대한민국의 모든 공인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소시민에 이르기까지, 신천지와의 관련 의혹은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신천지’라는 이름은 부정적 가치판단이 내재된 대표적인 용어가 되어버렸다. 사회에서도, 그리고 교회에서도 신천지는 설 곳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고립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지난 달 4월 초부터 신천지 신도들의 ‘길거리포교’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자신들을 당당하게 신천지라고 밝히기보다는, 위장단체들의 이름을 사용해 정체를 감추는 ‘모략포교’를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를 신천지라고 밝히지 못하고 감출 수밖에 없는 신천지 신도들의 자존감은 점점 떨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정체성에도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는 종교사회학적으로 신천지가 한국사회의 종교로 자리매김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대한민국 공인들의 경우, 신천지와의 관련성만 언급되어도 적극적으로 부인한다. 전 유엔사무총장인 반기문 씨의 경우도 그렇고, 최근 국민의당 경우도 다르지 않다. 반기문 씨는 신천지와의 관련성을 일축하면서, “우연히 한국여성[신천지 후계자 김남희]이라 반갑게 [사진을] 찍었는데 이렇게 악용될 줄 전혀 몰랐다"고 어이없어 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그런 사교(邪敎)에 대해선 개인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기 때문에 절대 반대한다.”고 신천지에 대한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한편 스팸성 이메일로 인해 신천지는 사이버공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요즘 ‘스팸 신천지’라는 말이 있다. 수신자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신천지 홍보 이메일이 배달되고 있다. 스팸으로 처리해도, 다른 이름으로 또 발송된다. 아마도 수집된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신천지 신도들이 돌아가며 이메일을 발송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하는 것을 신천지는 아는지 모르는지, 스팸 발송은 멈추지 않고 있다. 긍정적인 스팸 이메일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스팸 이메일은 대부분 음란사이트, 불법다운로드, 대출광고 등 부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발송되는 신천지 이메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래서 곱지 않다. 신천지의 스팸 이메일은, 하루의 시작을 불편하게 만들고, 스팸처리하고 삭제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대한민국 평범한 시민들은 신천지가 스팸 이메일을 통해 주장하는 “교리비교”에 별반 관심이 없다. '교리비교'란, 오로지 신천지 신도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코드들을 사용해 가면서 자위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신천지 신도들의 '교리비교'에 대한 집착은 측은지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신천지로 인해 교회는 저작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은 기독교의 종말론적 소망을 담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성서의 표현인데, 이렇게 거룩한 용어가, 이단 신천지에 의해서 오염되고 왜곡되고, 심지어 사회적으로도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단대처는 성서 언어의 회복운동이다. 신천지는 고립무원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신도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를 몰락과 분열의 가능성을 알고 있기에, 신도들에게 헌신이라 이름의 착취를 진행하면서 재산을 증식하고 있다. 신천지 청년들이 월 30만 원 정도를 받으며 거리를 헤매며 144000명을 찾는 동안, 2017년 현재 신천지의 재산은 4770억 2646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 이단
    • 이단바로알기
    2017-05-15

기고/강연 검색결과

  • 토마스 선교사의 입국, 활동 그리고 죽음 이 글은 2016년 8월 31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 부전교회에서 행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순교 150주년 기념 예배 및 심포지엄’에서 행한 강연을 요약한 것임, 이 글에서 고무송, 『토마스와 함께 떠나는 순례여행』(쿰란출판사, 2004),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1』(생명의 말씀사. 2004), 오문환, 『토마스 목사전』(평양, 1928), 프라이스 스텔라,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Korea. com. 2016)와 Hamilton, Moffett, Rhodes 등의 자료를 참고하였으나 각주로 처리 못한점에 대하여 양해를 구한다. 토마스 선교사의 입국, 활동 그리고 죽음 ▲ 이상규(고신대학교, 교회사학) 시작하면서 부산지역의 부전교회를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150주년을 기념하여 함께 이를 기념하게 된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추진하여 주신 한국기독교사연구소의 박용규 소장님과 이 뜻에 공감하여 기꺼이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부전교회와 박성규 담임목사님, 그리고 당회와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부전교회는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건강하고 건실한 교회이고 박성규 담임목사는 부산의 영적 갱신과 부흥을 위해 헌신하시는 영적 지도자라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오늘 모임에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 깊이 연구하신 박용규 교수님이나 토마스 목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득하신 고무송 목사님과 같은 학자가 강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양했으나 부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송구하게 생각한다. 오늘 필자는 토마스 선교사가 걸어갔던 26년의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고 오늘 우리들과 우리 교회에 주는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16세기 독일의 위대한 화가였던 알브레히트 뒬러(Albrecht Durer, 1471-1528)는 ‘그림’(painting)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첫째는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를 그렸다. 오늘 우리의 ‘기림’(commemorate)도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고, 둘째는 토마스 목사가 걸어갔던 믿음의 길을 기리는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해 우선 토마스 목사가 살아갔던 삶의 여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들의 신앙과 삶, 그리고 오늘의 교회 현실을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1. 출생과 가정 배경, 학교교육 로버트 저마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는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 1810-1884)와 메리 윌리암스(Mary L. Williams, 1817-1895)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는 당시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가이자 웨일즈 부흥을 주도한 윌리엄 윌리엄스의 제자인데, 중부 웨일즈에 있는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1837년 4월 18일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839년 여름 라야더(Rhayader)의 터바나클 교회 부임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둘째 아들 저마인 토마스가 출생했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이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강력한 성령의 역사 일어났고 교회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이곳에서 목회하면서 1795년에 창립된 런던선교회에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하는데, 후에 그의 아들이 런던선교회의 파송으로 중국으로 향하게 된 것은 흥미로운 관련이 아닐 수 없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1848년에는 몬머스셔(Monmouthshire)의 하노버교회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저마인 토마스는 8살이었다. 토마스는 이곳 하노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토마스의 교육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최초의 공교육이 이루어 진 곳은 란도버리(Landovery) 칼리지에 3년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 그리고 프랑스어를 공부했는데 이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언어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그가 언어에 재능이 있었다는 점은 그 이후의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후 토마스는 오스포드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이 보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도제식 의학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스텔라 프라이스(Stella Price)에 의하며 토마스는 외과의사가 되는 교육을 받으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고 워터만(Waterman) 의사 휘하에서 2년간 의학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왕실의사면허 시험 제도가 있어 공인된 의사 밑에서 훈련을 받고 시험에 합격하면 의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2년여 이런 교육을 받았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고, 육신의 치료자보다는 영혼의 치유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든 중 잉글랜드 노스헴톤 지역 온들(Oundle)에 있는 알프레드 뉴스 학교(Alfred Newth’s school) 보조교사로 부름을 받고 약 1년간 일하게 된다. 이 학교 교장 알프레드 뉴스는 중국선교를 준비했던 사람으로 로버트 모리슨에게 중국어를 배운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알프레드 뉴스를 통해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토마스는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캐를라인 갓프리(Caroline Godfrey)였다. 토마스는 주일에는 온들 회중교회에 다녔는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중 존 갓프리의 외동딸 캐를라인 갓프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여성은 토마스보다 2살 연상으로 후일 아내가 된다. 일 년 간의 교사생활을 마감한 토마스는 고향 하노버로 돌아갔고, 이때 아버지 청으로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것이 히브리서 13장 8절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본문의 설교였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의 신앙고백이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1857년에는 런던대학교 뉴칼리지에 입학했다. 온들에 있을 때 교장이었던 알프레드 뉴스의 친형인 새무엘 뉴스가 당시 학장이었다. 이곳에서 2년만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3년간 최고의 금액인 밀스장학금을 받았다. 이 시기가 웨일즈의 영적 부흥기였는데 토마스는 교수드르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 년 간 휴학했는데, 휴학기간동안 지역교회에서 설교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복학한 그는 중국선교에 대한 조바심으로 학교에 조기 졸업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가 선교의 이상을 갖게 된 데는 귀츨라프의 영향 또한 없지 않았다. 토마스는 1832년 충청남도 보령시의 고대도와 조선 해안을 방문했던 귀츨라프의 항해기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귀츨라프가 서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성경을 보급했듯이 후일 토마스도 동일한 방법을 선택했다. 1859년 10월 토마스는 런던선교회 소속의 록하르트(Lockhart) 선교사의 설교 듣고 큰 감명을 받는데, 그의 설교 또한 선교사의 길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록하르트는 1861년에는 영국공사관의 공의로 베이징에서 활동하게 된다. 2. 선교사로의 길 토마스는 1863년 5월 뉴칼리지 졸업했다, 휴학기간을 포함하여 6년이 소요되었다. 졸업 후인 5월 29일에는 런던의 회중교회에서 온들에서 만난 캐롤라인 갓프리와 결혼했다. 이때 토미스는 23세, 아내는 25세였다. 결혼 6일 후인 6월 4일에는 목사안수 및 선교사 파송식이 거행되었다. 이로부터 7주 후인 7월 21일 토마스 부부는 그레이브센드(Gravesend) 항구 떠나 상해로 출발했다. 그가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몇 가지 연쇄적 영향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 중궁은 인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선교지였고, 가장 많은 선교사가 파송된 지역이었다. 토마스는 영국을 떠난지 4개월 만인 1863년 12월 첫주 상하이(上海)에 도착했다. 런던선교회 상하이 지부장 무어헤드(William Muirhead)의 충심의 영접을 받았으나 두 사람 간의 친밀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상하이 도착 2개월 후인 1864년 2월 4일 자로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남아 있는데 이 문서에는 당시 정황을 헤아리게 해 주는 중요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도착 4개월 후인 1864년 3월 11일 런던선교회의 그리피스 존(Griffith John)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한커우(漢口)로 갔는데 그 기간동안 임신 중이던 부인은 유산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1864년 3월 24일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토마스는 타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게 되었고, 이 일로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사별의 아픔이치유되기도 전에 토마스는 또 다른 고뇌에 빠졌는데, 상하이지부장 무어헤드와의 갈등이었다. 선교관의 차이에서 유래한 갈등은 토마스에게는 심각한 현실이었다. 상하이에 주제하는 영국인을 위해 목회했던 무어헤드는 상하이가 선교 중심이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토마스는 자국민보다 중국인 선교가 우선해야 된다고 보았고, 한커우로 가고 싶어 했다. 토마스에게 신설되는 학교 교장직 요청을 받았으나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음으로 이 사역은 그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결국 토마스는 런던선교회를 사임하게 된다. 1864년 12월 7일이었다. 곧 이 일을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후회하게 되지만 토마스에게는 성급함과 무모함이 없지 않았다. 고무송 박사는 토마스에게는 모험정신, 강한 의무감, 무모함, 성급함, 엘리트 의식 등 몇 가지 기질 혹은 특징이 있다고 보았는데,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런던 선교회를 사임한 그는 현제 엔타이(煙臺)라고 불리는 지푸(Chefoo)로 이동하여 이곳 세관의 통역 및 감독관으로 일했다. 이때부터 1865년 8월 31일까지 약 8, 9개월간 일했다. 3. 제1차 조선 방문 지푸는 산동성 북부의 해안도시로서 조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당시로 볼 때 외국과의 무역을 허용한 유일한 항구였다. 이곳에서 토마스는 두 사람의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소속 알렉산더 윌리암슨(Alexander Williamson)은 두 한국인을 만나게 되는데, 김양선에 의하며 그 두 조선사람 김자평(金子平)과 최선일이라고 한다. 윌리암슨은 이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토마스도 함께 초대되었고, 이들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듣게 뙨다. 즉 한국의 로마가톨릭 신자는 5만명이 이르고, 11명의 신부들이 비밀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런 접촉을 통해 토마스는 조선 선교를 자원하게 되고, 스코틀랜드성서공회 대리인 자격으로 1865년 9월 4일 ‘허락되지 않는 땅’(terra incognito) 조선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제1차 조선방문인데, 윌리암슨으로부터 한문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보급 받았고 또 약간의 경비 지원도 받았다. 이대 김자평이 동행했고, 중국인 우웬타이가 항해를 맡았다. 그 달 13일에는 황해도 해안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황해도 옹진 자라리(紫羅里) 근포(近浦)였다. 이곳에서 성경을 나누어 주며 전도했고 한양까지 가려했으나 배가 파선되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을 떠난 그는 만주의 피쯔워 항구를 거쳐 도보와 말을 타고 여행하여1866년 1월 4일 혹은 5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지푸를 떠난지 4개월 만이었다. 조선에 체류한 기간은 2달 반 정도였고, 체류한 곳은 서해안, 곧 황해도나 평안도에 속한 도서지방이었다. 김양선 교수의 지적처럼 토마스를 인도했던 김자평이 황해도의 ‘육도’였기 때문에 자기가 잘 아는 지역으로 안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성경책과 기독교 문서를 배포했다. 이점은 토마스가 두 번째 조선으로 향하기 일주일 전에 런던선교회 지부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런던선교회 선교사로 재가입 되었고 근무지는 베이징 지부로 결정되었음을 통보 받았다. 즉 재가입된 것은 1865년 9월에서 11월 사이로 판단되는데 이 점은 토마스가 런던선교회 소속으로 조선을 방문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토마스가 런던 선교회 티드만 회장에게 보낸 조선방문 보고는 당시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스텔라, 100). 4. 제2차 조선 방문 고종 3년인 1866년은 우리나라 최대의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가 있었던 해였고 이때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압했을 뿐 아니라 약 8천명의 천주교인이 죽임을 당했다. 이 때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던 베르뇌(Berneux) 주교를 비롯하여 9명의 프랑스 주교들이 참수되었다. 천주교도를 색출하기 위해 오가작통법으로 감시했고 해안은 봉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두 번째 조선을 방문하게 된다. 토마스는 조선에서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선행을 시도했다. 그러든 중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으로부터 통역관으로 조선으로의 동행을 요청했다. 로즈 제독은 베이징의 프랑스 대사관을 방문했는데, 프랑스 대리공사 벨로네(Bellonet)에게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소식, 특히 프랑스인의 처형 소식 알려주었다. 벨로네는 로즈에게 조선 진격을 요구했고, 약간의 조선어를 알고 있는 토마스에게 로즈 제독의 통역관으로 조선 동행을 요청한 것이다. 주저되는 바가 없지 않았으나 토마스는 조선으로 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서 텬진에서 로즈 제독과 합류하여 지푸를 거쳐 조선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로즈 제독은 베트남 사이공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그리로 가게 됨으로 원래 계획이 취소되었다. 토마스는 조선으로 갈 길을 찾기 위해 일단 지푸로 갔다. 여기서 필요한 경비도 마련할 계획이었다. 여기서 다시 윌리암슨과 한국인 김자평을 만났는데 이들을 통해 조선방문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든 중 1884년 7월 29일 지푸에 커다란 선박이 나타났다. 그것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원래 이 배는 1861년 영국에서 건조한 범선으로 ‘프린세스 로얄’호로 불렸으나 1863년 1월 미국으로 넘겨져 미 해군에서 사용하였고, 1865년에는 경매에 넘겨져 상선으로 개조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위력을 떨친 남군의 장군 셔먼으로 이름을 따 제너럴 셔먼으로 개칭되었으나 더 이상 해군 함정이 아니라 영국의 메도우 사(Meadows Company) 소속 상선이었다. 이 배는 조선에서 팔릴만한 비단, 유리그릇, 천리경, 자명종 등을 싣고 텬진항을 거쳐 지푸로 온 선박이었다. 토마스가 어떻게 이 배에 승선하게 되었는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행을 의도했던 토마스에게는 조선행의 호기였다. 그 배가 어떤 성격의 배인지, 조선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베이징을 떠난지 26일 만인 1866년 8월 9일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했고, 이날 셔먼호는 조선으로 향했다. 알렉산더 윌리엄슨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양의 한문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공급받았다. 제너럴 셔먼 호는 무장한 상선으로 승선인은 선주 미국인 프레스턴(W. Preston)을 비롯하여 항해사 윌슨(Wilson), 선장 페이지(Page), 화물관리인 영국인 호가스(G. Hogarth), 토마스 선교사, 두 사람의 중국인 이팔행 등 항해안내원, 그리고 중국인과 말레시아인 선원 등 24명으로 파악된다. 후의 일이지만 고종실록에는 프레스톤을 보래돈(普來敦)으로, 페이지를 파사(巴使)로, 호가스를 하갈특(何噶特)으로, 토마스를 최란헌(崔蘭軒)으로 표기했다. 물론 최란헌이라는 표기가 토마스를 표기한 것이 맞느냐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다. 지푸를 떠난 제너럴 셔먼호의 첫 경유지는 백령도의 두무진 항이었다. 이곳에서 토마스는 성경을 나눠주었고, 이때 제너럴 셔먼호를 목격했던 한 조선인의 목격담이 스텔라 프라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124쪽). 곧 백령도를 떠나 돛섬으로 향했는데, 여기서 중국인 선장 우웬타이(Yu-Wen-Tai) 만나게 된다. 그는 여러 차례 조선의 해안을 왕래하며 장사했던 중국인이었다. 다시 배는 대동강 안쪽으로 행진했다. 외국선박의 입항이나 접촉을 금지했던 조선의 사정을 알고 있던 선원들은 안전을 위해 더 이상 진출 우려했으나 선장과 선주는 우웬타이의 경고를 무시했다. 조선 사정이 밝은 우웬타이는 더 이상 안내할 수 없다며 지푸로 돌아갔다. 그러나 셔먼호는 자만했다. 5. 대치상황과 제너럴 셔먼호의 최후 8월 16일에는 용강면 다미면 주용포항에, 8월 17일 금요일에는 황주 송산에 정박했다. 예상되는 바이지만 강둑에는 이양선을 보기 위해 조선인들이 몰려들었고, 조선관리는 긴급 회합하여 선박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셔먼호는 입항을 고집했다. 고종 3년, 곧 1866년 음력 7월 15일자 고종실록에는 당시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다. 배는 더 진행하여 8월 20일에는 평양 초리방 사포구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도 서양 선막은 구경꺼리였다. 많은 이들이 구경하러 몰려왔다. 오문환에 의하면 홍신길이라는 소년도 작은 배로 셔먼호 근처로 접근했고, 토마스는 갑판에서 그를 맞이하여 방으로 데리고 기독교 문서를 주고 그에게 케이크를 맛보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감자를 보았다고 한다. 또 그날 밤에는 인근 쑥개마을에서 장인국 지달수 지달체 지택구 지택붕 지택주 장용국 지달해 표명보 등 아홉 사람이 토마스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 들 중 장용국 외에는 천주교 신자들인데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해 줄 프랑스 선박을 기다리고 있던 중 셔먼호로 찾아간 것이다. 토마스는 자기는 천주교 신자도 프랑스 함대도 아니라고 말하고 개신교 선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성경과 기독교 문서, 그리고 빅토링여왕 얼굴이 새겨진 동전까지 주었는데, 천주교신자들은 성모 마리아상으로로 오인했다고 한다. 오문환 장로 기록의 정확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인과의 접촉의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얼마 후 지달수와 지달해는 서양인 접촉했다는 이유로 참수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조선관리가 선박의 철수를 요구했을 때 셔먼호는 교역을 원한다며 비단, 유리, 망원경, 자명종을 조선의 쌀, 인삼, 종이, 호랑이 가죽 등과 교환하자고 했다. 그러나 교역을 금하는 정책에 따라 이를 거절했다.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 것은 제너널 셔먼호의 오만이었고 신중치 못한 처신이었다. 대치상황은 약 2주일간 계속되었다. 조선 관리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제너럴 셔먼호는 평양행을 고집하고 8월 21일에는 평양 신장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오았고, 토마스는 성경책 나눠주었다. 토마스로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면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성경 받은 김영섭은 후에 기독교신앙을 받아드렸고, 두 아들 김종권과 김성집은 후일 장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조선 관리 김낙수는 선박의 도래경위를 조사하고 철수를 요구했다. 8월 22일 셔먼호는 평양 만경대의 작은 선 두로도에 닻을 내렸다. 토마스 이곳에서 100권의 성경 배포했다고 한다. 평양감사 박규수는 셔먼호의 공격에 대비하여 만경대를 둘러싸는 방어선 구축 지시했다. 그럼에도 셔먼호 대동강으로 계속 진입했다. 8월 27일에는 보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다. 셔먼호 승무원들이 순시대장 중군(中軍) 이현익을 억류한 것이다. 조선에 무단 침입했을 뿐 아니라 퇴거를 거부하고 조선관리를 억류한 일은 심각한 일이었다. 셔먼호의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혹은 물이나 식량, 연료를 공급받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없지 않으나 방자한 행동이었다. 선원 중 한 사람은 이현익의 관원 명찰을 빼앗은 일을 더욱 그러했다. 이현익의 억류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셔먼호에 돌을 던졌고, 석방을 요구했다. 관군은 사격을 가했다. 셔먼호 측에서도 발포했다. 이런 와중에서 박춘권(朴春權)이 혼자 배를 저어 가 이현익을 구출했다고 한다. 오문환에 의하면 그가 후에 평양의 장로교회 첫 인물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셔먼호가 수세에 몰리자 더욱 낙폭하게 대응했다. 8월 28일 발포를 시작했고, 8월 31일에는 조선인 7명 사살되고 5사람 중경상을 입었다. 사태는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고종의 허락에 따라 평양감사 박규수는 셔먼호 공격을 지시했다. 9월 3일이었다. 박규수는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서 개방론자였으나 셔먼호의 무단접근은 용인될 수 없었다. 곧 강 수위는 낳아졌고 배는 좌초되었다. 9월 4일 달빛도 없는 그믐밤이었다. 결국 선원은 쑥섬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작은 거룻배에 나무를 싣고 불을 붙여 셔먼호로 접근시켜 셔먼 호 불태웠다. 선원들 불길을 피해 강밖으로 헤엄쳐 나왔으나 강변에 정렬해 있는 군인들에 의해 창에 찔려 주임을 당했다. 토마스 목사도 남은 성경책을 안고 배에서 띄어 내렸다. 강가로 끌려나온 그는 모래사장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성경을 관군에게 내밀었다. 관군의 칼은 토마스의 가슴을 내리쳤고 토마스는 9월 5일 대동강 쑥섬 모래사장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토마스의 시신은 대동강변에 묻혔다. 6. 토마스의 순교 이후 토마스의 최후에 대해서는 상이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배가 불타고 선원들이 죽임을 당할 때 토마스는 뱃머리에서 홀로 야소(耶蘇)를 외치고 남은 성경을 뿌렸다는 기록이 있는가하면, 한석진 목사는 토마수가 순교한지 26년이 지난 1892년 당시 목격자로부터 제널 셔먼호가 불탈 때 토마스가 성경을 던지며 ‘야소’를 외치는 것을 들었다는 증언을 남겨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백기를 흔들며 목숨을 외국인도 한 두명 있었다고 한다. 그 한 사람이 토마스였을 것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기록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을 균형 있게 판단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토마스의 죽음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제너럴 셔먼을 구경하라 갔던 소년 최치량(崔致良, 1854-1930)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는 12살 때 숙부와 함께 1866년 9월 3일 토마스 순교장면을 목격하였고, 토마스 목사가 뿌린 한문성경 3권을 주었다고 한다. 책 소지자에 체포 명령이 내려 대부분 성경을 소각하거나 강변에 버렸다. 최지량도 이 성경을 집으로 가져 오지 못하고 영문주사(營門主事) 박영식(朴永植)에게 주었다고 한다. 박영식은 이 성경을 가져와 찢어 벽지로 사용했다. 오랜 후 최치량은 사업에 성공하여 물상객주(物商客主)가 되어 평양 대동문 안에 집을 사 여관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 여관의 전 주인이 박영식이었다. 최치량은 이 벽지로 사용된 성경을 읽고 또 한석진의 전도로 회심하였고, 평양에서 최초로 마펫에게 세례를 받고 평양지역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널다리골의 홍종대(洪鐘大)의 집을 사서 예배처소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평양장대현교회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서구와의 불행한 접촉이었으나 그 이후 역사는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과 미국간의 외교문제로 발전하였고, 널리 알려진 바처럼 이 일이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 6)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대결과 접촉이 후일에는 조미 양국 간의 통상조약(1882)으로 발전하여 외국인의 조선 거주를 보장 받게 된다. 결국 1884년에는 알렌이 입국하게 되는데, 토마스 순교 18년 후의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박용규 교수는 토마스의 순교는 한국교회의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되었다고 말한다. 오문환은, 토마스의 피가 뿌려진 대동강 물을 마신자마다 예수를 믿었고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교회의 거룩한 도성이 되었다고 했다. 7. 남은 문제: 토마스는 순교자인가 침략자인가? 토마스 목사는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로 남아 있었다. 그가 죽임을 당하고 60년이 지난 1926년 평양의 오문환 장로는 토마스 목사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소책자를 발간했다. 그것이 토마스의 생애와 조선 기독교사의 분수령이 되는 양란(洋亂)에 대한 기록이었다. 1927년에는 토마스 기념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 5월 8일 토마스 목사가 묻힌 쑥섬에서 토마스 목사 순교 60주년 기념예배가 거행되었는데, 이때 1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1932년 9월 14일에는 대동강변에 토마스기념예배당을 건립했는데, 1933년 10월 14일 봉헌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10여년 이래로 토마스를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그 의 죽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감리교의 존스(G. H. Jones) 이래로 초기 선교사들은 토마스 목사를 순교자로 이정해 왔고, 설사 게일의 경우처럼 순교자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복음을 위한 그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있고, 그를 정치적 희생자라든가 침략자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토마스를 순교자로 볼 수 없다거나 심지어는 침략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토마스는 무장상선을 타고 입국했기 때문에 순교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에 와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순교자로 칭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그가 죽은 이유가 기독교 복음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제너럴 셔먼호의 부당한 처신과 횡포에 기인하는 정치적인 죽임이라고 주장하다. 일견 고려할 점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1860년대 상황에서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토마스가 복음의 열정, 곧 조선 선교의 이상을 가진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로는 조선 입국 방법이나 경로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설사 무장상선이라 할찌라도 셔먼호 승선이 조선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제너럴 셔먼호의 신중치 못한 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셔먼호로 입국했기 때문에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선교사가 내한 한 이후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토마스는 1863년 이래로 선교사 신분이었고, 이미 조선을 방문하바 있고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내한 즉시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그의 죽음이 복음전도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주장도 고려할 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기독교가 금압된 당시 상황에서 서양인의 죽음, 특히 서양선교사의 죽음을 비종교적 행동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 1866년 병인양요 때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죽음은 정치적 성격이 강했고, 외세에 의한 침략세력으로 간주되었다. 그 누구도 프랑스 신부의 죽음을 순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금지된 상태에서 ‘선교사의 현존’ 자제가 정치적 행위일 수 있고, 정치적 침략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토마스의 죽음을 순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토마스 목사가 제너럴셔먼호로 입국한 일이나 셔먼호의 부당한 혹은 불법적인 행위는 지탄받을 수 있지만 토마스 목사는 조선인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려는 선한 의지는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가 죽임을 당한 후 초기 선교사들을 시작으로 한국교회는 토마스를 순교자로 간주하고 그의 죽음의 의미를 기념해 왔다. 1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토마 목사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오늘우리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9-08
  • 이슬람(2)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입니다.) 이슬람(2) ▲ 이만석 목사 (현.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 대표)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 이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 : 이슬람의 타끼야(Taqiyya) 교리를 알아야 한다. 타끼야란 위장 즉 거짓말을 허용하는 교리다. 이를 이란어사전에서 찾아보니 “피하다, 삼가다, 절제하다”등의 뜻이 있는데 종교적인 의미로는 “금전적이나 생명의 손해가 예상될 경우 자신의 생각이나 종교를 숨기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슬람 외에 어떤 종교가 교리적으로 거짓말을 허용하는가?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의 말(부카리 하디스)을 인용하여 세 가지 경우에 거짓말을 허용하고 있다. 즉 1. 전쟁 상황에서 승리를 위해 적을 속이는 것 2. 다투고 있는 두 그룹을 화해시키기 위한 거짓말 3.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아내를 속일 필요가 있을 때 등 그런데 이슬람의 교리를 보면 “비무슬림들과는 항상 전쟁상태”라는 것이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을 둘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평화의 집(Dar al Salam)과 비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전쟁의 집(Dar al Harb)으로 나눈다. 그러므로 비무슬림들은 전쟁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거짓말이 용인되며 특히 그들을 이슬람으로 복속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슬람을 미화시키는 모든 거짓말은 허용될 뿐 아니라 장려된다. 심지어는 꾸란의 번역도 미화, 왜곡 번역이 허용된다. TV 강연에서도 이슬람의 교리에 대해서 미화시킨 거짓말로 강연할 수 있다. 한 번의 거짓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다면 알라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논리다. 예를 들면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사상은 이슬람에 없으며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거짓말이다.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보면 이슬람의 신앙고백과 칼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슬람의 대표적 사상이지만 타끼야 교리에 의해서 평화의 종교로 둔갑시켜 대한민국 교과서에서 이런 구절들을 모두 삭제하였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말은 꾸란 9장5절을 표어로 만든 것이다. 꾸란 번역도 거짓으로 미화시켜 놓았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3장 54절을 들 수 있겠다. 원래 3장 54절은 “그들도 알라를 속이려 했고 알라도 그들을 속이려 했는데 알라는 최고로 잘 속이는 분이시다.”라는 내용이며 영문번역은 이렇다. And they (the disbelievers) schemed, and Allah schemed (against them): and Allah is the best of schemers.(Pickthall역) 그런데 아랍어 꾸란 원문을 보면 이 문장에서 Makara라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아랍어 사전은 최영길, 이두선 씨가 엮은 것인데 거기서 찾아보면 Makara는 “속이다. 거짓말하다”라는 뜻 밖에 없는 단어다. 그렇다면 “알라는 가장 잘 속이는 분”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전을 만든 최영길씨가 번역한 한글 꾸란은 그 단어를 ’가장 훌륭한 계획자’라고 번역해 놓았다. 경전을 번역하는 태도가 이런 정도라면 나머지 문서들이나 교리와 율법의 왜곡과 미화는 얼마나 심할까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 우리가 가장 많이 속고 있는 것들 중 하나는 이슬람의 신 알라가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이슬람은 알라(Allah)라는 신을 섬기고 있는데 이는 창조주 절대자 전능자 유일신을 의미하며 기독교나 유대교에서 믿는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철저히 타끼야(위장)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알라라는 신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소속되었던 꾸라이시 족속의 종족신이었으며 라트(Lat) 우짜(Uzza) 마나트(Manat)라는 세 딸을 두었던 메카의 카아바 신전에 안에 있었던 360개 우상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슬람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꾸란에 이슬람의 신은 기독교의 신과 같은 분이라고 분명히 명시 되었다고 한다.(꾸란29:46) 꾸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은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누구도 그 권위를 부인할 수 없는 이슬람의 경전 꾸란과 기독교의 경전 성경을 비교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성경: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행16:31, 마16:16) 꾸란: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는 믿음에서 떠난 불신자다.(꾸란5:17, 꾸란5:72) * 성경과 꾸란의 이 두 구절은 이를 계시한 영이 정반대의 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하나가 성령의 계시라면 하나는 악령의 계시가 분명하다. 성경: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해 열어 놓으신 유일한 길이다. 꾸란: 십자가는 유대인들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꾸란4:157) *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은 인류를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사단의 최대의 전략이다. 성경: 예수께서 그리스도(구세주)라는 것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다.(요일2:22) 꾸란: 예수는 장차 아흐마드(무함마드)가 온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주러 왔다.(꾸란61:6) * 예수 그리스도를 무함마드의 발아래 두려는 간악한 거짓말이다. 성경: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다.(요일2:22) 꾸란: 신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는 자들 때문에 큰 저주가 임할 것이다.(꾸란19:88-91) * 이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이슬람의 알라는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이 외에도 이슬람의 알라는 수시로 계시의 내용을 취소하고 다른 구절로 대체할 수 있는데(꾸란2:106), 하나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응하리라(마5:18)고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일부일처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이혼절대불가를 말씀하셨는데 꾸란에서는 일부다처를 허용하고(꾸란4:3) 이혼은 두 번까지(꾸란2:229)라고 한다. 이 외에도 하나님은 소통이 가능한 인격적인 신이지만 알라는 인간과 직접 소통이 불가능하며(꾸란42:5) 하나님은 심판권을 인간에게 양도하지 않으셨는데(롬12:19) 알라는 인간들에게 심판을 집행하라며 어디서 발견하든지 살해하라(꾸란9:5, 꾸란4:89, 꾸란4:91)고 하는 등 모든 면이 다른 신이지만 같은 신이라고 주장하며 속이고 있다. 셋째 : 기독교와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같이 섬기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이것도 거짓이다. 우리가 이슬람의 주장들을 들어보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꾸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성경의 인물들과 같다는데서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엄청난 금액의 홍보비를 투자한 덕분에 학계가 속아왔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말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강력하게 주장한다고 다 믿을 수는 없다. 한 번 확인해 보자. 성경 : 아브라함의 아버지 이름은 ‘데라’였다.(창11:31) 꾸란 : 아브라함의 아버지 아름은 ‘아자르’였다.(꾸란6:74) * 아무리 이름이 똑 같다고 해도 아버지가 다르다면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성경 : 아브라함의 이름은 99세 때부터 바뀐 이름이다.(창17:5) 꾸란 : 아브라함은 어려서부터 그 이름이 바뀌지 않았다.(꾸란21:60) * 그 때는 수백세를 살았기 때문에 99세는 젊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지만 성경은 90세의 사라가 나이 많아 늙어서 낙이 없다고 했다.(창18:11-13) 성경: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예루살렘)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다.(창22:2) 꾸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리려 했다.(꾸란37:102-107) 성경: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쪽으로 간 일이 없다. 꾸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메카의 카아바 신전을 건축했다.(꾸란2:127) 이 외에도 이슬람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브라함을 불 속에 던졌는데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알라께서 구해 주셨다고 하는가 하면(꾸란21:69) 아브라함이 책을 계시 받았다고 한다.(꾸란87:19) 이로 볼 때 꾸란의 아브라함은 성경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꾸란의 예수도 성경의 예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꾸란의 예수는 아랍어로 이싸(Isa)라고 하는데 성경의 예수는 아랍어로 야슈아(Yashua)라고 한다. 이것을 한글로 모두 예수라고 번역하여 속이고 있는데 꾸란의 예수는 알라(Allah)만을 섬기라고 전도하며 다녔던 무슬림이었으며(꾸란5:72) 삼위일체도 거짓이며(꾸란5:73) 십자가에 죽지도 않았고(꾸란4:157) (부활도 없이) 그대로 승천했으며(꾸란4:158)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며(꾸란19:88) 성자 하나님도 아니고(꾸란5:17)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도 아니고(꾸란5:72) 다만 무함마드가 올 것을 미리 알려 주기 위해서 왔던(꾸란61:6)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꾸란5:75) 한다. 꾸란에 등장하는 성경인물은 성경의 내용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자신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성경에서 이름을 빌려다가 활용하며 계시를 빙자해 만들어낸 이야기들로서 역사적으로 입증할만한 근거 자료가 전혀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 속지 말아야 한다. 넷째 : 대한민국의 딸들을 구해야 한다. 며칠 전에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관내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관리하시는 외사과 담당자를 만났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관내에 거주하는 이슬람국가에서 온 사람들 중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서 오신 분들이 30명 정도 살고 있는데 100% 한국 여성들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것이었다. 남녀평등 시대를 지나서 여성 상위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이 무슬림들에게 속아서 결혼하고 무슬림이 되어서 평생을 이슬람 율법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슬람에서 여성은 남성의 절반의 가치를 가지는 존재다. 상속도 남성의 절반을 받아야 하며(꾸란4:11) 여성의 증언은 남자의 증언의 절반의 가치가 있으며(꾸란2:282) 여성은 원할 때 씨를 뿌릴 수 있는 밭이라고 꾸란은 말한다.(꾸란2:223) 특히 알아야 할 점은 이슬람의 결혼 개념은 한 번 결혼하면 평생을 산다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아랍어로 결혼을 ‘니카’라고 하는데 이는 원래 ‘성관계’를 의미한다. 꾸란에는 성관계와 결혼을 ‘니카’라는 한 단어로 혼용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계약서는 성관계 계약서이며 남편이 메흐르(Mehr:혼자금으로 번역됨)라는 금액을 주고 독점 성관계 계약을 한 것이다. 아내는 평생의 반려자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성관계의 도구로 계약을 통해서 매입한 것이며 따라서 원하면 구두로 3회만 통보를 하면 이혼할 수 있다.(꾸란2:230) 이혼이 이렇게 쉬운 이유는 이미 돈 주고 산 물건이기에 언제든지 더 좋은 물건이 보이면 하나 더 취하든지 혹은 바꾸거나 버리든지 할 수 있는 권리가 구매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서는 결혼 당시에 메흐르(혼자금)를 정하는 법이 없기에 원할 때 부담 없이 버리고 달아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슬람권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이 한국여인과 결혼하여 합법 체류자격을 얻은 후에 한국 국적을 얻으면 이혼하고 조국의 본처를 초청해 와서 같이 사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슬람의 결혼식에서는 신과 하객들 앞에서 평생을 이 사람만을 반려자로 사랑하며 동거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순서가 없다. 그러므로 무슬림과 결혼하고자 하는 자매가 주변에 혹시 있다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그녀를 구해줄 수가 있을 것이다. ㉠ 남편이 당신 외에 다른 여인들을 또 얻는다고 해도 결혼하고 싶은가? 꾸란에는 무슬림들은 4명의 아내까지 얻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꾸란4:3) 내 남편은 안 그럴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라. 종교적으로 허락된 사항이며 자신의 권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 ㉡ 언제든지 구두로 3회만 통보하면 간단하게 이혼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최근에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혹은 e-mail로도 3회 통보하면 이혼이 성립된다고 한다. 이혼은 남편의 권리이며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이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원하면 언제든지 아내를 바꿀 수 있다.(꾸란4:20) ㉢ 아내가 불순종하면 구타할 수 있는 권리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꾸란4:34)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 제3자는 왜 때리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하디스)고 말했다는 것은 이슬람의 율법이다. 최근에는 영국에서도 샤리아 법정이 생겨서 이슬람 율법으로 재판을 받기에 아내를 구타하는 무슬림들을 처벌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그 결혼은 원천 무효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한국에서는 부부로 혼인신고해서 같이 살 수 있지만 남편이 귀국하면 아내는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한 부부자격으로 함께 살 수 없다.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해서 선교목적으로 결혼했어도 남편의 나라에서는 그의 개종은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인과의 결혼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 ㉤ 이혼한다면 자녀는 무조건 남편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슬람의 율법의 규정이기 때문에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에도 남편의 가족들이 원한다면 억울해도 아이를 빼앗기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 이슬람에서는 아내와 재산 공유를 해야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아내에게는 의식주를 제공하고 성관계를 갖는 것이 전부다. 모든 재산은 남편의 것이고 아내는 여러 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남편과 재산을 공동 소유한다면 분배에 많은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 이슬람에는 이혼 위자료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결혼 당시에 이미 메흐르(혼자금)를 몸값으로 치렀기 때문에 의식주 제공으로 충분하며 이혼 시에는 더 이상 아무런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인의 몸을 평생 독점 사용할 수 있는데 해방시켜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혼은 아랍어로 딸락(Talaq)이라고 하는데 이는 해방시킨다는 의미이고 남성만 이혼한다(딸락을 준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으며 여성은 이혼 당한다(딸락을 받는다)는 의미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용법이 한정된 단어다. ㉧ 여인이 이혼 당하면 숙정기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숙정기란 태중의 아이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3번의 생리를 볼 때까지 남편의 집에 머물면서 기다려야 하는 기간을 말하며 그 기간 중에 남편은 원하면 이혼을 취소할 권리가 있으며(꾸란2:228) 기다리는 동안 의식주는 남편이 제공하며 임신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떠나야 하고 임신이었다면 출산과 동시에 떠나야 한다.(꾸란65:4) 이슬람의 결혼 문화를 들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같은 문화권에서 살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도 결혼을 한 후 함께 마음 맞춰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언어도 문화도 제대로 모르고 이슬람 율법도 모르면서 어떻게 함부로 몸을 허락하고 평생의 운명을 맡길 수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더구나 저들은 타끼야 교리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위장하고 속일 수 있다. 우리가 이슬람의 정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특히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속히 알려 줘야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다문화 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무슬림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 오히려 산유국 출신이라고 우대하고 있는 경향까지 보인다. 그러나 이슬람의 정체를 바로 알지 않으면 유럽처럼 우리나라에도 이슬람 때문에 큰 재앙이 올 수 있다. 유럽에서 일어나는 지하철 테러나 열차테러나 학교 테러 등의 소식은 이대로 가다보면 멀리 않아 우리 가족들이 그 희생자 명단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무슬림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슬람은 악한 영이요 악한 가르침이지만 그 영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은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며 우리의 사랑의 대상들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 하늘에 속한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이다.(엡6:12) 그러므로 무슬림들을 미워하며 육적인 싸움으로 몰고 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와 있는 무슬림들은 악한 거짓 영에 속고 있는 불쌍한 피해자들이다. 그들을 위해서 사랑으로 섬기면서 주님께 기도해서 그들의 감겼던 눈이 떠지고 참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이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여러분들의 사람의 섬김과 기도를 통해서 수많은 무슬림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에 동참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4. 무슬림들은 왜 타문화에 적응이 힘들까?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홍익인간을 숭상하는 단군의 후손으로서 단일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20세기 후반부에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가끔 길거리에서 눈과 머리카락 색깔이 다른 외국인을 만나면 깜짝 놀라서 그 외국인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면서 외국인들이 급증하더니 이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가 150만을 넘어섰고, 한 해 동안 결혼한 부부들 중에서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10% 정도나 된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을 고집할 수 없게 되었으며 어쨌든 우리 주변으로 몰려든 외국인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장관급 인사 15명을 포함한 전문가들 50여명으로 구성된 국민 대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두고 다문화정책이 우리나라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안젤라 메르켈 총리나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 같은 유럽의 선진국 지도자들은 자기 나라의 다문화 정책이 이슬람 때문에 실패했다고 이미 공언했다. 그들도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융화시켜 평화로운 복지국가를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해 다문화 정책을 추진했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다문화주의자들은 유럽의 실패를 거울삼아 제도를 보완하고 풍성한 재정을 포함한 정책적 지원을 하면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환상에 속고 있는 것 같다. 유럽의 정상들과 정치인들인들 왜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는가? 재정지원 뿐 아니라 기존의 정책과 제도와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무슬림들의 비위를 맞춰 평화롭게 공존하려고 노력해봤으나 안 되더라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우리나라가 유럽에서 실패한 다문화정책을 억지로 추진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 비참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복지혜택이나 재정이나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유럽보다 결코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무슬림들은 유럽에서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문화에 동화될 수 없었을까? 그것은 특별히 문제가 많은 무슬림들만 유럽에 모여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haria)의 기본 정신 때문이다. 샤리아의 기본정신은 “알왈라 왈바라(Al Walla, Wal Bara)”이다. “알왈라(Al Walla)”는 무슬림들끼리는 국적, 성별, 피부색, 인종, 언어, 신분에 관계없이 무조건 돕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왈바라(Wal Bara)”는 이슬람 외의 종교를 가진 자들과는 국적, 성별, 피부색, 인종, 언어, 신분에 관계없이 절대로 존경하거나 사랑하거나 친절을 베풀거나 돕거나 친구로 사귀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철저히 미워하며 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 때문에 이슬람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열성적인 무슬림들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 특정 지역에 무슬림들끼리 모여살기를 선호하고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지키는 게토를 형성해 그 영역을 넓혀 나가게 된다. 둘째 : 이슬람의 세계관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세계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한 쪽은 무슬림들만 살 수 있는 “평화의 집(다르 알 쌀람:Dar al Salam)”이며, 또 한 쪽은 기독교와 유대교를 포함한 불교 힌두교 배화교 라마교 유교... 등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 “전쟁의 집(다르 알 하릅: Dar al Harb)”이다. 그래서 열성적인 무슬림들은 설교나 강연들을 통해서 이슬람 이외의 문화권의 사람들과는 항상 “지하드(알라를 위한 전쟁)”상태라는 것을 의식하며 살도록 교육 받는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이런 교육내용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지만, 종종 그들의 교과서에 실린 이런 내용들이 서방세계의 매스컴에 폭로되어 충격을 주기도 한다. 전쟁상태라면 그들의 모든 행동은 일반적인 윤리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 되고 전시행동지침이 적용된다는 의미이다. 전시에는 적을 속이는 것은 훌륭한 전략이고 적의 요인들을 암살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며 많은 적들을 죽인 사람은 영웅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본받아야할 모델이 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면 온 세계가 혐오하는 오사마 빈라덴 같은 끔찍한 테러범이 이슬람권에서는 영웅으로 존경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 무함마드의 행동지침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보여주었던 행동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무슬림들의 모델이며 율법의 근원이 되었다. 이를 아랍어로 우스와 하사나(uswa hasana)라고 한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힘이 없을 때는 “종교는 강제로 하지 말지니라(꾸란2:256)”라며 유화정책을 폈다. 그러다 주후 622년 메디나로 이주한 후 세력을 결집하여 힘이 생기자 주변의 족속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고, 주후 630년 고향인 메카(Mecca)까지 점령하고는 “이제부터는 두 개의 종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변질된 경전을 가지고 있는 타락한 무리이기 때문에 “가장 사악한 피조물”(꾸란98:6)이라며,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이교도들은 어디서 발견하든지 살해하라”(꾸란9:5)고 명령했다. 그래서 이슬람은 초기부터 전쟁과 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어떤 이들은 “한 손엔 꾸란을! 한 손엔 칼을!” 이라는 사상은 이슬람에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의 여러 교리 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슬람의 핵심교리이다.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 도안을 보면 녹색바탕에 이슬람의 신앙고백을 중앙에 아랍어로 적어 놓고 그 밑에 전쟁용 칼을 그려놓았다. 이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이슬람의 핵심교리를 확실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넷째 : 이슬람의 나지스(NaJis) 혹은 나제스(Najes)라는 사상 때문이다. 이는 비무슬림들은 더러운 존재들이라는 관념이다. 이슬람권에 가면 비무슬림들이 쓰던 잔으로는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비무슬림들이 주는 음식은 안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몇몇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정상적인 이슬람 율법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취하는 행동이다. 이슬람에서 가장 거룩하다고 여기는 도시 메카를 향한 고속도로 수십 Km 전방에는 “여기서부터 비무슬림들은 통과할 수 없습니다”는 대형 간판을 볼 수 있다. 또한 죄수들을 고문실로 끌고 갈 때 눈을 가리는데, 죄수가 무슬림이 아니라면 수갑 채운 손을 잡아끄는 대신 짤막한 몽둥이 끝을 잡고 따라오게 한다고 한다. 이는 비무슬림들을 불결하게 여기는 꾸란에 기록된 나지스 사상(꾸란9:28) 때문이다. 다섯째 : 이슬람에서는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삼는 것을 죄악시한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것은 꾸란에 기록되어 있는 명령이다.(꾸란3:28, 4:139, 4:144) 유럽에서 이슬람 율법을 제대로 지키려는 사람들을 위해 안내하며 질문에 답변해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비무슬림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도 되는지를 문의하였다. 이슬람 성직자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 초청에 응하는 것은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사귀지 말라는 알라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가면 안 된다.” 심지어 꾸란에는 “비무슬림들은 가장 사악한 짐승들”이라고 정의한다.(꾸란8:55) 짐승들 중에는 애완용으로 사랑받는 동물들도 있다. 그러나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공격하는 사악한 짐승은 보이는 대로 사살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슬람 외의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사악한 짐승이라는 꾸란의 구절 때문에 이슬람권에서는 이를 적용한 잔인한 살인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는 유럽친구들과 사귄다는 이유로 자기의 친자식들을 명예 살인하여 알라에게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헌신된 무슬림들의 기사가 가끔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여섯째 : 타크피르 문화 때문이다. 이슬람에서 카피르(Kafir)는 불신자라는 뜻이지만 배교자 혹은 이교도를 포괄적으로 칭하는 말로 “죽여도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타크피르”는 카피르를 처형할 때 무슬림들이 외치는 구호 같은 것인데, 지금도 타크피르를 외치면 주변의 무슬림들이 돌과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어 카피르에게 폭력을 행하여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슬람에서는 자경단이라는 것이 있는데 배교자, 간음한 자, 살인자 등 주요 범죄를 한 자들은 법정에 끌고 가지 않고 직접 처형할 수 있다는 샤리아 율법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카피르에게 임의로 폭력을 가해도 처벌 받지 않는 것은 이슬람권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이 집단으로 몰려가서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리는데 불을 지르거나 결혼식장에 몰려가 테러를 저지르는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슬람 학자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인방 중의 하나이며 이슬람에 관한 책을 120권이나 쓴 유수프 가라다위는 “만일 배교자를 살해하라는 율법이 없었다면 이슬람은 오래 전에 없어졌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곱째 : 딤미(Dhimmi) 사상 때문이다.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기독교인이나 유대교인들로부터 목을 자르지 않는 대가로 받는 인두세(지즈야-Jizya)라는 세금제도가 있었는데, 이런 세금을 내고 목숨을 부지하는 하층민들을 딤미(Dhimmi)라고 불렀다. 이 딤미 제도는 철저한 인권 유린, 폭력과 무거운 세금으로 타종교인들을 괴롭히던 제도였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통치할 때 없애버렸다. 그러나 그 정신은 아직도 무슬림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열성적인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다가(꾸란9:29) 이 제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속히 샤리아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어 21세기에도 이 제도를 실행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매주는 아닐지라도 모스크에서 설교를 통해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있는 무슬림들은 타문화에 적응이 거의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미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무슬림들도 많은데 왜 하필 극단주의자들의 견해를 들먹이며 혐오감을 조성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주의 무슬림들이 깜짝 놀랄만한 테러를 저질렀을 때 그 많은 평화주의자 무슬림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들도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슬람의 궁극적인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성취 방법에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인 것이다. 5.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인가? 우리는 이슬람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종교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의 종교를 이삭을 통해서 전수받은 사람들이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이라고 한다면 이스마엘을 통해서 전달 받은 사람들이 바로 무슬림들이라고 하는 설명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슬람의 신 알라(Allah)와 기독교와 유대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섬기던 바로 그 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독교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종교를 타락시키고 경전으로 내려 준 성경을 변질시켰기 때문에 무함마드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경전의 원본을 내려보내어 아브라함의 종교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슬람이라는 주장을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없이 반복되는 이런 거짓말에 속아서 오늘날의 중동사태를 배다른 형제들의 싸움이니 이삭과 이스마엘의 싸움이니 하면서 무슬림들의 근거 없는 주장을 대신 홍보해 주고 있는지 모른다. 무함마드는 과연 이스마엘의 후손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자면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이 과연 같은 인물인가? 우선 성경의 아브라함은 아버지 이름이 데라(창11:31~32)라고 되어 있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르(Azar)라고 한다.(꾸란6:74) 우선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는데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바꿔주신 이름이다.(창17:5) 그런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젊었을 때부터 이브라힘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꾸란 21:60) 또한 성경의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에 의해서 불속에 던져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이방인들이 그를 불속에 던진 것을 알라께서 구해 주셨다고 한다.(꾸란21:68~69) 꾸란의 여러 주석에 보면 그를 태워 죽이려던 이방인들은 앗수르왕 니므롯의 백성들이라고 한다.(김용선 주석, 최영길 주석) 특별히 성경에 아브라함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메카에서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Kaaba)신전을 건축한 사람이라고 한다.(꾸란2:125~127) 그리고 이슬람의 제 2경전이라고 불리는 부카리의 하디스(Sahih al Bukhari)에 보면 이브라힘은 이스마엘에게 이혼을 명령했다는 것이다.(Bukhari hadith volume4 book55 number584) 성경과 꾸란의 이러한 극심한 내용상의 차이는 성경의 아브라함과 꾸란의 이브라힘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도 메카에 가서 살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마엘이 메카로 간 것이 아니라 바란 광야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창21:21) 우리 성경은 ‘그가 바란 광야에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애굽 여인을 아내로 얻어 주었다’고 되어 있어서 애굽 여인과 결혼할 때는 그가 바란 광야에 살았지만 평생을 거기서 살았다는 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때에’라는 말이 없다. ‘그는 바란 광야에 살았다. 그리고 그의 모친이 애굽 여인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며 킹제임스 번역이나 굳뉴스 바이블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마엘의 거처는 바란 광야 즉 이스라엘 남쪽이며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보냈던 가데스바네아 북부의 바란 광야였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이 메카에 가서 살았다는 이슬람의 주장이 성경적으로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의 후손들 중 어떤 사람이라도 메카에 가서 살았고 그들의 후손 중에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친절하게도 이스마엘의 후손들의 거처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하윌라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주하였더라’(창25:18) 그런데 하윌라에서 술까지 통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영어 성경에 보면 거기가 어딘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Near the border of Egypt(이집트 국경 부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쉽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스마엘의 모친인 하갈은 애굽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아내도 애굽 여인이었다.(창21:21) 그렇다면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이 애굽 근처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언어이자 할머니의 언어를 그 자식들과 손자들이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이 자연스런 추측이며 성경도 애굽 국경 부근에서 살았다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측의 주장을 합리화 하려면 이스마엘의 몇 대 후대의 자손들이 언젠가 메카로 이주해 와서 그 조상 이스마엘이 아브라함과 함께 섬기던 그 창조주 하나님을 섬겼었는데 그 후손 중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주장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학자가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근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시편 83편을 읽어 보면 3절에 ‘주님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님의 원수들이 누구란 말인가? 6절에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 이들이 주님의 원수들이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마지막 18절에 보면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마치고 있다. 즉 이스마엘 후손들과 하갈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원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며 살았던 것이지 그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대로 대대손손이 물려 주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마엘이 하갈의 복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장래를 예언해 준 것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He will lie in hostility toward all his brothers.’(창16:12) 이스마엘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형제들과 대적하며 살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으며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창25:18)라고 번역되었지만 영어 성경에 보면 ‘they lived in hostility toward all their brothers.’라고 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그의 형제들과 적대적 관계로 살 것이고 그의 후손들 역시 그 형제들 즉 이삭의 후손들과 적대관계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고 또 그 예언대로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시편83편)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전수받은 그 믿음을 충성스럽게 지키다가 무함마드 때에 그 믿음을 크게 확산시켰다는 주장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다는 성경 말씀과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이브라힘이 이스마엘과 하갈을 데리고 메카에 와서 거기 버려두고 갔다고 한다. 그 때 메카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는데 천사가 파준 우물 잠잠(ZamZam)에서 물이 흘러나오자 주르훔(Jurhum) 족속의 사람들이 와서 함께 살기를 청하였고 그 때 이스마엘은 젖먹이 였으며 그들이 이스마엘에게 아랍어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갈은 주르훔 족속의 아랍 여인과 이스마엘을 결혼 시켰다는 것이다. (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그래서 이스마엘은 아랍인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성경에 의하면 이스마엘은 메카에 가지도 않았으며 이집트 여인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이 하디스를 기초로 하여 후대 사람들이 무함마드의 족보를 만들어 내었다. 이슬람의 제2의 경전인 부카리의 하디스에 이스마엘은 주르훔 족속에게서 아랍어를 배웠다는 것을 보면 아랍인들은 이스마엘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스마엘이 모든 아랍인들의 조상이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이 이슬람 내부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후대에 만들어진 무함마드의 족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씨엗 유쑤프(Syed Yusuf) 등의 대부분의 이슬람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무함마드는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 까이달(Qaidar-게달)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부카리의 하디스가 만들어지기 거의 100년 전에 무함마드의 전기 ‘씨라툴 라쑬알라’를 최초로 펴낸 이븐 이스학(Ibn Ishaq)같은 비중있는 학자들의 자료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이스마엘의 첫째 아들인 나빗(Nabit-느바욧)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자료는 모두 무함마드부터 이스마엘 까지를 25 세대로 그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웹싸이트에는 30세대로 소개하는 곳도 있다) 무함마드는 주후 570년에 태어났으며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 전 사람이다. 그 두 사람 간을 연결하는 인물들이 본인들을 제외하면 23명이라는 족보는 누가 봐도 약 2570년간을 채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하디스에 무함마드가 자신의 근본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무함마드)는 무다르(Mudar)의 후손이며 그것은 지브리일(Gibriil) 천사가 자기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는 점이다. (Ibn Sa'd, Kitab al-Tabaqat al-Kabir, Volume I, p. 4) 무함마드 자신도 몰랐고 그 조상들에게 전해들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가문이 간직하고 있었던 족보에 근거한 것도 아니며 다만 천사가 말해주었다는 아무도 입증할 수 없고 증거도 찾을 수 없는, 계시를 빙자한 무함마드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것을 근거로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무함마드가 키나나(Kinana)의 아들 나드르(Nadr)의 자손 무다르(Mudar)의 종족에 속하였다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Sahih al Bukhari, volume 4, Book 56, Number698) 물론 후대 사람들은 이들의 이름을 무함마드의 족보에 포함시켜서 명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슬람 이전의 문헌에는 이스마엘과 무함마드가 혈통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가 없다. 이는 모두 이슬람 이후에 무함마드가 했다는 말을 수집하여 엮은 하디스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진 것인데 그 하디스라는 것들이 무함마드가 죽은 지 약 200년 후부터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죽은 지가 200년이 넘은 사람이 살았을 때 했다는 말을 수집했다는 것의 신뢰도가 어느 정도나 될까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래도 무슬림들이 경전처럼 여기는 부카리의 하디스에서는 종종 황당한 기사들이 발견되는데 예를 들면 ‘지구 상의 최초의 성전은 메카의 카아바 신전(Masjid ul Haram)이고 두 번째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Masjid al Aqsa)인데 그 두 건축물 사이의 역사적인 간격은 40년 이라는 것이다.(Sahih al Bukhari Volume 4 Book 55 number 585) 카아바 신전이 자기들 말로는 이브라힘과 이스마엘이 건축했다면 주전 1950년 경에 건축했다는 말인데, 무함마드가 주후621년 어느 날 밤중에 천마(天馬)를 타고 방문했다는 예루살렘 성전(Masjid al Aqsa)과 역사적 차이가 40년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때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Titus)장군에 의해서 파괴되어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무함마드는 거기 가서 선지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하기에 예루살렘 성전은 오늘날 이슬람의 성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꾸란17:1 참조) 이슬람의 제2경전이라고 하는 부카리의 하디스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속했던 꾸라이시(Quraish) 종족의 신 알라(Allah)를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신으로 교묘하게 둔갑시키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이름을 메카로 끌어들여 그가 자신의 서자인 이스마엘과 함께 카아바 신전을 건축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인 것이다. 그러기에 전에는 이슬람을 마호메트교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근거 없는 비성경적 말을 함으로 본의 아니게 그들의 거짓말을 홍보해주는 어리석은 행위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이슬람(1)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입니다.) 이슬람 ▲ 이만석 목사 (현.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 대표) 1. IS는 가짜 이슬람인가? 최근에 이라크의 순니파 무장단체인 소위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만행으로 온 세상이 놀라고 있다. 한남동 이슬람 사원의 이주화 이맘은 IS 때문에 이슬람의 이미지가 나빠지자 서둘러 조선일보를 통해서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 선긋기에 나섰다. 한마디로 IS는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이슬람의 얼굴로 가장한 자들”이며 가짜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견해는 매스컴을 통해서 대부분의 서방세계 정치인들의 입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여과 없이 홍보되고 있다. 심지어 교황청 국무장관 안드레아 토르넬리 추기경은 이태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중동의 기독교인들 살해 현상은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충돌이 아니라 개인적인 폭력”이라고 말했다.(Vatican Insider 2014.8.26.)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만일 그들이 가짜 무슬림들이면서 이슬람의 이름을 사칭하여 명예를 실추시켰다면 왜 세계적인 집단 시위가 일어나지 않고 잠잠할까?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한 권 태우겠다고 했을 때 온 세계의 무슬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며칠간 쉬지 않고 시위를 벌였었고 이로 인한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기지의 꾸란 소각 사건이나, 미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어 관람자가 거의 없었던 “순진한 무슬림”이라는 짧은 영화가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내용인 것이 발견되었을 때도 세계적인 무슬림들의 폭력시위가 일어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분노한 시위대가 리비아의 미국 대사 및 대사관 직원들까지 살해했었다. 꾸란 한 권 태우는 일이 이슬람의 명예를 얼마나 실추시켰을까? 만일 이슬람이 참으로 평화의 종교라면 IS처럼 이슬람의 이름으로 수천 명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것이 더 이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한 무슬림이 신문에 인터뷰 한 번 하는 것으로 그 모순을 뒤집으려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 세계적인 집단시위가 일어난다는 것은 몇몇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국에서 이슬람 성직자들의 선동과 동원이 없으면 세계적인 집단시위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런던 시내에서 나이지리아계 영국 시민권자인 ‘아데볼라요’라는 무슬림 청년(28)이 영국 군인 릭비(25)를 차로 들이받은 후 칼로 난자하고 참수하면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며 자랑스러운 듯 행인들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했다는 것은 꾸란을 한 권 태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이슬람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킨 너무 유명한 사건이지만, 이로 인해 세계적인 무슬림들의 폭력시위가 있었다는 것은 들어본 일이 없다. 이슬람의 율법에서는 이슬람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 혹은 배교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슬람의 명예를 위해서 혹은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자를 살해하는 행위 등은 정당화 된다. 심지어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이런 행위를 감행한 담대한 무슬림들에게는 격려 차원에서 상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이슬람 국가 혹은 샤리아(이슬람 율법)로 통치되는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무슬림들이 소수인 지역에서도 이슬람의 성직자에 의해서 “살해하라”는 파트와(종교적 명령)가 떨어지면 알라의 이름으로 그 명령을 집행하려는 철저히 헌신된 무슬림이 언제든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서 분노하는 무슬림도 있을 것이고 이런 견해를 부인하는 온건하고 순진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꼽틱 기독교 사제 ‘자카리아 보트로스’라는 사람의 예는 이것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방송을 통해 이슬람의 경전 꾸란의 허구와 모순을 정확한 이슬람 내부 자료를 근거로 밝히고 있기에 그 방송을 보는 많은 무슬림들이 타종교로 개종하거나 이슬람에 회의를 품게 되는 현상이 퍼지게 되었다. 이에 이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알카에다는 그를 살해하는 사람에게 미화 6천만 불의 현상금을 지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미국 정부가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빈 라덴에게 걸었던 현상금 5천만 불보다 20%나 더 큰 금액이다. 또한 ‘악마의 시’라는 글로 이슬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150만 불로 시작해서 300만 불까지 치솟았지만 자카리아 보트로스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들은 언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미국과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붙여 살해를 명하면서 상금을 주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테러를 사주하는 행위다. 알카에다는 국제법을 무시하는 테러집단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치부하더라도, 살만 루시디를 살해하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한 것은 호메이니의 명을 받들고 있는 이란 정부였다. 이란 뿐 아니라 이슬람권에서는 테러범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거나 영웅 대우를 함으로 테러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온 세계를 경악시킨 9.11테러를 사주한 빈라덴은 이미 죽었지만 지금도 이슬람권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이유로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한 살해범 ‘칼레드 이슬람볼리’의 이름은 테헤란에 한 거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으며, 그가 옥중에서 부르짖는 사진을 넣은 기념우표까지 발행되었다. 그러나 굳이 상금을 걸거나 영웅 칭호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슬람, 꾸란, 알라, 무함마드 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 이슬람 성직자가 그를 살해하라는 파트와(종교적 명령)를 선포하면 충성된 무슬림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나 살해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세상에는 테러와는 상관이 없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평화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이므로 테러와 관련짓지 말라고 강변한다. 설사 무슬림들이 모두 테러범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테러는 무슬림들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권에 살면서도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심취하게 되면 꾸란에 기록된 이교도들에 대한 증오 개념에 세뇌되면서 돌발적 테러범이 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외로운 늑대’형 무슬림 테러를 수사하면서 벽에 부딪히는 이유는 그들이 현존하는 어떤 테러단체와의 연관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핵심은 정치인들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서 테러의 원인은 바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세계 인구의 20~25%를 점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별 수 없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지만 꾸란의 평화적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테러범들이 문제다’는 견해를 고집하게 된다. 이것을 서양에서는 ‘정치적으로 수정된 견해(Politically corrected opinion)’라고 부른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순진한 대중은 계속해서 매스컴을 통해 귓전을 때리는 이런 왜곡된 견해를 보편적 정설로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 답답하다. 소위 평화주의 무슬림들은 이런 순진한 정치인들이나 매스컴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계속 평화의 종교로 믿도록 강요하는 한편, 이슬람의 정체를 알고 그들이 숨기고 싶은 혐오스런 참모습을 밝히는 사람들은 소위 증오법 혹은 차별금지법 등으로 묶어서 처벌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어 유럽인들은 이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표현도 못하고 처벌이 무서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슬람의 지상목표인 ‘샤리아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원리주의자들의 폭력과 평화주의자들의 거짓은 무슬림들의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무기다. 이들은 공동의 지상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서로를 비난하는 척하며 적당히 역할분담을 한다. 즉 IS처럼 과격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모범과 꾸란의 명령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감히 접근이나 간섭을 못하도록 가능한 한 잔인한 테러를 자행하고 대중매체를 통해서 동영상을 공개하여 대다수의 소심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는 꾸란에도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네 이웃의 불신자들과 싸우라. 알라는 항상 의로운 자들 편이시라는 것을 알라.(꾸란9:123) 이는 전쟁터에서 무장하고 대치하고 있는 적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이웃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 즉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믿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사주하고 있는 구절이다. IS는 바로 이런 꾸란의 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강대국들이나 알라의 법을 모르는 무지한 백성들의 눈치를 본다든지 체면이나 여론 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명백하게 기록된 창조주의 말씀인 꾸란의 명령대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행위라는 종교적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소동이 사라지고 종교가 모두 알라의 이름으로 통일될 때까지 그들과 싸우라.(꾸란8:39) 여기서 소동이라고 번역된 아랍어 피트나(fitnah)는 최영길 교수가 한글로 꾸란을 번역하면서 “알라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각주를 달았다. 전체적으로 이 구절은 지구상에 무슬림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여야 한다는 이론이 도출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이다. 어떤 죄를 짓거나 그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더라도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고 다른 종교를 고집한다는 것만으로도 핍박과 살해의 정당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꾸란9:5, 꾸란5:33 등 참조) 소위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도 이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 학자들이라면 부인할 수 없는 만쑤크(Mansukh)교리에 의해서 이미 취소된 평화로운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믿도록 많은 홍보비용을 투자하여 미화된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 우두머리들은 같은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 서로 역할만 분담할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고 배후에서 서로 돕고 있다. 이것도 정확하게 꾸란에 명시되어 있다. 꾸란은 무슬림들이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삼지 못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보호와 유익을 위해서는 허락한다는 것이다.(꾸란3:28) 그 한 예를 들어보자. 압둘 라흐만 알 아무디는 클린턴 대통령의 자문 위원이기도 했으며 9.11 테러 후에도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회 때 강사로 초청받을 정도로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가 테러집단으로 알려진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후원한다는 것과 모금을 하여 불법 송금한 것이 발각되어 2004년 재판을 받고 미화 75만 불 벌금과 23년 형을 받고 수감되어 있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지만 뒤로는 서로 돕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표면상 미국과 공조하는 것처럼 보여도 테러범들에게 가장 많은 송금을 하고 있다는 것이 위키리크스를 통해서 이미 폭로되었다. 이슬람 국가 IS(Islamic State)는 이름 그대로 이슬람의 경전 꾸란과 무함마드의 행동모범을 근거로 만들어진 샤리아를 철저하게 지키는 무장 단체로서 이슬람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가장 이슬람국가 다운 이슬람국가이며, 이것에 매력을 느낀 충성되고 헌신된 무슬림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고 있다. 그들에 의해서 잔혹하게 고통 받으며 살해되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비무슬림들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일을 위해서 물론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야 하겠지만 우선 하나님의 보호를 간절히 구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할랄 산업 육성 정책을 반대하는 열 가지 이유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국민들에게 행복을 주는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대통령의 노력을 적극 지지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부 정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정부 세력과 동일시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 가족들과 국가 안보를 위해서 그리고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서 정부의 할랄 산업 지원 육성 정책을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래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할랄이라는 것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의해서 “허용한다”는 뜻이다. 즉 해도 좋다는 것이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을 “와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의하면 고의가 아니고 모르고 먹었거나 어쩔 수 없어서 먹었을 경우는 알라께서 용서하신다(꾸란6:145)고 한다. 그러므로 할랄 인증만 받으면 17억 무슬림들의 식료품을 공급하게 되어 일확천금을 할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다. 둘째, 할랄 고기는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첫째는 무슬림이 도축해야 하며 둘째는 도축할 때 반드시 아랍어로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 외쳐야 하며 셋째 짐승이 죽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으로 머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죽은 고기, 피, 알코올 성분, 돼지고기 등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위생과 전혀 관계가 없고 건강이나 웰빙과도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다만 이슬람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만 중요하다. 오히려 할랄식 도축은 매우 비위생적이다. 왜냐하면 짐승의 목을 반쯤 잘라놓고 피가 쏟아지는 채로 공중에 매달아 놓아 고통스런 짐승이 버둥거리는 동안 피가 사방으로 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생적인 도축장을 건설했어도 비무슬림이 도축을 한 것은 할랄이 아니다. 이를 “청결하고 안전한 먹거리”라고 홍보해 주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셋째, 일반 도축은 전기충격으로 기절시켜놓고 짐승을 잡기 때문에 짐승이 전혀 통증을 못 느끼면서 죽지만 할랄 도축 방식은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짐승의 모든 감각이 정상인 상태에서 목뼈를 건드리지 않고 혈관과 식도와 기도를 자르고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그래야 심장의 펌프 작용으로 피가 분출되기 때문이다. 짐승은 거꾸로 매달려서 피를 분출하면서 모든 감각과 의식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죽는 그 순간 까지 몇 분간 극도의 고통과 분노와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죽어간다. 이 때 짐승의 체내에서 인체에 해로운 독성이 생성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숨기면 안 된다. 이는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면 안 된다는 현행 동물보호법에도 저촉되는 범법행위임에 분명하다. 주로 할랄 고기를 섭취하는 이슬람권의 평균 수명이 타문화권보다 짧다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심지어는 1인당 국민소득 9만 불을 훌쩍 넘은 카타르도 평균 수명은 3만 불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짧다는 것은 결코 기후 문제로만 돌려서는 안 되며 음식 문제도 분명 관련이 있다고 본다. 넷째, 할랄 도축장을 건설하는 것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할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할랄 고기의 대부분은 호주에서 수입한다. 그런데 호주산 쇠고기와 한우의 가격은 가격 경쟁이 안 된다. 등심을 기준으로 볼 때 2015년 초 축산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호주산은 Kg 당 21,000원 이지만 한우는 34,000원이다. 한우를 도축할 때 할랄 도축사를 고용하고 할랄 관리인을 고용하면 인건비가 추가 부담되어 할랄 한우 값은 추가 상승요인이 있는 반면 호주산 쇠고기는 한국:호주 FTA에 의해서 관세를 매년 2.6%씩 인하하여 앞으로 15년 후면 관세가 완전 철폐되므로 가격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할랄 도축장을 건설하면 그 비싼 한우 할랄고기를 누가 사먹을 것인가? 무슬림들 대상이라면 현재 수입하고 있는 호주산으로 충분하며 무슬림 관광객들이 대거 유입된다 하더라도 비싼 할랄 한우를 먹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이는 시장 조사와 수지 타산을 정밀 조사하여 개인과 업체가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30여 곳 있는 도축장도 20여 곳으로 통폐합하는 형편인데 할랄 도축장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할랄 도축장에는 무슬림들만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잘 훈련된 할랄 도축사들을 수입해 와야 한다. 영국도 파키스탄 할랄 도축사들 5천명을 수입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철저한 원리주의자들일 가능성이 크므로 지역주민들과 필연코 마찰이 발생할 것이다. 이슬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할랄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은 특정 종교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으므로 금해야 한다. 일곱째, 이슬람 율법에 “나지스(Najis)” 개념이 있는데 이는 더럽다는 뜻이다. 비무슬림들은 더럽기 때문에 상종하면 안 된다는 이슬람의 율법이며 비무슬림들이 만진 물건도 더럽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할랄 도축장에서 5Km 반경 내에 돼지 도축장이 있으면 안 되고, 비할랄 식품과 함께 운반해도 안 되고, 비할랄 식품을 조리하던 도구를 사용하여 요리해도 안 된다는 개념이다. 이는 무슬림이 아니면 더러운 존재들이라는 이슬람의 배타적 교리 때문에 그렇다. 이는 비단 음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도 무슬림들은 할랄(허용된 것)이고 비무슬림들은 하람(금지된 것)이라고 한다. 무슬림들 여성들(할랄)이 비무슬림 남성(하람)과 결혼하는 것은 금하며 그를 이슬람으로 개종시켜야 결혼이 허용(할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무슬림들이 음식과 식자재만 할랄로 만들어 팔면 된다는 생각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한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여덟째, 할랄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슬람을 확산시키기 위한 포교 자금 혹은 이슬람 테러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1월 5일 미국 기독교방송인 CBN은 70억불 규모의 프랑스 할랄 산업의 60%가 테러 단체로 잘 알려진 무슬림 형제단에 속한 기관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방송했다. 아홉째, 이슬람의 할랄 규정은 세계적으로 통일된 것이 없다. 국가마다 그 기준이 다르고 한 국가에서도 인증기관마다 기준이 다르다. 어제 있었던 할랄 기준도 무프티(Mufti)급의 성직자가 파트와(Fatwa)를 선언하면 언제든지 없어질 수도 있고 새로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변적인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돈을 투자하면서 동분서주하는 행위는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열째,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샤리아로 통치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오일 달러를 이용하여 샤리아의 영향력을 키우려 하는 것이 이슬람 금융 및 쑤쿠크(이슬람 채권)라고 한다면 음식을 통해서 샤리아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할랄 확산 전략이다. 할랄 인증을 받은 회사의 경영진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 어렵게 받은 할랄 인증인데 혹이라도 직원들 중의 한 사람이 이슬람 율법을 어기는 것이 할랄 관리자들에게 발각되어 인증이 취소될 것이 두려워 직원들에게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준수를 강요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소주와 삼겹살도 회사를 해롭게 하는 준범죄행위로 취급되므로 화기애애한 직장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할랄 장려 및 인증 비용 지원 정책은 식품산업 세계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한 경제 활성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할랄 산업이란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 음식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이슬람 포교 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유럽의 경우를 보건대 국가적 불협화음의 불씨가 될 것이다. 무슬림들이 급증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자경단을 조직하여 샤리아로 통치하는 지역이 프랑스에만 750곳 있으며 샤리아로 재판하는 재판소가 영국에만도 85개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도 무슬림들이 완전히 접수하여 샤리아로만 통치하는 지역이 55개소 있으며 이 지역에서는 무슬림 자경단이 정부경찰을 공격하고 접근을 금지시킨다고 한다. 이는 유럽의 무슬림들이 특히 악해서가 아니고 유럽인들이 무슬림들에게 복지혜택 제공을 소홀히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이슬람의 경전의 가르침이 배타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므로 할랄 전략을 통한 이슬람의 율법 샤리아의 영향력 확대는 한국의 보편적 미풍양속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일에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결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킬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하며 후손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물려줘야할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할랄 산업에 지원하는 것을 당장 포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3. 일년에 한 번은 이슬람에 대해서 설교하라 2015년 말 현재 한국에 이주 노동자들이 60만명을 넘어섰고 노동 외의 목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들까지 합하면 170만명을 넘는 외국인들이 우리 주변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비용들이지 않고 선교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기회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문화충돌의 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굳이 어떤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고 각 문화권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주 사소한 문제가 큰 피해를 불러올 수가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 중에도 이슬람권에서 온 근로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매우 특별한 문화적 습관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접근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즉 이슬람이라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곤혹을 치르고 있으며 심지어 스위스에서는 모스크에 첨탑 시설을 금지하자는 안건을 국민들이 서명운동을 벌여 국민투표로 통과시켰고, 프랑스에서는 여인들의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금하며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물리는 등 이슬람을 제재하는 법을 만들고는 있지만 이는 사후 약방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미리 세웠어야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들어가는 곳은 어디서든지 범죄가 증가하고 사회 분열이 일어나고 폭력과 테러 사건이 난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유럽은 기독교 문화가 오래 전부터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제도적으로 적용되고 있어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였다. 그래서 소위 “똘레랑스(관용)”정신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은 선진국 사람들로서의 성숙한 인격의 상징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기술과학 발달로 경제가 급성장하다보니 노동인구가 부족하게 되어 가장 가까운 북아프리카에서 값싼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채택했다. 무슬림들은 본국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었기에 처음에는 유럽의 풍요를 체험하면서 그저 유럽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무슬림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태도가 달라지면서 무슬림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집단행동을 일삼아 사회적인 불협화음이 심화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1부4처를 인정해 달라든지, 학교식당에서 할랄 음식을 급식하라든지, 이슬람을 모독하는 자를 처벌하라는 법을 제정해 달라는 등 ... 이런 끈질긴 집단 시위를 통한 요구로 영국에서는 이미 각 도시에서 샤리아 법정이 85개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들을 연구 분석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 영국의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싸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구동성으로 이슬람 때문에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음을 선언했다. 그런데 사회복지가 발달된 선진국에서 이슬람 때문에 실패했다는 다문화 정책을 대한민국 정부가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3)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입니다.)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3) ▲ 김경천 목사 (전. JMS 부총재) 예방과 대책 왜 젊은이들이 이단으로 몰려가는가? 이단에 빠지지 말라고 말만 하지 말고, 이단에 빠지지 않는 건강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전염병이 돌면 대책을 세우듯이, 이단들이 창궐하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단들의 흡인력은 무엇이고, 우리 일반교회의 장점은 무엇인가 제시해야 한다. 일반 정통교회에서 아무리 이단사이비가 나쁜 곳이라고 말하더라도 결국 선택은 개인들이 하는 것이다. 개인들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취사선택하게 되어 있다. 교회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1. 바른 성경공부 1) 교리공부의 강화 이단들과 경쟁하여 이기기 위하여 교리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죄 사함과 중생의 문제, 구원의 확신, 부활문제, 휴거문제, 오병이어 기적을 비롯한 기적과 표적에 관한 문제들, 계시록 등에 대해 확신에 찬 설교와 강의, 교육 등을 보강해야 한다. 그리고 각론에 들어가서도 세밀한 교육이 필요하다. 구원받은 후에도 죄를 짓는가? 구원받고 죄 지으면 구원이 취소되는가? 어떤 때는 구원 받은 것 같고 어떤 때는 받지 못한 것 같고, 구원 받는데도 인간의 행위도 포함되어야 하는가? 믿기만 하면 되는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좀 약하지 않은가?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급과 구원은 어떻게 다른가? 상급이 구원이고 구원이 상급인가? 내가 죄 사함 받았는가? 어떤 이는 다 받았다고 설교하고, 어떤 이는 일일이 다 회개해야 한다고 하고, 회개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세심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목사들은 예수님께서 피 흘리고 세운 단상에서 십자가 외에 다른 설교할 시간이 없다. 자기 집안 이야기, 자기 자랑, 교훈적이고 윤리선생과 같은 이야기, 다른 철학자 이야기, 신문 읽은 이야기로 장시간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들은 십자가 복음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잠깐 예화로 족하다. 그런 설교들은 세상 사람들이 더 잘한다. 그 짧은 설교 시간을 예수 십자가 복음 외에 달리 전할 말씀이 또 있는가? 오직 예수 피 복음을 정확하게 전해야 한다. 그래야 교인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는다. 2)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대개 일반교인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은 성경을 확실히 알고 싶어서 궁금해 하다가 빠지는 것이다. 구원 받고 싶고 죄 문제 해결하려고 고민하며 두리번거리다가 이단의 마수에 걸려드는 것이다. 이단의 신도수가 계속하여 많아지는 것은 대부분 일반교회에서 계속 이단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바울의 3대 정신으로 목사들은 무장하여야 한다. 1. 십자가 외에 알지 않겠다. 2. 십자가 외에 자랑하지 않겠다. 3. 십자가 외에 전하지 않겠다. 사실 바울처럼 3층천을 구경하고, 사람으로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체험을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바울은 천국 간증이나 자기의 영적 체험을 말하지 않았다. 바울은 결국은 십자가 외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과거의 모든 기득권을 배설물로 여기고 아낌없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단의 교주들은 자기가 천국엘 갔다 왔네, 자기가 예수님과 황금 길을 걸었네 하면서 마치 자기와 친해지면 예수님과 친해질 수 있다는 듯이 신도들의 환심을 사고 물질을 탐낸다. 교회는 신비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의 천국 지옥 간증도 그로 인하여 십자가가 묻히지 않게 해야 한다. 십자가 외에 다른 방식으로 구원을 제시하는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천국지옥 이야기는 성경의 것으로 충분하다. 천국지옥 간증을 하더라도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증거 하면 안 된다. 교회에서 기적과 기사와 신유 그 어떤 것도 십자가 외에 자랑해서는 안 된다. 자랑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라고 하였다. 혹시 누가 기적과 이적을 행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으로 예수님과 이간질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마귀의 수족들이다. 교인들로 하여금 오직 말씀에 굳건하게 서게 해야 한다. 3) 교회 바깥에서의 성경공부 절대금지 지나치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문화예술, 스포츠 행사, 설문지를 통한 접근 등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교회 바깥에서의 성경공부는 철저하게 금지하고 조심해야 한다. 성경 공부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이단들이 성경공부를 통해서 어린 영혼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경 공부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단의 성경공부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단에 빠지지 않는다. 잘못된 성경공부는 어린 영혼들에게 독약이다. 2. 교회의 경쟁력 강화 1) 변화된 환경에 적절한 대응 지금은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L. Berger)가 말한 것처럼 “이단의 시대”다. 이단(heresy)이란 원래 다수의 의견에 대하여 어떤 이는 소신껏 다른 의견을 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단의 시대란, 이단들이 많아졌다는 의미 보다는, 시대풍조 자체가 이단적이라는 말이다. 신앙도 이제는 더 이상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종교도 옛날에 가졌던 독점과 권위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천주교에서 파문을 하더라도 개신교에 와서 새 신자로 등록해 버리면 그만이다. 일반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한 교회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치리하면 그 사람은 근신하는 것이 아니라, 앙심을 품고 자기에게 동조하는 교인들과 작당(作黨)하고 나가서 바로 옆에다 교회를 세운다든지, 아니면 다른 교회에 등록하고 더 충성하여 자기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더 이상 파문과 출교가 교인들에게 견제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소비자들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둘러보고 사듯이, 신앙생활에도 그런 현상이 도래한 것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은 주변에 널려 있다. 지금은 고객이 왕이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 과거에는 한 지역이나, 한 나라는 전부 한 종교였다. 운명적으로 지리적으로 한 지역의 사람들은 그 지역 종교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종교도 교회도 신앙도 전부 선택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종교를 선택할 때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소비자처럼 종교와 교회를 골라서 택하게 되었다. 교회를 택할 때도 아파트의 한 건물에 교회가 7개나 들어서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새로 이사 온 교인은 7교회를 다 둘러보고 자기에게 제일 잘 맞는 교회를 택한다. 그와 같이 정통과 이단도 지금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이 저 집단을 이단이라고 하면, 저 집단에서는 내 집단을 이단이라고 규정한다. CBS에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란 것을 방영해도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싸잡아서 욕하며 밥그릇 싸움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상품을 많이 팔려면 물건자체가 품질이 좋아야 하고, 직원도 친절해야 하고, 포장도 좋아야 하고, 애프터서비스도 좋아야 한다. 물론 광고도 잘해야 한다. 목사의 설교가 광고나 홍보의 행위라면 문화선교는 고객을 우리 상점으로 오게 하는 판촉활동이 될 것이다. 지금은 짝퉁이 범람하고 유사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내 고객을 충성스럽게 붙잡아 두고, 새 고객을 계속하여 끌어들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개혁주의는 계속하여 개혁해야 하는 것이다. 교역자들의 마인드가 교인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다. 예수님도 나는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섬겨주려 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당연히 목사들은 왕으로서 군림이 아니라 종처럼 철저하게 낮아지고, 섬겨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주님이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목사들은 종의 종이 되어야 마땅하다. 백화점의 직원처럼 친절해야한다. 텔레마케터들은 고객들이 아무리 모욕적인 언사를 써도 참는다.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불친절하다고 보고되면 파면당하기 때문이다. 은행직원은 고객이 다가서면 벌떡 일어서서 맞는다. 목회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비행기 스튜디어스처럼 90도 각도로 인사는 안할 지라도 적어도 웃는 얼굴과 친절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가식으로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생명주고 산,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품은 세계 최고의 상품이다. 인류의 죄와 사망을 해결하는 예수님의 보혈보다 더 좋은 제품은 없다. 사실 진시황제가 찾았던 불로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인 것이다. 인류의 죄와 사망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는 없다. 이 확실한 상품을 가지고서도 시장점유율이 자꾸 떨어진다면 대리점 문 닫고 지점장 바꿔야 한다. 짝퉁과 유사제품에 자꾸 고객을 빼앗긴다면 근무태만을 들어 파면당해야 옳지 않은가? 교역자가 바뀌면 교회는 바뀐다. 2) 문화선교 강화 교인들끼리 조기축구라도 결성하고, 그 교회축구팀에 일반인들을 가입시켜서 자꾸 접촉점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야구선수가 있다면 야구팀을 만들어 교인들의 사회적 동물로서의 욕구를 해소시켜 줘야 한다. 그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가로, 세로로 형성해 나가야 한다. 낚시하려면 낚시 밥을 근처에 뿌려야 한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어망을 던져야 한다. 교회에서 산악회등도 만들어서 건전하고 세련된 행사를 자주 제공해야하는 것이다. 성도들 가운데 재능이 있는 분들을 적극 활용하여 전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면 성도 중에 왕년에 탁구 선수가 있었다면 그 탁구를 문화선교의 지렛대로 삼으면 된다. 붓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활용해야 한다. 교인들의 인력(人力)을 집대성하여 전도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교회를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전도의 장(場)으로 삼아야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예배 시간을 위해 일주일 동안 내내 교회 문을 잠가 놓아야 할 것인가? 대 예배실이 곤란하다면 교육관이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3) 군선교 강화 젊은이들이 있는 곳에는 다 가야 한다. 특히 군인들 전도를 위해서 훈련소에도 가야하고, 군부대도 가야 한다. 훈련소에서의 훈병들의 심리는 단순하다. 어디에 가면 더 맛있는 것을 주는가를 보고 종교를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훈병은 한번은 절에 가고 그 다음에는 성당에 가고, 그 다음 주는 교회에 간다. 돌아가면서 각종 종교를 섭렵한다. 다 둘러보고 결정하려고 한다. 훈련소나 군부대처럼 좋은 선교의 장도 드물다. 4) 캠퍼스의 선교강화 채플이 있는 학교들은 채플을 강화하고 이단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연세대나 이화여대 등도 이단들의 주 활동무대이다. 이단들은 캠퍼스를 황금어장이라고 인식하여 혈안이 되어 달려드는데, 일반정통교회들이야 말로 더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5) 청소년들에 대한 선교지원강화 장년부가 수천 명 되는 교회에 청소년이 200명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 장년부 세대가 죽고 나면 교회가 텅텅 비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교회가 세상 학생들은 제외하고서라도 목사, 장로, 집사들의 자녀들까지 놓치면 정말 큰일 이다. 교회가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유초등부와 청소년부가 사라진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교회를 자주 찾게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여 적용해야 한다. 스포츠나 문화 활동, 장학금도 지원하고 방과 후 수업 등도 실시해야 한다. 물심양면의 지원이 필요하다. 3. 구령사업에 대한 최우선적 관심과 투자 해외 선교와 전도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 몽골 같은 곳은 밥만 먹여주면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다는 몽골 대학생의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교인들은 먹을 것 덜 먹고, 입을 것 덜 입고 피 같은 돈들을 주님의 몸 된 교회에 헌금한다. 그러면 그 돈이 주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인 선교와 구령사업에 우선 집중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건물 보다 선교에 신경 써야 한다. 건물이 좀 낡았으면 어떠한가? 건물이 좀 좁으면 어떤가? 정 좁으면 한 번 더 예배드리면 된다. 무리하게 건축하다가 패가망신한 교회가 많다. 대개 그런 교회들은 이단들이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다. 이단들에게 교회건물도 뺏기고, 교인들도 뺏기고... 이 일들을 어찌하면 좋은가? 예수님께서 피 값 주고 산 천하 보다 귀한 영혼들이 사탄의 손아귀로 넘어가고 있는데, 지금 교회가 건축이나 해서 목회자 이름이나 알리려 할 때인가? 꼭 필요하고 때가 무르익었으면 몰라도 무리하게 건축에 투자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청년들을 양육하고 전도하는데 써야 한다. 교인자녀들 뿐만 아니라,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안 믿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힘이 닿는 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장학금도 주고,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쌀도 대주고, 사명감 있는 청년들은 신학교 보내서 공부도 시켜주고, 전도하는 학생들에게 선교비도 주고, 청년 사역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단 대책 하는 분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도 하고... 어디다 물질을 써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까 기도하며 써야 할 것이다. 청년들 키워봤자 헌금도 안 나오고, 말만 많고, 돈만 많이 든다고 등한시 하면 안 된다. 청년들이 살아야 교회가 살고 이 나라가 산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차라리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 교회 건축에 지나친 출혈경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유럽의 많은 교회 건물들이 지금 술집, 디스코텍, 회교 모스크로 바뀌었다. 영국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8000개 교회가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 영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어떤 한국교인은 자기가 다니는 한국교회를 지어준 영국의 모(母)교회를 찾았으나 그 감사방문을 맞이하는 영국교인이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고도 한국 교회는 정신 못 차리고 있는가? 오늘날 유럽교회들은 20-30년 후 한국교회의 미래상처럼 보인다. 건축에 돈 쓸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 구령사업에 헌금이 쓰여 져야 한다. 한 푼이라도 아껴 오직 전도와 선교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 4. 봉사와 구제활동 강화 이단들은 자기교주와 자기 단체의 이미지 고양(高揚)을 위해 목숨을 건다. 유학을 가는 이유도 선교를 위해서 간다. 사업을 하는 것도 전도자금을 대기 위해서 한다. JMS 같은 경우,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 가장 오래 동안 남아서 닦았다. 그것은 딱 한 마디 듣기 위해서이다. ‘당신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분이 진짜 지도자요’ 라는 말 듣기 위해서이다. 우리 일반 정통교회들이야말로 의료봉사도 더 하고, 문화공연과 위로잔치도 베풀어 주고, 노숙자들이나 독거노인들을 위해 밥 주는 봉사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도의 덕을 널리 알려야한다. 사람이나 단체나 이미지가 좋아야 한다. 요즘 개신교가 개신교 천주교 불교, 3대 종교 중에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도가 가장 낮다고 한다. 신뢰도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전도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이다.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니라 실제로 진정성 있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어주기까지 하셨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고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봉사와 구제는 기본적인 일들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것은 교회의 마땅한 도리이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5. 빛과 소금의 사명 매스컴에 종종 기독교 관련 악평뉴스가 보도된다. 예를 들면, 목사가 전철에서 여자의 신체를 촬영하다가 걸린다든지, 목사가 여신도와 간음을 했다든지, 목사가 사기 쳐서 피소되었다든지... 이와 같은 목사의 비행과 비리가 쏟아질 때마다 교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교회의 비리는 언론에서 더 크게 다루기도 하지만, 그만큼 목사에게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목사 한명이 무너지면 교회 하나가 무너진다. TV에서 대형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교회 지도자들이 연루되어 있다. 목사와 교인들은 각자가 예수님의 얼굴들이다. 이방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예수님의 얼굴을 본다. 요즘, 흔히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러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게 웬 말인가? 인터넷 공간에서는 기독교가 개독교로 통용된 지 오래되었다. 교회 지도자들의 비행과 비리가 터질 때마다, 어린 신앙인들과 믿음 약한 영혼들에게는 치명적인 악재들이다. 교회 밖으로 사람들을 내 모는 역천행위들이기 때문이다. 이단들에게 교회의 비행과 비리에 대한 뉴스는 호재다. 그들은 교회에서 실망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을 향하여 양팔 벌리고 교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 아무리 택배 회사가 명성이 높고 신뢰를 많이 쌓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결국 고객들이 만나는 것은 택배 직원이다. 고객들에게는 택배 직원이 그 택배회사의 얼굴인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택배 직원이 고객과 얼굴 붉히며 싸웠다고 치자. 그 고객은 그 택배 회사와 싸웠다고 생각하고 택배 회사를 바꿔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을 통해 예수를 본다. 기독교인들은 예수택배회사의 택배 직원들이고, 예수의 얼굴들이다. 교회에서 실망한 교인들은 예수님에게서 이만희나 정명석, 문선명, 안상홍으로 교주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강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에게 이웃이 되어 주셔서 우리를 살리셨다. 또한 우리도 안 믿는 사람들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 줘야 한다. 그들이 평소 오해하고 멀리하던 사람일지라도 기름과 포도주를 발라주며 여관에 맡기고 경비가 더 들면 책임지고 갚아주고... 대개 이단들도 교주들의 비행과 방종한 삶으로 스스로 멸망하게 된다. 주의 종들은 섰다고 하는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셨으니 절대로 언행심사를 조심해야 한다. 성령 충만했던 다윗도 밧세바 라는 우리아의 아내의 벗은 몸을 보고 욕정을 참지 못하여 죽음보다 더 심한 고통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슬기로운 잠언을 쓴 솔로몬도 이방여인들로 인하여 우상숭배 하다가 나라가 두 동강 나는 징계를 받았다. 목사가 은밀하게 간음을 하더라도 언론을 통하여 백주 천하에 다 공개되고, 교회는 두 동강나서 쪼개지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한다는 것은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선행과 높은 도덕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6. 사랑의 실천 회사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봉급도 아니고, 교통도 아니고, 복지도 아니다. 회사 동료, 상사 혹은 부하 직원과의 불화 때문이다. 불협화음 때문에 힘들게 들어간 직장이라도 그 직장을 떠나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가? 교인끼리 싸우고, 목사와 싸우면 그 교회가 싫어지는 것이다. 교회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야지 누가 올까봐 가슴이 철렁 해진다면 교회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 피를 함께 나눈 형제들이다. 그러나 이권(利權)이 없으면 소가 닭 보듯이 무관심 한다. 그런 교회가 부흥할 리 없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멘트 중의 하나는 외로웠었다는 것이다. 누구와 깊이 대화할 수도 없고, 외톨이 같았었다는 말들을 한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아무도 자기에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단에 갔을 때 그들은 친절했고, 자기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말을 한다. 부모가 들으면 가슴 치며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식이 외로웠었다고 하면 외로웠던 것이다. 식당에서 손님이 ‘음식이 짜다’고 하면 짠 것이다. 주인이 국물 먹었을 때 안 짜더라도, 손님이 짜다고 하면 짠 것이다.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어요” 라고 말하면 없었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편협된 사고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주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고치면 되는 것이다. 교인도 소비자이고, 고객이다. 고객이 항의하는데 불편을 해소해 주지 않으면 고객은 다른 매장을 찾게 되는 것이다. 제품은 좋은데, 직원들의 불친절과 미숙함으로 짝퉁회사(이단들)에게 고객을 계속하여 뺏긴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 받을 것이다. 기독교는 원래 사랑의 종교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고 하셨다. 그리고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40).”고 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내 양을 치라 하신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교회가 건강해야 한다. 그러면 이단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2)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입니다.)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2) ▲ 김경천 목사 (전. JMS 부총재) 4. 포교전략과 활동, 특징들 1) 청년대학생 중심의 포교 처음에는 주로 대학생들이 주로 포교대상이었다. 청년대학생 때는 진리에 대한 갈망과 도전의식이 가장 활발한 기간이다. 청년대학생들이 성경 공부하다가 정명석을 재림예수로 깨닫게만 되면 학업이고 가족이고 취직이고 전부 뒷전이다. 청년대학생들은 재림예수를 만났다는 감격에, 바울이 기득권을 배설물처럼 여긴 것처럼, 그리고 베드로가 그물과 배를 집어던지고 예수님을 따랐듯이,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학생은 학과 친구를 어떻게 하면 전도할까만 생각한다. 학점은 중요하지 않다. 취직은 B급이나 하는 것이다. 학과 친구는 전도의 대상일 뿐이다. 가족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도할까 포교의 대상일 뿐이다. 반대하면 부모라도 그냥 사탄의 하수인으로 보이고, 심지어 원수가 된다. 어떤 대학생이 30개론을 듣고 정명석의 사명을 깨닫게 되면, 그 학생은 한명, 한명 전도하여 동아리를 만든다. 그 학생은 전도하기 위해 대학을 다닌다. 동아리에서 30개론을 가르치고, 계속하여 재생산이 일어난다. 전도된 학생이 다른 대학의 친구를 전도한다. 그 학생도 자기 대학에 가서 역시 동아리를 세운다. 그렇게 해서 전국적으로 대학마다 동아리가 들어가게 된다. 청년대학생들은 부모들이 주는 돈을 가지고,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땅 끝까지 이르러 다시 오신 재림주님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건다. 2) 청소년들과 문화선교 최근에 JMS는 7만 선교 목표를 발표 한 바 있다. 정명석이 출옥하기 전까지 7만 명 정도 만들어서 선생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한층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전에는 대학가에서 주로 포교하였으나, 지금은 중고등학생들에게로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 청년대학생들은 이미 JMS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포교가 쉽지 않다. 힘들게 포섭하여 교리공부 시키다가도 ‘여기가 JMS다!’라고 깨닫는다면 중도포기하기 때문에 대학생 이상의 성인들에게는 포교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자연히 어린 중고등학생들에게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악평도 듣지 않았고,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하는 단순함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재미있으면 된다. 누가 친절하게 대해주고 운동도 가르쳐 주고, 밥도 사주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최고다. 교리는 상관없다. 특별히 예수님에 대한 충성도도 없거나 낮다. 누가 자기에게 재미있게 해주고, 잘해주는가가 관심사일 뿐이다. 오늘 자기에게 자장면이라도 사주는 사람이 더 좋다. 그렇지만 중고등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성경공부로 연결시키는 일은 드물다. JMS는 문화선교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운동을 통해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야구나 축구를 통해서다. JMS 회원 중 국가대표나 프로구단 출신의 야구선수가 전국대회규모의 야구대회를 열어 청소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야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주말마다 훈련시킨다. 그리고 같이 샤워하고 같이 밥 먹으면서 친해진다. 친해지면 인성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30개론을 조금씩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은 평소 야구를 너무 하고 싶어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JMS는 그런 청소년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필요를 채워주며 전도하는 것이다. 야구 유니폼도 다 맞춰 입고 제법 규모 있게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기가 그런 자리에 선수로 참가하여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단이고 사이비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그렇게 신경써주는 JMS단체가 너무 고맙게 생각된다. 게다가 교리공부를 통하여 정명석은 예수님처럼 죄가 없지만 악평자들의 모함으로 누명을 쓴 것으로 배우게 된다. 청소년들은 눈물을 흘리며 JMS를 힘들게 하는 기성교회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게 된다. 축구는 더 세밀하게 조직되어 있다. 초등부부터 전국대회규모의 축구시합이 있다. 꿈나무 축구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합숙훈련도 하며 그 조직에 녹아들게 한다. 그리고 축구대회도 지역마다 있고, 전국단위의 축구대회도 있다. 그리고 JMS의 전국체전 때는 세계에서 자신들의 국기를 들고 입장하여 올림픽을 방불케 하는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평소 때는 조기축구나 일요예배 후 교인들끼리 모여 축구를 많이 한다. 축구에 한번 맛 들인 사람들은 축구하자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그들은 축구가 좋고, 사람들이 너무 좋고, JMS라는 단체가 너무 좋다. 그곳을 떠나서는 죽을 것 같다. 떠나봤자 할 것도 없고 그동안 재미있게 지냈던 인맥과 결별하는 것도 싫다. 이탈하면 자기혼자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생긴다. 오히려 JMS에서 잘릴까봐 두려움이 생기고 소속감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여자들은 치어나, 모델, 째즈, 무용 등 예술을 통하여 전도한다. 정명석이 1980년대 초반, 고려대와 연세대 정기전을 참관하면서 양교의 화려한 치어 쇼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 뒤로 JMS내에 남녀 치어 팀 들이 수십 개가 생겨났다. 치어리더가 되려면 여자들은 키 170, 남자들은 180은 되어야 한다. 해마다 전국 치어대회를 열기도 한다. 자체에서 우승하기도 쉽지 않다. 치어도 본부 치어가 있고, 지방 치어가 다 따로 있다. 정명석이 축구할 때면 본부 치어들이 나선다. 그 깊은 월명동 산골짝에서 밤이건 낮이건 정명석이 축구하면 치어복장을 한 치어걸들이 쭉 선다. 여자 회원들은 치어리더가 되고 싶어도 키가 작으면 될 수가 없다. 치어리더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정명석이 축구할 때마다 수십 명의 미녀치어리더들이 열심히 응원을 하니, 동네 축구지만 마치 프로축구나 국가대표 경기하듯 재미있게 바라보는 것이다. 모델은 슈퍼모델 대회가 따로 있다. 여자들 키가 178이상 되어야 한다. JMS의 수퍼모델 대회에 가보면 우리나라에 저렇게 키 크고 예쁜 여자들이 많이 있었나 하고 놀랄 정도이다. 정명석은 욥의 딸들이 동방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예뻤다고 했듯이, JMS의 회원들이 모든 종교 가운데 제일 예쁘다고 자랑하였다. 정명석은 이와 같이 성경을 통해 자기자랑을 한다. 그러나 참된 목사라면 성경 가지고 예수님을 자랑한다. 일반교회에서 야한 옷 입고 슈퍼모델 대회 같은 것 개최하기는 좀 부적절해 보이지만, 젊은 아가씨들이나 십대소녀들의 ‘예술성’과 ‘끼’를 발산케 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아이돌 그룹에 광란하며 반응하는 십대들의 끼를 교회는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금식기도 해서 파김치 만들어 버리는 것이 답일까? 아니면 신나는 찬양을 통해서 발산해야할 것인가? 교회도 재미있어야 하지 않은가? 청소년들을 교회로 가게 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가? 마치 시동 꺼진 차를 뒤에서 밀고 가듯이 힘들다. 그러나 그렇게 밀지 않아도 시동 걸린 비행기처럼 일반교회로 날아가게 할 수는 없을까? 이단들은 하나같이 예술성이 발달했다. 통일교의 리틀엔젤스는 말할 것도 없고, 신천지의 마스게임이나 카드섹션 등도 볼만한 광경을 연출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단들은 행사 때마다 식전행사로서 올림픽의 식전 행사를 방불케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예술제를 보면서 ‘역사가 시작 되었구나’ 하면서 감격한다. 그 외에도 연극부가 있어서 정명석의 설교를 연극으로 재현해 보이기도 한다. 만화부도 정명석의 설교를 만화로 표현하기도 하고, 설교 때마다 삽화를 넣어 이해를 돕는다. 그 외에도 뮤지컬부 등 다양한 부서들이 있다. 3) 해외 선교 (1) 미국 미국은 총신대 졸업한 전도사가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특별한 지원은 없었다. 미국선교사가 카펫트 청소하며 힘들게 한명 두명 가르쳐 수료시켰다. 수료하면 한국으로 무조건 다녀가게 한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방문은 성지순례와 같은 일이다. 외국인들이 정명석에 대해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기면 한국의 선교사들은 뒷전으로 물러난다. 정명석은 철저하게 그 나라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맡기는 전략을 쓴다. 처음에 한국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은 토사구팽 당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선교사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속셈도 깔려 있다. 초대 미국 선교사는 JMS를 이탈하였다. 미국은 현재 200명 내외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2) 일본 일본은 고려대를 졸업한 한 학생이 일본 쯔꾸바 대학으로 유학하면서 시작되었다.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주로 포교활동에 전념하였다. 곧 바로 일본대학생 10명 정도를 전도하여 한국에 데리고 왔다. 그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 후 일본은 몇 백 명으로 불어났고, 선교사의 영향력은 너무 컸다. 통일교의 초대 일본 선교사가 일본을 개척한 다음에 배신하고 나갔다는 것을 염두에 둔 정명석은 JMS초대 선교사도 그럴 것이 염려되었는지 선교사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하였다. 그 일본선교사는 정명석이 자기를 일본회원들과 이간질하는 말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사업을 한다는 미명하에 JMS를 이탈하여 나갔다. 일본은 현재 3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JMS는 밖으로는 전혀 교회 같지 않다. 그냥 사회단체처럼 보인다. 예배가 끝나면 배구나 각종 스포츠를 통해 문화선교를 많이 한다. 그들은 자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끈끈한 정을 JMS를 통해 맛보고 있다. 그들은 방송에서 JMS의 비리가 아무리 많이 폭로되어도 별로 흔들림이 없다. 일본은 유난히 엘리트 계층이 많다. 처음부터 대학생들을 포교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20-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중견간부들로 성장했다. (3)대만 대만도 JMS에게는 특별한 나라이다. 천수이벤 전 총통이 유명해지기 전에 젊은 시절에 월명동을 방문한 바 있다. 그는 그 후에 국회의원이 되고, 타이페이 시장이 되고, 대만 총통이 되었다. 천수이벤 총통은 JMS의 대만 행사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정명석은 천수이벤 총통도 자기 제자라고 적극 홍보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정명석이 중국에서 체포되었을 때 불리하게 작용되기도 하였다. 천수이벤은 그 후 부정부패로 20년 형을 선고 받고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다. 그를 JMS로 전도했던 비서관도 질병으로 요절하였다. JMS에서는 그가 총통일 때는 그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홍보하였으나, 지금은 전혀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대만은 JMS내에서 일본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대만과 일본 지도자들은 서로 경쟁하며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대만도 2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4) 동남아, 기타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JMS는 동남아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홍콩은 정명석이 일찍부터 공들인 나라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장년부가 홍콩으로 이민 가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나중에 정명석은 홍콩별장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고, 조사 받던 중 중국으로 밀항하게 된다. 말레이시아도 JMS의 국제 행사를 개최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모델이나 치어 등의 문화선교로 3000명을 동원한 바도 있다. 그 외에 전 세계 50개국에 걸쳐 뻗어 있다. (5) 해외선교의 특징 JMS의 해외선교는 철저하게 현지인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반교회는 주로 교회에서 선교후원금을 보내주지만, JMS는 한국본부에서 대주는 일이 거의 없다. 이민을 가면 그 사람이 바로 선교사로 임명 받는다. 혹은 학생들이 유학을 가면 그 학생이 바로 선교사다. 그 유학생들은 부모들이 대주는 돈으로 공부는 소홀히 하면서 선교를 열심히 한다. 유학생이 선교사이고, 이민자가 바로 선교사이다. 장년부들도 이민 가서는 아르바이트 하면서 선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단의 부담 없이도 선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지인이 몇 명만 되면 한국에서 간 사람들은 뒤에서 관리만 하고, 담임 교역자는 전부 현지인들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몽골 같은 곳을 예로 들어보면, 일본의 한 여학생이 부모에게 몽골로 유학가고 싶다고 말하여 부모의 돈으로 몽골에 유학 갔다. 처음부터 그녀는 유학보다는 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그녀는 혼자 30-40명을 전도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몽골은 밥만 먹여주면 얼마든지 더 많이 전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몽골의 대표자 몇 명이 한국으로 성지순례를 왔다. 경비는 몽골에서 사업하던 한국 회원이 대줘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에 성지순례를 와서 크게 감동받고 돌아갔다. JMS 선교는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에 의하기 보다는 자발적 성격이 강하다. 일본 여학생이 몽골에 가서 선교하는 것이나, 한 캐나다 학생이 남아프리카로 가서 그곳에서 선교를 하여 몇 십 명을 만들어놓기도 하였다. 한국 교단에서 특별한 지원은 없었다. 자발적인 선교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자발적인 선교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정명석의 사명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땅 끝까지 가서 전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30개론을 새 복음이라고 하면서 가르치고 있다. 4) JMS의 구원관 JMS의 구원관은 카톨릭의 연옥사상과 비슷하다. 구약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선영계, 구원받지 못한 영들은 음부로 간다. 타종교나 선한 양심으로 산 사람들도 선영계로 간다. 거기서 죽어서라도 예수 믿으면 낙원으로 올라간다. 심지어 음부에 가서도 예수 믿고 낙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 정명석에 의하면, 선영계에 간 영혼들은 그들이 살아생전에 땅에서 메시야를 기다렸듯이, 선영계에 가서도 계속하여 메시야를 기다린다. 거기에서라도 예수 믿으면 낙원에 올라가게 된다. 불교인도 천국이나 낙원은 못 가더라도 선영계는 간다. 석가모니도 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다. 기독교가 전깃불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촛불이나 호롱불 정도는 된다. 그러므로 불교라고 해서 지옥 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JMS의 구원론은 상당히 포용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다원주의이고 예수님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부정하게 한다. 마귀는 이와 같이 그럴싸한 교리로 다가온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죽은 다음에는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죽은 다음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죽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가 살아서부터 믿겠는가? 죽어봐서 거기서 믿으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죽은 다음에 기회가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살아서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 천하인간에 예수 외는 구원자가 없다. 시대별로 구원자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5) JMS의 율법주의 JMS의 율법주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선악과를 여자의 성기로 풀기 때문에, 성교하는 것은 원죄를 짓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성교하지 않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갖게 된다.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게 된다. 성교는 오직 정명석의 허락받고 결혼해야 가능하다. 정명석의 허락 없이는 7년이고 10년이고 기다려야 한다. 성적으로 깨끗해지기 위하여 점점 성욕자체를 금기시하게 된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억눌러야 하고, 그런 감정이 생긴 것 자체를 회개기도 해야 한다. 당연히 이성교제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유치원 때 남학생의 손잡은 것 까지 회개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다가 약간의 신체접촉이나 자기도 모르게 로맨틱한 상상만 했어도 엄청난 죄책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너무 높은 수준의 실천과 성윤리를 강조하다 보니,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는, 죄책감과 죄의식이 너무 심해 정신분열이나 정신질환에 시달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JMS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지 않는다. 천국에는 검은 색깔이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부터 천국 생활해야 한다며 검은 옷을 입지 말라고 정명석이 말하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교역자가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면 불경죄로 인식될 수 있다. 그들은 밝고 환하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교회 올 때는 당연히 하나님 뵈러 오는데 최고로 신경 써서 잘 입고 가야한다. 청와대에 대통령 만나러 간다면 그렇게 옷 입겠느냐? 그런 율법적인 가르침을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철저한 율법주의에 단련된 JMS회원들은 일반교인들을 볼 때 자유분방한 민병대처럼 우습게 보는 것이다. JMS사람들은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일반교회에서 목사가 교인들에게 커피 마시지 말라고 하면 아마 다른 교회로 떠나든지 아예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도 속출할 것이다. 그러나 JMS 회원들은 정명석의 먹지 말라는 한 마디에 마시지 않는다. 아마도 몰래 혼자 집에서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그는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에 꺼림하게 되고, 회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마시지 말라는 이유는 건강 때문에 시작했지만, 정명석이 말했기 때문에 구원받기위한 교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단들은 이와 같이 회원들의 생활의 세미한 부분까지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 라면, 과자, 탄산음료 등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은 먹지 않는다. 술 담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술 한번 마시면 지옥 가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목숨 걸고 술을 마시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만족감을 느끼고 교만과 자랑이 싹트는 것이다. JMS의 율법주의는 사람들을 조이면 조일수록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우리 선생님은 진짜 하늘 사람이야 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오늘날 일반 정통교회에서도 어떤 공로나 행위가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신율법주의가 판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엡2:8). 6) JMS의 윤리의식과 거짓말 정명석은 회원들에게 철저한 율법주의를 요구하지만 정작 자기는 무법 방종주의나 상황 윤리자처럼 행동한다. 정명석에게 절대적이란 것은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절대적 기준을 설정하고 지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새벽에 일어났을 때 기도하기 전에 절대로 다른 사람과 먼저 대화하지 않는다. 대변 보고 오른 손으로 뒤처리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른 손은 사람들에게 안수기도해주는 손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껌 같은 것도 한번 안 씹기로 한 후로 절대로 씹지 않는 것 등이다. 정명석의 그런 겉모습에 사람들은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고 감동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는 무법 방종주의자나 상황 윤리주의자처럼 행동한다. 예를 들면 상사병 걸린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그 아들의 연인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아들의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이 죽는 꼴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정명석은 아들을 살리려면 들어가야 한다고 강의한 바도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는 사는 것이 우선이다. 그의 그런 윤리의식이 성 스캔들을 양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기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서라면 여자회원들과 간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간음이 아니라 구원행위이고 은총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짓말도 할 수 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거짓말해도 좋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모사(謀事)라는 미명하에 선한 행위로 포장된다. 그러나 거짓말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JMS 회원들도 점점 거짓말과 모사를 많이 쓰다 보니 서로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명석이 어떤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 속에는 ‘선생님이 지금 무슨 모사 쓰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갖는다. 어떤 때는 정명석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회원들이 믿지 않자, 정명석은 “이것은 모사 아녀!”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JMS회원들은 테러도 할 수 있다. 테러도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니 선한 일이다. 오히려 나간 사람들이 정명석의 비리를 폭로해도 가만히 있으면 정명석은 ‘너희는 내 제자도 아니다’ ‘지금 가만히 앉아서 뭣들 하느냐?’ ‘내 심정 맞춰서 행동하는 놈 하나 없느냐’ 며 테러를 부추긴다. 그것이 바로 테러를 명령하는 사인인 것이다. 그런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강한 충동감을 느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적으로 시키면 테러 사주로 걸리니까 회원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형식을 띠어 테러하도록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탈자들에 대한 테러가 여러 번 발생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상숭배도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는다. 가족을 전도하기 위해서라면 명절에 조상들에게 넙죽넙죽 절하라고 허용하기도 했다. 마음만 우상숭배 안하면 되지, 겉으로는 절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이냐? 정명석은 자기의 그런 무법방종주의적인 행동을 이치(理致)라고 하였다. 그 말은 자기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통일교를 줄기와 같은 원리라고 한다면 자기는 가지와 같은 이치라고 하였다. 정명석은 거짓말의 달인이다. 그의 거짓말은 법정에서도 발생했다. 검사가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라는 질문에 “아니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당신이 중심인물이오? 라고 묻자 그것도 “아니오”라고 했다. 그것은 평소 자기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JMS 사람들은 선생님께서 지금 모사 쓰고 계시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예수님은 “네가 왕이냐?” 하는 빌라도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셨다(요18:37). 그리고 예수님은 도망가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정명석은 도망 다니다가 잡혔다. 정명석은 방송이 처음 터졌을 때 부리나케 해외로 도주하였다. 그러나 회원들에게는 해외 선교하러 나갔다고 말하였다. 검사가 “당신이 그렇게 무죄하다면 들어와서 의혹을 풀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정명석은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들어왔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안 잡힐 줄 알고 도망 다녔다는 말인가? 자기가 죄가 없는데 누명을 썼다면, 그리고 순수하게 해외선교 나간 것이라면, 이렇게 강제송환되기 전에 진작 들어와서 의혹을 풀었어야한다. 정명석은 자기가 재림예수니까 무슨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림예수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상황윤리는 선한 일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정명석의 거짓말은 그냥 성범죄를 숨기기 위한 악한 거짓말일 뿐이다. 7) JMS의 사업 JMS는 월명관광(버스임대업), 보험, 화장품, 생활필수품 등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있으나, 통일교나 다른 이단들에 비해서 사업성은 크게 떨어진다. 휴대폰 사업이나 부동산 사업 등 여러 가지로 투자했으나 다 망했다. 사기도 여러 번 당하였다. 정명석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물질주면 타락할까봐 사랑해서 주시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돈 많은 사장이 본부인과 둘째 부인에게는 물질을 주지만 마지막에 얻은 부인에게는 사랑만 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유대교(본부인)와 기독교(둘째 부인)에게는 물질 주셨지만 JMS(마지막 젊은 부인)에게는 사랑만 퍼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8) JMS의 봉사활동 JMS는 태안기름유출 사건이 났을 때 어떤 단체들 보다 최장수 봉사를 하였다. 다른 단체들은 휙 왔다 가고 휙 왔다 가고 하였지만, JMS 회원들은 끝까지 남아 현지인들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들었다. JMS 의료팀은 대민 봉사활동을 자주 한다. 그리고 월명동에서 지역주민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한다든가, 문화공연을 통해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전부 JMS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누가 되었든지 간에 맛있는 밥 주고 관광시켜 주고, 공연 보여주고, 의료서비스 제공해주는 사람이 최고로 생각 들게 마련이다. (사)밝은 미소운동이라든지 (사)빛사랑청소년회 등의 법인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2002년 대통령 표창장도 받은 바 있다. 이단들은, 비단 JMS 뿐만 아니라, 대민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9) JMS의 기적과 표적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이라도 미혹하리라”(마24:24)고 하셨다. 모세 앞의 애굽 술객들도 모세와 똑 같이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었다. 정명석도 그런 것이 있었다. 정명석이 눈이 오라고 기도했는데 눈이 온 사건이 있었다. 정명석이 서울에 올라와 성향원이라는 허름한 집에서 무상거주하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자, 겨울에 눈이 오면 차마 내쫓지는 못할 것이라며 눈이 오게 기도하자고 한 것이었다. 겨울이라서 우연히 눈이 온 것이었을까? 두 번째로 나가라고 한 날에도 눈이 오라고 기도했는데 눈이 왔다. 그리고 한번은 여름 태풍이 북상 중에 있었는데, 정명석이 설교 중에 “내가 태풍 눈을 빼 버릴꺼여!” 하며 눈 빼는 액션을 취하면서 설교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뉴스를 보는데, 아나운서가 “북상하던 태풍의 눈이 빠졌습니다.”라고 멘트를 하였다. 정명석이 서해안 백사장에서 청년회원들과 배구를 하는데 그날 밀물 시간이 되었는데도 물이 올라오지 않았다고 한다. 월명동에서 행사를 하다보면 구름이 떠서 독수리 모양도 만들고, 사람얼굴도 만든다. JMS회원들은 항상 오늘은 독수리 구름이 뜨지 않을까 하고 이미 기대 심리가 높다. 독수리가 뜨면 JMS의 상징이 독수리니까 좋아한다. 정명석을 동방의 독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 구름이 뜨면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감격한다.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보면 금방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기적과 표적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예수님 외는 아니라는 강한 믿음과 신앙의 정조가 있어야 한다. 10) JMS의 신비주의와 영적 현상들 JMS는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한 단체다. 정명석의 설교의 대부분은 자기의 꿈 이야기이다. 그가 받았다는 30개론 도표가 환상으로 계시 받은 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JMS 사람들도 “너 왜 자냐?”고 물으면 “꿈꾸려고요” 라고 대답할 정도로 계시받기를 갈구한다. 요즘은 계시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이 나타났다. 토마스 주남의 “천국은 반드시 있습니다”는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나타났다. 그리고 캐더린 백스터의 지옥간증, 천국 간증과 천주교 안나 수녀의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정명석의 홍위병들이 되어 “천국 가니까 예수님과 선생님이 나란히 보좌에 앉아 있더라”, “생명책을 보았는데 누구누구의 이름이 있더라”, “이번에 새롭게 JMS신부들을 위해서 황금성을 만들었더라” “나가서 선생님을 악평하는 자들의 영혼들이 지옥에서 혀가 난도질 하는 광경을 보고 왔노라“ 고 간증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JMS 회원들 가운데 예수님을 못 보았다고 하거나, 천국지옥을 견학하지 못하는 사람은 명함도 못 내민다. 자연을 보더라도 그냥 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하여 무엇을 계시하는가 생각하며 의미를 찾는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떨어지는 정명석의 계시와 자기들이 받는 환청이나 환상, 꿈에 더 의미를 둔다. 사탄도 광명한 천사로 분장하고 나타나(고후11:4), 사람들에게 천국지옥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40일 금식하신 예수님께도 사탄이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절하면 다 준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이단의 교주들이 계시 받았다는 주장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다. 성경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 떠나서 어떤 개인의 영적체험이나 신비경험이 우리의 신앙규범이 될 수 없다.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이다. 11) 월명동 개발과 약수 정명석은 10년 이상 월명동 개발에 온통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앞산 돌 조경이 다섯 번이나 무너졌다. 원래는 시멘트 콘크리트로 계단을 만들려고 했으나 환상이 보이면서 하나님께서 지금과 같은 돌로 쌓으라고 하셨단다. 땅을 파다가 보니 낙타 모양의 바위도 나왔다.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러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이 낙타타고 왔듯 재림예수인 자기의 출현을 그와 같은 상징물로서 보여준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돌 조경은 천국의 하나님 보좌의 형상이고, 앞에 있는 돌들은 네 생물이 보좌 앞에 있듯이, 네 가지 형상의 돌들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가관이다. 어찌 정명석의 생가가 하나님의 보좌가 될 수 있으며 4돌이 4생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성경적 근거가 없다. 하나님 보좌와 정명석의 생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솔로몬은 그 멋진 금성전을 짓고도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시기에 부족하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하였다. 그런데 정명석은 자기가 쌓은 돌 조경을 하나님의 보좌라고 하는가? 가당치 않다. 월명동 잔디밭 밑에는 샘물이 있다. 어떤 권사가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그 물이 약수라고 가르쳐줬다고 한다. 정명석은 어떻게 자기에게 먼저 안 가르쳐주고 권사에게 먼저 계시해 줄 수 있느냐며 말하기도 하였다. 독일 청년은 그 물을 마시고 불치병이 나았다고 청중 앞에 간증하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았다고 하였다. 정명석은 하나님께서 월명동을 유명하게 하시려고 약수를 주셨다고 좋아했다. 정명석은 자기도 이가 아플 때 그 물을 머금고 있으니까 마치 마취주사를 맞듯이 통증이 가라앉더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정명석은 물의 효능을 너무 신봉한 나머지, 한번은 눈이 아프자 그 물을 발랐는데 오히려 눈이 충혈되기도 하였다. JMS 사람들은 그 물을 쉴 세 없이 떠 날라서 마신다. 박태선이 기도한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하였고, 할렐루야 기도원에서 능력의 생수라고 장사하여 팔더니만, JMS에서도 치유의 약수터가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복음이 없는 곳에서는 이와 같이 비본질(非本質)로 본질(本質)을 가려서 복음을 못 보게 한다. 월명동 수련원에는 그리스의 판테논(만신전)을 닮은 본부건물이 들어서 있다. 월명동은 본래 달밝골인데 정명석이 월명동이라고 개명하였다. 월명동은 정명석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그곳은 그들에게 성지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교주들은 공통적으로 생가를 개발하여 성지화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JMS는 최근에 분당에 38억 자리 건물도 샀다. 원래 일반교회로 쓰던 장소인데 헐값에 샀다. 그리고 지역마다 교회를 짓거나 일반교회 건물을 매입하는 추세이다. 일반교회 가운데 무리한 건축으로 말미암아 은행이자를 못 낸 교회 건물들이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성전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일반 정통교회에서는 외적 예배당의 건축보다는 내적 성전건축에 더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12) JMS의 자기 증거 (1) 유별난 자기 사랑 정명석은 자기 증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 그는 축구를 하더라도 혼자 50골, 60골씩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어떤 때는 골키퍼를 30명씩 세운 뒤 골인시켜놓고 즐거워한다. 물론 제대로 막고 제대로 수비하면 정명석은 한골도 넣기 힘들다. 정명석의 팀은 A급 선수출신들이고, 상대팀은 B급의 아마추어들이다. 실력대로 붙어도 B팀이 질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B팀 선수들은 정명석이 볼 잡으면 막는 시늉만 한다. A팀 선수들은 슈팅할 수 있는 노마크 찬스가 와도 정명석에게 패스하여 정명석으로 하여금 슛하게 한다. 게다가 골키퍼는 반대방향으로 넘어지고, 들어간 다음에 슬라이딩한다. 치어들은 팔짝팔짝 뛰면서 골인을 축하한다. 빵빠레가 울려 퍼진다. 사람마다 이것은 김일성축구라고 한마디씩 한다. 그는 축구 유니폼을 입어도 혼자만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다.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요셉만 채색 옷을 입었듯이, 자기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2) 시인 정명석 시를 쓰더라도 자기를 직접 증거하는 시들이 많다. 책을 쓰더라도 주로 독자들은 JMS회원 들이다. 정명석의 <인물났네>라는 다음의 시를 보자. 자신을 인물(人物)이라고 직접 찬양하고 있다. 그의 시는 주로 자기를 찬양하는 시이다. <인물(人物)났네> 인물(人物) 났네 인물났어. 백년이나 묵은 토담집에서 저 기와 요처(要處) 고대광실(高臺廣室) 그 높은 집도 하고 많은데 하필이면 첩첩산중 두메산골 토담집에서 인물이 났다니! 하기야 저 아브라함 링컨은 통나무 집에서 났고 예수는 베들레헴 촌락 움막집 말 마구간에서 났다지. 아! 고금역사 이후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의 영웅열사 성현성자들이 다들 그랬었지 움막이면 어떠하고 토담이면 어떠하고 통나무 집이면 어떠하랴 그저 천품 좋고 재질 능하고 제 때 나면 그만이지 지자(知者)는 강을 좋아하여 강가에서 낳고 인자는 산을 좋아하여 산에서 난다지 그렇고 그렇고 말고 그래서 그런 곳에서 난거지 아! 전설에 얽힌 대둔산 영산준령 인대산 노령산맥 쭉뻗어내 맞닿은 저 두메산골 월명동 백년이나 묵은 토담집에서 인물났네 인물났어 작고도 작은 마을에서 지구촌의 큰 인물이 났네 (1989년 1월 16일 영감의 시-선생님의 과거와 미래를 회상하며) (3) 수십 번의 죽을 고비 월남전에서 수십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도 자기를 오늘날처럼 쓰기 위하여 특별히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정명석이 연못에서 목욕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베트콩들의 식수원이었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목욕하고 있었는데, 베트콩 3명이 따발총의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안 나와 베트콩들이 한국군에 자수하여 그 사실을 말함으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은 베트콩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는데 터지지 않았다고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막대기인 줄 알고 집었는데, 막대 수류탄이었다고 한다. 누가 갑자기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던졌는데 바위 구멍 속에 들어가 터져서 살게 되었다는 식이다. (4) 30개론 도표제작 30개론 도표를 금산에 있는 도표 화가에게 부탁하여 그리게 하였으나 자기에게 품삯 줄 돈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돈 대신 도표 하나하나를 설명하여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사람이 “당신 이 도표 가지고 나가서 성공 못하면 나한테 몽둥이로 맞아 죽을 줄 알아!”라고 하더란다. 그 말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처럼 들렸다고 한다. (5) 21년 수도생활 자기가 21년 동안 수도 생활한 것이 처음부터 21년 동안 하라고 했다면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조금만 더하면 군(郡)에서는 큰 소리 치겠다.” 그리고 “또 다시 조금만 더하면 도(道)에서는 큰 소리 치겠다.”고 하고, 그 기간이 끝나자, 또 다시 “조금만 더 하면 네 나라에서는 큰 소리 치겠다.”.... 또 다시 “세계에서는 큰 소리 치겠다.”고 했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21년을 수도생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다 못 배웠으나 앞으로 계속 배워가면서 사명 감당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6) 수많은 귀신들 한번은 정명석이 영안으로 보니까 대둔산부터 인대산까지 귀신들이 가득했다.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귀신들이었다. 그 귀신들이 하는 말이 ‘저 놈을 죽여야 한다. 저 놈이 세상 나가면 우리들은 끝장이다’고 하면서 죽이는 시늉을 하더란다. 그러나 그 귀신들이 막상 몇 미터(m)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정명석의 이런 비슷한 간증들은 참으로 많다. (7) 영계 학교에서 1등하다 정명석이 영계학교에 처음 가보니 세상의 날고 기는 도사, 신령한 사람들은 다 와 있었다고 한다. 처음 수업을 듣는데 거의 한 글자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가면서 조금씩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다 알겠더란다. 영계학교에 올라갈 때마다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은 정명석 자기 혼자 남게 되었고, 그래서 1등 하여 재림 사명 받아왔다고 한다. (8) 붓 받은 사건 한번은 정명석이 예수님께서 그림을 그리는 대로 따라 그리고 있었다. 동그라미 그리면 동그라미 그리고, 세모 그리면 세모...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갑자기 사라졌다. 얼굴을 들어보니 저기 앞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려고 하더란다. 그래서 가시려면 가신다고 말이라도 하고 가야할 것 아니냐?고 했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제 너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다. 이것이 마지막 붓이다”고 하면서 여러 개의 붓 가운데 가장 큰 붓을 뽑아서 던져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정명석이 그 붓을 받았다고 한다. 정명석은 그 붓이 무엇일까 고민하였고, 화가가 되라는 말씀인가 생각하다가 누가복음1장 2절에 데오빌로 각하에게 말씀을 적으려고 붓을 들었다는 글을 읽고 아하 말씀의 붓이로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정명석은 그 뒤로 입만 열면 말씀이 술술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가 예수님께 받은 붓은 가장 큰 붓으로서, 더 이상 해석할 것이 없는 마지막 나팔과 같은 큰 말씀의 붓이라고 하였다. (9) 꿈에 구직 여행을 떠나다. 정명석이 하루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고 기도하다가 잠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이 나타나서 밤새토록 수십 군데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장로님이 경작하고 있던 제주도 감귤 밭이었다고 한다. 그 장로님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싱글벙글하며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에 오셨습니까 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는 사람 하나 네 농장에 맡기려고 데리고 왔다고 하더란다. 그러자 그 장로는 예수님의 부탁인데 자기가 어떻게 거절하겠느냐며 얼마든지 맡기라고 하더란다. 그러나 정명석이 가만히 보니까 귤 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평생토록은 못하겠더란다. 그래서 싫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아무 부담 갖지 말고 네가 싫다면 싫다고 하라시며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 한다. 그러기를 40-50군데 했는데도 결국은 다 못 마땅하더란다. 그래서 정명석이 저는 평생 예수님만 따라 다닐래요 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 따라 다녀도 좋으나 배고플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예수님만 따라가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사명하게 되었노라고. (10) 골키퍼 하다가 군화 발에 채인 사건 정명석이 월남 다녀온 후 동네에서 축구시합이 있었다. 그때 정명석이 골키퍼를 하고 있었다. 정명석이 하도 날렵하게 볼을 잡아내곤 하자 상대방 선수가 일부러 정명석의 머리를 군화발로 있는 힘껏 찼다고 한다. 정명석은 떼굴떼굴 굴러서 쓰러졌다. 주변에서 죽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 누워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단다. 그 사람이 너를 찬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찼다고 하시더란다. 왜 차셨느냐고 물으니까, 배신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냥 죽여야 하는데 죽는 이유라도 알고 죽이려고 왔다는 것이다. 무엇이 배신입니까? 고 묻자 왜 네가 아나운서 되려고 하였느냐고 물으시더란다. 정명석은 아나운서가 되어 방송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였다고 한다. 자기가 예수님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한 것인데, 그게 어찌 배신이란 말입니까? 아니다. 배신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것도 배신이다. 나는 너를 세계적인 사명을 주어 쓰려고 했는데 무슨 난데없는 아나운서냐 라는 것이다. 정명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한번만 살려주면 세상사람 다 전도하여 드릴 테니 살려달라고 간구했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예수님의 화난 얼굴이 살짝 돌아오면서 어떻게 전도하려느냐? 고 묻더란다. 그래서 한명을 제대로 가르쳐서 구원시키고 그가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해서... 나중에는 전도할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 이와 같이 전도해서 지금 JMS단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때 형들은 자기가 죽을 줄로 알고 죽어도 한이나 없게 수술하자고 하더란다. 그래서 자기는 저 수술대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여 수술 받지 않고, 예수님이 고쳐줘서 살았다고 한다. 형들이 발로 찬 사람을 살인미수죄를 적용하여 벌하려고 하였으나 자기는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사람을 용서해 주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지금 세상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아나운서가 되어 이렇게 새 시대 새 말씀을 전하게 되었노라고 간증하였다. 다른 교주들도 이와 유사한 간증들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대로 다 하고 있다. 정명석의 형들은 자기 동생이 축구하다가 발에 채인 뒤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모친은 그 외에도 정명석이 옛날에 미친 행동을 했었다고 말하였다. (11) 정도령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정명석은 자기야 말로 정도령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정(鄭)씨가 같고, 도령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령은 진리를 전하는 사람인데 자기는 진리를 전하고 있지 않느냐? 자기야 말로 결혼하지 않았고, 진리를 전하는 정도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대산 밑에 옛날부터 큰 사람이 난다는 전설이 있는데, 자기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둔산에서 두 문을 통과하여 도를 닦는 사람이 도인이 되어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원효가 문(門) 하나를 통과하여 도를 닦았는데 그곳이 대둔산의 태고사 절이라면, 자기가 기도한 곳이 바로 독수리 봉인데 그곳은 돌 문(門) 두 개를 통과해서 들어가는 장소라고 하였다. 자기가 그곳에서 기도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였다. 자기가 깨달은 도는 마치 “설한풍(雪寒風) 속의 생화(生花) 한 송이”와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셨다고 한다. 1999년 8월 초 정명석은 프랑스 파리의 상공에 떠 있었다. 상공에서 바라본 파리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때 음성이 들리기를 “겉은 천국이나 속은 지옥이로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해였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거의 다 바캉스를 떠나고 도시 전체가 텅텅 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정명석은 그곳에서 체전을 열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와서 이런 평화의 체전을 열고 있으니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의 주인공이 아니겠느냐고 말하였다. 정명석은 자기를 성경의 재림예수로 믿었기 때문에 한국의 정도령도 자기이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의 주인공도 자기라고 믿었던 것이다. 정명석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그 지역의 전설이나 예언이 있다면 그것은 전부 자기를 두고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1)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입니다.)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 ▲ 김경천 목사 (전. JMS 부총재) 1. JMS란 무엇인가? JMS란 원래 정명석의 영어이니셜이다. 그래서 초창기의 회원들은 가슴에 "JMS"라는 뱃지를 달고 다녔었다. JMS는 정명석의 이니셜이 분명하지만, JMS측 사람들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새벽별(Jesus' Morning Star)의 이니셜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JMS측에서는 계2:28에서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이긴 자에게 새벽 별(morning star)을 주리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들이야말로 바로 새벽별을 받은 이긴 자들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공식명칭도 "세계청년대학생MS연맹"이라고 하였다. 정명석은 JMS단체의 이름을 여러 번 바꾸었다. 방송이나 언론에 부정적으로 비칠 때마다 바꾸곤 하였다. 처음에는 애천 교회로 시작하여, 세계청년대학생MS연맹, 국제크리스찬연합, 기독교복음선교회로 이어지고 있다. 법인으로는 동서선교회가 있다. 동서선교회 이름으로 월명동 수련원 땅을 관리하고 있다. 월명동(정명석의 출생지)은 외부명칭은 수련원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성지 땅’으로 부른다. JMS교회들은 예수교 감리회로 간판을 걸기도 하고, 장로교라고 달기도 한다. 그리고 JMS교회는 간판이나 십자가 없이 창문에 교회 이름만 썬팅으로 마무리하고, 자기들만 알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신입생들은 처음부터 예배에 참석시키지 않는다. 되도록 30개론 다 듣고 수료해야 참석하게 한다. 2. 정명석은 누구인가? 1945년 3월 16일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서 정팔성과 황길례 사이에서 6남 1녀 중 3남으로 출생하였다. 위로 장남 정oo목사(성결교)와 차남 정oo목사(통합) 등이 일반교회 목사인 기독교집안에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 집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장남이 어려서 동네에서 어린이들끼리 ‘춘향이 놀이’(무당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쥐고 있던 대가 흔들리며 ‘나는 베드로다. 예수를 믿어라’는 음성을 들으면서부터라고 한다. 정명석이 태어난 그 동네는 일제 때 금 광산으로 인해 제법 북적거리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화전민들만 남아 살던 지역으로 집이라고는 3채 밖에 없던 두메산골이었다. 형들은 공부하러 도시로 떠나고, 동생들도 돈 벌러 다 떠나고, 홀로 늦게까지 남았던 정명석은 나무하러 가서 기도하고, 굴에서 기도하고, 대둔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고 한다. 한번은 “나는 못 배웠습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나는 못 생겼습니다”라고 신세한탄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때, “누가 아니래?! 그렇지만 이제부터 내가 너를 가르쳐 주마”라고 하더란다. 그러면서 “너는 처음에는 창피하지만 배우고 나중에는 선생의 선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굴속에서 주로 기도를 하였는데, 가을에 굴에 들어갔다가 그 이듬해 나오기도 하면서 초인적인 수도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틈틈이 성경을 많이 읽었는데, 한번은 너무 어려워 땅에 묻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 읽을 것이라고는 만화책도 없었고, 다만 초등학교 교과서와 성경 책 밖에 없어 성경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성경책을 2000번 가량 읽었다고 자랑하였다. 정명석은 두 번씩이나 파월장병으로 월남 전쟁을 경험하였다. 월남전에서 수 십 번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월남 전쟁은 메시야인 자기를 연단시키기 위해서 발생했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바깥에서 보면 미치광이겠지만, 그를 재림예수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엉터리 주장도 진리처럼 통한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역사(歷史)를 구속사(救贖史)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정명석은 주장하기를, 2002년 한국의 월드컵 4강은 자기가 재림예수라는 표적이라는 것이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적이 되듯이, 정명석이 ‘이 시대의 사명자’라는 표적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다시는 한국에서 월드컵도 열리지 않고, 한국이 4강까지 가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2012년 영국올림픽에서 홍명보호가 3위 성적으로 동메달을 땄다. 그리고 한국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도 개최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한국의 월드컵 4강은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과 정명석이 무슨 관련성이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강력한 표적이지만, 한국이 월드컵 4강을 하고, 심지어 우승할지라도 그것이 정명석이 재림예수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명석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신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마치 예수님께 하나님의 신이 강림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자기에게 하나님의 신이 들어왔다고 주장하며 재림예수니, 보혜사 성령이니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만 40명도 넘는다. 전부 자기네 교주만이 진짜 재림예수라고 믿고 있으나, 예수님 말고는 전부 가짜 들이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5)”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뿐이다. 정명석은 자기를 기도 많이 한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대둔산에서 기도할 때는 너무 추워서 옆에 있던 소나무는 얼어 죽었는데, 자기는 살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까맣게 된 손톱을 보여주며 그때 동상 걸린 흔적이라고 하였다. 모든 교주들이 하나같이 고생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여 마침내 계시 받았다고 하는 것은 일맥상통,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자기가 한참 기도할 때는 번뜩하면 이산, 번뜩하면 저산, 자기가 어느 산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 자기 몸이 그 산에 가 있더라는 것이다. 소위 축지법까지 썼다고 자랑하였다. 자기가 전주에서 전도하다가 밤에 출발하여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려 진산까지 와서 새벽기도에 참석했다고 한다. 참고로 전주에서 진산까지는 자동차로 달려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다. 그러나 나는 30년 가까이 그의 옆에 있었으나 그가 축지법 쓰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다만 이해하려 하다 보니, 지름길로 가서 좀 빨리 이동한 것을 두고 말하는가, 아니면 축구를 남보다 오랫동안 하는 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이해하였을 뿐이다. 정명석은 그 외에도 거짓말(모사)과 과대포장이 심한 사람이다. 항상 부풀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 따르는 회원이 2만 명쯤이면 외부 사람들에게는 15만 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명석은 자기증거와 자기자랑에 목메는 사람이다. 항상 자기가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며 자기 증거 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늘 자기를 증거 하라고 독려하였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이 증거 잘못 해서 죽었다고 하면서...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정명석은 결코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아니다. 간혹 증거 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잠깐 이용하는 것뿐이다. 심지어 악을 행할 때도 "예수님도 그랬다"고 물 타기 하거나, "예수님께서 시켜서 하는 일이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악용하였다. 3. 30개론의 특징 1) 성경을 비유로 읽는다. (1) 오병이어 기적 실제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인 것이 아니라, 그날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오천 명이라는 것이다. 열두 광주리는 열두 사도를 의미한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날 어린 아기가 내미는 도시락을 바라보시고, 떡을 떼고 또 떼서 사람들을 먹이신 것이 아니라, 도시락은 한쪽에 놓고, 그 대신 말씀을 전하여 그들로 생명의 떡으로 배불리 먹였다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들이 실제 떡을 먹고 배불렀다면 예수님을 떡집 아들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들었기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정명석의 비유론 해석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매혹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오병이어로 5천명이 아니라 5만 명의 사람이라도 먹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말씀의 떡만 먹고 끝난 사건이라면 표적이라고 하면서 굳이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오병이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실제 표적의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성경을 비유로 풀거나 가현설(假現說)적으로 푸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고, 사탄의 미혹이다. (2) 베드로와 물고기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셔야 했을 때, 성경의 문자대로 베드로가 물고기 한 마리 잡아 아가미에서 돈을 빼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다는 세상을 비유한 것이고, 물고기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누구 돈 좀 없냐고 물었을 때 먼저 대답하여 돈을 꺼낸 준 사람이 물고기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도 돈이 필요할 때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 필요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물고기라는 것이다. 베드로가 바다에 나가 물고기 잡아서 돈을 꺼내 어떻게 바쳤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가르침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성경의 기적들이 억지로 믿을 필요도 없이 술술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어려워서 못하실 일이 있겠는가(창18:14).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만약 정명석의 말대로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돈 꿔서 낸 것이라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에는 실제적으로 기적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평소 설교자는 확신을 가지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명석의 이와 같은 비유적인 해석방법은 성경의 기록을 실제역사로 보지 못하게 한다. 결국 재림에 대한 예언도 비유로 읽게 되는 바, 사람을 재림예수로 믿고 따르게 된다. 성경은 이와 같이 억지로 푸는 자들에게는 멸망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한다(벧후3:16). (3) 공중휴거 정명석의 공중휴거는 전반기와 후반기가 다르다. 전반기에는 공중은 하늘공중이 아니라 지구를 공중이라고 본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새 역사로 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구약사람이 신약 사람 되는 것이고, 신약사람이 성약사람 되는 것이야말로 들림 받는 것이다. 구름은 깨끗해진 많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약사람들(기독교인들)이 정명석을 재림주로 믿고 따르는 성약사람들(JMS)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휴거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애굽에서 모세를 따라 나선 것이 휴거이고, 광야에서 여호수아를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휴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휴거가 두 번 일어난다고 수정하였다. 육적 휴거(1차 휴거)와 영적 휴거(2차 휴거)가 있다는 것이다. 육적 휴거는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정명석을 믿고 따르는 것이 육적 휴거요, 영적 휴거는 육적휴거를 이룬 사람들 중에 말씀 듣고 실천하여 빛나게 된 영혼들이, 성자본체가 하늘에서 영으로 내려올 때 올라가는 것이라고 한다. 평소 휴거에 자신이 없거나 거부감을 가졌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가르침이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휴거는 두 번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몇 년 걸려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단번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고전15:51). 성경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 예언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하나님께는 사람들처럼 그 일이 어려운 일이냐 쉬운 일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약속하신 일이라면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전부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불러 세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롬4:17). (4) 선악과 정명석은 선악과를 비유로 본다. 하나님께서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인간들의 입장에서 죽는다고 해도 따 먹을 것은 무엇인가? 남녀 성관계 아니겠는가? 하와가 따먹고 잉태하는 고통을 얻었는데 무슨 과일을 먹어야 잉태하는가? 입으로 따먹었다면 마스크를 하고, 손으로 따먹었다면 장갑을 꼈어야지 왜 하체를 가렸는가? 하체로 따 먹었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따먹으면 죽을 과일을 만들어놓고 시험하는가? 왜 인간은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기어코 따먹었는가? 생식기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인간들은 따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하와가 어린 나이에 성교하여 원죄를 지었듯이, 오늘날도 눈을 들어보라. 전부 온 세상이 성적인 문제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가? 정명석은 선악과는 여자의 성기를 비유한 것으로 푼다. 정명석은 이와 같은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육이 온전히 성장하기 전에는 절대로 성교하면 안 된다고 통제한다. 자기의 허락 없이 성교하는 사람들은 원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타락론으로 인하여 JMS 회원들은 자유롭게 이성교제를 하지 못한다. 이성교제 하다 보면 타락하게 되니까 아예 원천봉쇄 하는 것이다. 예배시간에도 남녀 따로 따로 앉는다.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강요한다. 10년이고 20년이고 정명석의 허락 없이는 결혼할 수 없다. 세상에 이런 통제는 북한 공산주의에도 없다. 그래서 허락받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결혼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합동결혼식이다. 간혹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스스로 결혼한 사람들은 JMS를 떠나야 하고(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추방이다), 떠나지 않고 JMS에 남아 있더라도 낮은 급 구원을 받게 되고, 옆의 회원들로부터도 갖은 눈총을 받으며 평생 죄지은 자의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정명석은 타락론을 강의할 때, “기독교 목사들은 밤마다 선악과 따먹으며 원죄 짓고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JMS 회원들은 자기들만이 원죄를 해결하고 가장 깨끗한 주님의 신부라며 자긍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JMS 회원들은 엘리트의식과 영적 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정명석은 성관계 하지 말라고 푸니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양립할 수 없다. 정명석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악과는 영원히 따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 따먹게 하려고 하셨다고 변명한다. 그런 가르침은 통일교와 똑같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 선악과가 익은 다음에 따먹으라는 말씀이 있는가? 이와 같이 이단들은 성경에 없는 말을 지어내서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이득(利得)을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벧후2: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利)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성경에는 비유도 있지만 핵심은 전부 하나님의 약속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 만약 성경을 정명석처럼 비유로 읽는다면 해괴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트린 사건은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문자 그대로 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정명석의 비유론 식으로 해석한다면 신부가 첫날밤을 위해 향유옥합을 준비하였듯이, 처녀가 남편을 위해 평생 간직한 것이 무엇이냐? 바로 처녀의 순결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향유옥합을 깨트려라’ 라는 것은 ‘처녀의 순결을 내게 바쳐라’가 된다. 정명석에 의하면 자기는 완성한 아담이다. 그렇다면 익은 선악과는 따먹어도 괜찮다. 자기는 따먹어도 원죄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정명석의 타락론은 그를 희대의 성범죄자가 되게 한 것이다. 선악과는 따먹으면 죽는 실제 과일이었다. 절대 여자의 성기가 아니다. (5) 불 심판 정명석은 불 심판을 말씀심판이라고 푼다. 자기가 전하는 말씀 들으면 구원, 안 들으면 심판받고 지옥 간다. 그러므로 자기가 지금 불 심판을 감행하고 있으니 재림예수라는 것이다. 꿩 잡는 것이 매라는 논리다. 물론 성경에는 말씀을 불로 비유한 것도 있다. 렘23:29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그러나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라.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멸망 받았듯이,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하다 하셨다. 눅17:29-30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러므로 재림 때의 불도 실제 불이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3장의 7절 말씀을 보자.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개역한글> 이단들은 여기서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른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불 심판은 말씀심판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자. 동일한 말씀이란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벧후3:5). 노아 홍수 심판 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물로 심판하셨다(벧후3:6). 그와 같이 종말에는 불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불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결국 동일한 말씀이란 말씀으로 천지 창조하시고, 말씀대로 노아홍수 심판하셨던 하나님의 그 말씀. 그 동일한 말씀이 종말에도 말씀하신대로 불 심판 하실 것이다. 결코 비유가 아니다. 벧후3:7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 버리고 말 것입니다. <공동번역> (6) 구름 정명석은 구름을 사람으로 푼다. 예수님께서 영으로 자기 몸에 들어오셔서 자기를 타고 나타나셨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구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구름떼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고 따르니 그것이 바로 구름 타고 오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육신을 타고 나타나셨고, 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따르니, 자기가 바로 구름타고 오신다는 재림예수라는 것이다. 거짓말이다.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예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구름이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천사들이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행1:11)고 하셨다. 그러므로 실제 구름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 7절에도 “보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라고 하였다. 혹자가 나타나 ‘예수께서 구름타고 오시리라’는 명백한 역사적 예언을 불신하고, 비유로 해석하여 자기가 바로 구름타고 온 재림예수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정명석도 예외는 아니다. 이단들은 엘리야가 온다고 하더니 세례요한으로 왔듯이,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하셨으나 전혀 다른 사람으로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도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셔서 구름타고 승천하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이 다시 하늘 구름을 타시고 영광중에 오시기 때문이다. 초림 예수와 재림 예수는 동일한 분이시다. 결코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 않으신다. 히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 시대성(時代性)으로 읽는다. 정명석은 성경을 시대성으로 읽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시대성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은 정명석으로, 마리아는 정명석의 모친으로, 베들레헴은 월명동으로 자동 번역하여 읽으라는 말이다. “너희가 구원을 얻을까 하여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은 곧 나를 증언하느니라(요5:39)”는 말씀을 읽는다고 치자. 그 성경을 읽을 때마다 신구약 성경이 정명석을 증언하고 있다고 읽는다. ‘새벽별을 주리라’는 정명석을 재림주로 맞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흰 돌을 주고 그 위에 나의 새 이름을 쓴 것이 있나니 받는 자 외는 모르더라(계2:17)”는 계시록의 말씀도 흰 돌은 정명석, 예수님의 새 이름은 정명석, 이렇게 읽으라는 것이다. 마치 신약성도들이 구약성경 읽을 때 선지자들의 예언을 예수님으로 해석하면서 읽듯이 말이다. JMS회원들은 “받는 자 외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는 말씀도, 자기들만 선생님을 알아보았기에 예언이 성취되었다며 감격감사 한다. 동방의 독수리도 답을 정명석이라고 믿기 때문에 당연히 동방은 한국, 독수리는 정명석으로 읽혀진다. 정명석은 항상 자기를 예수님과 빗대서 설교하기 때문에, 정명석을 배신하는 것은 예수님을 배신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정명석의 어떤 약점이 들어나도 정명석과 등 돌리기는 쉽지 않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들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몰라서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오늘날도 기성교회 목사들이 “선생님”을 몰라보아 심정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는 것이다. 십자가도 시대마다 다르다고 한다. 모세는 구리 뱀 십자가,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 재림주는 심정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 밖에 없다. 모세의 구리 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한 것으로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았듯이,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요3:14-15). 모세가 만든 장대 위의 구리 뱀은 모형(模型), 예수님의 십자가는 원형(原型). 다른 말로 하면 그림자와 실체. 그리고 끝이다. 더 이상 다른 십자가는 없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책이고, 십자가의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다(벧후1:25). 재림예수는 심판 주로 영광중에 오시기 때문에 초림 때와 같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이 없다(히9:28). 교주들이 실정법을 어겨 감옥에 가게된 것은 자기 죄 값으로 간 것이다. 그러하기에 자기는 지금 ‘세상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졌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십자가는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완전한 구원이다(히10:14).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모형으로 삼는 또 다른 십자가는 없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은 시대성으로 읽으면 절대 안 된다.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베들레헴에 태어나셨고, 그 예언은 단일회적으로 성취되었다. 그것을 월명동으로 시대성으로 재해석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나귀새끼 타고 오신다(슥9:9)는 예언도 그대로 다 이뤄졌다. 베들레헴을 자기가 태어난 동네라고 읽고, 구름을 비유로 푼다면 세상 누구라도 다 재림예수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시대성을 두고 읽으라는 것은 초림주는 예수, 재림주는 정명석 자기라고 말하고 싶은 내용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시대성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3) 영적으로 읽는다. - 부활문제 정명석은 예수님께서 육신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이 부활하셨다고 가르친다. 육신이 살아나셨다면 왜 낙향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몰라봤겠는가? 육신이 살아나셨다면 왜 제자들과 함께 역사를 더 펼치시지 않고 사랑하는 제자를 떼놓고 승천하셨는가? 무덤이 비었다고 그것이 육신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히틀러 시체가 없다고 히틀러가 부활했다는 말인가? 6.25때 죽은 시체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 육신이 부활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영이 부활했기 때문에 잠긴 문으로도 들어오실 수 있었고, 동시에 여러 군데 나타나실 수도 있었다. 고기 잡수시던 모습도 영적 현상이다. 조상 영들도 제사상에 나타나 음식먹지 않느냐?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도 육신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이 부활한 것이다. 육이 부활했다면 왜 예수님의 12제자의 명단에도 없고, 그 뒤에 특별히 뭘 했다는 말이 없느냐? 엘리야도 육신이 부활했다면, 변화산상에 나타난 엘리야는 무엇이냐? 기독교인들은 승천한 엘리야는 육이라고 하면서, 변화산상의 엘리야는 왜 영이라고 하느냐? 육으로 승천해서 영으로 재림했다는 말이냐? 아니다. 승천한 엘리야도 영이고 변화산상의 엘리야도 영이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도 영으로 부활하셨으니 영으로 재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육신도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만 부활하여 구약시대는 선영계, 신약시대는 낙원, 성약시대는 천국으로 시대급의 구원대로 가는 것이다.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도 물과 같은 밋밋한 율법 말씀이 달콤한 신약말씀의 포도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날 포도주가 떨어진 그들에게 질펀하게 포도주를 마시게 한 것이 아니라, 그날 설교를 통하여 말씀의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중 포도주가 더 좋았다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신 것도 실제로 걸으신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 바다를 유대교인들처럼 율법의 노(櫓)로 저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말씀으로 걸어가니 사람들이 귀신(이단)이라고 하였다. 그 바다에서는 귀신 출현설이 있었고, 세상 바다에서는 이단출현설이 있기로 예수님을 보자마자 귀신(이단)이라고 했던 것이다. 자기에 대해서도 이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역시 성경의 역사를 전부 거짓말로 만드는 것으로 절대로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다. 성경에 기록된 실제적 역사를 영적인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은, 초대교회 때 예수님의 육체를 환상이라고 해석하여 이단으로 정죄된 영지주의의 가현설과 똑 같은 주장이다. 성경의 기적은 실제역사이다. 4) 축소 확대로 읽는다. 한 가지 설명하고 그와 같이 그러하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런 교육을 천재적 교육이라고 자랑한다. 하나를 깨닫게 해주면 열 가지 백가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 앞에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을, 하나님 앞에 모세와 엘리야라고 푼 후 어느 시대나 다 그러하다고 말한다. 모세와 여호수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루터와 칼빈, 남자와 여자... 축소하면 왼팔과 오른팔, 왼쪽 귀와 오른 쪽 귀, 왼 눈과 오른 눈, 정맥과 동맥, 자전과 공전, 암술과 수술... 확대하면 초림주와 재림주. 초림주는 예수 재림주는 정명석. 결국 예수님과 자기는 하나님 앞에 두 감람나무라고 한다. 자기를 재림주라고 말하기 위해서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계11:4)는 증인되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지 어떤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해석되어 있다(계1:20). 둘은 증거의 숫자이다. 그러므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주님을 증거 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 감람나무란 이단들의 주장처럼 문선명과 정명석, 혹은 박태선과 문선명, 이만희와 홍종효... 이와 같은 어떤 특정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더 확대하여, 가장 큰 두 감람나무는 성부 아버지와 성령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즉 그 말은 하나님도 부인이 있다는 말이다. 성경을 축소 확대하면 그와 같이 황당무계한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성경은 더하거나 빼지도 말라고 경고하였다(계22:18-19). 하나님께 무슨 부인이 있다는 말인가? 부부신론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나 나오는 이방신론이다. 동방의 독수리 예언도 페르샤의 고레스로 성취되었다. 그것을 고무줄처럼 늘려 시대성이니 축소 확대니 하면서 한국의 정명석으로 풀면 안 된다. 이미 성취된 예언이다. 정명석처럼 성경을 읽으면 본문의 해석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었다가 하게 되고, 성경을 맘대로 더하고 빼서 읽게 된다. 성경은 더하거나 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다(계22:18-19) 바울도 기록된 것 외에 넘어가지 말라고 교육하였다(Do not go beyond what is written.) 고전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5) 영적체험을 바탕으로 해석한다. (1) 예정론을 뗄 때 한번은 정명석이 인삼 지주목을 사기 위해 쌀 40가마 값되는 돈을 아는 사람에게 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사기치고 나무를 갖다 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 사람은 정명석이 보는 앞에서 차용증서를 불태우고, 등잔대로 때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명석은 하도 기가 막혀서 망연자실 하고 있다가, 주일날 청주서문교회에 갔는데 그날 설교제목이 예정론이더란다. 정명석은 그렇다면 내가 사기 당한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란 말인가? 그러면 하나님께 따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느 농가에서 그대로 엎어져서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앞에 8등신의 예쁜 아가씨가 서 있더란다. 그런데 손은 조금 덜 예쁘게 보였다고 한다. 그 때 음성이 들려서 “네가 이 아가씨와 결혼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여자 전부와 결혼하는 것이지, 손이 안 예쁘다고 손만 자르고 데려 가겠느냐? 눈이 예쁘다고 눈만 뽑아서 데려가겠느냐?” 하더란다. 그러면서 그 아가씨가 지구로 확대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는 전체 인간을 예정한 것이지, 어찌 일부만 예정 하였겠느냐?고 하시더란다. 그리고 사람의 구원도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어찌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구별하여 놓았겠느냐? 라고 하시더란다. 구원도 조건대가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으심도 안 죽으실 수도 있었는데 사람들의 무지로, 그리고 세례요한의 증거부족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한다. 정명석은 그런 식으로 도표 하나하나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2) 타락론의 인봉을 뗄 때 정명석은 새벽에 기도 굴에서 나오면서 선악과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맞아 이거야 하면서 주먹으로 돌을 쳐서 피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 그거 아니야, 너 그거 잘못 깨달았어!”라고 하시더란다. 그래서 자기는 “아니기는 뭐가 아녜요? 선악과가 여자 성기 맞다”고 하면서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메시야인 내가 아니라고 해도 너는 끝까지 맞다고 주장했지? 잘했다. 그와 같이 네가 이 진리 갖고 나가면 세상 사람들이 다 들고 일어나서 네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메시야인 내가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하면서 밀어붙였듯이, 너는 앞으로도 계속 하여 포기치 말고 밀고 나가라”고 하시더란다. “주님 제가 보는 것이 태양 맞지요? 그와 같이 선악과도 여자 성기 맞습니다.” 주님은 “그래 맞다. 너는 내가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주장했듯이, 세상에 나가 이 진리를 전할 때 그 누구가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하며 하나하나 이해시키며 가르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해석을 하여준 주님이라는 영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성경을 이렇게 엉터리로 가르쳐 준 영이 절대로 예수님일 리가 없다. (3) 한때 두때 반때 한때 두때 반때는 JMS회원들이 최고로 자랑하는 교리이다. 정명석은 다니엘서를 읽을 때마다 한때 두때 반때가 늘 궁금했었다. 1972년 남한산성 부근 어느 교회의 사찰집사를 하고 있을 때, 눈이 허벅지까지 온 새벽이었다. 정명석은 눈을 쓸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머리가 총명해지며, 미국 돈을 한국 돈으로 환산하듯이, 한때 두때 반때는 환산해야 하느니라. 그러면서 한 때는 1년, 두 때는 2년, 반 때는 6개월로 풀어야 한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한때 두 때 반 때는 날짜로 고치면 1260일이다. 1일을 1년으로 환산하면, 1260일은 1260년이 된다. 그리고 성경의 미운 물건은 오마르 사원이고 그것은 688년에 세워졌다. 미운 물건을 세울 때 688년부터 1260년을 더하면 1948년이 나온다. 1948년은 육적 이스라엘의 육적해방, 그 다음 688년에 1290년을 더하면 1978년, 19789년은 영적 이스라엘인 기독교의 영적 해방, 자기가 1978년부터 말씀 전하여 기독교를 신약 주관권에서 해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1978년 6월 이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6월부터 사명을 펼치기 시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명석은 1948년이 맞았음으로 1978년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688년에 1335년을 더하니 2023년이 나온다. 그때가 정명석의 사명이 끝나는 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1일은 1일이다.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신다고 하시고 그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노아 홍수 심판 때 40일 동안 비가 온다고 하셨는데, 문자 그대로 40일 동안 비가 왔다. 1일 예언이 1년으로 풀린 적이 없다. 그리고 미운 물건은 오마르 사원이 아니다.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병행구절을 보자. 눅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예수님께서 다니엘서의 멸망의 가증한 것을 (로마) 군대라고 해석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정명석의 미운 물건에 대한 해석은 틀렸다. 그리고 오마르 사원이 688년에 세워진 것도 아니다. 브리테니커 사전에 의하면 685년부터 691년도 까지다. 시작년도 틀리고 준공년도 틀렸다. 더구나 한때 두때 반때는 정명석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간된 한에녹의 ‘영원한 복음’에 나온 도표와 똑같다. 표절을 한 것이다. 정명석은 1978년부터 21년 전반기를 뛰면 1999년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같은 일이 자기에게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검찰에 고소되고 방송에 나고 제자들은 다 도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1999년 1월에 실제로 방송에 나오고 검찰에 고소되고, 제자들은 많이 흩어졌다. 정명석의 예언이 맞은 것이다. 그러나 메시야 선포를 여의도 광장에서 멋들어지게 하려고 했는데 방송을 통해서 원치 않는 방향대로 되었다고 했다. 정명석은 자기 사건을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우측 강도요, 자기를 조롱하고 비아양 거리는 사람을 좌측 강도와 같다고 하였다. 자기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도둑같이 심판해 버리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한일 월드컵의 해인 2002년 모든 법적 문제가 끝나고 부활하여 후반기 21년을 뛴다고 하였다. 그러나 끝내 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그는 홍콩에서 중국으로 밀항한 후 숨어 지내다가 급기야 체포되어 10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지금은 부활이 2002년이 아니라 2012년이라고 역사론을 수정한 상태이다.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그러나 정명석은 법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2002년 부활한다는 예언도 맞지 않았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종말을 기다리는 하나님의교회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전문입니다.) 종말을 기다리는 하나님의교회 ▲ 탁지일 교수(현. 부산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교수) 1. 성령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은 한국사람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하나님의교회)는 한국인 남녀를 각각 “성령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으로 신격화한다. 설립자인 안상홍(安商洪)을 “재림 예수” “재림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으로, 그리고 1985년 안상홍 사후 후계자로 등장한 장길자(張吉子)를 “어머니 하나님” “새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 “성령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로 믿고 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을 “안상홍님 지으신 모든 세계”로 바꿔 부르고, “안상홍 하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포교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상홍님”에게 기도하고 “아버지 안상홍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십자가를 세우지 마세요. 일요일도 거짓말예요. 우리는 이 세상 교회 없는 어머니도 있죠. 우리의 구원자 안상홍님도 계신답니다. 안상홍님 믿어야 하늘나라에 가죠”라는 노래를 가르친다. 안상홍과 장길자 두 사람이 하나님으로 등장한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교회는 창세기 1장 26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 나오는 “우리”라는 복수형 단어를 성경적 근거로 들고 있다. 즉 여기서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히브리어 “엘로힘”은 복수 명사이며,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으니, 따라서 하나님은 복수인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엘로힘(אֱלֹהִים)”은, “엘로아”(אֱל֫וֹהַּ)의 복수(gods)로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한분 하나님(the supreme God)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하나님의교회는, 부정확한 성경원어 해석을 근거로, 한국인 남녀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고 합리화하는데 이르게 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표면적으로는 안상홍과 장길자에 대한 신격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교회 실세는 김주철(金湊哲) 총회장이다. 하나님의교회 정관 제28조에 따르면, “총회장은 성령 안상홍 하나님께서 세우신 김주철님이시며, 영구직이다.”라고 명시하고, 총회장의 직무에 대해, “모든 회의의 의장이고, 진리를 전수하여 반포하는 책임자이며, 자산에 대한 최고 책임자로 총회 재정을 감독하고, 정관 및 규정의 최종 해석권자이며, 권징의 최고결정권자이고, 총회 운영부서 및 지역 교회를 통괄하는 책임자”라고 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안상홍과 장길자는 겉으로만 신격화된 인물들일뿐, 막강한 절대 권력을 가진 김주철 총회장이 바로 하나님의교회 실세라고 할 수 있다. 2. 반복되는 시한부 종말 주장 하나님의교회 설립자 안상홍의 교리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은, 장길자와 김주철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www.watv.org)가 아니라, 안상홍의 아들이 이끌고 있는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www.ncpcog.co.kr)이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안상홍의 교리를 계속 변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공식홈페이지에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근본뿌리와 진리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세계선교복음협회(증인회)는 1985년도 이후에 안상홍님의 가르침에도 없고 성경에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하신 적도 없는 어머니하나님을 세우고 또한 시대별 구원자와 새이름이라는 교리의 바탕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안상홍님의 함자로 기도를 올리고.... 현재는 살아생전 안상홍님의 책자와 육성말씀의 가르침보다는 그 곳에서 만든 교리를 바탕으로 책자를 만들어 어머니하나님을 증거하는데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이 안상홍의 가르침을 그대로 준수하고 있는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홈페이지에는 안상홍의 모든 저서, 친필로 기록된 설교문과 교회연혁, 육성설교, 유품, 사진 등을 전자책 및 그림파일 형태로 게시하고 있어, 가장 정확한 안상홍의 원래 교리 연구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들 자료들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 교리는 시한부 종말론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1988년은 세상종말”이라고 주장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또한 안상홍은 그의 저서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에서, 1988년뿐만 아니라 2012년도 종말의 때라고 주장했다. 안상홍은 이 책에서 “서기 1844년에서 168년을 합하면 서기 2012년이 마지막 끝 날이 되겠습니다.”라고 주장했는데, 1844년은 하나님의교회가 뿌리를 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가 주장했던 종말의 연도이고, 168년은 모세가 성막을 세우는데 걸린 168일을 의미하며, 그리고 1844에 168을 더하면 2012년이 종말의 해라는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1988년과 2012년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하나님의교회는 시한부 종말론 주장을 줄곧 부인해왔지만, 최근 수원지방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안상홍 사망 이후 1988년 종말이 온다는 취지의 전도서를 만든 바 있고, 1999년에는 신도들에게 Y2K나 1999년 지구멸망예언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으며, 하나님의교회 내에서 2012년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주장 또한 제기되었던 점”을 이유로 들어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론이 허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하여, 안상홍은 교회 내에서 여성을 신격화하거나, 지도력을 갖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83년 측근 엄모 여전도사로 인한 분란에 대해, “예루살렘을 한 여자로 해석하다는 것은 정신환자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설교를 통해 경고하고, 신부는 한 여성이 아니라, 144,000 성도들이라고 단언했다. 1985년 안상홍 사후, 서울과 부산 세력으로 교회가 분열되는 과정에서 김주철 총회장이 직접 작성한 글에 따르면, “장길자 전도사 본인 자신도 우상화 하는 것을 원치 않고 우리도 우상화 할 수 없다.... 144,000 성도들이 신부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은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설립자 안상홍의 교리 중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취사선택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필자가 방문했던 양산 통도사 인근 공원묘지에 있는 안상홍의 무덤은, 하나님의교회가 주장하는 내용과는 격이 맞지 않는 규모로, 벌초조차 되지 않고 방치된 모습이었다. 3. 종말은 실패해도 교세는 오히려 성장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 주장에는 종말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 주장은 계속 실패했지만, 교세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신격화된 안상홍이 사망하고 시한부 종말 주장이 실패하면, 신도들이 하나님의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우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국내외 이단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식의 눈’이 아니라, ‘신도들의 눈’을 통해서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있다. 즉 신격화된 교주의 죽음을 받아드리고, 시한부 종말 주장의 실패를 받아드리는 순간, 신도 자신은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된다. 게다가 그 단체에 몸담고 헌신했던 지난날들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은 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러한 현실은 교주의 죽음과 시한부 종말 주장의 실패를 받아드리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반대했던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받을 비난과 동정이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신도들은 스스로를 위해 교주의 죽음을 미화하거나 업그레이드된 신격화 과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또한 새로운 교리 변개를 통해, 새롭게 설정된 또 다른 종말의 때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변개된 교리를 근거로 배수진을 치고 재무장한 신도들은, 외부적으로는 공격적인 포교활동을 통해 새로운 신도들을 영입하고, 내부적으로는 2세대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교세의 확장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의 신도수가 수백만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대략 20~30만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단연 국내 최대 이단조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주력 연령층이 30~40대라는 사실이다. 특히 해외에도 다수의 외국인 신도들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외선교사들 및 현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교회는 이미 복음전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해외교회 설립현황을 분석하면, 세계 곳곳에 수많은 모임처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구 반대편 페루에도,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도 수십 개의 하나님의교회가 짧은 시간 내에 세워져 운영 중이다. 현지 선교사들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건물을 세우고,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하나님의교회 피해자들이 반대운동(www.examiningthewmscog.com, encountering-ahnsahnghong.blogspot.kr)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공동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하나님의교회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 재산이 3~4조에 이른다고 한다. 통일교처럼 사업을 하지 않는 하나님의교회가 어떻게 이런 거대한 자산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종말의 때로 주장했던 2012년에 하나님의교회가 했던 일을 보면,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종말의 때라고 주자했던 2012년 한 해 동안, 하나님의교회는 국내 29곳에 대형 교회를 건축하거나 매입했다. 과연 종말의 순간에 대규모 부동산을 매입하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종말의 때를 대비한 방공호 용도로 매입했을까? 과연 하나님의교회 지도자들은 정말 2012년을 종말의 때로 믿었을까? 분명한 점은,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론이 실패와 재설정을 거듭하는 동안, 하나님의교회 교세는 성장하고 재산을 지속적으로 증식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4. 오른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홍보전략 하나님의교회의 홍보 방식이 특이하다. 한편으로는 가가호호 방문과 거리포교 등의 직접적인 포교전략을 구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성격을 감춘 채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노출을 시도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장길자가 대표로 있는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www.weloveu.or.kr)와 새생명복지회(www.newlifewf.org) 가 그 전위조직들이다. 성경은 “너희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태 6:3)라고 가르치며,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오른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하나님의교회 홍보 패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한 후, 그 내용을 상대적으로 통제가 용이한 지역 언론을 통해 기사화 한다. 둘째, 해당 기사를 가지고 지역 공공기관을 찾아가 상장 수여를 요청한다. 주민선거로 구성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거절할 명분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하나님의교회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수상 내용을 보도자료로 배포하여 다시 기사화하거나,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나 신도들의 블로그에 올려 선전한다. 넷째, 이를 밖으로는 포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안으로는 반대하는 신도들의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는데 사용한다. 이 과정을 국내외에서 반복하며, 주변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종교단체의 사회적 노출 정도와 효과는 그 성패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통일교를 비롯한 1세대 이단들이 네거티브홍보(negative promotion)를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사회에 알렸다면, 최근 신세대 이단들은 포지티브홍보(positive promotion)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사회에 각인시킨다. 즉 자신들이 사회적 역기능을 수행하는 위험한 사이비종교가 아니라, 친사회적인 평범한 종교단체인 것을 알리는 전략이다. 물론 이들의 최종 목적은 명백히 반기독교적이다. 즉 안상홍과 장길자를 하나님으로 세상에 알리며, 하나님의교회가 기독교의 대안세력으로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함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교회 홍보전략은 일면 성공적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성공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만약 사회봉사에 열심인 하나님의교회 신도와 비윤리적인 범죄를 저지른 기독교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비기독교인들은 누구를 선택할까? 기독교가 아무리 이단을 교리적으로 정죄한다고 하더라고, 요즘 분위기를 볼 때 한국사회는 사회적 순기능을 하는 이단을 더 선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교회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타락한 기독교의 대안세력으로 세상에 내세우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이단대처에 필수적이다. 개혁된 교회만이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이단들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교회의 이단대처 현장에, 사리사욕과 정적제거의 목적을 가지고 이단문제를 악용하는 교회정치세력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기득권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이들 정치세력들이 바로, 이단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이단대처를 위한 연합활동을 방해하는 반교회적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판은,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한 기독교를 향한 엄격하고 높은 사회적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불확실한 세상에서 민족을 위해 신실한 삶을 살았던 한국교회의 모습을 기억하는 한국사회는, 근래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 날카롭고 냉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단과 주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신호를 읽을 줄 아는 교회만이,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 있다. 5. 복면이단 하나님의교회 대처 가이드라인 시한부 종말 주장으로 사회와 가정에 혼란을 야기하는 하나님의교회는 사회봉사단체라는 복면을 쓰고 활발하게 친사회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들의 포교전략은 조직적이고 집요하다. 청소년들과 청년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젊은 가정주부들에게 집중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거리에서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에게 미혹된 청소년들이 하나님의교회로 자의반 타의반 이끌려 들어가 교리교육과 침례까지 받는 피해사례들이 발생하는가 하면, 집요한 가가호호 방문포교를 통해 미혹된 주부들로 인해 가정불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봉사라는 복면을 쓰고 정체를 감춘 채, 친근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예방과 대처 없이 한국교회의 복음전도와 이단대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나님의교회에 대처하기 위한 합법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첫째,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은 길거리 혹은 집을 방문해 집요한 포교를 진행한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길에서 미혹해, 교리교육을 시킨 후 침례를 주기도 하고, 집을 방문해 교리교육을 시키고 집안 화장실에서 샤워기로 침례를 준 사례도 있다.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하고 멀리하고(딛 3:10),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요이 1:10) 권면한다.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의 접근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 집요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을 만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나 공권력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도록 자녀들에게 경계예방 교육을 해야 한다. 둘째, 교회 밖 봉사활동에 신중해야 한다. 다양하게 진행되는 하나님의교회 봉사활동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이 사회봉사학점 이수를 위해 봉사활동을 해야 될 경우, 혹시라도 하나님의교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 (물론 다른 이단들도 최근 사회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각 지역 자원봉사단체에도 하나님의교회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단체에 대해 미리 확인한 후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셋째, 가면을 벗겨야 한다.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고 선전하는 하나님의교회 정체를 주변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즉 하나님의교회는 한국인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는 단체이며, 반복적으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해 왔고, 이로 인해 재산 갈취와 가출과 이혼을 조장한다는 사실이 재판을 통해 받아드려졌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교회를 경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의교회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다시 사회봉사의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아가는 교회만이, 시한부 종말의 위기를 조장하며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오염시키는 ‘이단 하나님의교회’에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다. (「목회와 신학」(2016년 2월호) [부록] 이단 동향 분석 및 향후 전망 이단은 동시대 교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자신을 타락한 교회의 대안으로 내세운다. 그렇기에 이단현상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재확인하고,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고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최근 이단사이비단체들의 활동을 분석하고, 향후 전망과 대처 방안을 제시해 보았다. 1. 사리사욕(私利私慾) 단 한 차례도 시한부종말론이 성공한 적이 없다. 성서는, 종말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하나님의교회)의 멈추지 않는 시한부종말론과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144,000명 육체영생 교리를 내세운 조건부종말론에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소중한 가족과 꿈을 포기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2012년 종말을 주장하던 하나님의교회가, 2012년 한 해 동안만 전국 29개 지역의 땅을 사고, 건물을 마련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했다는 점이다. 종말의 순간에 부동산을 매입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재도 앞으로도 이들의 시한부 종말 주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또한 신도수가 144,000명에 이르면 육체영생하고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된다던 신천지는, 144,000명이 거의 찼다는 2015년에 부동산 매입과 건축에 혈안이 되었다. 144,000명이 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세상의 땅과 건물에 집착하는 신천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시한부종말론과 144,000 교리를 내세운 조건부종말론은 거짓 명분일 뿐, 재산증식을 위한 사리사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거짓이 밝혀지기 전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계산, 돈이 있어야 신도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계산, 신도들이 통제되어야 교주의 신상에 문제가 생겨도 조직이 건재할 수 있다는 계산, 종말론적 이단들의 이런 얄팍한 계산에서 산출된 사리사욕(私利私慾)이 두드러진 2015년이었다. 2. 세대교체(世代交替) 주요 이단들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룬 이단은 하나님의교회가 거의 유일하다. 소위 “아버지 하나님” 안상홍씨에서 “어머니 하나님” 장길자씨로의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종교사회학적으로는 신흥종교로의 정착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대처가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과 신천지 등, 대다수 이단들의 세대교체는 현재 진행 중이다. 참가정을 표방하는 통일교의 세대교체는 부모자식 그리고 자식들 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식이 어머니를 “사탄의 핏줄”이라고 부르고, 자식들도 서로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참가정도, 참부모도, 참자녀도 없는, 명분 없는 재산과 권력 다툼의 모습만 노출되고 있다. 신천지는 지난 해 설립자 이만희씨의 후계자로 김남희씨를 지명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이씨가 영생불사한다면, 후계자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결국 이만희씨의 사후를 대비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상한 교리와 명분으로 포장되더라도, 이단들의 세대교체는, 첫째, 교주의 사후를 대비한 보험 차원의 사전 포석이며, 둘째, 교주 사후에 일어날 수 있는 신도들의 혼란과 이탈을 막기 위한 사전 통제장치의 마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단들의 세대교체 성공이 어려운 만큼, 조직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면, 통일교 문선명씨의 부인 한학자씨, 그리고 아들들인 문현진, 문국진, 문형진의 권력투쟁이 진행 중이며, 신천지 내부에서도 영향력 있는 지파장들이 분리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주목할 점은, 최근 주요 이단 세대교체(世代交替)의 혼란기가 한국교회 이단대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3. 여성시대(女性時代) 이단들의 여성시대가 열렸다. 주요 이단들의 후계자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다. 통일교의 한학자씨,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정조은씨, 하나님의교회의 장길자씨, 신천지의 김남희씨, 중국이단인 전능하신하나님교회(동방번개)의 양상빈씨 등의 여성들은 6천년 만에 태어난 재림주 독생녀, 어머니 하나님, 이긴자의 영적 배필, 혹은 재림 그리스도 등으로 신격화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영역에서 여성지도력이 급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여성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사회 핵심 지도력으로 여성들이 부상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계가 있다. 이단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생존전략상 시대 트렌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남성을 후계자로 정할 경우, 현 지도자를 배신할 우려도 있고, 후계자를 꿈꾸는 여러 남성 2인자들 사이의 분란과 조직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김백문, 문선명, 박태선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이단교리의 성(sexuality)적 특징과도 관련되어 있다. 한국이단들은 교리적으로 음양의 결합을 온전함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이들 여성 후계자들의 배후에는 일반적으로 전권을 가진 실세 남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뒤에서는 남성 중심의 조직이 가동된다. 통일교 한학자씨의 측근들, 하나님의교회 총회장 김주철씨 등을 비롯해, 카리스마적인 남성 창교자의 뒤를 잇는 여성 후계자 뒤에는, 남성 중심의 조직이 도사리고 있다. 이단 후계자들의 여성시대(女性時代)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단 조직 내 남성중심의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은 지속될 전망이다. 4. 사회봉사(社會奉仕) 사회봉사가 이단들의 특징이 되었다. 최근 성장하는 이단들은 앞 다투어 사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대통령상 수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신천지는 낙후지역 벽화그리기와 이주민지원 등의 봉사활동에 힘을 쓰고 있다. 다른 이단들도 국내외 봉사활동을 전면에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변화는,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봉사에 헌신적인 이단’과 ‘개교회주의에 집착하는 교회’가 있다면, 비개신교인들은 누구를 더 선호할까? 사회적 순기능을 하며 ‘표창장을 받는 이단’과 사회적 역기능을 노출하며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른 교회’ 중에서, 한국사회는 누구를 더 선호할까? 사회의 동의와 공감을 결여한 이단규정은 마녀사냥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단이 문제가 아니라, 이단을 규정하는 주체가 문제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고심하며 이단과 정통을 분별하는데, 한국사회는 이러한 이단논쟁을 교회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보고 외면할 수 있다. 최근 성장하는 이단들은, 소수의 기독교인들에게 교리적인 인정을 받는 것보다, 다수의 비기독교인들에게 사회적인 공신력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으로는 사회봉사(社會奉仕) 활동에 헌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악을 저지르는데 망설임 없는 이들 이단들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건강한 교회만이, 이단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건강성과 사회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단 대처를 위한 영적 힘을 갖기 어렵다. 앞으로도 이단대처를 위한, 한국교회의 체질개선 지속되어야 한다. 5. 해외진출(海外進出) 한국이단들이 한류바람을 타고, 성공적으로 세계화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교파 간, 교회 간 경쟁을 통한 비효율적인 선교를 진행하는 동안, 이단들은 조직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선교 오지를 효과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단 대처가 결여된 선교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었다. 신천지처럼, 해외 교민사회에 침투하는 이단들도 있고, 하나님의교회와 기쁜소식선교회 국제청소년연합(IYF)처럼 현지인들을 주로 미혹하는 이단들이 있다. 신천지는 해외에 있는 친인척과 지인들에 관한 정보를 신도들로부터 수집하여, 그들만의 모략포교, 즉 거짓말 포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교회는 국내에 방문한 외국인들에 대한 자원봉사활동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한 후, 현지 침투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 설립되는 하나님의교회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선교사들로부터 이단들의 정체와 대처방안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국내차원의 이단대처를 넘어, 해외진출(海外進出)을 시도하는 한국이단들을 예방하고 대처할 글로벌이단대처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 네트워크는 교파주의의 틀 속에 갇혀있는 국내보다는, 현지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초교파 조직으로 구성될 때 효과적일 수 있다. 한국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영문 자료들의 제작 및 배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6. 허망지설(虛妄之說) ‘거짓되고 망령된 말’로 미혹하는 신천지가, 동료 이단들의 추종을 불허하며 활동하고 있다. “모략”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 된, 반사회적이고 비성경적인 신천지의 거짓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가정과 교회 안에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신천지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신천지로 인한 분열과 불신이 두려운 것이다. 초대교회부터, 이단은 거짓말을 앞세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켜왔다. 거짓 형제들이 우리 안에 가만히 들어와, 예수 안에서 자유 한 우리들을 그들의 종으로 삼으려고 미혹을 멈추지 않았다(갈 2:4). 144,000을 명분으로, 부모자식 간에, 부부 간에, 형제자매 간에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거짓말이 난무하도록 신천지가 만들었다. 거짓말이 합리화된 기독교 종파는 없다. 기독교는 어떤 시대와 상황을 만나도,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만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왔다. 설령 이 믿음으로 인해 박해와 순교를 당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을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선포해 왔다. 결코 나의 믿음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기독교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기독교이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인 것이다. 허망지설(虛妄之說)의 신천지가 결코 기독교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7. 지피지기(知彼知己) 효과적인 이단대처에 있어서, 신속하고 공신력 있는 정보의 제공이 가장 중요하다. 부정확한 정보의 제공은 ‘흑색선전’과 다르지 않으며, 부정확한 정보의 활용은 ‘마녀사냥’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사회와 교회가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단정보의 수집과 제공이 필요하다. 이단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이단의 정체를 간파하게 해주는 동시에, 이단의 활동을 통재할 수 있는 합법적인 여건을 조성해 준다. 이러한 정보는 이단들마저도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이단을 비판할 경우, 오히려 이단들에게 반박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어떤 이단들이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공신력 있는 정보를 통해 이단의 정체를 파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단 현상을 통해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며, 이단의 영향력이 기성교회와 교인들에게 폭넓게 자리 잡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이단대처와 교회개혁은 동전의 양면이다. 건강한 교회가 이단 바이러스를 잡는 항생제 역할을 한다. 8. 필승불패(必勝不敗) 교회는 반드시 이긴다! 이단은 예외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지만, 참된 교회는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독교역사는 증언한다.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사회적 순기능을 감당해왔던 기독교에 대한, 한국사회의 높은 기대치가 날카로운 비판으로 표출되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다. 교회가 이러한 뼈아픈 시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교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단이 문제라면, 교회가 답이다! 공권력과 언론은, 사건 발생 이후에야 개입하여 문제해결과 공론화를 위해 애쓴다. 오직 교회만이 이단의 본질을 간파하고, 사건을 예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영적 건강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순기능의 전통을 잇는 교회가 이단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단의 발흥은 주님 다시 오실 때, 세상 마지막 때의 표징이다. 이단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미혹하며 어지럽힌다. 하지만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가 쟁취하실 최후의 승리에 대한 필승불패(必勝不敗)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목회와 신학」(2015년 12월호)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기고]최근 사이비 종교집단 ‘신천지’, 왜 이러나? ▲한때 신천지 교육장을 지내다 2006년 말 신천지를 탈퇴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구리상담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현욱 소장 약 한 달 전쯤부터 거리 곳곳에서 ‘한기총 해체와 CBS 폐쇄’를 외치며 서명운동을 벌여오던 사이비 종교집단 신천지가 지난 주 금요일에는 기독교연합회관과 목동 본사를 비롯해 전국 13개 CBS 지역본부 앞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가졌다. 근래 보기 드문 전국 동시 대규모 군중집회였던 터라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놀라워했다. 그렇다면 신천지 집단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이에 대한 원인을 몇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보고, 나아가 한국교회의 대응과 대처 방안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Ⅰ. 신천지 집단이 CBS를 표적으로 삼아 집중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CBS가 ‘신천지 OUT!’을 선언한 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신천지와 이만희 교주의 치부를 드러냄으로 그 여파가 신천지 내부로는 신도들의 갈등과 동요로 나타나고 있고, 외부로는 포교활동과 이미지 개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이러한 신천지의 반응은 오히려 CBS의 ‘신천지 OUT!’ 활동이 신천지에 미친 타격과 충격의 정도를 반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CBS의 신천지 관련 보도 내용 가운데서도 이만희 교주와 교주 사후 후계자를 꿈꾸는 내연녀 김남희와의 동거 사실 폭로와 김남희의 권력 승계관련 보도와 신천지의 폐해를 전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다큐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은 수만 명의 신천지 신도들을 CBS 앞으로 모으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천지로서는 더 이상 CBS의 ‘신천지 OUT!’ 활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CBS를 압박해서 앞으로 신천지 관련 보도 시 부담을 주고자하는 측면이 있고, 나아가서는 다른 언론 매체들에게도 신천지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말라고 이번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통해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Ⅱ. 신천지 집단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를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천지 이만희 교주 눈의 가시 같은 CBS가 신천지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한기총을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의아해하며 묻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만희 교주가 한기총이라는 단체의 성격을 모르고 있다는데 기인한다. 한마디로 무식이 원인이다. 일인독재 절대 권력의 신천지 집단은 총회가 있어 총회장이라는 교주가 대표성을 갖듯이 한기총이 정통교회 모두를 아우르는 한 교단같이, 한기총 대표를 신천지 총회장 격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주장에서 ‘신천지 교리와 한기총 교리 비교’, ‘신천지 총회장과 한기총 대표간의 공개 토론 요구’ 등의 표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한국교계에서 한기총의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판단 하에 한기총을 공격함으로 한기총에 대해 실망하고 비판적인 기독교인들의 동의와 관심을 이끌어내려는 포교 차원의 전략적인 측면이 있다. 셋째, 신천지 집단에 가장 위협이 되고 있는 안산상담소, 구리상담소 등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소속 상담소들을 한기총 소속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천지 집단에 속아서 미혹된 신도들을 상담과 교육을 통해 해마다 수백 명씩 회심시키고 있는 상담소에 대해 강제개종 운운하며 온갖 거짓말로 비판하면서 그 화살을 상담소와 무관한 한기총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Ⅲ. 최근 신천지 집단의 전국적인 서명 운동과 대규모 집회의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 신천지 집단의 체제 결속과 내부 문제 봉합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다. 신천지대책전국연합과 CBS, 현대종교 등을 통해 신천지 내부 비리 그 중에서도 교주와 내연녀(마니와 나미의 만남)와의 관계가 폭로되면서 신천지 내부에 적지 않은 파장과 함께 탈퇴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마치 불안한 체제 안정과 내부 단속을 위해 전쟁 분위기를 조장하고 밖으로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이 외에도 곧, 곧, 올 해, 올 해, 이제 5분 전, 5분 전이라는 이만희 교주의 말만 굳게 믿고 144,000명을 채우는데 혈안이 되었던 신도들이 144,000명이 다 차고 넘치는데도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오래된 신도들 사이에서 실망감과 함께 맹신에 균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한눈 팔 겨를이 없도록 신도들을 노상 홍보와 포교의 장으로 내 몰고 있으며, 분위기에 취약한 청년들이 주로 동원된 이번 대규모 군중집회도 집단 최면을 통해 신도들을 통제하려는 저의가 엿보인다. 둘째, 신천지 집단의 교세와 위세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이만희 교주의 성격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재의 신천지 교세는 이만희 교주조차 상상도 못했던 만큼 커진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이비 교주들이 그러하듯 이만희 교주 또한 자기도취에 빠져있고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며 자랑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 때문에 사이비 교주들이 대부분 마스게임, 포퍼먼스, 카드섹션 등을 포함한 대규모의 군중집회, 체육대회를 통해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이만희 교주도 예외가 아니다. Ⅳ. 이러한 신천지 집단에 맞서 한국교회의 대응과 대처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범 교단, 초교파적 정통교회의 연합과 연대를 통한 공동 대처가 절실하다. 신천지 집단이 아무리 조직적으로 공세를 편다 해도 여러모로 우리 정통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피해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지나친 개교회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에 기인한다. 더 이상 각개전투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신천지대책기구를 발족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신천지의 파상적인 공세가 오히려 정통교회 연합과 연대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둘째, 신천지에 빠져드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비밀 교육센터(일명 복음방, 센터) 폐쇄에 전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센터가 신천지인줄 모르고 속아서 거짓교리를 배워 세뇌된 사기 피해자들이 최근 해마다 2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사기 피해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해내는 근원지인 신천지 센터를 현행 학원법에 의거 처벌, 폐쇄 조치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신천지 비밀 교육장소 앞에서의 1인 시위를 통해 그곳이 신천지임을 알리는 일이다. 교회연합회, 기독교연합회, 성시화운동본부 등 지역별 연합회 주관으로 각 지역 내의 복음방, 센터, 위장교회 등 신천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교육장소 앞에서 그곳이 신천지 비밀 교육장임을 알리는 집회나 시위가 중요하다. 물론 철저한 준비가운데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신천지의 불법 센터 폐쇄를 제외한 대응 방안 중 가장 공격적인 방법으로 신천지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치명적이고도 강력한 대응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복음방, 센터, 위장교회, 신천지교회 등 전국 신천지 비밀 교육장소 위치 현황은 구리상담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함. www.antiscj.or.kr) 넷째,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리교육과 이단 예방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미혹의 원인이 먼저는 자신이 배우는 성경공부가 신천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데서 시작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신천지 교리의 오류를 스스로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분별력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 밖에서 목회자 모르게 하는 성경공부를 엄금하고, 혹 속아서 성경공부를 하더라도 신천지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도록 신천지 성경공부의 특징을 알리고, 설령 신천지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더라도 배운 내용이 비성경적, 반복음적임을 분별할 수 있도록 바른 교리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답을 알아야 오답을 고르지 않듯, 바른 복음‧ 바른 예수를 알면 다른 복음‧ 다른 예수에 빠질 리가 없다. 다섯째, 최근 신천지의 전국적인 대규모 집회와 시위로 말미암아 조성된 한국교계의 신천지 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대처 분위기가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성명서 발표하고, 회의로 결의하고 결의를 다지고, 입장을 표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신천지 붕괴와 해체를 위한 장단기 계획을 세워 현실 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진행해나가야 한다. 신천지 집단과의 싸움은 이제 더 이상 몇몇 피해자들과 이단상담소만의 몫이 아니다. ‘관군은 없고 의병만 있다!’ ‘우리는 하는 일이 다 이래!’ 이러한 자조 섞인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이제는 한국교회 모두가 깨어 일어나 힘써 싸워야 한다. 올해 이만희 교주의 나이 86세, 그리 오래갈 싸움이 아니다. 그리고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이다. 할렐루야!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구리상담소장 신현욱 목사
    • 기고/강연
    • 기고
    2016-05-11
  • [기고] 故 박영희 장로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며 ▲ 故 박영희 장로 존경했던 박영희 장로님! 이렇게 마지막 인사도 없이 총총히 가셔야 했습니까? 거동이 여의치 않으신 지난 몇 년 방문 할 때마다 헤어지시기를 그렇게 아쉬워하시던 장로님을 혼자 두고 방문을 나서기가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하다가 저도 이제 은퇴했으니 시간 여유가 생겨 금년부터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 있어 외로움을 덜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총총히 떠나시니 더 잘해 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 가슴이 저밉니다. 장로님과 함께한 영락에서의 40여년 동거동락한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갑니다. 박장로님은 제 인생의 맨토였고 삼촌같고 형님같은 소중한 분이셨습니다. 젊은 시절 불우한 청소년들의 교육을 돕겠다고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내려와서 영락교회에 출석하던 저를 처음부터 불러 곁에 두시고 교회의 제반 출판과 교회지 편집 교계 문화보급운동 등에 동참하게 해 주시고 30년 전에 부산기독교문화회를 창립하시면서 교파를 초월한 부산기독교계의 유명 목회자와 인사들을 두루 섭렵하시며 모임을 이끌어 가시어 부산기독교문화 창달에 큰 이정표를 세우셨습니다. 장로님은 사재를 털어 기독교문화의 불모지 부산에 서울의 이름있는 김형석 김동길 조동진 김진홍 등 강사들을 초청하시어 정기강좌를 개설했고, 훌륭한 교수 신학자들을 대거 초대하여 교회행정. 교회법. 회의진행법 등을 보급하는데 진력하셨습니다. 저는 장로님 덕분에 훌륭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미시적인 의학박사답게 매사에 너무나 치밀하셔서 조금도 빈틈이 없으셨으며, 일류학교를 나오신 명석한 두뇌만큼 쏟아내시는 일과 업무의 욕심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장로님은 글쓰기를 무척 좋아하시어 교계신문 잡지 등에 칼럼을 기고하셨고, 문단에 수필가로 등단하시어 두 권의 책을 내셨으며, 제1회 한국장로문학상을 수상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부산기독교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부산 크리스챤 21세기포럼이 제정한 제1회 부산기독교문화대상을 받기도 하셨으며 상금 일천만원을 기독교문화회에 쾌척 하셨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박영희 장로님! 지난 반세기 장로님이 계신 곳에 어디나 그림자처럼 항상 함께했던 세월 정말 즐거웠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또 함께할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박 장로님! 장로님은 참 많은 일을 하고 가셨습니다. 천성적으로 착한 성품탓도 있지만 귀가 얇고 마음이 여리셔서 이웃의 사정에 항상 말려들어가 여러번 어려운 일을 당하셨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욕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년엔 무척 힘드셨지만 특유의 성품으로 극복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주 한번 목욕을 도우면서 날로 수척해 가시는 모습이 안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효성스런 자녀들의 힘겨운 도움과 격려로 그래도 안락한 여생을 보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장로님! 이제 질병도 걱정도 없는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저희들도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장로님께서 그렇게 자부심을 가져셨던 효성스런 두 아드님, 따님, 든든한 사위 그리고 착한 두 며느님, 또 그렇게 사랑스러워 하셨던 손주 손녀들 장로님의 신앙과 성품을 본받아 자랑스런 후손으로 잘 살아가는 것 지켜 보시고 늘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 모인 우리 영락의 권속들도 인자했던 장로님의 열정과 품성을 기억하며 교회를 지켜갈 것을 다짐하며 장로님을 마지막 보내드립니다. 장로님 편히 가십시오. 천국에서 다시 뵐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2016년 이월 열아흐렛날 못난 후배장로 안상진 드림
    • 기고/강연
    • 기고
    2016-03-14
  •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기 (이 글은 제9회 부울경기독교수 선교대회에서 발표된 기조강연입니다.)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기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1. 머리말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삶의 거의 모든 분야를 결정하는 오늘날 자신의 신앙을 심각하게 취급하는 기독교 지식인들은 다른 누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기독교적으로 정치하고, 사업하고, 예술창조 활동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기독교적으로 학문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쉽다 할 수 있다. 다른 어떤 활동보다 오늘날의 학문을 기독교 신앙과 조화시키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학자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다. 자신들의 활동을 신앙과 연결시키는데 어떤 확실한 지침을 기독교 학자들이 제시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학문이란 정신활동이고 신앙과 가장 근접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의 인간 활동 거의 전부가 지식에 근거해야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기대를 받고 있는 기독교 학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 지식인들의 이런 고민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헬레니즘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해야 했던 초대교회 지식인들도 그들의 신앙을 그 시대의 학문과 연결시키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당시의 학문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파하려 했던 Justinus, Clement of Alexandria, Origen, Irenaeus, Eusebius 등과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Tertullianus, 지식을 초월한 신앙을 강조한 Augustinus, Anselm of Canterbury, 그리고 양자의 종합을 시도한 Thomas Aquinas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있었다. 현대에도 Herman Dooyeweerd, Cornelius Van Til, Ravi Zacharias, Francis A. Schaeffer, Gordon Clark, G. K. Chesterton, C. S. Lewis, Carl F. H. Henry, Edward John Carnell, Bernard Ramm, Alvin Plantinga, Nicholas Wolterstorff, Bob Goudzwaard, Mark Noll 등의 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였다. 한국 교회도 이제 100여 년의 역사와 인구의 20%에 육박하는 신도를 가지고, 수많은 신학자들과 학자들을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과 학문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일어나고 같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2. 현대 학문에 대한 이해 현대 학문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용은 전혀 없이 형식으로만 이루어지는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내용이 거의 전부인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현대 학문은 매우 다양하므로 공통되는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학문은 진리발견을 그 목적으로 한다. 사실을 밝혀내고, 주어진 현상을 바로 설명하며, 원리나 법칙을 발견하여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역사학도 단순히 옛날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한, 두 가지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준비하려는 것이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학은 단순히 사실을 연대에 따라 기록하는 연대기 혹은 실록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학문이란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 논리적 체계 (systematic)가 있어야 한다. 앞의 발언과 뒤의 발언이 서로 모순되어서도 안 되고, 모순되는 명제를 한 글에서 주장해서도 안 된다. 유기체에서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과 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듯 한 학술논문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하고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문은 예술과 다르다. (2). 현대 학문에 사용되는 방법론의 기본은 인과론 (causality)이다. 물론 양자물리학에서는 인과법칙이 절대적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인과론이고, 인과관계가 분명해져야 어떤 문제가 설명(explanation)되거나 예측 (prediction)될 수 있다. 물이 어는 것은 온도가 0도 이하로 내려갔기 “때문이고”, 그것을 알면 날씨가 추워질 때 물이 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과학은 그 이전의 Aristoteles 과학의 목적론과 대조된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는 인과론적 설명보다는 공감하는 상상(sympathetic imagination)을 통한 이해(understanding)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실증주의에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사용되는 방법론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 모든 학문은 원칙적으로 객관적 (objective)이라야 한다. 실제로 어떤 것이 객관적이며 그것이 사실 객관적인가에는 항상 논란이 있지만 모든 학문은 객관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개인적인 감정, 감각, 이해관계, 경험 등은 사실을 왜곡할 수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general) 것이라야 보편적 진리란 전제가 깔려 있다. (4). 이론이나 결론은 직관, 경험, 자료에 의하여 실증될 수 있어야 (verifiable) 한다. 현대자연과학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논리적으로 일관성만 있으면 충분히 객관적이라고 믿었다. 모든 인간에 공통되는 능력으로서의 이성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이성의 논리적 판단에 어긋나지 않으면 진리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Galileo 이후의 현대과학에서는 논리학과 수학을 제외하고는 실증될 수 없으면 아무리 논리적이라도 진리로 수용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인문학인 역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5). 한 이론의 대상은 동질성을 가져야 한다 (homogeneity of the objects field). 즉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어야 같은 학문의 범주에 속할 수 있고, 동일한 체계에서 논의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영역으로의 전이 (“stepping into another field” - metabasis eis allo genos)는 허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달(月)’과 ‘10원’은 동일한 이론체계에서 다루어질 수 없고, 심지어 ‘몸’과 ‘마음’도 동일한 체계 안에서 논의될 수 없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졌다”는 발언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학문적 명제가 될 수 없다. 몸과 마음은 ‘존재’란 지극히 추상적인 공통분모 외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6) 학문은 넓은 의미에서 실용적 (practical) 이라야 한다. 이런 관점은 이미 Bacon에 의해 시사되었지만 Comte에 의하여 강화되었고, 최근에 와서는 매우 두드러진다. 최근에 과학과 과학기술의 차이가 점점 무시되고 있는 것도 그런 경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진리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진리란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이다. 힘 혹은 능력이 있어야 믿을 수 있는데 지식은 힘이다 (Scientia est potentia, Bacon). 진리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Savoir, c'est pour prévoir. Comte),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제공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응할 수 있다. 역사학에도 이런 의의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학문은 넓은 의미에서 실용적이다. 논리학, 수학, 천문학, 이론 물리학 같은 순수학문은 아무 실용적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기초가 없으면 실용적인 학문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들 학문은 직접적으로는 실용적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실용적이고, 실용적인 결과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하므로 매우 실용적이다. 3. 경쟁관계에 있는 학문과 종교 예술과 달리 학문은 종교와 경쟁관계에 설 수 밖에 없다. 양자가 다 진리를 주장하고 (truth claim) 있고, 그 진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것이든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안 학문의 발달은 다른 어느 분야의 발달보다 인류에게 더 큰 힘을 제공하여 이익을 끼쳤고 사람의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인간이 개발한 다른 어떤 능력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인류는 학문에 대해서는 상당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주장하는 진리와 그 진리가 가능하게 하는 힘 때문에 학문은 종교와 갈등관계에 서게 되었다. 학문과 종교의 갈등은 이미 학문의 생성과 발전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상당히 오랫동안 학문은 종교를 “대체”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 종교를 대체 하고 유학은 고대 중국의 무속종교에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철학이 그리스 종교를 대체했다면 그 철학은 아직도 종교의 형태로 남아 있는 기독교와 경쟁관계에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초대교회 교부 Tertullianus는 철학의 도시 아테네와 신앙의 도시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하고 반문함으로 지식과 신앙의 갈등관계를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기독교는 인간의 모든 안전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의하여 보장받는 것으로 믿는 반면에 그리스 사상에서는 영원히 불변하는 존재와 법칙에 삶의 안전보장을 위탁한다. 그런데 그 존재와 법칙을 알아야 그것에 순응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진리를 아는 것, 곧 지식이 구원의 길인 것이다. 비록 서양 중세에는 Thomas Aquinas의 사상에 따라 자연의 영역에서는 이성이 그리고 초차연의 은혜 영역에서는 믿음이 지배하도록 영역을 분리함으로 학문과 종교의 불안한 공존이 시도되었지만 만족스런 조화는 이룩하지 못했다. 오늘날의 과학적 학문은 역시 그리스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고, 따라서 기독교적으로 학문한다는 것은 다른 편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경기하는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갖고 있다. 물론 현대의 과학적 학문에서는 종교적 요소는 거의 다 제거되었지만 그러나 그 유산은 아직도 남아 있다. 아직도 학문은 종교적 신앙과 경쟁관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은 실용적인 가치 이외에 그 자체로 진리요 다라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그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 자체는 학문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어떤 형식적인 체계도 그 체계 안에서 그 체계의 타당성이 증명될 수는 없다 (Gödel). 학문에 대한 믿음은 인간 이성을 Archimedes의 거점으로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 성격을 갖는다. 학문의 권위가 인간 이성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믿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종교적 전제라 할 수 있다. 과학철학자 P. Feyerabend는 자연과학도 하나의 이념 (ideology)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4.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현대 학문 학문과 종교의 관계에는 3 가지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즉 (1)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은 학문이란 입장과 (2) 성경이 더 권위가 있고, 학문은 성경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입장, 혹은 (3) 학문과 종교의 영역은 서로 다르므로 양자가 병존할 수 있고 상호관련도 상호갈등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은 학문이란 입장은 대부분의 비기독교 학자들이 취하는 것이다. 학문이 그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학문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미신에 불과하던지 학문이 제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제시하므로 학문과 갈등관계에 설 만큼 권위를 가지지 못하거나 갈등관계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학문의 결과에 더 의존하므로 학문은 그들에게 일종의 종교적 권위를 가진다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종교적’이란 함은 종교를 매우 넓은 의미로 이해해서이다. 상당수의 기독교인인 학자들은 (3)의 입장, 즉 학문과 종교의 영역은 서로 다르므로 양자가 병존할 수 있고 상호관련도 상호갈등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부분적으로는 불신 학자들과 동의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손쉬운 타협이다. 상당하게 많은 경우 그런 입장을 견지할 수 있으나, 양자가 주장하는 진리가 상반되는 경우는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대부분은 학문의 편에 서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1)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2)의 입장, 즉 성경이 학문보다 더 권위가 있고, 학문은 성경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신앙의 논리적인 결론이다. 그 입장을 다음과 같이 변호해 볼 수 있다. 1)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는 모든 영역에서 절대주권을 행사하시고, 절대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절대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성경이 가르치는 참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청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지배하신다. 논리, 법칙, 이성, 경험 등도 모두 하나님에 의하여 가능하고 하나님에 의하여 그 정당성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학문이 발견한 진리도 그것이 진정한 진리라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물론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진리로 믿을 때 가능한 주장이다. 학문의 결과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종교적 전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종교적 전제다. 2) 학문적 지식은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A. 과학적 학문은 “이런, 저런 양상” (modality)을 대상으로 하고 “이것, 저것 등 개체”(individuality)를 상대하지 않는다. “노란 색”은 학문은 개나리가 가지고 있는 속성 혹은 양상이고 우리 집 뜰에 서 있는 “개나리”는 개체다. 학문은 보편적인 것을 취급해야 하는데, 양상만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 우리 집 뜰에 서 있는 개나리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개체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것을 취급하는 학문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 역사학은 “이순신”의 업적이나 영향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으나, “이순신 학”은 역사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상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다만 존재하는 여러 개체들에 속해 있는 속성 (property)이다. “노란 꽃” 은 있지만 “노란 색”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하면 칠판에 그려졌거나 종이에 인쇄가 되어 눈에 보이는 3각형은 진정한 3각형이 아니다. 3각형은 세 직선으로 이루어지고 , 직선은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일 뿐 넓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3각형은 이미 하나의 개체이므로 기하학의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3각형의 내각의 합이 두 직각의 합과 같음을 증명하는데 분도기로 세 각을 제어서 합산하지 않는 것은 분도기로 젤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3각형이 진정한 3각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 H₂O란 것도 비슷하다. 실재하는 물은 H₂O외에도 여러 가지 이물질을 다 포함하고 있다. 순수 H₂O는 3각형과 마찬가지로 이념으로만 존재한다. Max Weber는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하는 것들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형(ideal types)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어디에서도 순수 자본주의 국가나 순수 사회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학문이 취급하는 대상은 실재하는 것들이 아니라 이념(ideas)들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세계는 모두 개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노란 색을 보지만 그것은 노란 꽃, 노란 종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 학문은 원칙적으로 개체들을 그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면 학문의 영역은 매우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만약 요즘 점점 더 인정되고 있는 것과 같이 개체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양상들의 합 이상”이라면, 개체를 대상으로 할 수 없는 학문의 세계는 지극히 제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B. 학문이 상대로 하는 대상은 항상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others being alike” = ceteris paribus)는 모든 이론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모든 현상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한 가지만 변하고 다른 것은 모두 그대라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모든 물은 0도에서 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세상의 모든 물이 실제적으로 다 0도에서 어는 것은 아니다. 물의 순도, 물이 위치해 있는 장소의 기압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물은 0도에서 언다”는 것은 물의 순도, 기압 등 다른 모든 조건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학문적 이론은 Procrustes의 침대가 될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Procrustes는 여관을 운영하면서 침대의 길이보다 키가 큰 손님은 머리나 발을 잘라서 침대에 맞추고 침대보다 짧은 사람은 잡아당겨 침대길이에 맞추었다. 말하자면 유기적이고 지극히 복잡한 현실을 학문적 이론으로 끌어 맞추는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Karl Popper는 마르크스주의가 그런 우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현실을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을 이념의 틀에 맞추기 위하여 온갖 강제를 다 동원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학문적 이론의 권위를 과대평가 하므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Procrustes의 침대를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의 머리와 다리를 잘라버렸다 할 수 있다. C.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학문이 설명할 수 없다. Max Weber는 학문 (Wissenschaft)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Tolstoy의 주장에 동감을 표시했으며 Wittgenstein은 그의 Tractatus에서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들은 과학적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 바깥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삶의 의미, 사랑, 고통, 존엄성, 자유, 평등, 정의감 같은 것은 누구에게나 다 중요하지만 학문이 그런 것을 전제할 수는 있어도 설명할 수도 없고 그것에 도움을 줄 수도 없다. 이론적으로 사랑을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설명된 사랑이 우리로 사랑하는데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3) 학문도 하나의 게임이다. 게임의 특징은 그것이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동의하는 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학문이란 게임의 규칙은 앞에서 제시된 학문적 이론의 요구조건들이다. 이 조건들은 어떤 그 타당성이 우리의 직관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어떤 절대적 권위에 의하여 결정된 것도 없으며 어떤 객관적 근거에 의하여 확실하게 증명된 것들이 아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자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후에는 달라질 수 있는 역사적인 것들이다. 현대과학 이전 Aristoteles 물리학에서는 목적론이 자명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인과론이 그렇지 보이고, 인과론도 양자 물리학에서는 절대적이 아니라 한다. 그들 조건은 궁극적으로 학문 공동체의 약속에 불과하다. Th. Kuhn과 M. Polanyi (Personal Knowledge)는 영원불변한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학문공동체(academic community)가 학문과 학문 아닌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Thomas Kuhn에 의하면 한 시대의 과학의 성격은 그 시대의 과학 교과서가 대변한다고 보았다 textbook science). 그리고 학문의 “혁명”에서 혁명 이후의 paradigm이 그 이전의 것보다 더 발전된 것이라 할 수도 없고 그 전의 것을 포함하거나 능가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 책 이름에 “학문의 발전”이란 말 대신 “학문의 혁명”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게임이라 하여 심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Huizinga는 인간의 문화 활동 거의 대부분을 놀이로 취급했다 (Homo ludens). 다만 그것이 어떤 만고불변의 규칙이나 영원한 직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에 의하여 만들어진 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과 그 규칙에 적용되는 분야에서만 그 타당성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생물학적인 생존과 생활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에서 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할 수 있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나 꼭 한국식으로 먹어야 사는 것은 아니다. 먹는 것은 놀이가 아니라 한국식으로 먹는 것은 놀이의 성격을 갖는다. 게임이기 때문에 학문은 상대적이고 부분적이다. 건물의 높이를 측량하는 방법에는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물질이 땅에 닿을 때까지의 시간을 재어서 계산하는 방법, 3각 측량법도 있지만 긴 줄자로 재는 방법도 있다. 한 가지만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 할 수 없다. 과학적 설명은 주어진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학문을 하나의 놀이로 상대화하면 학문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모든 학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비판적, 상대적 태도이고 그런 태도로 접근할 때 더 창조적이 될 수 있다. 창조는 “관념의 유희” (play with ideas)로 이루어진다. 학문을 종교적으로 절대화해 놓으면 비판적인 접근이 불가능하고 창조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기독교인이 더 훌륭하게 학문 활동을 할 수 있다. 5.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명령은 학문 활동에도 적용된다. 진리 발견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기독교적 학문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학문적 진리 발견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될 때만 그것은 가치를 가진다. 만약 진리 발견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라면 학문은 종교의 위치에 서게 되고, 따라서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학문연구를 통해서 발견된 진리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이 될 때 기독교 학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1) 그 진리가 정말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한가를 재점검하고, (2) 그것과 모순된다고 생각되는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가 올바로 이해했는가를 반문해 보며, (3)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았을 때는 당분간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적어도 너무 성급하게 그 어느 쪽을 취할 이유는 없다. 지금의 상황이 절대적이고 그 이상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할 분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것도 아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 이외에는 영원불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학문적 연구로 발견된 진리는 얼마든지 바꿔질 수 있다. Ptolemaeus의 물리학은 Newton의 물리학으로 대체되었고, 그것은 다시 Einstein의 물리학으로 수정되었다. 양자 물리학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한다. 우리는 가끔 과학의 발견을 이용하여 성경의 내용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본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주객이 전도된 방법이다. 지금 진리인 것으로 나타나는 과학적 발견이 항상 진리로 인정받으리라는 보증은 없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과학적 지식을 과대평가하고 성경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즉 과학적 발견은 확실한 반면에 성경의 가르침은 좀 더 증명되어야 할 만큼 불확실하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성경보다 과학을 더 믿으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과학종교일 것이다. 과학의 주장이 과학보다 더 확실한 근거에 의해서 증명될 수 있으면 몰라도 그 자체로 절대적이라 믿으면 종교적 신앙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학문과 기독교 간의 갈등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특히 Richard Dawkins의 전투적이고 도발적인 저서들이 이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여기서 앞에서 언급된 3 가지 입장이 잘 구별된다. 창조론을 전혀 부인하고 진화론만이 옳다는 입장,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 창조론은 종교적 신앙의 내용으로 양자를 다 인정하는 입장, 그리고 창조론을 믿고 진화론을 상대화하는 입장 등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입장에는 진화론은 전적으로 부인하는 ‘젊은 지구 이론’ (young earth creationism)과 진화적 창조론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후자는 하나님께서 진화론적 과정을 사용하셔서 생명체를 창조하신다는 입장이다. 그런 주장은 창2:2-4절로 그 주장의 타당성을 성경으로 증명하려 한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진화론이나 창조론은 둘 다 과학적으로는 증명될 수 없는 믿음이다. 다만 진화론은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적 전제이지만 그 가설을 실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Popper의 주장대로 과학이 성립하려면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이 있어야 하고, 비록 이제까지는 반증되지 않은 경우라도 반증이 가능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 가지 경우로라도 반증이 가능하면 과학적 이론으로서는 그 자격을 상실한다. 진화론 가설에 대해서 창조론자들이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은 그 가설에 그만큼 약점이 많기 때문이다. 캠브리안 폭발 (Cambrian explosion)을 둘러 싼 논란들은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 증거를 둘러싼 문제들 외에도 진화론은 “우연”의 요소를 도입하지 않고 인간의 자아의식과 언어현상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설득력 있는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한다. 물론 좀 더 확대해서 더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진화론이 전제하는 자연의 동일성 원칙(the principle of uniformity of nature)이 과연 영원불변한 것인지, 그리고 과 그것에 근거한 외삽 (外揷=extrapolation)이 과학적으로 합법적인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자연의 동일성 원칙이 영원불변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것을 어길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에 근거한 것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것도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법칙에 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6. 맺는말 신앙이 학문적 지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이 신앙에 의하여 결정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올바른 신앙에 입각한 지식만이 참 된 지식이다. 지식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많이 고민한 Augustinus나 Anselmus는 “알기 위하여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 이란 결론을 내렸다. 즉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안다는 것이다. 만약 학문적 노력에 의하여 어떤 진리가 확실하게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이며, 그 진리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학문과 이성이 하나님과 독립하여 자율적이 되면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종교적인 신앙의 위치에 서고 만다. 그러므로 학문은 종교적으로 중립적이 될 수 없다. 참고문헌 Conford, F. M., From Religion to Philosophy. New York: Harper & Row, 1957 Feyerabend, P., Against Method, New Left Books, 1975 Gerth, H. H. & C. W. Mills eds. From Max Web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8, Holmes, Arthur F., All Truth is God's Truth, Grand Rapids, Eerdmans, 1977 Kant, Immanuel, Welches sind die wirklichen Fortschritt, die die Metaphysik sein Leibnizens und Wollf's Zeiten in Deutschland gemacht hat? 1804 Kuhn, Thomas,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2 Polanyi, M., Personal Knowledge: Towards A Post-Critical Philosophy, Chicago: Chicago University, 1974 Popper, Karl, The Poverty of Historicism, London and Henley: Routledge & Kegan Paul, 1957 Stevenson, J., ed., A New Eusebius: Documents illustrative of the history of the church to A.D. 337, London: S.P.C.K., 1957 Wittgenstein, L.,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2 Wright, G. H. von, Explanation and Understanding, Ithica,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71 (영문 요약) To Do Sciences in Christian Way Christian academicians have been wrestling with the problem ever since Christian faith was introduced to the Hellenistic world. Most academic activities today have scientific character. They have to be systematic (logical), objective, empirical, useful, use the method of causal explanation and have homogeneous object field. Science is not value neutral as many claim; they are more for power than satisfying curiosity. Conflict between Christian faith and science is inevitable for they both claim truth and truth, whatever the kind, is supposed to provide security. Many insist that science has replaced faith, some tried uneasy compromise, some put them opposite to each other, and some tried to explain away Christian faith with science. But the ultimate validity of scientific knowledge cannot be proved scientifically. It itself has a religious presupposition. Both Christian faith and science claim truth and in some their claims collide each other. In principle we must put science under God’s sovereignty. If there is any truth in science, it also is God’s truth. The principles all sciences presuppose, such as the principle of the uniformity of nature, are, should be God’s principles if they are true. Science is limited because it deals only aspects of reality, not the individuals, while the reality is composed of individual objects. Scientific knowledge is inevitably abstract because the method requires them to leave aside those irrelevant aspects (ceteris paribus). Further, science can never explain or solve the most important elements of human life, love, meaning of life, human dignity, freedom, right, etc. Science is also a game. It is exercised according to the rules agreed upon by the contemporary academic communities. Therefore, they are temporal and transitory. If there is any conflict between science and Biblical teachings, (1) we should examine whether the scientific conclusion is truly valid. If is undoubtedly true, (2) we may reflect whether our understanding of the Bible is correct. If the conflict is still not resolved, we should wait patiently until further discoveries are made. Not all the so-called scientific truths have been valid always and our understanding of the Bible is not absolute. science, faith, truth, presupposition, game,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2-17

포토뉴스 검색결과

  • 부산 장로원로회, 거제 청마 유치환 시인 기념관 방문 부산 장로원로회(회장 김순욱 장로) 회원들이 4월 4일 거제 청마 유치환 시인 기념관에 방문했다.
      2018-04-26
    •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목회자위원회 주관 제주도 목회자 수련회 부산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허원구 목사) 목회자위원회(위원장 황성건 목사) 주관으로 지난 4월2일부터 4일까지 제주도에 목회자 수련회를 다녀왔다. 이번 수련회는 부산지역 작은교회 목회자와 40대 목회자 9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수련회는 특강과 세미나, 제주관광 등 작은교회 목회자들에게 영적, 육적 재충전의 시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8-04-06
      • 3.1절 앞두고 99년 전 일신여학교 만세운동 재현 호주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부산진일신여학교. 1919년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과 함께 나라의 독립을 위해 3월 10일 태극기 50개를 만들고 다음 날인 1919년 3월 11일 오후 9시,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항쟁은 부산과 경남지역 3.1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부산 동구(구청장 박삼석)는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부산 동구 일대에서 대규모 3.1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열었다.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서 출발한 태극기 행렬은 99년 전 어린 여고생들의 함성처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동구청까지 약 1㎞를 행진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8-02-28
      • 부산에서 처음열린 퀴어축제 부산에서 처음열린 퀴어축제.
          2017-09-29
        • 부활절, 다양한 십자가를 만나본다 ▲ 박상용 집사작가 박상용 집사(서울산교회)는 지난 2012년부터 십자가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현재 작품만 1,500여 점이다. 작년부터 ‘손양원 기념관 개관 1주년 십자가 전시회’와 ‘경남CBS/손양원 기념관 특별 십자가 전시회’등을 개최해 왔고, 금년에는 백양로교회 희년 기념 십자가 전시회(3/31일부터-4월20일까지)를 하고 있다. 박 집사는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십자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한국적인 십자가를 통해 신앙 회복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며 오늘도 십자가 작품을 연구하고 있다. 작가 박상용 집사는 2001년 한국서화미술대전 시각부분 입선과 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 특선 외 다수 입상을 해 왔다. 2015년 국민일보(미션라이프)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소개되었고, 2016년 제24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에서 입상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7-04-10
        • 갈릴리 호수(긴네렛)에서의 일출 이곳 갈릴리호수는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고기를 잡게 하셨으며, 생선을 구워주면서 먹게도 하셨고, 주님의 양을 돌보도록 부탁하셨던 곳입니다.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노아시대 하나님의 홍수 심판으로 비참한 모습이 사라지고, 방주의 뚜껑이 열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새해가 그런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진: 이내원 목사(부산영화교회)
            2017-01-05
          • 2016년 부활절 짜장나눔축제 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성구 목사) 주최로 부활절 짜장나눔축제가 지난 21일(월) 부산진역 광장에서 열렸다. 포항짜장선교회, 광장밥상 등 5곳의 봉사단체의 섬김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노숙인을 위해 500인분의 짜장면이 마련됐다. 짜장나눔축제는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통해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나누는 부활절 사랑 실천운동으로 올해로 4회를 맞았다.
              2016-03-24
            • 새해 소망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에 위치한 한반도 지형에는 남과 북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다. 남북이 통일되어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소망하며 2016년이 평화통일 원년의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촬영 : 사진작가 정판술 목사
                2015-12-31
              • 2015 부산역 성탄트리 점등식 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성구 목사, 이하 부기총)가 지난 12월 6일(주일) 오후 7시 부산역 광장에서 성탄트리 점등식을 가졌다. 부기총 관계자 및 내외빈, 시민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1부 예배와 2부 점등식 순으로 진행됐다. 부기총 사무차장 임영문 목사의 사회로 가진 예배는 부회계 김경호 장로가 기도를, 회록서기 김기태 목사가 성경봉독을, 상임회장 박성호 목사가 설교를 맡았으며, 이성구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어 상임회장 오순곤 장로의 사회로 진행된 점등식에서는 대회협력총장 김항재 장로가 내빈을 소개하고 청십자신협 이대길 이사장이 축사를 전했다. 한편, 부산역 성탄트리 점등식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18년째 개최되고 있다.
                  2015-12-08
                • 손양원 목사 생가 경남 함안군 칠원읍에 복원된 손양원 목사의 생가
                    2015-10-23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좌담회] 북한 '종교박해 영상' 입수, "북한에 지하교회 실제 존재한다" (사)북한기독교총연합회(회장 이빌립 목사, 이사장 임창호 목사, 이하 북기총)는 지난 3월 20일(금) 오전 11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북한지하교회와 기독교박해’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북기총은 북한국가보위성에서 제작한 북한 종교박해 영상을 국내 최초로 공개하며 “박해받는 북한지하교회와 제3국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국적 없는 탈북자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진정어린 기도와 사랑으로 도울 것”을 촉구했다. [편집자 주] ▲ 지난 3월 31일(화) 오전 11시 고신대 부총장실에서 부활절 특집 좌담회를 가졌다. 이상규: 최근 북한기독교총연합회에서 공개한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영상을 어떻게 확보하게 되었나요? 임창호: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북한국가보위성에서 제작한 것으로, 간부들의 교육을 위해 제작된 영상입니다. 4년 전 북한 고위간부 한사람이 탈북했는데, 이분과 친한 탈북자 한분이 저와 친합니다. 제가 북한 사역을 하는 걸 알기에 강의 자료로 동영상을 주신 것입니다. ‘종교미신에 빠지면 반역의 길을 걷는다’는 제목의 영상에서 북한 내 실제로 종교박해가 행해진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간부들을 교육시키면서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종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종교 집단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영상을 보면 ‘미신=종교=기독교’라는 공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상규: 기독교를 미신으로 보는 시각은 역사가 오랜 오해입니다. 이미 로마시대 때부터 기독교를 미신, 특히 ‘해로운 미신’으로 몰아 부쳤지요. 임창호: 이번 영상에서 중요한 점은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리춘화, 마필용, 차덕수 3명의 인물을 보여주면서 사진, 거주지, 족보 등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리춘화 씨는 점쳐주는 사람이다, 미신에 빠진 광신자라고 말합니다. 1948년 체포된 사리원 리찬수 장로의 딸이라고 소개하면서 리찬수 장로가 종교에 빠졌고 그의 딸인 리춘화 역시 종교에 빠졌다고 합니다. 마필용 씨는 안악지역에 있는 기독교인의 아들로 60년간 신앙을 지켜온 인물이라고 소개합니다. 천원수 주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면서 리금녀라는 여인을 꼬셔 전도를 시켰다고 말합니다. 은파군에 장영균, 사리원에 김춘희와 접촉했는데 이들도 50년간 신앙을 지켜왔다고 합니다. 2000년 종말이 온다며 왕국회관을 만들고 옷을 제작해 나눠주고, 남조선에서 온 출판물을 배포했는데 토종비결도 섞여있었다면서 북한 반역죄로 체포됩니다. 세 번째로 나오는 인물이 차덕수 씨인데 이 분이 중요합니다. 사리원에 있는 차덕수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분 이야기가 길게 소개됩니다. 대학 졸업 후 점쟁이를 찾아가서 점쟁이로 하여금 죄사함에 대해 배우고, 죽어도 죽지 않는 영생에 대해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중국에 가면 삼촌이 있는데 자세히 알 수 있다고 말해 중국 삼촌 집에 갔는데 삼촌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삼촌 집 옆에 교회가 있어 갔는데 그 교회가 서탑교회입니다. 북한보위는 말하기를 서탑교회는 목사로 위장된 남조선의 간첩을 훈련시키는 훈련소라고 말합니다. 중국에 있는 모든 교회는 남조선의 간첩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미신에 빠진 사람들이 남조선 간첩 소굴에 들어가 ‘남조선의 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온 차덕수 씨가 거짓으로 자수해서 용서해줄테니 앞으로 하지 말라고 하며 풀어줬는데 그가 장사하면서 함흥, 청진 등을 다니며 지난날 예수 믿었던 종교인 자녀들을 발굴해 지하 조직을 확장시켰다고 합니다. 사리원 교동교회 집사 아들 리기창을 접선하고 제룡교회 집사의 딸 김순녀를 찾아내 매주 일요일 산에서 숨어 기도하고 찬송하며 교리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영상에는 산에서 숨어 예배 드리는 사진이 나옵니다. 그리고는 일망타진 되었다고 말합니다. 몇 년간 수고해서 영상을 제작했다고 말하며, 종교는 마약, 아편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공화국 안에 기독교가 침투 못하도록 모두가 정신을 차려 찾아내야 하고 여기에 빠지면 안된다, 그리고 중국에 가면 교회를 가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발견된 찬송가, 성경책이 사진으로 나옵니다. 북한이 기독교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수년간 조사하고 찾아내 잡았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북한 정부가 북한 내 지하교회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영상을 보면 황해북도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참고로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출간되는 ‘북한 종교자유 백서’를 보면 유사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윤여상 박사가 제작한 이 책은 2만 여명의 탈북민들을 인터뷰하면서 북한의 종교실태를 조사합니다. 여기에 보면 기독교를 접한 사람, 기독교인과 함께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북한 내 지하교회가 있음은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증명했고, 영상을 통해 북한 정부가 증명한 셈이죠. 임창호: 이 교수님께서는 이런 영상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상규: 저는 5가지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최근 북한이 마치 종교 자유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런 현실에서 볼 때 북한에 종교자유가 있는 것은 허위임을 다시금 확인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둘째, 해방 후 70년 세월이 지났는데도 지하교회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신앙이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고난을 이기면서도 긴 세월 동안 신앙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줍니다. 셋째, 영상에서 나온 남한에서 받은 성경책을 보면 남한에서 행해지는 북한선교 활동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넷째, 전략적인 이유라고 할지라도 북한 정권은 기독교를 미신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통적인 공산주의 국가의 인식입니다. 기독교를 미신으로 이해한 것은 로마제국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기독교를 미신이라 썼는데, 이는 기독교를 탄압하기 위한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다섯째는 북한이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기독교를 ‘지하조직’ 혹은 반국가적인 행위, 간첩조직훈련소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병존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 이상규 교수(백석대 석좌교수, 고신대 명예교수) 임창호: 1962년 김일성은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성)에서 행한 연설에서 종교를 철저히 말살할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는 종교인들을 데리고 공산주의 사회로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천주교에서 집사 이상의 간부들을 모두 재판해서 처단해 버렸고 그 밖의 일부 종교인들 중에서도 악질들은 모두 재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반 종교인들은 본인이 개심하면 일을 시키고 개심하지 않으면 수용소에 가두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외적으로 한 말이 아니고 고위 간부들을 교육하기 위해 한 말이었습니다. 이상규: 저도 이 내용을 일반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본 적 있습니다. 한국교회사 학자 중에서도 마치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책을 쓴 사람이 있어요. 북한어 허용한 지하교회가 있고 마치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기술 했더군요. 그러나 이번에 입수된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일성 스스로 기독교를 다 처단했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 내 종교의 자유는 거짓이죠. 임창호: 맞습니다. 1975년 김일성의 비밀교시를 보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과 재외동포들은 우리에게 왜 종교를 못 믿게 하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를 허용하지만 인민들이 각성되어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국 남반부에 수많은 종교인들이 살고 있는데 우리가 종교인들을 다 죽인다고 생각하면 그들도 우리를 반대하는데 합세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도 불필요한 중앙 종교조직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상규: 종교단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죠. 임창호: 1986년 김정일은 “수령님께서 종교를 악용하는 반동적 지배계급과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을 배격하시었지 종교와 신자를 배척하신 일이 없습니다. 종교에는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도 있습니다. 종교에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평화롭게 살라고 주장하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리고는 2년 후인 1988년 봉수교회가 설립되고 1989년 칠골교회, 2005년 제일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상규: 대외 국제 여론을 생각하면서 세운 교회로 일종의 선전용이라고 봅니다. 이번 영상을 보면 북한은 기독교에 대한 정서가 변함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창호: 앞서 말했듯이 영상을 보면 황해북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다른 자료도 살펴보면 황해도 지역에 기독교 관련 내용이 많음을 볼 수 있는데, 기독교 역사학자로서 이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이상규: 황해도는 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 산둥성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황해도 지역을 기독교의 요람이라고 불렀습니다.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도 황해도로 들어왔고, 1865년 토마스 선교사도 황해도로 오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황해도는 자립중산층이 비교적 강한 지역입니다. 자립중산층이 많다는 것은 진취적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기독교를 빨리 받아들였고, 초기부터 기독교가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임창호: 우리나라 최초 교회였던 소래교회도 황해도이죠? 이상규: 맞습니다. 소래교회는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1883년 설립 되었습니다. 한문으로 송천(松川)이니 원래는 ‘솔내’인데 자음접변 때문에 ‘소래’라고 부르게 되었지요. 대구면의 이름을 살펴보면 큰 대(大), 구원할 구(救)입니다. ‘큰 구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에 한국 최초 교회가 세워진 것이죠. 임창호: 40년도 북한교회사라는 책을 보니 교회가 평안남도에 608개, 평안북도에 549개, 황해도 560개, 함남 200개, 함북 130개입니다. 함남, 함북 지역에 비해 평남, 평북, 황해도 지역에는 500개가 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또 북장로교회가 1906년 황해도 재령에 본부를 세웠다는 자료를 보았습니다. 이상규: 북장로교 선교부는 11개 선교지부(mission station)를 설치했는데, 제일 먼저 생긴 곳이 서울이고 이어 평양과 부산에 세워졌고 이후 선천, 대구, 안동 등에 지부가 세워졌습니다. 재령에는 1906년 선교지부가 설치 되었는데 재령에서 일했던 선교사가 한위렴(윌리엄 헌트) 선교사이고, 그의 아들이 한부선 선교사(브루스 헌트)입니다. 한위렴 선교사는 재령 선교의 개척자였습니다. 임창호: 그렇군요. 이상규: 최근 재미교포 최모 목사가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북한에 500개가 넘는 가정교회가 존재하고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합니다. 또 가정교회와 지하교회는 다르다면서 북한은 가정교회를 공식 교회로 인정하지만 지하교회는 불법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지하교회는 있을 수 없고,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다는 주장은 사기라고 보도했습니다. 임 교수님도 보셨습니까? 임창호: 네. 저도 기사를 보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북한의 영혼들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님들과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 많은 한국교회 성도님들의 기도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습니다. 이상규: 그렇다면, 북한에 지하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가능할까요? 임창호: 탈북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을 보면 지하교회가 가능합니다. 첫째는 중국에서 훈련받고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을 통해 교회가 개척될 수 있습니다. 영상에서 나온 서탑교회처럼 중국 국경 지역에서 교회들이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둘째는 해방전부터 신앙을 가진 그루터기 성도들에 의해서 유지되는 지하교회입니다. 영상에서 나온 것처럼 누구 집사의 아들, 누구 장로의 딸이 아직 살아있다는 이야기죠. 셋째는 북한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개척되는 지하교회입니다. 제가 이 경우와 관련해 알아보니 북한 내 지하교회에 지도자가 없어 가르쳐줄 사람이 없고, 그래서 황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이 리더십을 갖고 모임을 가진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글도 있고 지하교회 성도들을 통해 내려 온 이야기들을 조합해 자기 나름대로 만든 또 하나의 교회가 생겨나는 것이죠. 과거 카타콤이 300년간 지하에서 있다가 밖으로 드러났을 때 그동안 가르친 내용들이 혼란스러워 교회들이 교리를 정리하며 확인하는 작업들이 있었습니다. 지도자들 가운데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성경을 이상하게 가르치는 이들이 있었는데, 북한 지하교회 역시 70년간 폐쇄되면서 독자적인 해석을 하며 교회를 이끈 지도자들이 발견되어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상규: 저는 지하교회가 생존하다고 볼 때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루터기 신앙으로 은밀하게 신앙을 지켜온 순수한 그룹입니다. 1-2년 된 것도 아니고 공개적일 수도 없지만 오랜 시간 믿음을 지켜온 중요한 그룹이죠. 그리고 중국을 왕래하면서 중국 지도자든 한국 지도자든 그들을 통해 복음을 듣고 북한으로 들어가 지하교회를 조직한 그룹이죠.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교리보다는 조금 더 허황되고 정통성 보다는 현실적인 위로가 필요하니 우리가 말하는 ‘정통 기독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 임창호 교수((재)북민실 이사장, (사)북한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 고신대 부총장) 임창호: 통일교가 김일성 생존 당시 북한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국경지역에 건전한 선교단체 선교사들만 가는 것이 아니라 신천지, 여호와의증인 등 이단들도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밝혀진 것을 보면 신천지가 중국 우한에 들어가 포교활동을 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 안에도 이단 관련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몰랐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그들이 이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건전한 선교사가 아닌 이단들이 국경지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도움을 준다면 이단적 사상을 잘못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우려됩니다. 이상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단들의 목표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외국 역시 그들의 포교 대상이 됩니다. 특히 외국에서 포교활동을 할 때는 재외한국인을 우선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칩니다. 언젠가는 통일이 될 거라는 생각에 친북정책을 펼치며 가장 먼저 경제적 도움 주면서 접근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모집하고 비밀집회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임창호: 만민중앙교회에는 탈북민 2천 여명이 갑니다. 탈북민들에게 돈을 월 40만원 가량 주고 버스를 수십대 빌려 탈북자들이 참석하게끔 했습니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씨가 말하기를 탈북민들을 앞세워 선교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천지에서도 탈북민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접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영상에서도 나오듯이 2000년 재림을 주장하고 잡혀갔다는 내용을 볼 때 국내 다미선교회처럼 이단 사이비가 북한에도 있다고 봅니다. 이상규: 옛날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도로를 건설하던 중에 지하교회로 보이는 은밀한 처소가 발견되어 20여 명이 체포되어 잡혀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임창호: 그 내용이 ‘북한 종교 자유백서’ 이 책에 나옵니다. 함흥에서 다리 건설을 위해 기초공사 중 동굴이 발견됩니다.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어 추적한 결과 수년간 예배처소 였음이 발견 되어 수십명이 잡혀갔다는 증언이 자료에 나옵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이 국내에 들어온지가 2014년 이후인데, 그렇다면 영상 제작을 위해 걸린 시간을 계산한다면 2010년 이후라고 봅니다. 영상도 그렇고 탈북민들이 증언하는 내용을 들어보았을 때 최근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봅니다. 임창호: 이번 영상을 통해 북한 지하교회 성도의 실체를 확인 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떤 자세를 갖고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상규: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인권 문제라고 봅니다. 인권 문제는 어느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닌 보편적 가치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먹고 싶을 때 먹고 이동하고 싶을 때 이동할 수 있는 자유인데 이런 기본적인 인권조차 북한에서는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은 한국교회가 어렵더라도 북한 기독교 신자를 돕고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게 필요합니다. 조기련(조선기독교연맹)을 통한 북한 내 성도들 지원은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에 있는 메노나이트교회는 북한에 식량을 보냈는데 군사용으로 전용된 것을 보고 이후 학용품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그들은 또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북한 교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진실하게 북한 교인들을 돕겠다는 의지로 통로를 만든거죠. 한국교회도 관심을 갖고 특히 지하교회 성도들을 도와줄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전시용이 아닌 진정한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임창호: 북한 당국이 북한에 지하교회가 사실상 존재한다는 것을 전세계에 증명한 것이죠. 그런데 지하교회가 있니 없니 언급하며 소비적인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만5천명의 탈북자가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북한 선교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상규: 탈북민들은 그들의 가족, 지인이 북한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한국교회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제3국가에서 맴도는 탈북민들이 많습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 때 정신대에 끌려가 고생을 당한 이들처럼 탈북민들은 지금도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창호:굉장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미국에서는 2012년에 중국 내 탈북고아 구출을 위한 법안을 통과 시켰습니다. 중국 내 탈북자 자녀들이 5만명이라고 합니다. 그중 엄마가 죽거나 북송되어 혹은 견디지 못해 가출한 아이들이 5천명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중국 내 북한고아 탈출법을 만들어 미국에 데려 갔습니다. 우리나라도 힘들게 법안을 만들었으나 현재 있으나마나한 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교수님 말씀처럼 한국교회가 여기에 관심을 갖고 함께 대안을 마련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실 때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상규: 원론적으로 말하기는 쉽지만 사실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고 전문가 양성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도와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며 돕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어느 단체에 후원 했을 때 과연 그 돈이 제대로 쓰일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죠. 그래서 북한 인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국내 대학에 북한학과가 있지만 복음적인,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대학에서 북한학과를 설치하여 전문가를 키워내길 바랍니다. 아직 국내 기독교 대학에는 북한학과가 없어 아쉽습니다. 우리 주변의 교회, 학교를 보면 북한선교에 비전을 갖고 준비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탈북자들 중에서 신앙이 좋고 북한을 향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북한 전문지도자로 키워내길 바랍니다. 임창호: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고 북한을 향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면 통일한국을 향한 미래가 밝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북한에서도 함께 누리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 인물
                    • 좌담/대담
                    2020-04-09
                  • (인터뷰)부산기독교유적지 소개 영상 만든 탁지일 교수 Q : 먼저 부산기독교 유적지 소개 영상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부산지역에는 기독교 유적지의 보존이 열악합니다. 그 이유는 ‘역사의식의 결여’라기보다는 ‘한국전쟁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국 각지로부터 일시에 몰려온 피난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산의 지형도 바뀌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독교 유적지의 보존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현재 부산지역에는 동일한 역사적 ‘공간’은 남아있지만 그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복음전도자들의 역사적 흔적과 증언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동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이 동영상을 보며 부산지역의 기독교 유적지를 걷는다면, 소중한 공감과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수년 전에 한국연구재단에서 “부산지역 기독교 유적지 개발 및 활용방안 연구”라는 연구 과제를 수행했고, 그 후속 작업으로 부산지역 기독교 유적지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한 달에 두 번 정도 국내외에서 부산지역을 찾는 분들이 신청을 받아 탐방 안내를 했는데, 그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동영상 제작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이 동영상은 제가 소장으로 있는 부산장신대학교 부설 부산경남교회사연구소의 지원과 신대원 제자인 김한별 전도사의 도움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Q : ‘부산’은 한국교회에 있어서 어떤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 먼저 부산은 조선 복음화의 첫 기착지입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 온 초기 선교사들이 그 첫발을 내딛은 곳이 바로 부산이라는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알렌과 아펜젤러의 일기를 비롯한 다수의 기록들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유입 경로나 그 우선순위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진실을 기록해, 복음화율이 열악한 이곳 불교의 땅에서 살아가는 다음세대 기독교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입니다. 또한 부산은 복음의 피난처입니다. 내년은 한국전쟁 70주년입니다. 전국 각지의 기독교인들이 부산으로 피난 내려오면서, 부산은 한시적인 한국기독교의 중심이 됩니다. 이 시기에 많은 피난교회들이 도처에 설립되고, 부산지역 기독교는 성장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한국교회사적으로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아픔 속에서 이루어진 복음의 전국적 확산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로마제국 복음화를 위한 흩어지는 선교의 시작이었다고 한다면, 한국전쟁은 복음의 전국적 확산을 가능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부산이 있습니다. Q : 영상에 나오는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들을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 순례’ 동영상에는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를 비롯한 초기 선교사들이 첫 발을 내딛은 기착지로부터 이곳 부산에서 순교한 선교사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일제강점기 부산지역 3.1운동의 시발점인 부산진일신여학교와 한국전쟁 당시 산모와 영아들을 위해 설립된 일신기독병원의 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부산항 역사를 볼 수 있는 부산본부세관박물관, 그리고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에 관한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지금은 부산의 평범한 일상이 이루어지는 도심 속 장소들이지만, 교회사 이야기들을 통해 바라보는 기독교 유적지들은 새로운 의미로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이 동영상 내용을 참조하여 교회 각 기관 및 가족 단위별 탐방이 가능합니다. 지난 6월 14일(금)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부설 한국기독교역사문화아카데미 회원들과 함께,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을 각자 시청한 후, 제가 직접 동영상의 장소들을 안내를 하며 탐방을 했습니다. Q : 혹시 경남지역 기독교 유적지 영상이나 이단관련 영상 제작은 계획이 있으십니까? A : 물론입니다. 올해는 특히 호주선교가 시작된 지 1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부산경남지역은 호주선교부가 선교를 담당했던 지역일 뿐만 아니라, 손양원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 등의 신실한 신앙인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호주선교와 관련된 교회 및 유적지들에 대한 동영상 스토리라인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여건이 허락 되는대로 제작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부산지역에 비해 마산, 통영, 진주, 거창 등 접근성이 쉽지 않은 넓은 지역에 기독교 유적지들이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고민입니다. 동영상의 제한된 분량을 고려할 때, 역사적으로도 중요하면서 현재적 의미가 있는 대상을 선별하여 촬영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좋은 제안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 현재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으로 있는데, 현재종교가 부산 토크 콘서트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일정 등을 알고 싶습니다. A : 선친 탁명환 소장의 25주기를 맞아 지난 5월 25일(토) 서울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홀에서 <현대종교 이단 바로 알기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서울지역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관심 있는 이단피해자, 일반목회자, 대학교목, 평신도, 청년대학생 등이 참여했습니다. “최근 이단 트렌드 읽기”(탁지일 교수), “캠퍼스 이단 바로 알기”(탁지원 소장), “이단 문제 관련 실정법 이해하기”(김혜진 변호사)의 주제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만간 부산지역에서 두 번째 <현대종교 이단 바로 알기 토크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정보전달식의 강연이 아니라, 전문가들을 통한 체계적인 분석과 실제적인 대안마련을 모색하는 소통과 공감의 자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Q : 지난 2월 고 탁명환 소장 25주기 추모예식에서 디지털 자료집을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요? A : 선친을 위해서 제가 할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중 두 가지를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첫째로, 2009년 선친 탁명환 소장이 30여 년간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700여 쪽에 이르는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를 출간했고, 둘째로, 지난 2019년 2월에는 탁 소장의 저서 23권과 논문 90편 등을 PDF로 제작한 「이단연구 저서논문 자료집」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이를 ‘한국교회사학회’ 학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했고, 이에 대해 학회는 저희 선친에게 감사패를 증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한 가지 과제는 선친이 발로 뛰며 직접 촬영하고 녹음한 오디오비주얼자료들을 정리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두 과제들에 비해서 많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얼마 전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에서 “한국 기독교 신흥종교운동 오디오비주얼 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 탁명환의 연구 자료를 중심으로”란 제목의 과제가 선정되어 향후 3년(2019~2021)간 연구비 지원을 받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모든 언론, 정부기관, 연구자, 목회자, 평신도들에게 대가와 제한 없이 제공할 예정입니다. Q : 끝으로 부산기독교 유적지 소개 영상과 관련해서 교계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동영상을 교회와 모임의 용도에 따라 널리 활용해주시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비록 제한된 예산과 제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완성도면에서는 미숙한 점이 많지만, 이 작업이 부산지역의 기독교 역사를 바로세우고, 다음세대들의 신앙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함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는 ‘역사성’과 함께 도심에 밀집되어 있어서 ‘접근성’과 주변 문화관광자원들과의 ‘연계성’이 뛰어납니다. 다른 지역의 교계에도 소개해주시고, 부산을 찾는 가족친지들이 계시다면 함께 부산 도심의 유적지 탐방을 계획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트리행사 시기와 연계해 진행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학교와 청년대학생들을 비롯한 교회와 기독교기관에서 이 동영상을 활용해서 각자의 특성에 맞는 탐방프로그램을 운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걸으며 오감으로 체험하는’ 기독교 유적지 순례는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인물
                    • 인터뷰
                    2019-06-13
                  • 고신대, 전소된 한산도교회 위해 복구 활동 ▲ 2월 8일 '한산도교회' 화재모습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마을 경남 통영의 한산도 작은 섬에 위치한 ‘한산도교회’ 목조건물로 지어진 한산도교회는 지난 2월 8일 화재로 흔적도 없이 내려앉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던 상황. 이를 위해 총회와 교단에서 위로하며 물질로 후원하며 기도하고 있지만 한산도교회의 교인은 대부분 70-80대이고, 소수 인원이라 자체적 복구가 힘든 상황임을 고신대학교가 전해 들었다. 고신대학교는 그 소식을 듣고 총장님을 비롯한 학생, 교직원이 현장복구를 위해 나서기로 했다. 3월 16일(금) 아침 7시, 학생 30명, 안민 총장, 교수와 직원이 배를 타고 한산도섬에 있는 교회로 갔다. 전날 밤 많은 비로 인해 걱정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기에 가장 적당한 날씨를 허락하셨다. 현장에서 본 한산도교회는 나무로 만들어진 1층 예배당과 식당, 2층 사택이 까만 재가 되었고 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참담한 광경에 모두가 놀라며, 손을 걷어붙였다. 까만 잿더미를 밟으며 불에 타버려 이미 다 녹슬어 버린 철제, 못이 박혀있는 그을린 나무들을 분리해서 일일이 손으로 옮겼다. 재 속에 있던 교회의 흔적, 그 속에서 발견 한 타다 만 성경책과 유일하게 남아있는 결혼사진은 봉사자들을 눈물짓게 했다. ▲ 현장에 있었던 성경책 김정민 총학생회장은 “저희가 약 5시간 동안 복구를 했지만 남은 것을 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며 “어려움을 겪은 한산도교회를 위해 계속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또, 임진호(직업재활상담학과, 12학번)학생은 “사람이 만든 교회(건물)는 시간이 지나면 썩거나 없어지게 된다. 우리가 교회가 되야한다. 돌아가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받은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한산도교회 김재곤 목사는 “먼 곳까지 직접 와준 학생들에게 고맙다. 교회가 무너짐으로 낙심하고 있었던 성도들도 손자,손녀같은 학생들이 와서 섬겨주는 모습에 격려가 되고, 작은 손길이지만 사랑과 위로에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안민 총장은 “우리학교가 어려운 곳을 돌아보고 섬김의 삶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작은 손길이지만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격려가 되고 학생들에게는 섬김의 삶을 훈련받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며 어려움을 당한 한산도교회 목사와 성도들을 위로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요청했다. 고신대학교는 앞으로도 섬김의 삶을 실천하며 세상의 빛이 되길 소망하며 교단과 전국교회의 관심으로 이후에 새롭게 건축된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예배하고 찬양하는 시간을 기대했다. 또한 봉사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산도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봉사를 마무리했다. ▲ (좌) 작업 전, (우) 작업 후
                    • 뉴스
                    • 뉴스종합
                    2018-03-19
                  • [고신 7신] 드디어 고신과 고려, 하나되다 고신 총회와 고려 총회가 마침내 역사적인 통합을 이뤄냈다. 총회 둘째 날인 16일(수) 고신과 고려는 합병 선언문을 낭독하고 총대들의 박수로 하나의 교단이 됐다.
                    • 뉴스
                    • 뉴스종합
                    2015-09-16